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부 6. 아얏
* * *
23년전, 마수들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그날.
그들은 대륙의 중앙에서 암덩어리처럼 퍼져나갔다.
어느곳에서나, 어디서든.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만들어내며 그들은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결국 그들은 아시아대륙 거의 대부분을 잠식하기에 이르러, 대륙을 고립시켰다.
밖에서는 안의 소식을 확인할 길이 없고, 안에서조차 밖으로 소식을 보낼 수가 없기에 둘의 세계는 완전히 격리된채로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밖의 사람들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마수들이 들끓는 이곳에서 생존한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고.
연락조차 끊기고, 소식조차 확인할 수 없는데 대체 누가 이런곳에서 사람이 살아남았으리라 생각할 수 았겠는가.
그러나 살아남았다.
인간은, 이러한 극한의 환경에서조차 살아남았다.
24시간 마수와 무장집단을 경계해야 하고, 마을 하나가 사라지는 일 즈음은 특별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이런 고립된 환경에서조차 살아남았다.
바깥은 마수로 들끓고, 나갈 길 조차 막혀 완전히 격리된 대륙이었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레 살아남기위해 뭉치고, 투쟁하고, 전쟁하며 서로 살아남아왔다.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긴 제 1 안전구역. 폐도시를 여기저기 보수해서 사용하고있는 마을.생존자들이 뭉쳐 만든 마을이다.
지금 이 위치에 세워졌던 마을은 총 35개.
우리 구역은 36번째 마을이다.
이전의 35개의 마을은... 어떻게 됐는진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리고 현재의 구역이 지속된 시간은 어언 3년.
1년 이상 버틴 마을을 안전구역이라 명명하는 '가드'들의 원칙에 따라, 해당 마을은 제1 안전구역이라 칭해진다.
연구자들의 본거지에서 가장 가깝기에 약의 원료가 되는 마수들의 사체도 나름대로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인해 극단적으로 위험한 구역이기도 했기에, 제 1안전구역은 대부분 용병, 부랑자, 가드 소속의 인물로만 이루어져 있다.
나 또한 가드 소속의 용병이기에 이런 곳에 죽치고 앉아있는거고.
'가드'가 무엇인가.
대부분이 초상능력자로 구성된, 현 시점 대륙 내 최강의 무력집단중 하나.
초상능력자란 초상능력자는 전부다 영입하고 다니는 그 특유의 공격적인 방식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안전구역의 대부분이 가드의 관리 아래 돌아가는데 무슨 불만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으랴.
난 본래부터 혼자다니길 좋아했으나, 그냥 살기 조금이라도 더 편해졌으니 좋아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내 위치가 그만큼 높아서 그런걸 수도 있겠지만.
파벨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갑자기 뭔 일이냐, 술이라도 먹었어?"
다 헤진 가죽소파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있는 30대 정도 되어보이는 회색 머리의 사내가 보인다.
얼굴 여기저기 흉터가 있어 척 봐도 힘겨운 삶을 살았으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마수야. 마수! 일주일만에 나타난 녀석이다!"
내 다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소파에 늘어져있는 파벨.
"아이씨, 술냄새. 대낮부터 술이냐."
"닥치고 따라나오기나 해라. 빨리!"
"구라면 뒤진다."
"그래, 목격담이다. 이거 확실해."
"니 확실하다고 한것만 이번주 내에만 5번이다. 양치기소년도 아니고 무슨..."
"밑져야 본전이다, 빨랑빨랑 움직여!"
"허..."
일주일만의 기회다.
선수 뺏기면 좆되는거야.
그리 말하자 그제서야 소파에서 일어나는 파벨.
정신없이 뛰어도 모자를 판에 저리 여유있는 태도라니, 나중에 영감한테 정신교육좀 다시 시켜달라고 해야겠다.
.
.
.
"애들 이미 다 간거같은데."
"늦었어, 늦었다고..."
"그냥 니 혼자라도 가지그랬냐."
"...그럴걸..."
등에 업힌 파벨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도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게, 이거 그냥 완전히 허탕친거잖아.
1km를 넘게 걸어왔는데도 마수라곤 보이지 않는다.
그냥 온통 죄다 눈덮인 폐허뿐.
"그냥 돌아갈까..."
"이번 마저도 허탕치면 진짜로 망하는거야. 그냥 빨리 감지나 하셔."
"...어휴."
파벨의 몸에서 실같은것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로 퍼져,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만드는 모습.
파벨의 초상능력이다.
마법사 유형은 아니라 그냥 저렇게 실뿜는게 다 이긴 하지만. 그래도 감지쪽에는 끝장나는 성능을 보인다.
"...아... 사람 5명..."
"그래, 다른건?"
"어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파벨.
"더 움직여라."
"옙."
계속 움직인다.
안전구역 5km 바깥까지 쭈욱 둘러서.
.
.
.
"...아?"
너무 조용해서 자는 듯 했는데 집중하고 있던거였나보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의문스럽다는 음성이 들려온다.
"...마수 시체는 없는데?"
"허? 마수 시체가 없다니?"
"말 그대로야. 마수 '시체'는 없어."
"이런 젠장... 다 구라였나."
"...구라...? 는 아닌 것 같은데."
"허...?"
갑자기 이상한 소리네 이거.
"구라가 아니라니 그건 또 뭔소리냐."
"마수 시체는 없는데 마수는 있다."
"...?"
"싱싱한놈 한마리."
"...미친, 사람 불러와야하나."
"...바로 옆골목이다. 도망쳐야해."
