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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58화 (158/163)

〈 158화 〉 155화

* * *

아몬과 눈을 마주한 에리엘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눈빛에 깃든 포식자의 눈빛과 마주하자 알아차렸다. 강하다. 강한 적이다.

눈앞의 검은색 늑대는 강한 녀석이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

거기에 저 녀석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 시간에 도착하리라는 걸 미리 아는 것처럼 권태로운 표정이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한 아몬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에 들 뻔 했어. 아니 살짝 졸아서 피곤하네."

아몬이 살기를 드러내며 에리엘과 흑령에게 시선을 보냈다.

"너희들이 나를 죽이러 온 건가?"

그러기엔 조금 약한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방해되는 녀석들을 전부 죽이는 게 일 인 걸.

그르르. 작게 으르렁 거린 아몬과 대치하던 그때, 중얼거림에 가까운 목소리로 노아가 말했다.

"이쪽으로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요."

순찰을 하러 오는 것 같지는 않다. 기사급의 인원이 최소 셋.

완전히 적대하는 분위기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제가 밑에서 오는 인원들을 막을 게요."

흑령과 에리엘은 아몬과 대치중이다. 이 싸움을 방해하려는 훼방꾼을 처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노아는 결정을 내리고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그 순간 흑령은 아몬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에리엘!"

흑령이 날카로운 숏소드를 꽉 쥐며 소리친다. 함정에 빠진 순간부터 퇴로는 없다.

여기에서 도망친다면 저기에 있는 아몬에게 죽임을 당할 뿐.

먼저 공격해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흑령의 생각을 알아챈 에리엘도 아몬을 향해 땅을 박찼다.

"생각보단 빠르군."

그래도 빠르진 않다. 입고리를 살짝 올린 아몬이 흑령의 숏소드를 발톱을 휘둘러서 튕겨냈다.

"크윽..!"

손아귀가 쓰라리다. 숏소드를 놓칠 뻔한 흑령이 이를 악물고 또 다시 휘둘렀다.

카앙! 아몬의 발톱에 막힌 숏소드를 거두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단 세 번 합을 겨눴을 뿐인데, 벌써부터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느꼈다.

무리를 해서라도 아몬이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래야 에리엘이 공격할 기회가 생긴다. 흑령이 아몬을 붙잡아두기 위해 마나를 억지로 운용했다.

"크흐."

그 모습을 보며 아몬이 작게 웃었다. 힘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되도 않는 노력을 하다니.

흑령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아몬은 고개를 꺾었다.

아몬의 살벌한 붉은색 눈동자가 에리엘에게로 향했다.

아몬이 입을 벌리자, 자그마한 불덩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화르르! 불덩이에 막대한 마기가 담겨있다.

맞으면 죽는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에리엘이 검을 거두고, 몸을 뒤틀었다.

콰앙! 화염구가 벽에 부딪쳐서 폭발을 일으켰다. 에리엘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강한윤의 정보인가.'

아몬의 정보를 몰랐다면 화염구에 반응하지 못했겠지. 확인하기 위해서 일부러 뻔한 움직임을 취했다.

후우. 에리엘은 숨을 골랐다. 사각지대에서 공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속도에서 뒤쳐진 상황이라니.

빨을 뻗어서 휘두르기만 하면 됐다. 머리, 목, 다리 어디든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패는 쓰다.'

어쩌면 앞으로 돌아오지 않을 기회. 단 몇 합을 겨뤘음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에리엘은 곁눈질로 흑령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이지만 손이 떨린다.

방금 전 기회를 만들기 위해 무리를 한 게 틀림없다.

앞으로 몇 번이나 싸울 수 있을까. 아무리 많아도 5번은 넘기지 않겠지.

"흑령 정비하고 빈틈을 봐라."

에리엘은 마나를 끌어올렸다. 흑령보다는 자신이 훨씬 강한 몸이다.

이런 전투를 위해서 힘든 훈련과 대련을 매일 했으니까.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마나를 끌어올린 에리엘이 아몬을 향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츠스스! 검을 감싸고 있는 오러가 부서져서 공중에 흩날린다. 푸른색의 빛이 튀며 오러가 새로 맺혔다.

큿. 공격을 한 에리엘은 손목이 시큰거렸다. 아몬의 발톱은 단단하고 무겁다. 하지만 버틸만한 수준이었다.

기회를 몇 번 만들어내는 건 충분히 가능하리라.

탓! 땅을 박찬 흑령의 그림자에서 살수와 촉수가 튀어나왔다.

공격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번의 기회만 만들어주면 된다.

"크르르르!"

