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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해주세요, 마수님!-11화 (11/162)

〈 11화 〉 1부 7. 꺼림칙한 감각

* * *

너 자신을 알라.

누가 했던 말이더라, 소크라테스였나.

다른 정보 보니깐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 한적이 없다던데.

아무튼, 그래. 너 자신을 알라. 멋진말이야.

근데 이 말을 한 사람조차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있다면 불특정 다수를 자기 아래로 두고 가르치려는 듯한 말 따위는 하지 않았을텐데.

멍청하다.

다들.

모두가 멍청하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근데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조차 내가 하는 말을 옳다고 확신하고있어.

어째서? 이게 진정한 자기모순 아닐까.

멍청이가 자기 자신이 하는 말을 옳다고 확신한다니. 웃기네.

사람들은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고 '자신'한다.

자기 자신이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이니깐.

자기혐오에 빠져 아무 생각없이 중얼거리는 '나는 멍청해' 따위가 아닌 이상, 자기 자신을 멍청이라고 하는 사람따위 없어.

그런 사람 수십억이 모여 만들어진게 바로 세상이다.

멍청한 사람 수억, 오만한 사람 수십억이 모여 만들어진게 바로 이 세상이다.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애초에 이딴 곳에 뭘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는지도 몰라.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걸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이다.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멍청한 사람들이 모이면 지칠 뿐이니깐.

더 지쳐서 뭐하려고.

그냥.

놔버리자.

전부다.

'너 자신을 알라.'

멍청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들에게 한 말이야.

좋네.

멍청이들의 모임.

***Side ???

­푸걱

소녀의 배에 구멍이 생겼다.

그 작디작은 복부에서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오며 소녀는 눈덮인 보도블록 위로 풀썩 주저앉았다.

"아...?"

파벨조차 경악한 표정이다.

마수를 경고했더니, 정작 튀어나온건 초등생정도밖에 안되어보이는 꼬맹이라니.

서둘러 뛰쳐가 쓰러지는 소녀를 안아 든다.

소녀. 확실히 사람이다.

온몸에서 라벤더 향기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꼬맹이.

"이, 미친! 사람이잖아!"

"뭐... 이게 뭔일이야."

"나 회복마법같은거 배운 적 없는데..."

"......"

"..."

"...미안하다."

"빌어먹을..."

결국 우리의 입은 자연스레 다물어진다.

실수 한번때문에 무고한 소녀 한명이 죽게생겼어.

조용해진 도시 속에는 그저 소녀가 피를 뿜어내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저기... 꼬마야..."

참담한 심정으로 말을 건넨다.

죽기전에 적어도 이름이라도 알아볼 심정으로.

그러나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 씹...]"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언어.

설마 외국인이었던건가.

외모만 보고 슬라브일거라 판단해버렸다.

서둘러 번역마법을 기동시켰다.

"저기, 꼬마야... 내 말 들리니?"

"...씨발."

"...어?"

소녀가 뱉었던 그 말은, 분명 욕이었다.

심지어 걸걸한 쌍욕.

"그, 꼬마야..."

"야, 이... 개자식아..."

"???"

욕이 너무 찰지다.

과연 어린애인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하려고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모두 증발해서 까먹어버렸어.

그 순간, 소녀의 몸에서 갑자기 푸른색의 연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한다.

"...?!"

"레프! 당장 빠져!"

파벨이 다급하게 외치는 목소리.

어깨로 실이 감겨오는게 느껴진다. 파벨의 초상능력.

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몸을 뒤로 쭉 잡아 뺐다.

급하게 뒤로 빠져버려 소녀는 품안에서 놓쳐버렸다.

다시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소녀.

눈밭이 붉게 물들어간다.

그러나 소녀는 아프다는 내색조차 안하고, 그저 피만 토해내는 모습.

입에서는 욕짓거리만 내뱉는다.

"저, 저게 뭐야."

파벨의 중얼거림.

멍한 머리를 다시 굴리기 시작한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순간 벙쪘다.

소녀의 상태를 살펴봤다.

복부에는 구멍이 뚫려 혈액만이 쏟아져 나오고있고, 주위에서는 푸른색의 연기가 일렁이는 중.

"푸른색..."

푸른색 연기.

마수들이 모인 곳마다 언제나 뒤따라붙었던.

불쾌하고 음습한 푸른색의 기체들.

그럼 저게 의미하는 바는...

저 소녀가.

마수라고?

마수?

저 어린애가?

"야, 레프! 정신차려! 전투준비!"

내 팔을 거칠게 잡아끄는 파벨의 손이 느껴진다.

그래.

전투준비.

"아..."

마수다.

우리 눈앞에 있는 저 소녀는 분명 마수야.

겉모습에 속지마.

