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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26화 (26/162)

〈 26화 〉 1부 22. 환상

* * *

알 수 조차 없는 목적으로.

알 수 조차 없는 적에게 투쟁하고.

알 수 조차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가는게.

과연 행복할까 물어본다면, 답이란 이미 정해져있다.

그런데 어째서, 모두는 살아가는걸까.

본능적으로, 본능에 따라, 본능에 이끌려.

이성적으로, 이성에 따라, 이성에 이끌려.

언뜻 정 반대의 뜻처럼 들리지만, 뜯어보면 이미 근본부터 하나다.

이성도, 본능도. 뿌리는 모두 하나로부터 뻗오나온 모든 생물이 지닌 근본적인 능력중 하나일 뿐이고, 그저 우리만 갖고있다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많은것이 주관적이라 아무것도 몰라.

그렇다면, 왜 이런 삶에 행복이라는 조건이 붙어 삶을 어지럽게 만드는건지.

모두 다 달랐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야.

가치관이 다르고, 모든게 다른데. 어정쩡하게 비슷하니깐 이렇게 개판인거 아닌가?

...잘 모르겠다.

지금은, 답을 내리기엔 너무 이른 것 같네.

******

"콜록."

어깨가 시린듯한 느낌이다.

근데 그냥 느낌이 아니라 진짜로 어깨에 총맞았다는게 아이러니.

­푸우욱!

군데군데에서 온갖 길이와 크기의 창과 검들이 날아와 몸에 박힌다.

관통상이라 그런지 아픈것도 아픈거지만, 몸에 박힌 무기땜에 몸에 균형을 못잡겠어.

복부쪽에 박힌 대검때문에 결국 앞으로 휘청거리며 쓰러진다.

"케흑ㅡ흐."

"□□ ■■■□!!!!!"

아니, 어차피 지금 번역마법도 없으니깐 그렇게 소리쳐봤자 뭐라고 말하는지 못알아들어요.

자꾸 몸에 박힌걸 뺐다가 다시 찌르는 느낌이 기분나쁘네. 온몸에 구멍이 수두룩하게 생겨버렸다.

정신은 혼미하지만, 뭐 어때.

이대로 무력화된 연기만 끝까지 잘 하면 한 번에 다 쓸어버릴 수 있어.

­콱

"아흐, 윽."

젊은 여성 하나가 내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죽은척, 죽은척.

아니, 적어도 죽어가는척이라도.

최대한 눈의 초점을 흐리고 입에선 실없는 소리만 흘린다.

너무 부자연스러우려나? 내가 지금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누군가 내 폐에 박힌 창을 쥐고 이리저리 돌린다.

계단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벌써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오는중.

잘됐어. 더이상 내려오는 사람 없을때 한 번에 처리하자.

­쾅!

하지만, 머리가 깨지는듯한 통증과 함께 시야가 사라졌다.

아니, 잠깐ㅡ

***

돈받으면 모든 게 장땡이라 했던가.

음, 그래. 용병은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여긴 만화속이니 잘 모르겠다만, 일단은 여기선 그런데 뭘 어째. 하루에만 처리해야 할곳이 너무 많다. 결국 우리는 각각 흩어져 따로따로 각개격파하기로 했다.

레프랑 알비나는 본거지, 나는 그나마 덜 위험한 영업장중 하나.

...여기까지 왔으면 눈치 챘겠지만, 마피아 보스라는 사람이 우리에게 맡긴 임무는 기껏해야 적대세력 초토화가 전부였다.

블랙드림까지 손을 대는게 선을 넘었다고 했었는데.

아니, 몰라. 내가 의도같은걸 어떻게 알아. 아무튼 그렇게, 자정에 일은 시작됐지만, 상황이 제대로 돌아갈 리는 없다.

우선 도심지라 규모가 큰 마법은 제대로 쓸 수 조차 없다. 그렇기에 침투작전쪽으로 경로가 변경됐고.

그런데 고용주님쪽에서 붙여준 다섯명의 행동요원들은 죄다 매복해있던 적 세력에게 칼침맞고 사망, 나도 다리 잘리고 도망칠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이쪽으로 불러모아서 한 번에 처리하자 생각했지만, 결국 붙잡혀 이 꼴이 되고 만것이다.

"아흐...으..."

