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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2화 (12/162)

〈 12화 〉 1부 8. 저 위에

* * *

***Side 루시

다짜고짜 배에 구멍을 뚫어버리다니, 이거 완전 미친놈들 아냐?

고통도 심하다.

아직 다 나은지 삼일정도밖에 안된 곳인데.

­"...야, 이... 개자식아..."

잠시간 이성이 마비되어버렸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이 사람들 죽여야한다는 생각밖에 안들었어.

그렇게,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를 몸으로 그저 본능에 따라 행동했고, 자연스레 손에서 아무 마법진도 없이 마법이 나가버린거다.

그렇게 분노한채 움직이던 내 귀에,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온건 얼마 뒤.

­"...아아아악­!"

고통에 차 절규하는 소리.

그 소리가, 외면하고 있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아?"

...눈앞의 광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웬 남자 한명이 눈앞에서 두렵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있고, 저 뒤에선 다른 한명이 한쪽 팔이 날아가버린채 쓰러져 비명을 지르고있다.

그리고 뻗어있는 내 오른손에서 나가는...

마법.

마법진도 없이 기동된 마법.

마법이, 왜 이제서야 나가는거지?

쓰려고 할땐 미동조차 안하던게, 그냥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니깐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원래 마법이 이렇게 써지는거였던가.

내가 배운 마법이란, 분명 수학과 비슷한 것이었다. 감정보다는 머리를 써서, 이성적으로 사용하는것.

애초에 마법진을 그리려면 머리를 써야하는데, 감정적으로 마법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거겠지.

마법진?

마법진은 이성적으로, 머리를 써서 구성해야 하는것.

근데, 난 방금 엄청 감정적이었다.

그럼... 내 손에서 나가는 이 마법은 대체 뭐란말인가.

애초에 배우지도 않은 마법인데, 이딴걸 쓸 수 있을리가 없잖아.

­푸욱­!

...?

혼란스러워 혼자 당황하고있던 내 가슴에 거대한 창이 박혀들어왔다.

"...아윽..."

아프다. 엄청.

당연한거겠지, 몇백번이나 느꼈던 감각인데.

"..."

그래, 또 죽는거구나.

...

...작작좀. 제발.

지친다. 이제는.

.

.

.

...시간은 흘러 지금.

웬 모르는 아저씨가 내 배를 난도질하고있다.

당연하게도 엄청나게 아프지만, 반응하는건 내가 아니라 내 몸이야.

그냥 전기신호다. 이 감각은.

뜨겁고, 짜릿하고. 기분나쁜 감각. 그냥 모든 생물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감각이다.

근데.

왜 또 배야, 망할놈들아.

왜 꼭 무언가를 당하면 복부부터가 개판이 돼버리는걸까. 아마 면적이 제일 넓어서 그런거겠지.

'...'

하하.

그럴리가.

모르겠다.

벌써 이렇게 배 찢기는것만 몇번째야.

이렇게 무력화되서 아무것도 못하는데도. 하필 속을 확인하려하네?

내 몸속에 뭐가 있던, 제발 나한테 좀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 지들끼리만 알고 정작 당사자한테는 알려주지 않는 꼴이라니, 얼마나 웃긴가.

­"우웨엑...!"

옆에서 내 몸을 붙잡고있던 남자의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몸을 떨며 땅에 엎드려있는 모습.

'이런거 가지고 엄살은.'

...그래도, 나라면 이런 상황에 거부감정도는 느낄 것 같다. 어린애를 망가뜨리는거잖아.

역지사지.

아마 이 사람도 그런걸거야.

­꿀럭...

몸의 제어권이 서서히 사라져간다.

다시한번 복부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과 함께.

이즈음되니, 이젠 아프다는 것 조차 모르겠네.

그냥.

미쳐가는걸까.

익숙해져가는걸까.

모르겠어.

***Side 레프

"끅, 하악..."

소녀는 서서히 정신을 잃어간다.

파벨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계속해서 실을 치며 세밀하게 조정중.

역겨운 광경이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소녀의 뱃속에 뭉친 실이 들어가 발광하는 모습이란...

으.

앞으로 몇달은 불면증에 시달려야할거다.

내 일이 일이다보니 이런 광경을 한두번 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거부감이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이번엔 주체가 우리인데. 안느껴질리가.

"...언제까지 이래야 돼."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고있어 보이진 않지만, 소리가 정신력을 다 까먹는다. 너무 생생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을 수준.

그렇게 1분정도 뒤에, 파벨이 입을 열었다.

"...야, 이거봐봐."

뭘 보라는건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파벨의 손에 들려있는 걸 봤다.

검은색의... 타르덩어리같은것.

마수들의 기본구성요소와 같은 형태의 그것이다.

"...그게 갑자기 어디서 난건데."

"고개 내리면 보인다."

"...아냐, 안볼래... 근데, 그게 정말로 얘 몸속에서 나온거야?"

끄덕끄덕.

확인사살을 한다.

"...마수 맞네. 이거."

"변종인가봐. 죽일 수도 없어 심지어."

"..."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처리해야한다.

이건.

그냥 놔두면 언제 어딜 가서 어떻게 문제를 몰고올지 몰라.

하지만...

"...윽, 끄흑..."

몸을 뒤틀며 신음하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인간처럼 느껴지기에.

