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1부 21. 마스터 지랄좀 하지마십쇼
* * *
"...마스, 여기로 와봐."
"여기가 어딘데."
"이준서, 내 위치좀 마스한테 보내줄 수 있어?"
"...아, 확인했다."
"빨리와. 최대한 빨리."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모니터를 향해 다가간다.
벽면을 가득 채운 푸른 화면을 향해.
그러고선키보드를 조작해, EXCESS 버튼을 활성화시켰다.
"...아."
그러자, 화면 가득 떠오르는 무수한 파일들.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있는 보고서같은 형식의 제목을 가진 파일들이었다.
로엘로아흐 2차 적응기록 1~3
로엘로아흐 2차 실험기록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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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단어의 조합으로 쓰여진 파일의 제목들.
제목만 보면 과학실험따위의 기록일지라도 되는 양 보인다.
어째서 2차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이것만이 전부니깐.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은 이게 전부잖아.
우선은, 처음부터 열어보자.
왼쪽 최상단에 올라있는 가장 낮은 번호대의 파일로 마우스를 옮겨 클릭했다.
"동영상인가..."
동영상 3개가 각각 1phase, 2phase, 3phase란 제목이 붙은채 올라와있다.
각각 3단계로 나눈 형태구나.
딸깍.
1phase를 클릭한다.
그러자, 전체화면으로 전환되며 동영상 하나를 띄우는,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니터.
위이잉
재생된 영상엔 마치 CCTV로 찍은듯한 화면이 떠올라있다.
소리까지 들린다는 점이 차이점이긴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것은 텅 빈채 싸늘한 환풍기소리만을 울리는 어두침침한 방.
전체적으로는 새하얀 깨끗한 방이지만 광원이라고는 수술용 조명 하나밖에 없기에 음침한 분위기를 풍긴다.
약 1분가까이 그런 변화없는 방을 무심하게 비추고있는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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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런 무미건조한 방이 1분여정도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을 무렵, 화면 상단의 자동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이동식 침대와 함께 성인 남녀 둘이 들어왔다.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든건, 침대에 묶여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ㅡ
"...루시?"
루시.
아니, 루시와 비슷하지만, 더 어린 누군가.
어쩌면, 루시의 동생일 수도 있다.
새하얀 원피스 달랑 하나만을 입은 그 자그마한 소녀가 침대에 묶여 영상의 중앙을 향해 끌려온다.
얼마 뒤, 방의 안으로 들어오는 대여섯명의 사람들.
각자 익숙한듯 자리를 잡고 장비를 배치하는 모습이다.
수술용 조명을 끌어다 소녀의 배를 비추는 모습에, 점차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아냐. 그럴 리가 없지.
이건 그저 내 끔찍한 상상일 뿐이라며, 마음을 달랜다.
어쩌면 현실부정, 도피심리.
알고있지만, 도저히 볼 용기가 없다.
화면속에선 챙그랑거리며 쇠붙이가 부딛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소녀의 옆에 서 있던 남자 하나가 소녀의 원피스를 소녀의 배가 다 드러나도록 확 젖혔다.
소녀의 매끄러운 배에 반사되어 빛나는 조명.
"윽?"
소녀가 당혹감에 흘리는 소리가 귓가로 스며든다.
목소리마저, 어째서 루시를 그토록 닮은건지.
루시와 비슷하지만, 더 엣된.
그런 가냘픈 목소리다.
어느새 내 마음속 불안감은 그 세를 불려, 점점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
없잖아.
루시는, 저 소녀는.
그냥 평범한 어린애였다구.
평범하게 칼맞으면 죽고,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란말이야.
그런 어린애한테, 대체 무슨 짓을ㅡ
"자, 잠깐! 잠깐만요!"
화면속의 소녀가 절박하게 외치는 단말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면은 어느샌가 전환되어, 수술대를 바로 위에서 비추는, 그런 구도가 되었다.
이젠 여과없이 드러나버린 소녀의 몸 상태.
여기저기 멍들고, 흉터가 가득한 끔찍한 모습.
보는이의 눈이 찌푸려지는 참혹한 형태다.
그런 모습을 겨우겨우 바라보고있자니, 다시 화면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취는? 마취는요?!"
【...어차피 안죽으니 괜찮다. 그리고 널 재우려면 평소보다 배는 더 많은 마취제가 필요하고. 명백한 손해다.】
...마취?
"아..."
소녀의 얼굴이, 공포감으로 물든다.
나는ㅡ
눈앞에는 영상의 정지버튼이 있음에도 도저히 손이 가질 않는다.
그 사이 벌써 소녀의 새하얀 배에 매스를 올려놓은, 그 장면까지 흘러간 영상은 결국.
"씨발."
그대로, 재생된다.
참혹한 광경을 필터링없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모두 다.
푸거거걱!
배가 찢겨지고, 피가 흩날린다.
저, 너머로.
화면 너머로.
마치 그래픽같아.
콰지직!
"힛! 흐익!"
혈액이 너무나도 많았다.
푸컥!
"끄하, 학... 끄윽!"
화면을.
눈앞의 벽을.
온통 붉게.
혈액들이.
소녀의 뱃속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피가 화면을 비추는 카메라를 온통 붉게 적셔나간다.
루시는 저 화면 너머에서, 그 누구의 도움의 손길도 바라지 못하며 고통받고있는데, 나는.
"...아아아...아..."
키보드를 붙잡은채,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하지마.
그만해.