재생된 다리가 의미 없이 허공을 휘젓는다. 가면은 부서진지 오래고, 팔은 묶인채 몇시간째 들려있으려니 거의 끊어질모양.

목적이 뭐든 제발 아무나 와서 뭐라도 했음 좋겠어. 이거 그냥 고문이잖아. 아니, 고문이 목적이었나. 애초에?

주위를 살살 돌려본다. 고개를 돌려보려하면 팔에서 뚜두둑소리가 나며 찢어질 것처럼 굴었기에, 간신히 볼 수 있는 거라곤 정면에 펼쳐진 광경뿐.

­우우웅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 겨우, 내 머리 위에 달린 백열전등 하나. 그리고 저 아래에 달랑 하나있는 투박한 나무의자.

벽면은 철판으로 덧붙여진듯 녹슨 쇠들로 이루어져있다.

저 너머에 보이는 건 두꺼운 벙커의 철문.

아니, 뭐요?

내가 뭐라고 이런곳에 가둬두는거야?

설마ㅡ

­쿠르르르...

그때 갑자기 벙커의 손잡이가 돌아가며 육중한 소음을 만들어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그리고, 저 너머에서 걸어온건.

동공이 모두 검게 칠해진, 남성이었다.

"켁, 흐... 루, 스리아?"

"일단 이 몸은 아니다만,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 눈..."

"...잘 기억하네? 어지간히도 기억에 남았던 모양인가봐?"

당연하지. 애초에 누군가한테, 심지어 사람한테 뜯어먹히는 경험은 그게 처음이었는데 말이야.

게다가, 저 검은 눈동자의 인간한테 닿으면 마력마저도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뭔 짓을 당하더라도, 일단 저 분신만큼은 여기서 조져놔야해.

팔을 비틀어 팔뼈를 부러뜨렸다.

­빠드득!

그러자, 급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력이ㅡ

­파악!

"힉?"

모두, 사그라들었다.

"이거, 놔..."

"루시, 그러다가 팔 찢어지는데, 괜찮겠어?"

"그ㅡ"

­뚜둑!

"아윽..."

"그러니깐 지금은 그냥 이대로 놔둬."

"...그냥 꺼져. 제발."

성인 남성이 매달려있는 여자애의 맨다리를 붙잡고있는 괴상한 상황이 연출된다. 원본은 중년 여자라고 해도 말이야. 아니, 그것도 이상하잖아.

"여기, 어떻게 알고 온거야."

"넌 왜그렇게 순진한 거야? 컨셉이야? 아니면 본판?"

"...?"

"본판인가보네~ 귀여워라."

"그게 뭔 개ㅡ"

"쉿."

­빠지직!

"켁."

갑자기 다리를 붙잡고 아래로 당겨버리니 부러진 팔이 제대로 버틸리가없다.

"아니, 아..."

"기다리면, 다 말해줄게."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뒤로하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본다.

지금와서, 루스리아가 여기 있는 모양새라.

심지어 여긴 영업소 치곤 사람도 비정상적으로 많았고.

그렇다면...

"......벨피스랑, 먼저 거래한 거야?"

"우연히 맞아떨어진거지. 성능 확실한 용병 하나와, 돈. 그 두 가지가 맞으니깐 뒤는 술술 풀리더라구."

"대체 뭘 어떻게..."

"뭐가?"

"여긴 영업소 치고는 사람이 너무 많았어. 마치 준비한듯 매복해있던 인원도 심상치 않았고. 둘이 대체 뭘 짜고친거지?"

"아아, 루시. 너무 멍청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야."

"...?"

"애초에, 루테슘 애들이 왜 널 그냥 잡아왔겠어? 나와 만날 수 있도록? 이상하지 않아?"

"아..."

벨피스의 적대세력, 루테슘.

두 갱단은 서로 활동하는 분야가 비슷해 충돌도 잦고, 그렇기에 거의 원수지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설마... 벨피스와 루테슘이 손을 잡았다고?

말단들을 내주고 몫을 나눠받는 조건으로?

도대체 루스리아가 뭘, 얼마나 주기로 약속했길래 희생까지 감수하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그런 거야. 여긴 본거지도, 영업장도 아니고, 그저 너 하나만을 잡기위해 만들어진 사냥터지."

"..."

하필 내가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시점에 '조직 보스'로부터 직할로 의뢰가 떨어진 시점부터 의심했어야했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잖아.