마음속 깊은곳부터 거부감이 든다.

너무 인간같아서. 대체 이걸 어떻게 마수로 본단 말인가.

머릿속으로는 내가 마수를 처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눈앞에 보일 광경은 그저 무기력한 소녀를 무자비하게 찢어발기는 모습이다.

어린애를 죽이는거다.

어린애를.

"...안되겠어. 난 못해."

"......"

"...나중에, 얘 다시 깨어나면 결정할까..."

"...그래."

지금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다.

우리가 본 이 소녀의 모습은 그저 우리의 공격에 분노해 저항하는 모습뿐이었으니깐.

얘기를 조금만 나눠보자.

그럼.

조금 낫겠지.

***Side 한서우

"여기도 아무도 없네요."

병실의 문을 열고 나오며 말한다.

"얘들 진짜 다 어디로 간거냐. 코빼기도 안보이네, 일주일 전부터."

눈앞에서 투덜거리는 이름모를 중년의 남성.

지금 있는곳은 병원. 연구자들의 전초기지라는 정보가 확인시됐던 그곳이다.

한반도 북쪽의 무법지대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전초기지였던 이곳.

작전을 준비하고, 실행시키는데에만 장장 2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게 웬걸, 막상 토벌하려고 도착하고 나니깐 연구자들은 코빼기도 안보이는것이다.

말그대로.

증발해버린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갑작스럽다고 볼 수도 없는게...'

사실 일주일 전부터 징조는 있었어.

연구자들에게서 보이던 이상징후.

38선에서 고착화되던 전선의 정황이 순식간에 뒤바뀌게 된 이상징후들.

마수들이 연구자들의 통제를 벗어나고, 연구자들의 힘 또한 사라지게됐다.

말 그대로, 몰락.

그 단어로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연구자들은 순식간에 쇠퇴했고, 마수들은 순식간에 막강해졌다.

사람은 몰락하고, 짐승들은 날아올랐다.

그것이, 현재의 상태.

"뭐, 그렇게 약해졌으니 튀는건 당연한거였나..."

"하지만 걔들은 갈 곳도 없었을텐데요..."

"그건 또 모르지. 다른 배후세력이 있을 수도 있어."

"어우, 무슨 끔찍한 얘기를 그렇게..."

피튀기는 전투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된 군인들은 느슨해졌다.

서로가 농담이나 하며 시간을 떼우고있다.

뭐, 사람이 안죽으면 다행인 일이니깐.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졌는진 알 수 없지만.

차차 알아나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하나더.

이건 희망사항이다.

연구자들이 이렇게 쇠퇴했으니...

'루시도...'

...괜찮으려나.

작전 실패라는 말을 들은 성화연이, 하루 종일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

그래.

평생의 후회, 앞으로의 결의.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내 손으로 지킬거다.

다시는, 잃지 않을거야.

.

.

.

.

.

.

중앙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 멀리 보이는 마스.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있는 모습이다. 조용히 옆자리에 가방을 툭 내려놓으며 의자를 끌어 앉았다.

"아, 왔냐."

마스의 앞에 있는 책을 슬쩍 바라보니 과제다. 방학과제. 심지어 아직 초반부분이야.

"내일이여름방학 마지막날인데, 아직까지 못한거냐."

"닥쳐, 넌 파견 핑계로 숙제 안받잖아. 놀리는거냐."

"하하... 여전하구만."

"...나 바빠, 말걸지마."

그 말과 함께 다시 책 속으로 고개를 박는 마스.

나도 조용히 가방에서 서류뭉치 하나를 꺼내들었다.

­8월 아르한겔스크 부근의 마력 이상반응 보고서­

...새롭게 퍼진 보고서 한장.

얼핏 보면 그냥 그저 그런 지루한 언어의 나열처럼 보인다.

다만...

이 보고서가, 갑작스러운 그 변화의 이유를 알아낼 그 첫번째 단서가 될 수 있어서,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상태다.

학자들은 물론이고 취미로 시사뉴스 읽어보는 학생들에게도.

기밀문서여야 하지 않나 싶지만, 마력반응의 검출이 너무나 막대한 양이라,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댄다.

여러군데에서 측정기가 동시에 죄다 울려대는데, 어떻게 숨겨.

그렇게 마침내 대중에 공개된 문서가 바로 이거다.

나는 그냥 뭐... 위에서 보내주길래 그냥 받은거고.

그리고, 이 문서의 내용.

연구자들의 본거지를 마침내 찾은 것 같다는 그 내용이,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마침내 모든걸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루시를 마침내 찾을 수 있다.

드디어.

하지만...

마음속에 피어나는 이 꺼림칙한 감각은 대체 뭘까.

갑작스러운 변화에, 너무나 쉽게 풀려가기 시작하는 전쟁.

영문도 모른채 연구자들을 떠나가는 마수들과, 본래의 힘을 모두 잃어버린 연구자들.

이 일련의 사실들이, 그저 루시를 찾는것만으로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너무 잘풀리면, 항상 뒤가 구린 무언가가 있는법이다.

그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그저 기우일수도 있겠지만, 모든게 딱 들어맞는 기우란 정당한 의심이다.

뭐, 언젠간 결국 밝혀질 일이겠지.

반드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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