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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7화 (17/162)

〈 17화 〉 1부 13. 흘러가는 중

* * *

***Side 루시

그 여자가 뛰쳐나가고 나서 잠시간 침대위에 엎어져있었다.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이불보를 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저게 뭔 지랄..."

갑자기 들어와선, 일방적으로 화만 내고 도망치다니.

저게 대체 뭔 짓이야.

아무리 나한테 화난다고해도, 이렇게 뜬금없는 걸로 화내는건 아니지.

뭐, 내가 한 자해때문에 충격받아서 그런 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 심장을 터뜨렸던 그 여자가 할 말이라기엔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서둘러 여자를 쫓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

그러나 여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도저히 찾을 방도가 없잖아.

뛰쳐나간 그 여자를 찾아 여관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

.

.

그렇게 그 여자를 찾아 한참을 여관을 돌아다니던 내 귀에 들려온건.

­쾅!

마치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듯한 소리.

여자 화장실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설마 화난다고 아무거나 다 박살내고 있는건가?.

방금 보인 행동이 어딘가 정신병자같았긴 했지만, 적어도 분노조절장애의 그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더이상 들려오는 폭음도 없기도 하고.

그냥 한 번 주먹으로 내려친게 분명하다.

서둘러 여자 화장실의 앞으로 갔다.

화장실 안은 그저 고요한 적막만이 감도는 상태. 잠시 들어갈까 고민해본다.

...볼 일 같은거 보고 있는건 아니겠지?

"..."

아니겠지.

그래서야 갑자기 그런 굉음이 날리가 없잖아.

게다가 안에선 움직이는 소리같은것도 없고 말이야.

딱히 내가 들어간다고 갑자기 나한테 업어치기할 것 같은 낌새도 아니었기에,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간다.

­벌컥!

하지만 여자 화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광경.

"...뭔."

화장실 바닥에 그 여자가 쓰러져있다.

이게 대체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얜 갑자기 왜 또 실신한 거야. 요즘 이런게 유행인가봐.

서둘러 달려가 엎어져있던 몸을 돌려보니 이마쪽에서 피가 나는게 보인다. 설마 그냥 미끄러져서 넘어진건가.

그런 거라면 완전 코미딘데.

하지만 엎어진 자세나 주변을 보아하니 그 어디에도 넘어질만한 곳은 없다.

그럼 그냥 지혼자서 난리치다가 쓰러졌다는 얘기구나.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눈물자국같은게 있는걸로 보아, 하품이라도 한 모양이지.

어쩌면 이거 그냥 피곤해서 쓰러진걸지도 모르겠다.

그 왜, 기면증 비슷한 거 있잖아.

"..."

이거 도와줘야하나.

마음속에 갈등이 생긴다.

솔직히 마음같아선 날 후드려 팬 사람이기에 그냥 화장실에 내버려둔채 무시하고싶다.

근데 그러면 모양이 영 이상하잖아. 머리에서 피가 나는 환자를 발견하고도 화장실에 그냥 내버려 두고 가는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해!

게다가, 이 여자가 나한테 죽자고 달려든 이유도 따지고보면 다 내탓이고 말이야.

친한사람 한 명 반병신으로 만들었는데 뭐... 그즈음이야.

"에휴..."

일단은, 여관 로비의 소파까지라도 옮겨놔야겠다.

적당히 찢어진 이마에다가 솜이나 거즈같은거 붙여두면 될거야.

그렇게 어깨를 들춰매려고 여자 아래에 들어가보니, 꽤나 무겁다.

끙끙거리며 겨우 들춰매고선,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온 복도에서 보인것은, 바닥을 물들인 새빨간 선들.

"아..."

그러고 보니.

나 아직 손목 다 안나았지.

'이건 또 다 언제치우냐...'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으윽..."

복도에 내려둔 여자에게서 들려오는 신음소리.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아.

그럼 뭐,일단은 중요한것부터.

혼자서 옮기긴 힘드니깐 로비에서 사람이라도 불러와야겠다.

"저기요...?"

하지만 1층으로 달려간 내게 보인 것은 그저 텅 비어서 한산한 로비.

레프 아저씨가 파벨 데리러 나갔다온다는 말을 잠깐 깜빡하고있었다.

"..."

그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소린데.

결국 나 혼자 저걸 옮겨야한다는 소린가.

"...나쁜년."

꼭 처리하기 힘든 일만 골라서 해요.

또다시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그 여자를 들춰매러 계단을 올라갔다.

.

.

.

.

.

.

"흐, 허억...하아..."

이 돼지같은 놈.

대체 뭐가 이렇게 무거운거야!

너무 무거워서 끌고 내려오는것조차 곤욕이다.

잘못하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뼈 부러지는 일 없도록 조심조심 하며 천천히 내려오다보니, 로비까지 도착했을땐 어느새 15분가까이 지나 있었다.

그 덕분에 내 몸은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고.

"이, 이 망할..."

­질질

소파까지, 옮기기만 하면 끝이야. 일단은.

소파위에 올려두기까지 하려면 더 힘들테니깐, 그냥 적당히 땅바닥에 던져두자.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에서 피가나는 여자의 다리를 질질 끌고 소파쪽으로 끌고간다.