아몬의 피어에 흑령의 하수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바스라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흑령과 에리엘의 검이 동시에 아몬을 향해 휘둘러졌다.

*

콰앙! 위층에서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렸다.

위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하아.

무겁게 한숨을 내쉰 노아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활이 당겨진다. 노아와 대치하고 있는 기사는 둘 뿐이었다.

어둠 속에 은신해서 기습으로 기사 하나를 쓰러뜨렸고, 수준이 낮은 병사들은 전투에 휩쓸려서 시체가 되었다.

피슉! 활시위를 놓은 노아는 뒤로 점프했다.

도탄사격으로 구불구불한 계단에 튕긴 화살이 기사들에게 쏘아졌다.

기사들은 화살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올렸다.

역시 이성은 없는 걸까.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움직일 뿐. 간단한 움직임만을 취했다.

공격하거나 방어하거나 이동한다. 그것뿐이지만 마기에 침식된 기사들의 움직임은 빠르다.

티잉! 마나 화살을 막아낸 기사가 노아를 향해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무조건 검으로 베겠다는 듯이 기세가 날카롭다.

기사의 공격에 노아는 활시위에 마나화살을 만들어냈다.

푸른색의 화살. 그 위에 노란색의 물결이 흘렀다.

"후우."

노아는 침착하게 기사를 향해 조준했다. 오히려 기사들이 마기에 침식당한 게 도움이 된 건가.

단순해서 대처하기 쉽고, 신성력에 큰 타격을 입기까지 한다.

퉁! 활시위를 놓자 노아의 화살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서 날아갔다.

후웅! 앞에서 달려들던 기사가 검을 휘두른다. 튕겨낸 화살하나가 다른 기사에게 날아갔다.

화살이 목에 박히자 기사는 실이 끊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앞으로 하나. 마지막 기사가 노아를 향해 달려든다.

노아는 코앞까지 다가온 기사의 검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큿...!"

손목이 욱신거리는 통증과 함께 단검이 튕겨져나간다.

기사의 공격을 겨우 막아낸 노아는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고.

신성력이 담긴 화살은 기사의 두개골을 부숴버렸다.

"하아."

자리에 주저앉은 노아는 신성력으로 손목을 치유했다.

주먹을 쥐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던 손목의 통증이 가라앉는다.

손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노아는 손을 쥐었다 폈다.

살짝 아프다. 완치된 상태는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전투는 할 수 있다.

별 일이 있진 않았겠지. 노아는 방금 전 큰 소리가 났던 최상층을 바라본 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쿨럭... 퉷."

에리엘은 입에 고인 피를 바닥에 뱉었다. 몸 상태를 점검한 그녀는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았다.

갈비뼈 두어 개는 부서졌고 내장이 다쳤다.

마나도 슬슬 고갈되어가는 지, 머리가 멍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에리엘... 괜찮아?"

"괜찮다. 싸울 수 있어."

그나마 몸 상태가 괜찮은 흑령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공격할 기회를 억지로 붙잡기 위해, 에리엘은 공격을 허용했다.

그 한 번으로 아몬의 몸에 상처가 났지만, 흑령은 기뻐할 수 없었다.

"크르르.."

아몬이 죽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으니까

눈빛이 살아있는 아몬은 짐승처럼 낮게 울었다.

"후우...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흑령."

에리엘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몬의 몸을 아쉽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깨 죽지를 완전히 갈라버려야 했는데. 그랬다면 더 손쉽게 이겼을 싸움이다.

하지만 시간을 더 끌어선 안 된다. 아몬의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아귀로 검을 치켜든 에리엘이 돌격했다.

조금이나마 우세한 상황이다. 승기를 잡으려면 지금 뿐이다.

돌진하는 에리엘을 향해 오히려 아몬이 달려들었다.

"젠장!"

공격당할 위기의 에리엘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허공을 가른 아몬의 공격에 빈틈이 드러났지만, 에리엘은 참아냈다.

이건 함정이다. 공격하러 들어갔다면 몸이 찢겼겠지.

에리엘이 흑령과의 호흡을 맞추는 동안, 아몬의 대처도 점점 능숙해지고 있었다.

"왜 그러지? 공격하지 않는 건가?"

히죽 웃은 아몬의 어깨 죽지는 거의 다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에리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까지 회복속도가 빠르다니.

3분. 3분 만에 상처가 아물었다고? 에리엘은 지금의 상황을 곱씹었다.

에우제니아에 견줄 만큼 강한 아몬.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빠른 회복속도.

특히 빠른 회복속도는 강한윤에게 듣지 못했던 정보다.

'공포를 먹는 마족이라 했던가.'