...마수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리가.
증발과정에 있는 놈이라면 몰라도 멀쩡한 놈이면...
"그걸 왜 지금말해 이자식아!"
파벨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파벨은 당연하다는 듯 폼잡으며 착지하고.
"50m도 안되는 거리다! 준비해!"
"야이 개새끼야!"
저 썩을놈.
속으로 파벨을 욕하며 서둘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촉박한 시간이기에 그려진건 그저 자그마한 투창마법.
"빌어먹을... 파벨 개자식아아!"
저 녀석은 전투능력도 없어서 도움이 안된다.
실로 몸 양단하거나 그런건 못하는건가.
괜히 원망스러워지네 진짜.
이런 적이 한두번도 아니고.
그냥 뭐 익숙해진지 한참은 됐다만 50m 남았을 시점에야 알려주다니,이건 너무하잖냐.
"나온다! 조심해라!"
"...!"
일촉즉발의 상황.
온몸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던 내 얼굴에서 의문스럽다는 표정이 떠오른건 그로부터 5초정도 지났을 즈음이다.
"...?"
킁킁.
이게 뭔냄새야.
갑자기 이런 환경에 어울리지 않을법한 냄새가 풍겨온다.
이건...
"...라벤더?"
은은한 라벤더 향이, 눈앞의 저 골목으로부터 풍겨오고 있었다.
"야, 파벨!"
"왜?!"
"마수한테서 라벤더 향기도 나냐?"
"그게 뭔 개소리야! 드디어 미친거냐!"
안나나봐.
그럼 이건 대체 뭔 냄새지.
의문을 갖고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에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을 밟는 소리.
근데...
"...2족보행이냐."
마수들은 대부분 4족보행형 짐승인데.
변종이라도 된다는건가.
그걸 우리가 처음 마주쳤고.
"...씨발, 좆됐구나."
영화같은거 보면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
언제나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이지.
"죽을까 보냐!"
선빵 필승이다.
기이이이잉!
대기시간동안 크기가 늘어난 내 마법진이, 발동을 시작한다.
팡!
골목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기동된 마법.
거대한 빛 한줄기가 섬광처럼 쏘아진다.
날아가는 곳은 골목의 입구방향.
나오는 순간 조져버릴 목적으로.
그러나 그 골목에서 나온건...
"...아!"
퍼걱
어린 소녀 한명 이었다.
*
멍하니 거리를 누볐다.
어째선지 마수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적막한 도시였다.
분명 여기저기 발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아 생명체라도 살고 있을텐데, 왜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건지.
그저 하늘에서 폴폴 내리는 눈이 쌓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발바닥이 시리지만 동상따윈 걸리지 않고, 걷다가 중간에 얼어죽는 일도 없었다.
밤낮이 계속 바뀌어간다. 물론 숙면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일주일 밤을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걸어다녔다.
그러다가, 웬 시체 하나를 발견한다. 이미 죽은 지 오래 된 듯한 시체. 짐이 많은 것을 보아, 먼 곳에서 온 사람 같았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진 않고 그저 보랏빛 피부만이 이질적인 형태로 얼어있을 뿐이었다.
죽은 자세를 보아하니, 분명 무언가 외부적인 충격을 받아 그런 것일 터. 시체를 들춰보니 배쪽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다.
이쯤에선 살짝 무서워질 법도 했지만,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내 일이 아니라 그런걸까, 솔직히 너무 이기적인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렇게 큰 구멍이 날 정도라면 분명 초상능력자가 공격하거나, 웬만한 보어타입 마수 이상이 전력으로 들이박아야 가능할텐데.
하지만, 이 근처에선 마수 하나 보질 못했는걸.
그렇다면 역시 사람이 죽인거려나.
이곳에선 초상능력자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구나, 하며 살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한국이나 미국쪽 같은 곳에선 초상능력자가 범죄라도 일으켰다간 가중처벌로 거의 무기징역 확정. 게다가 다들 강제적으로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사관학교에 들어가 히어로로 양성받으니 초상능력자가 사람 죽이는 일을 본 적이 별로 없기도 해서 그렇다.
광대랑 해방자 같은 경우만이 특이한 것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비유하자면 사회부적응자와 비슷한, 무법자들이었으니.
연구자들은 논외로 치자. 애초에 걔들때문에 이 사달이 난건데.
눈도 못감은 채 죽은 시체가 다시금 눈에 들어온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주변의 소리는 모두 묻혀, 적막한 밤하늘 아래의 고요만이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푸거걱ㅡ!
그렇기에, 인위적인 그 소리를 못들은 것 조차, 어쩌면 당연한거겠지.
몸이 공중으로 붕 뜬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 뱃속에서 거대한 주둥이가 튀어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영악한 새끼.'
마수가 어째서 이 한마리만 있는건진 모르겠으나, 지금은... 뭐.
콰드득!
팔이 뜯겨나간다. 아프진 않다.
아니, 아픈건가? 잘은 모르겠다.
새하얀 눈밭 위로 장밋빛의 혈액이 짙게 터져나온다. 입에서는 허파가 짓눌리는 움직임에 맞추어 실없는 소리만이 새어나올 뿐이었다.
정신이 점점 몽롱해진다. 마치, 잠에 빠져드는 것과도 같은 느낌.
멧돼지의 거대한 주둥아리가 복부를 물어뜯는 장면이 보였다.
물론, 적당히 취하니 잠이 오기에 좋을 뿐이다.
뿜어져나오는 피가 가득 적시는 느낌과 함께,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