겉으로는 저런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있을지라도, 속 깊은곳은 더럽고 불쾌한 마수다.

마수.

죽여 없애야 하는것.

마약의 원료.

인류의 숙적.

머리를 정리하고 서둘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파벨도 거미줄을 쳐가며 조금이라도 전투에 보탬이 되려고 하는 모습.

­키이잉­!

그러나, 마법진의 1할조차 채 완성되기 전.

­쿠우우우­!

소녀의 오른손에서 검붉은 광선이 쏟아져나왔다.

직경 7m는 될법한, 지나치게 거대한 광선이.

귀가 멀 것만 같은 굉음이 쏟아져나온다.

땅이 뒤흔들리고, 쌓여있던 눈이 모두 증발해버렸다.

귀 바로 옆으로 간신히 스쳐지나가는 광선.

귀의 끝부분이 잘려나가고, 고막이 터져버렸다.

저게 대체 무슨 마법이야.

정신이 쏙 빠져나간다.

"이, 이런 미친..."

저딴걸 어떻게 이기라는거야.

저런 거대한 마력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상대라니.

정신나갈 수준의 괴물이다.

못이겨.

우리로서는.

­"...아아아아아악­!"

공포감에 절어있던 내 의식을 일깨워준건 뒤에서 들려오는 파벨의 비명소리.

"파벨?!"

뒤를 돌아보니, 어느샌가 왼팔이 날아가 땅바닥에 쓰러져있는 파벨이 보인다.

광선을 완전히 피하진 못한 모양이야.

­"끄허어억...!"

왼팔이 있던 자리에선 피가 솟구칠 뿐.

그 광경을 보자 공포감은 더더욱 자라나, 마음속에 똬리를 틀어버렸다.

'못 이겨. '

눈앞에 있는 '저것'은, 절대로 못 이긴다.

이기는 건 고사하고, 살아남아 빠져나갈 수 있을 지 조차 불분명해.

저런 괴물을 대체 어떤 수로 이긴단 말인가.

여기서 죽는거야?

여기서?

저 어린애한테?

"..."

안돼.

살아야한다.

이딴곳에서 죽을 수는 없어.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런곳에서 탈출해야해.

"빌어처먹을...!"

어쩌다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걸까.

뒤늦게 하는 후회따윈 의미 없다.

파벨이 죽기전에, 저 마수를 쳐내고 도망친다.

최대한 빨리.

가능할지는 몰라. 하지만 해내야한다.

지금 내 손에는 나를 포함한 두명의 목숨이 달려있어.

그리 생각하며, 다시 그 소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

그러나 그 소녀의 얼굴에서 드러난 감정은, 당혹감.

분명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뭐?

사람 한명의 팔을 날려보내고 나서 짓는 표정이, 당황스러움이라니?

미친건가?

"저, 미친년..."

소녀는 지금 무방비하다.

제 스스로가 지금 자기가 한 일 조차 모르고, 스스로에게 당황하고있다.

지금이 기회야.

지금 죽여 없애야한다.

­쿠우우우...!

죽여라.

죽여라.

두 손에 그려진 마법진을 융합시킨다.

하나로.

하나의 연계마법을 탄생시키기 위해.

­기이이이잉­!

기동 준비 완료.

여전히 당황스러워하며 이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가슴팍에, 마법을 조준했다.

"크윽...!"

마수라는 걸 알고있지만.

모습이 저러니 가슴속에서 절로 피어나는 죄책감은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그러나 저건 마수다.

마수.

결의를 다진다. 여기서 죄책감 따위는 하등 쓸모없는 감정이야.

­콰아아앙­!

푸른 광선이 쏟아져나갔다.

내 손에서, 저 마수에게로.

­콰과과...!

물대포를 쏘아내듯 수십초간 유지되던 광선은, 창의 형태를 그리며 소녀의 가슴팍에 박혀들어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창의 형태를 그리던 광선은 어느샌가 잦아들고...

­"으극...흑..."

마침내 도보 위에 쓰러져 피를 뿜어내는 소녀가 눈앞에 보였다.

가슴에 수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창이 박힌, 마수가.

"헉, 헉..."

마수가, 쓰러졌다.

무력화됐어.

더 움직이진 못할거야.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파벨에게로 뛰어갔다.

"끄으윽... 커헉...!"

"기다려, 지혈 조금만 하면 되니깐...!"

가방속에서 다급히 천을 꺼내 파벨의 비어버린 왼팔의 자리에 휘감는다.

지혈하려면 어쩔 수 없으니깐. 지금은 위생같은걸 신경쓸 여유는 없다.

"끄으으아아아악!"

절규하며 몸부림치려는 파벨.

"참아. 지금만. 곧 돌아갈거야. 좀만 참아라."

"이, 씨이발...! 안아프게좀 해라!"

"노력중이야!"