다루는 분야가 블랙드림이란 마약이라고 했을때 왜 이전의 바닷가의 의뢰를 바로 떠올리지 못한 걸까.

그때의 고용주는 하는 일이 분명 블랙드림의 해외유통이라고 했다.

만약에 벨피스가 블랙드림을 죄다 휘어잡고있다면, 그때의 그 일이 퍼지는건 시간문제였을 터.

'단신으로 마수 수천을 날려버린 어린 용병'

...이라고.

그 강렬한 문구가 뇌리에 깊숙이 남아 뛰어난 용병 했을때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남자가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말했다면, 완벽에 완벽을 기한 일이었을테지.

"죽지 않는 소녀라는 말을 듣고 바로 네가 떠올랐지뭐야. 행운이었지. 나도 너에게서 넘쳐흐르는 그 방대한 마력 하나만큼은 최고로 치거든."

"...광대가, 왜 용병을..."

"사적인 일이야. 광대는 와해된지 오래고, 다시 뭉칠일도 없어."

"...무슨 일을 하려고?"

"친구를 구하는 일이지. 겸사겸사 세상도 구하고."

"...마지막말은..."

"......"

"...뭐하자는거야."

마음속부터, 날 완전히 갖고 놀고있어.

"지랄하지 말고 꺼져. 난 너랑 놀 생각 없어."

"..."

그 순간, 그 남자가ㅡ

아니, 루스리아가.

섬뜩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

­푸걱!

"헷."

"루시, 제발 선좀 그만 넘으면 안될까? 눈치가 없어?"

­쿠드득!

"흐악?"

"내가 여러 번 그냥 넘어가니깐 호구로보여? 응?"

"끄흣, 흑, 아니..."

"주종관계는 확실히 하자, 루시. 널 고용한건 우리고, 넌 고용된 기간동안 우리한테 복종하면 되는거야. 알겠어?"

"아흐, 윽."

"알겠어?"

"닥, 쳐..."

­서걱

"...?"

난 분명 닥치라고 말했을텐데,갑자기 루스리아가 손에 묶인 밧줄을 끊어준다.

설마 내 마음이라도 돌리려고 여기서 풀어주려고 하나 싶었는데.

­꽈악

그건 아니었나봐.

그대로, 내 몸을 아래 있던 투박한 나무의자에 묶어버려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생긴건 귀여운데 말이야. 징그러운 흉터들이 흠이긴 하지만. 마음까지 아름다웠으면 완벽했을텐데."

"쿨럭, 컥, 으학."

말을 해보려 하지만 방금 루스리아가 뚫어버린 폐에서 쏟아져나오는 피때문에 목이 막혀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주종관계를 확실히 다지려면 교육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

"아흑, 끅."

싫어요.

"좋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케흑!"

싫다고!

...그 후 메챠쿠챠 교육당해서 세뇌되어버렸다.

***

'...'

***

...정도로 간단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으힛! 흑! 흐야악!"

"아파? 이게 아파?"

"켁, 커헉!"

의자에 묶인채 마구 몸부림치는 몸.

"주인님이라고 한 번만 부르면 다 해결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하지, 마... 끄흑... 그마해..."

­푸걱, 푸거걱

온몸에 오한이 스며든다.

"아흐, 흑... 싫어, 싫어... 실..."

"계속해서 말하는 거지만, 넌 정말 쓸데없는데서 고집이 너무 강해. 그냥 좀 넘어와주면 안 되는거야?"

­후두둑

"흣, 흐익."

"자, 한마디만 하자. 한마디만. 그것만 하면 다 끝나."

"케헥."

"주인님. 말해."

왜, 이새끼들은 내가 주인님이라고 부르게 하는 거에 그렇게 집착하는 건데.

연구자들도 그렇고, 루스리아도 그렇고. 심지어는, 서아까지...

"아, 윽... 나, 말고 그냥, 다른... 애들로, 하면... 안 되는거야?"

"눈앞에 니가 있는데, 굳이 왜. 게다가 일반적인 놈들은 가봤자 얼마 버티지도 못할 걸. 양보단 질이지."

아니,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 살려... 살려줘... 살려주세요..."

"......꼴사납네, 루시."

"제발......"

알비나랑 레프가,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기다려지는건 처음이다.

대체, 대체 어딨는거야.

빨리좀 와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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