주변의 나쁜 감정들을 먹고 회복하는 마족.

그 사실을 상기한 에리엘은 알아차렸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구멍 난 벽을 통해서 도시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곳은 도시의 정 중앙이다.

나쁜 감정을 모으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

"도우러왔어요!"

"노아!"

에리엘은 때맞춰 도착한 노아에게 소리쳤다.

"도시다! 도시로 가서 마족들을 처리해라! 인간들을 도와라!"

"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급한 목소리의 에리엘이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바깥을 향해 점프했다.

그런 노아를 제지하려고 아몬이 움직인 순간, 에리엘이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고 흑령의 어둠이 공간을 장악해간다.

"왜 그러지? 아몬? 오줌이 마려운 개 마냥 불안해 보이는 군."

"크르르.. 그런다고 너희가 이길 것 같으냐!"

아몬의 주변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동그랗게 뭉치면서 형태를 갖추고 마기가 깃들자, 의지를 가진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 엄마! 엄마...!"

자그마한 소녀가 어머니의 치마폭을 붙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마족은 어머니를 붙잡고 웃고 있었다. 가지고 놀다가 마음대로 하라니.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인간들에게 공포를 심어두고 있었다.

"마르우스! 제발... 제발 누군가...!"

친한 사람을 죽여서 슬픔을 만들고.

"이... 이 새끼들이!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아느냐!"

농기구를 들고 싸울 정도의 분노를 심어준다.

일부러 모든 일을 끝내지 않고 서서히 진행하고 있었다.

케케케. 활짝 웃은 마족이 날카로운 손톱을 드러냈다.

저 마족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 지 모른다.

자연스럽게 공포를 느낀 사람들이 움츠러들었다.

무기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물건들에 의지하듯이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싸워야합니다! 이.. 이겨야합니다!"

목소리가 떨린다. 마족에게 당해왔던 것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 그 사실을 알지만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케켁..."

마족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올 때 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본능이 말한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만을 기다리는 초식동물같았다.

마족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자, 피슝하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콰직! 마족의 대갈통이 터져나가며 바닥에 쓰러진다.

"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주민들은 입을 벌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어둠속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들리고 마족이 다시 쓰러진다.

콰직! 피융! 콰직! 수십발을 순식간에 쏘아내며 마족들이 죽어나간다.

"누군가... 도와주고 있다! 모두 무기를 들고 싸우자!"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가 동조했다. 죽임을 당한 병사들의 칼과 방패를 들고 마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아는 그들을 호위하듯이 따라 움직이며 활을 쏘아댔다.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마족과 기사.'

중요한 녀석들만 죽인다면 일이 더 쉽게 풀린다.

노아는 멀리에 보이는 녀석들의 급소를 조준하고 활을 당겼다. 신성력이 담긴 화살을 쏘았다.

*

"이번엔 재생을 못하는 것 같군."

에리엘은 바닥에 쓰러진 아몬을 쳐다보며 검을 치켜들었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린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서 아몬을 향해 내려찍으려던 순간.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몬이 중얼거렸다.

시간을 끌기 위해 말하는 건가. 에리엘은 손아귀에 힘을 주고 마나를 담았다.

"이미"

아몬의 중얼거림은 끝맺지 못했다.

말을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에리엘은 아몬의 몸이 움찔거리다가 멈추는 것을 확인하고 칼을 뽑았다.

공중에 칼을 휘둘러서 피를 털어낸다. 그리고 옆에 있는 흑령에게로 다가갔다.

"흑령."

"크흑... 허억... 허억..."

배에 큰 자상을 입은 흑령이 숨을 헐떡인다. 에리엘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포션을 꺼내 상처에 부었다.

"크읏...!"

상처를 불에 지지는 소리와 함께 상처가 아문다. 고통에 몸부리 친 흑령이 에리엘의 손을 꽉 잡았다.

"흑령 버텨라."

공격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다치다니. 흑령의 상처를 확인한 에리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출혈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위험하다. 노아를 찾아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에리엘은 축 늘어진 흑령을 두 팔로 들어올렸다.

그녀는 계단을 비틀 비틀 걸으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

"다들 싸우고 있겠죠."

"그렇겠지. 아마 다 이겼을 거야."

먼 곳을 바라보며 강한윤이 대답했다. 이겨야 한다. 그랬을 거라는 확신을 담지 않고서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누군가가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는다면.

그런 불길한 생각을 했다가 강한윤은 머릿속을 비웠다.

굳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일이 끝난 뒤에 생각하자.

그렇게 심란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작전실의 문이 벌컥 열리고.

"적... 적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긴장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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