천은 금새 붉게 물든다.

당연하겠지, 팔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는데.

당장이라도 병원에 데려가야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일단 기억나는 마법. 도움이 될만한 마법이라고는 죄다 파벨의 왼팔에 감긴 천에다가 쓴다.

빙결마법, 고정마법, 형태보존마법.

내가 아는 한계 내에서는 죄다.

잠시간 거리에는 비명을 지르는 사내 한명과 그 사내를 붙잡는 나. 그리고 쓰러져 죽어가는 소녀만이 남아있는 묘한 광경이 연출됐다.

.

.

.

"헉, 허억..."

"하아... 참아라, 저것만 처리하면 바로 돌아갈테니깐."

기진맥진하다.

마력탈진증상.

기본적인 증상이다.

하기사 그렇게 많은 마법을 이 짧은 순간에 모조리 써버렸는데, 당연한 일이겠지.

적어도 기절할 정도는 아니니깐 괜찮을거야.

"존나, 아프네..."

"너 죽을수도 있었다. 명심해."

"네,에... 진짜 빌어 쳐먹게 고맙네요."

"감사인사라도 하면 좀..."

"오글거려서 그딴거 어떻게하냐."

"하하..."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가슴에 거대한 창이 박힌채 헐떡거리는 마수를 바라본다.

소녀의 모습을 한 마수.

사람의 형태를 한, 사람의 말을 사용하던 마수.

저게 여전히 살아남아 반격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은, 괜찮을거야.

지금은 마력도 다 고갈되서 없으니깐. 아직까지도 저게 공격성이 남아있다면 문제지.

"저... 저 개자식... 내 팔을..."

"닥쳐봐. 저거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아."

"나좀 부축해줘라. 저거 얼굴이라도 한대 후려야겠어."

"...후, 그래."

파벨의 오른팔을 목에 걸치며 부축해준다.

"끄으으윽...!"

"그냥 누워있을래?"

"지, 지랄... 그냥 빨리..."

"고집부리기는."

무거운 몸을 이끌며,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바닥에 누워 헐떡거리는 소녀.

가슴에 거대한 창이 박힌채 죽어가고있다.

그런데...

내 광선에 꿰뚫렸던 배가, 어느샌가 다 메꿔져있어.

온몸이 붉게 물든 그 소녀에게서 유일하게 새하얀 부분이 보이는 그곳은 너무나도 눈에 띈다.

마치 그곳만 전혀 다른 세상에 있다 온것처럼, 피가 말끔하게 사라져있는 모습.

"...장난치냐 지금..."

죽지도 않는 마수라니. 이거 너무하잖아...

"...이게 대체 뭐냐."

"마수. 사람처럼 생긴 마수. 변종인가봐."

"심지어 여자애다. 이거 진짜 마수 맞아?"

"..."

"..."

"...맞겠지...아마도."

"그냥 특이한 초상능력을 가진 초상능력자면 어떻게할래?

"...그건..."

"우리가 먼저 공격해서 반격한 걸 수도 있잖아."

"...그, 그럴수도 있으려나..."

갑자기 무서워진다.

그러고보니 진짜로 그냥 여자애였으면 어떡하지?

그럼, 우리가 먼저 배 뚫어놓고서는, 반격하니깐 되려 우리쪽에서 화내면서 가슴에 거대한 창까지 박아넣은 개쌍놈들이 되는거잖아.

"어떡하지? 이거 진짜 그냥 여자애면 어떡해?!"

"...야, 레프. 칼가져와라."

"어...?"

갑자기?

"저거 배. 분명 뚫렸던 곳이지."

"...응. 내가 공격해서."

"근데 재생됐다. 저거 안죽는거야."

"그래, 근데 그게 왜?"

"마수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

"그게 뭔..."

"닥치고 나이프 하나만 내놔라."

"옙."

가방에서 나이프 하나를 꺼내 파벨녀석의 오른팔에다가 쥐어줬다.

"그걸로 뭐하게."

"보면 안다."

파벨은 소녀 곁으로 가서 앉았다.

"야, 이것좀 잡아봐라."

"뭐, 그 마수를?"

"그래. 나 지금 왼팔 없어서 고정하기 힘들어."

"...미친놈. 뭐하려는지 알겠네."

...안죽으니깐... 상관은 없으려나.

그래도 눈앞에서 보는건 조금...

"빨리."

"...밤잠 설치겠네."

결국 나도 소녀 곁에 주저앉아 소녀의 몸을 양손으로 고정시켰다.

"헤으...아?"

소녀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미안하다.

마수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미안.

역시 이런건 영 내 스타일이 아니다.

"한다."

"그래, 빨리 해."

...내 말과 함께, 파벨은 곧바로 소녀의 배에 나이프를 쑤셔넣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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