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부 15. 삼도수군통제사
* * *
"안녕하세요."
"아, 알비나."
주점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왔다.
저녁타임이라 그런지 꽤나 북적이는 중. 아니, 원래 이 도시엔 어지간한 대도시만큼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또래조차 보이지 않는다는게 어딘가 씁쓸했다.
레프 아저씨 말로는 연구자 본거지 최근방 안전구역이라 다 용병 아니면 외부에서 들어온 정부요원들만 찾아온다고 한다.
마수들이 그만큼 많이 출몰해서라고 한다나.
근데 이걸 어째, 본거지는 이미 몇 주일 전에 증발해버렸는데.
하지만 딱히 알려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게 사라졌다고 이 사람들한테 그다지 큰 변화도 있을 것 같진 않고 말이야.
오히려 거리 돌아다니면서 들어본 바로는 마수들이 미친 듯이 강해졌다고 한다.
더 절망적이라면 절망적인 상황이 됐지, 결코 나아진 상황은 아니란 말.
아무튼 그렇기에, 딱히 내가 연구자들 본거지 증발시켰다고 밝힐 생각은 없고.
무엇보다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뭐 먹고싶은거 있어?"
"......"
이 사람은 갑자기 나한테 왜 또 이렇게 친절하게 구는거야. 아침의 그 태도는 어디갔냐는 듯이 갑자기 태도가 휙휙 변한다.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깐 내가 다 부담스러워질 정도.
하지만 연구소에서 탈출한 뒤로 아무것도 못먹은 것 또한 사실이라, 일단은 자리에 앉았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먹었는데 낌새조차 안느껴진다니, 확실히 신기하긴 하구나.
메뉴를 보니 모르는 음식 투성이다. 애초에 글자도 못읽는데 메뉴판을 읽을 수 있을 리가.
그렇게 도대체 뭐가 고기요리인지 머리 꽁꽁 싸매며 고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장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파벨은 괜찮대냐? 어젯밤 이후로 소식이 없더만."
...파벨 아저씨 부모님같은데...
괜히 고개가 수그려진다.
"아, 네. 살아는 있어요."
"어휴... 내가 그녀석 팔 잘렸다고 했을때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튼 그래서, 내아들 팔 자른 그 괴물은 어떻게됐어?"
"...하하... 그냥 뭐 적당히 해체해서 팔았죠."
...등골이 오싹해진다.
여기선 마수 시체가지고 마약만든다고 그랬나.
대체 어떤 미친놈이 한 발상인진 모르겠지만, 그것때문에 여기 사람들이 다 맛이 간게 분명해.
내가 움찔거린걸 느낀 건지 그 아줌마가 날 바라본다.
"그나저나 얜 누구야? 이런곳에 갑자기 웬 꼬맹이래?"
"...길잃은 아이인가봐요. 그래서 잠깐 보호해주고 있는 거에요."
"그래?"
잠시 고민하는듯한 아주머니.
그렇게 바라보시면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얼굴을 잔뜩 굳히고선 착잡한 표정을 짓는다.
"얘, 꼬마야."
"아, 넵!"
"혹시 이름같은거 있어?"
"루, 루시에요!"
"루시. 음, 그래. 루시. 혹시 그 상처들 어쩌다 생긴건지 말해줄 수 있니?"
"네, 넵?"
저도 모르는데요?
"아니, 말하기 불편히면 말 안해줘도 되구. 내가 혹시 민감한부분 건드렸나?"
알비나를 바라보며 묻자, 어깨를 으쓱 한다.
그 후로 이곳에서 지내는게 힘들지 않냐는 둥, 레프나 파벨이 힘들게 하지는 않냐는 둥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본 아주머니는, 서비스라며 고기요리 한접시를 가져다줬다.
이런곳이라도 잘 지내보라면서.
어쩐지 지친다.
역시 어른 대하는 게 어려운건 어디서나 마찬가지인건가.
"그거 먹을거야?"
"아, 네... 넵..."
아무튼, 지금 내 눈앞에 남은 건 그저 적당히 잘 구워진 평범한 고기 한덩어리.