"제발..."
눈앞이 흐릿해.
제발 누군가, 이 상황이 그저 끔찍한 블랙조크라고 말해주길.
하지만 나에게.
그런 구원은, 없다.
"왜, 왜..."
대체, 대체 무슨 짓을.
살아있잖아. 같은 사람이잖아.
원하는 게 뭐길래.
도대체.
'왜.'
"아학ㅡ컥? 흐악?!"
콰지지직!
꿀럭!
무심한듯이.
화면에서 눈을 돌려도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그 음성이, 소리가 ,찢어지는 소녀의 배를.
마음을.
기억을ㅡ
"으...아...아아아......."
아니.
미안.
미안해.
미안해.
제발, 그만해줘.
미안해, 루시.
아니, 루시가 아니잖ㅡ
루시, 루시잖아.
내가 지켜주지 못 해서.
내가.
전부.
다...
"웁..."
"우웨에에에에엑ㅡ!"
쾅ㅡ!
"...성화연...?"
마스.
마스?
"너, 뭐..."
영상은 다음 화면을 비춘다. 그저 새빨간 피만이, 묻어있다.
ㅡ아.
어지러워.
제발.
제발 그만해.
제발, 내 눈앞에서 그냥...
"으...흐윽...으으윽..."
"..."
차라리.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니, 차라리 이런 일이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미안해...미안해..."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나 잔혹한 걸까.
어째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나.
이렇게나...
"미안해... 루시..."
그만해줘.
부탁이야.
**
"루시, 일어나."
"아... 5분만..."
"빨리 일어나, 벌써 6시야!"
"으으응..."
"저녁 6시라고!!"
???
"네?"
"저녁 6시라고! 저녁!"
"이런 미친!"
몇시간을 잔거야?
어제 새벽 1시부터, 저녁 6시.
대충 잡아도 15시간을 잔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람에겐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애초에 난 일주일 밤낮을 새도 아무 변화조차 없던 놈인걸!
갑자기 왜 몸이 이지랄이람?
"왜 미리 안깨웠어요!"
"몇 번을 깨웠는데 왜 나한테 화내!"
"몇 번?"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
"..."
아무튼 지금 엄청나게 늦잠잤다는건 사실이니깐.
6시 반에 바로 일 들어가기로 약속했는데.
서둘러 가면과 커다란 자켓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
.
.
고용주란 사람은 꽤나 뚱뚱한 사람이었다.
이런 곳에서 뚱뚱하다니, 적어도 돈 엄청 버는 사람인것만큼은 확실하다.
"벨피스 보스야."
"에?"
"마피아 보스라고."
...어쩐지.
그러면 이해가 가긴 한다.
건물은 허름한데 분위기는 고급스러운 괴상한 조합의 레스토랑에 자리 잡은 우린, 정확히는 레프와 알비나만 소위 '비즈니스' 관련 이야기를 하며 서로 비위를 맞추고, 일을 전달받아가며 이야기를 하고있다.
이런게 어른들의 세계라는건가.
"."
"."
가끔 웃고, 알 수없는 돈 관련 이야기가 오가고, 누군가를 까내리는 얘기가 들려온다.
조직보스에게서 직할로 의뢰가 내려온건 처음이니깐 이틈에 연을 터야한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가 이해할만한 세계의 이야기들은 아니다. 역시 사회생활은 어려워.
대화에 낄수도 없고, 가면을 벗을 수도 없으니 눈앞에 떡하니 있는 스테이크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나저나, 옆의 그 꼬마는 뭔가? 혹시 그 애도..."
"아, 네. 이 아이도 저희소속 용병입니다."
"오? 어린애가 가드라고?"
"...네, 실력은 일단 확실하니까요."
"가드 공인이라."
"아하하..."
"그거 기대되는군."
그러고선 날 위아래로 흝어본다.
...소름끼쳐.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듯한 저 눈빛...
아, 물론 성적인 의미가 아니라, 주종관계적인 의미로.
...
이게 더 외설적인가.
잘 모르겠네.
아무튼, 그렇게 대화가 지속되고 있으려니 어느샌가 식당에 50명정도의 인원이 더 들어와서 테이블에 자연스레 앉았다. 식당이 굉장히 시끌벅적 해졌다.
알비나랑 자연스레 대화하는 거 보니 저 사람들도 가드인 듯 하다.
용병만 50명을 고용하다니, 이번에 어지간히도 판 크게벌릴 작정이신가봐.
지루한 이야기는 계속되고, 그 사이에서 난 불편한 시선들을 느끼며 잠들지 않기위해 힘을 쥐어 짜내는 중이었다.
***
"하하, 많이 졸린가보구나."
"아, 읍."
목을 거의 90도로 숙인 채 꾸벅꾸벅 졸고있으려니 그 '마피아 보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무 놀라서 고개를 팍 들어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얘가 아무래도 어린애다보니..."
"신경 안쓴다네. 일단 실력만 확실하면 된거 아닌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살짝 흘겨보는 레프의 시선이 느껴진다.
...왜.
졸리면 좀 잘 수도 있지.
다만 상황이 그에 안맞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려나.
지루한 이야기는 이제 거의 끝나가는 듯했다.
세력이 어쩌고 셀의 유통이 어쩌고 외부의 유입이 어쩌고.
마지막 이야기들은 최대한 집중해서 들었건만, 그 사이에 임무 관련 내용이 들어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진짜 이쪽 판은 나랑 안맞나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