그렇게 절반정도 끌고갔을 즈음.

­딸랑~

여관의 문이 열리며, 파벨과 레프가 돌아왔다.

파벨의 왼팔은 여전히 비어있는 채, 레프의 부축을 받아 걸어오는 중. 의수가 하루 만에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아닌가보네.

"...알비나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

"그래. 딱보니깐 너 걱정하는..."

그 순간, 파벨과 얘기하고있던 레프와 여자를 옮기고있던 내 눈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잠시간 이쪽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레프. 파벨도 뭔일인가 싶어 날 바라본다.

...그러고선, 나와 내가 옮기고있는 이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는 레프.

이건, 상황이 너무 안좋은데.

저 둘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어떨까 상상해본다.

머리에서 피가나는 여자를, 질질 끌어다가 옮기는 작은 여자애 하나. 여자는 의식을 잃어 죽은 듯 보인다.

여자애는 뭐라도 잘못한듯이 땀을 비질삐질 흘리고있고.

"..."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살인사건 현장이잖아.

잠시간 그렇게 정적이 흐르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레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너...!"

"아니...!"

"야 이 미친년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좆된 것 같다.

***Side 한서우

"...전멸...이라고?"

"그래. 전멸했대."

같이 파견 온 또래의 여자애.

금빛의 장발을 가진 이 소녀의 이름은 벨라라고 했던가.

벨라 베이커.

벨라가 가져온 그 소식에, 아무도 없던 천막의 한구석은 굳어버렸다.

머리가 어지러워.

아침에 느꼈던 그 기분좋은 고양감은 어디갔냐는 듯, 다시 기분이 나락으로 쳐박혔다.

이제야 뭔가 좀 해내고, 해결하고,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침대에 그대로 툭 쓰러진다.

"...좋은 분들이셨는데..."

"......"

"또...사람들이 죽었어..."

"......"

"...내가 갔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니가 뭔데."

벨라가 내게 묻는다.

하지만 의문의 감정따윈 없이, 그저 무감정한 목소리로.

"니가 뭔데, 니가 갔으면 상황이 달라질거라 예상하는 거야?"

"..."

"오만이고 위선이야. 그것도."

"응..."

"어차피 사람은 죽어."

"하지만... 필립 아저씨도..."

"닥쳐."

필립 베이커.

짐작하듯이, 벨라의 아버지다.

어째서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는데, 이토록 무감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건 또 아니다.

언젠가. 닳아버릴때까지 닳아서 지치고 나면, 나도 저렇게 되는걸까.

"우리 투입 일자가 얼마나 늦춰졌다고 했더라..."

"일주일정도 더. 지금 사태가 너무 심각하게 터져서, 원래 계획됐던 작전들도 다 지연됐어."

"그럼 또... 이대로 여기서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거구나..."

무력감이.

또 이 더러운 무력감이 차오른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홍수처럼 범람하는 감정들.

언제나 이런식이다.

내가 하는 건 없이, 그저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가는걸 항상 지켜보기만 해.

...

이런건 싫은데.

지금까지, 내가 구할 수 있었음에도 죽음으로 내몰려진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부모님도, 고아원생들도, 루시도, 군인들도. 모두.

"정신차려."

"..."

"자책만 하고있으면, 뭐 어쩌게. 그대로 자책만 하고, 아무것도 안할거야?"

"......"

"죽은사람은 죽은거고, 산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는거야. 가만히 머물러있어서 뭐하게."

"그래도, 역시..."

"언제나 기억만 하고, 추억만 하면, 어쩌자는 건데."

"슬퍼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깐..."

"...그래."

"망각하고, 계속 살아가라는건가."

"......"

말이 사라진다.

듀클링 남매가 없으니, 어쩐지 더 황막한 천막 안.

결국 이렇게 깎아내고 깎아내서, 뭐가 남는걸까.

누군가를 구하려고, 이 감정마저도 일단 덮어둬야 한다니.

그저 순간의 죽음에 연연하지 말고, 남은 이들에게 집중하라니.

이렇게 깎아내고 남은 건, 대체 무엇일까.

살아가려면, 구하려면.

결국엔 죽음을 망각해야 한다.

"이게 무슨 히어로야..."

히어로.

기원은 단순하다.

그저 20년전의 대재앙.

그 시절 사람들을 지키고, 구하던 초상능력자를 경외의 감정을 담아 '영웅'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

초상능력자의 체계가 바뀌어도, 언제나 계속해서 유지되던. 히어로라는 이름.

그때의 그 '히어로'라는 이름을.

우리가, 내가.

짊어지고 가도 되는걸까.

'지금은 모르겠다.'

아무것도.

결론을 내기엔, 너무 이른걸까.

하지만, 히어로.

사람들을 구하는 히어로.

그들은 어째서, 죽음을 망각해야만 하는 건가.

대체, 왜.

"너무 모순적이잖아..."

잊지않고, 추억하고, 언제나 슬퍼하는 것이.

'히어로들의 몫은, 히어로들의 존재 이유는 아닐거라고.'

알고 있다.

알고있어서, 더 분한 거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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