원초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생김새다.
뭐 먹을지 고민하고있었는데, 마침 잘됐구나.
하지만 나중에 알비나가 이거가지고 또 갚으라고 하진 않을까 걱정돼서 절로 눈치를 보게된다.
"왜 그래? 빨리 먹어."
"그, 그... 알비나는 안먹어요?"
"나도 곧 시킬거야. 그냥 나온거나 빨리 먹어."
...그렇다면야, 사양할 이유는 없지.
포크로 찍어서 한입 크게 와앙 베어물었다.
"냠냠."
맛있다.
엄청나게.
일주일만에 먹은 음식이라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맛있다.
질기긴 하지만, 그게 뭔상관이야.
앞에서 알비나가 말없이 쳐다보며 슬며시 웃는게 어딘가 불안 하고 부담스럽긴 하지만, 당장은 식욕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이진 않아.
최대한 맛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삼킨다.
"...읍."
...하지만, 그런 행복감도 잠시.
잘게 쪼개진 고깃덩어리들을 삼키자, 이상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니... 원래 알고있던 감각인데. 이걸 왜 이상하다고 느끼는거지?
그냥 평소처럼, 음식이 입을 통해 들어가, 위로 이동하는 과정...
"..."
...인가?
"...윽?"
아프다.
...아프다고?
"끄윽...!"
아파, 아파! 아프잖아!
왜?
이게 왜 아파?
갑자기 뱃속이 타는 듯이 아프다.
단순히 음식을 삼켰을 뿐인데, 이게 왜 아픈거야? 왜?
"웁..."
뱃속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무언가 올라오고, 그 끔찍하도록 뜨거운 감각이 위에서 식도까지 주욱 이어진다.
콰당탕!
의자를 넘어뜨리며,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웁! 우우에에에엑!"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기를 한참.
"켁, 케헥!"
여전히 몸속은 불타는 것 같아, 아직도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이게 대체 뭔 일인건지.
단순히 음식하나 먹었을 뿐이잖아.
평소처럼 식사했을 뿐인데, 갑자기 왜 이렇게 아픈거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루시. 넌 지금 니가 마수라는 사실을 알고있나?"
"...루시 넌 마수다. 몸속까지."
...어제, 파벨에게서 들었던 말이 뇌리에서 울린다.
내 몸속이 완전히 마수의 그것이라던 파벨의 말.
내 몸속의 장기가, 모두 마수의 것이라던 그 말이.
'설마.'
...혹시, 음식을 몸이 거부하는 것도 다 그탓인가.
내 몸속이? 모두 마수라서?
'왜?'
대체 왜?
대체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왜?
벌컥!
그렇게 변기를 붙잡고 멍때리고있던 내 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로 들어온 건 알비나.
어째선지 눈앞이 뿌얘서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뱃속은 타는 듯이 아프고, 눈앞은 안보이니깐 정신나갈 것같아.
굉장히 엿같은 감각이지만, 그래도 이런 감각은 벌써 수십번이나 느껴본 감각이다.
와락!
..근데 갑자기, 이 아줌마는 뭐 하는 짓일까.
뜬금없이, 날 껴안는다. 또 뭐가 문제야. 정말로 마약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린걸 수도 있어.
하지만 품속은 따뜻하고, 지금 제정신으로 서 있을 기분도 아니기에, 그냥 그대로 스러졌다.
"...아..."
잠깐만.
그러면, 앞으로.
초콜릿도, 치킨도, 피자도.
음식이란 음식은 죄다 못먹는다는 소리잖아.
'이런 씨발.'
연구자 개새끼들.
내 인생에 도움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Side 알비나
음식을 먹자 표정이 일그러진 루시는, 곧바로 위태로운 발걸음로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서둘러 뒤쫓아갔지만, 화장실 안에서 들린건 속을 게워내는 소리.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변기를 붙잡고 바들바들 떠는 루시가 보인다.
"...으으..."
배를 움켜쥐고 계속해서 신음하는 루시.
'...설마.'
설마, 음식마저 못먹는 건가.
몸속이 마수가 됐다고, 음식마저?
