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1부 19. 열람하시겠습니까?
* * *
***Side 마스
콰아아앙!
핏!
눈앞에 있던 컨테이너가 푸른 불길에 휩싸이며 폭발한다.
"마스! 오른쪽 코너!"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곧바로 쇄도하는 가시들.
죄다 태워버리고, 곧바로 앞에있는 사내를 잿가루로 만들어버린다.
끔찍한.
끔찍한 광경이지만, 이들보다 더 끔찍한건 상황.
불가항력적인 데스게임.
여기저기 미로같은 컨테이너 사이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이란 사람은 죄다 잿가루로 만들어 노을로 물들어가는 붉은빛의 하늘에 흩뿌린다.
콰아앙!
볼에 스치며 지나간 파이어볼 하나가 끔찍한 통증을 만들어낸다.
반응할 틈도없이, 곧바로 날아오는 다음 공격.
피하고, 부수고. 태우고.
전부다, 거의 정신 나간채로.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하나씩 부숴나간다.
거대한 컨테이너 하나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들어올려졌다가, 추락. 들어올려졌다가, 추락.
흔들린다.
바닥이 뚫리고, 파편이 비산한다.
핏!
콰아앙!
컨테이너가 공중에서 폭발하고, 그 사이 오른쪽에서 가시 수백개가, 거대한 하나의 형태를 이루며.
'못피해.'
못피해, 저건.
피할 수 없으면, 필요 없는쪽을 대신.
카가가각!
오른팔의 의수가 갈려나갔다.
오른팔을 갈아버리며 날아간 가시가 도착한곳은, 선실.
쿠우우웅!
"뒷쪽에 5명 언저리! 빨리!"
'죽여.'
죽이고. 죽이고.
바닥의 철이 물결치듯 움직인다.
곧바로 반사적으로 공중을 향해 비행하고, 소용돌이치는 붉은색의 불길이 여성 하나를 찢어버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
배 바깥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스멀스멀거리는 검은색의 역겨운것들을 터뜨리며, 사람 수십을 태워버리며, 저 위까지 치솟는 불길을 폭주시키고.
남자 하나의 얼굴을 손에 붙잡아 터뜨리고, 배에 올라타는 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마수 하나를 저들의 한가운데에 내던져버리고. 내려치는 번개에 몸이 지져지며.
파직,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오른팔의 의수가 과부화하기 직전이다.
스파크에, 불길이 뒤덮이다니, 끔찍한 조합이군.
콰드득!
남겨진 팔부분을 모조리 뜯어내자 끔찍한 격통이 올라온다.
신경 쓸. 틈은 없다.
내 몸이 아니라, 내 목숨이 아니라. 이건.
화연이와, 준서와, 제인의, 3명분의 목숨.
해내야만 한다.
콰아아아!
불길에 휩싸인 짧막한 의수를.
쿠구구궁!
멀리 집어던져, 사람 수십을 폭사시킨다.
피가, 뼈가, 살점이, 옷가지가.
모두, 불에 휩싸여서.
콰지지직!!
뒤에서 쇄도하는 칼날달린 밧줄을 손으로 잡아 힘으로 업어친다.
온몸이, 차갑고. 뜨겁고.
마치, 이건 찜질방에 들어갔을때와 비슷한 느낌.
감기에 걸렸을때와 비슷한 느낌.
모든 게, 모순됐다.
감각이 모두 모순되어 어그러지고 흐뜨러지고 파열한다.
그리고, 이대로.
화연이와 준서가 제인을 찾을때까지. 혼자.
콰아아앙!
불길에 휩싸여 더욱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이 끔찍한 지옥이 어떻게든 끝나기를 바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콰직!
***
얼마나 지속되야.
도대체 얼마나 부숴야.
이 지옥은, 끝날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불분명하다.
살기위해 투쟁하고, 그렇기에.
콰아앙!!!
그저 살아갈 뿐이다.
***
"흐...으윽..."
눈앞에 하반신이 새하얗게 불타버린 남성 하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남았던.
이게 마지막이야.
숨통을 끊기 위해, 손을 들어올린다.
"...그 사람이, 마지막이구나."
성화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왼손에 푸른 불꽃을 피워올리던 그 순간.
"쿨럭, 하아...하아... 정말, 엄청난 괴물이군."
피를 한번 토해낸다.
"내가 본 괴물중에 두 번째로 엄청난 괴물이야... 하, 하하..."
"...두 번째라니. 그게 뭔소리야."
"궁금한가?"
"...아니."
하지만 그 남성은 내 대답따윈 상관없었다는 듯, 혼탁해져가는 눈을 한 채로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꼬맹이였지... 그래, 꼬맹이... 기껏해야 8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였다네..."
"..."
여자애. 여자애라.
왜 갑자기 루시가 떠오르는걸까.
"...가면을 썼지만, 넘실대던 그 은발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지."
"...?...!"
갑자기, 화연이가 달려들어 죽어가는 남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당신! 당신, 그 여자애! 알고있어? 이름? 이름알아? 생긴거라도!"
양손으로 남성의 피묻은 자켓을 붙잡고, 간절하게 소리치는 성화연.
하지만, 남자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 걸쳐있는듯, 횡설수설 말만 지껄인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아아아... 어쩌면, 천사와도 같을 수 있겠으나... 그 불길하고 음침한, 불가해한 색은... 도저히... 천사라고는..."