이게 대체, 무슨. 지옥이란말인가.
어린애한테,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고작해야 내 배밖에 오지 않는 어린아이가, 음식조차 제대로 못먹고 고통에 몸서리치고있다.
식욕이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가장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욕구.
하지만 연구자들은 그런 행복조차 없애버렸다.
루시는 어느샌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고있다.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벌벌 떠는 몸으로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여워서 무심코 안아줬다.
"...왜."
왜. 너같은 아이만 고통받아야 하는 건지.
왜, 아이들만이 이런 세상에 자의도 없이 태어나서 고통받아야 하는건지.
분명 고통받는 건 루시지만, 어째선지 내 눈에서조차 눈물이 흘러나온다.
루시를. 루시를 이렇게 만든건. 연구자들.
연구자들이, 이렇게 작은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옥으로 떨어뜨려버린거다.
"...쳐죽일놈들..."
있어봤자. 도움조차 되지 않는 쓰레기들.
내 가족도, 사람들도, 아이들도 모두. 그 쓰레기들 손에 죽고, 고통받았다.
이제는, 이런 어린아이조차 평생을 지옥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운명.
이 아이에겐 죽음이란 개념조차 없으니, 평생을. 영겁의 세월을. 이러한 고통속에서 살아가야한다.
반드시.
반드시 그 짐승들의 온몸의 살을 발라 까마귀들의 먹이로 던져주겠노라고.
그들의 시체를 모든 이의 눈앞에 내걸어 유린하겠다고 다짐하며.
루시를 꽉 끌어안았다.
***Side 마스
"가만히 있어!"
"이익...!"
빠각!
"큽...!"
"묶어! 빨리!"
"...저 자식들이...!"
"가만히 있어!"
뛰쳐나가려는 성화연을 간신히 붙잡는다.
저 앞에선 제인이 팔이 묶인채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중.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분명 작전은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컨테이너속에 생물같은게 들어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그냥 생물도 아니라, 사지가 절단된 마수가.
갑자기 엄청난 굉음을 내지르는 그 마수에게 걸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버리고 만것이다.
"...어떡하지? 지금 바로 나가야하나?"
"...아니. 기다려. 지금 뛰쳐나갔다간 우리 전부다 잡히는거야. 참아."
"하지만 제인이...!"
"기억해. 우린 아카데미생이야. 함부로 우리 죽이거나 납치하면, 저 사람들도 무사하진 않을거란 소리지. 저 사람들도 그 사실을 모를거라 생각하진 않아."
게다가 우리에겐 아카데미에서 등록해주는 상태 인식마법마저도 걸려있으니, 함부로 죽였다간 곤란해지는건 저 범죄자들이다.
순식간에 날아오는 대응반에게 곧바로 포위될테니.
"...이거 어떻게 처리하죠? 바다 건너갈동안 쭉 추적당하고있을텐데...!"
"...중간에 다른 국가 히어로들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일단은 살려두자."
"충분히 멀어지고 난 다음에, 목적지 도착하고 나서 그때 처리하자. 그 정도 거리에 그 정도 마수라면 분명 히어로들도 마음대로 오진 못할거야."
"...얘 혼자만 숨어든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상관없어. 도착하면 배째로 폭파시키면 된다. 어차피 이 배도 이번 운항을 마지막으로 할거니깐, 상관없어."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저 중앙에서 그려지는 거대한 마법진과 함께 배 전체가 베리어 마법으로 뒤덮였다.
좋아, 이걸로 퇴로도 완전 차단됐네.
"좆된것같은데."
준서의 한마디.
"...나도 동감이다."
"니들 둘다 닥쳐봐 좀."
왜, 틀린말 없잖아 라고 말하자 바로 귀가 잡아당겨진다. 하지만 그런짓을 하는 화연이의 얼굴은 더없이 굳어있다.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야. 어떻게 할지 빨리 머리나 굴려...!"
덜컹!
하지만, 컨테이너는 급작스럽게 흔들리고.
...결국 그렇게, 거대한 화물선은 우리를 태운채 그대로 출항해버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