"...그게 무슨..."
"아아! 신이시여! 어째서 그대의 손에는 그리도 아름다운 것이 붙들려있나이까... 어째서...!"
툭.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않았다.
"...아."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성화연이, 팔을 툭 늘어뜨린다.
휘청
...그리고, 나도...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마스?"
멀어져가는 준서의 음성과 함께, 바닥이 가까워졌다.
***Side 루시
"돈을 안가져왔다니, 그게 뭔 개..."
"입조심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니가 찾으려하는 그런 정보는 어림짐작해도 적어도 수백만 셀은 나올걸. 그냥 마음 접어라 루시."
"...으으."
역시, 그런 정보마저 쉽게 얻을 수 있으면 그런건 사기겠지.
애초에 연구자 관련 정보까지 여기 돌아다닐거라 판단했던건 내 착오였던 듯 하다.
정보상점이래봤자, 별거 없구만!
나한텐 니들이 알고싶어하는 전보가 수두룩할텐데 말이야.
'무슨정보?'
그러게. 무슨정보지.
에라 모르겠당.
"지금 몇시에요?"
"...꼬맹이는 가서 자야할 시간이다."
"......"
비꼬는것도, 이젠 어딘가 귀여워지기 시작한다.
뭐지, 왜 이래.
나 진짜 미쳤나봐.
남는시간 동안 할 일도 없으니, 그냥 가만히 침대에 드러누워 멍이나 때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괴상한 호기심.
"레프 아저씨."
보드카로 병나발을 불던 레프아저씨가 입가를 한 번 쓱 닦고는 날 바라본다.
"...왜."
"아저씨랑 파벨이랑 알비나는, 어떻게 만났어요?"
"...?"
아니, 왜.
궁금할 수도 있잖아요.
"그건 갑자기 왜 묻는거냐."
"...물어보면 안 되는거에요?"
"아니, 딱히 물어보고 말고 할것도 없지만, 보통 다들 떠올리기 싫어하는 시절의 기억이니깐, 다들 기피하지 않을까."
이런.
내가 배려가 부족했나보다.
사과하려던 찰나, 레프아저씨는 내 무례함은 신경도 안쓴다는 듯 저 먼 시절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
.
.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뻔했지만, 끔찍했다.
아니, 끔찍한것도 상대적인 감정이니깐, 그냥 그렇다고 할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암튼.
적당히, 대재앙 이후로 겨우겨우 살아남았던 세사람이 뭉쳐 겨우겨우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리라는, 내 짐작에.
조금의 스토리적 조미료가 뿌려져 만들어진 것 같은 이야기가 레프아저씨의 입에서 나온 음성의 나열이었다.
...
이거, 위로라도 해줘야겠지.
그래서 많이 힘들었겠다며, 미약한 위로를 건네봤다.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는 말은, 누가 들어도 마음이 울컥해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왜 날 바라보면서 저렇게 씁쓸한 웃음을 짓는걸까.
뭔가 머리가 아파진다.
'...아'
오늘은 졸린데.
게다가 본격적인 활동도 내일 오전부터랬으니 일단은 그냥 자두자.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는 그날 새벽에 가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
.
.
치직직
시끄러.
...
끼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하지마, 아. 머리 아파.
거 진짜 엄청나게 시끄럽네.
끼기기기기긱.
지랄. 아주 발광을 하는구나.
Zzz
그래도, 백색소음이라 생각하며 잠이나 들자.
사람은 원래 적응의 동물이랬잖아.
이런 것도 연구소에 있었던 때보단 나름대로 나은 경험이지 않을까.
***Side 레프
루시가 뜬금없이 우리의 과거를 물어본다.
완전히 떠올리면 미쳐버릴 듯 아파 가슴의 저 한구석 쓰레기통에 쳐박아 썩혀지고있던 기억을 꺼내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루시는 시종일관 변함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솔직히, 나도 반즈음은 기억에 취해 말하는 거라 루시가 듣던 말던 신경 안쓰기도 했고.
마침내 내가 이야기를 모두 끝냈을때, 루시는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랬던 루시의 입에서 나온 말은, 놀랍게도.
"...많이, 힘들었겠네요."
'...'
많이.
많이, 힘들었겠다...니.
저런 말은.
원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잖아.
마음이 시리다. 울컥해진다.
아무도, 아무도.
지금까지, 당연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심지어 우리끼리조차 절대로 말하지 않았던것이 위로의 말이다.
위로의 말은, 자칫하단 역효과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에.
하지만, 어째서 루시가 해주는 저 말이 이렇게나 슬픈걸까.
어린애 앞에서 우는꼴을 보일 순 없어서 있는 힘껏 참았다.
"..."
...
그나저나, 많이 힘들었겠다라니.
인생으로만 따지면, 평생을 연구실속에 갇혀 끔찍한 짓을 당했던 루시보단... 적어도 우리가 더...
'행복...'
하게...
"..."
왜, 그런.
고통받았던 사람이, 고통받았던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야.
아니, 하지만.
이건.
우리보다, 더 끔찍한 시간을 보냈던 아이에게 듣는 위로라, 더 우울해지는군.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씁쓸하게 미소지어주는 일밖에는 없었다.
...세상은 어째서, 어린아이들에게 이렇게나 잔혹한 걸까.
그저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을 터인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