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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57화 (157/163)

〈 157화 〉 154화

* * *

"크르르!"

발레포르와 부에르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고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상대가 공격해오리라는 걸 눈치 챈 마리아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소리쳤다.

"마로스!"

마리아의 앞으로 마로스가 나서며 마나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상대의 속도가 빠르다. 빠른 만큼 빠르게 마법을 전개해야 한다.

조금만 더 빠르게. 머릿속으로 술식을 떠올리자 손끝으로 마나가 빠져나간다.

얼음기둥이 솟아오르며 발레포르와 부에르의 진로를 막는다.

얼음방패가 떠오르며 마리아와 마로스를 감쌌다.

"이런 망할 새끼들!"

콰직! 날카로운 손톱과 이가 얼음에 막힌다.

자연스러운 대처에 소리친 발레포르가 땅을 박찼다.

부에르보다는 날렵한 몸. 거리를 좁히고 상대의 마나흐름을 주시했다.

손끝에 마나가 맺힌다. 그 순간 경로를 틀며 솟아오른 얼음을 피했다.

"순순히 죽어라! 이 발레포르님의 먹이가 되란 말이다!"

날카로운 발톱이 닿을 거리다. 발레포르가발을 뻗는 순간, 허공에 마법진이 맺히며 날카로운 얼음이 생겨났다.

피할까. 아니면 돌파할까. 짧은 순간 발레포르의 고민은 회피였다.

"크윽 망할년!"

"칫."

마리아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조금만 더 들어왔다면 얼음송곳에 벌집이 됐을 텐데.

이어서 시전한 얼음화살을 양손으로 조준했다.

발레포르와 부에르. 양쪽으로 날리면서 새로운 마법진을 맺는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그녀의 마법진은 멈추지 않았다.

"저 망할 년부터 죽여!"

대체 어떻게? 발레포르의 소리침에 부에르가 으르렁 거렸다.

다가가려하면 저 파란 놈이 방해하고, 다가가지 않는다면 파란 년이 공격을 해댄다.

한 번씩 빈틈이 생겨서 들어간다면 날카로운 얼음마법이 기다리고 있다.

콰직! 얼음구체가 폭발하며 땅을 얼린다. 뒷목이 오싹한 느낌에 직감적으로 멈춘 부에르는 직감 덕에 살 수 있었다.

"그럼 네가 먼저 가라! 발레포르! 이 자식아!"

벌써 죽을 뻔한 위험이 세 번이다. 부에르가 소리친 뒤에 상황을 살폈다.

이 상황을 뒤바꿔야한다. 이대로 간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균형을 무너뜨려야 한다.

부에르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다. 가미긴과 대치하고 있는 녀석 셋.

저쪽으로 뛰어가서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사아아­ 콰직!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바닥에 얼음 구체가 생겨난다.

"너희를 가게 둘 것 같아?"

마리아의 마법이 전장을 꿰뚫는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뻔히 보인다.

이대로 묶어두기만 한다면 무난하게 죽인다. 하아. 마리아의 차가운 한숨이 새어나왔다.

"괜찮아?"

"아직 문제없어."

마나를 한계치까지 사용한다면 몸이 버티질 못하겠지. 하지만 마리아에겐 앞으로도 마법을 수십 번은 사용할 여력이 남아있었다.

"크윽!"

발레포르와 부에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죽음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지 모를 지경이다.

수십, 수백 번은 족히 맞춘 마리아와 마로스의 호흡에 공격도 수비도 전장 이탈도 하지 못한다.

"크하악!"

계속해서 도망치던 부에르의 다리에 서리가 맺힌다.

한 번 허용한 공격에 이어서 얼음 송곳이 녀석을 조준했다.

"발레포르!"

공격을 허용한 지금이라면 빈틈이 생겼을 터.

부에르가 소리치며 돌아봤을 땐, 이미 발레포르도 목을 얼음화살에 꿰뚫린 상태였다.

"이런 씹!"

단말마를 내지른 부에르도 발레포르처럼 가슴을 얼음송곳으로 꿰뚫렸다.

천천히 얼어붙으며 동상이 된 둘은 가루처럼 부서져내린다.

"하아.. 콜록.. 콜록..."

"누님!"

바닥에 주저앉아서 연심 기침을 하는 마리아를 걱정하며 마로스가 달려왔다.

방어에 치중한 마로스에 비해서 마리아의 마력소모가 극심했다.

마력탈진의 증상이다. 손이 차고 마른기침을 하는 마리아에게 마로스가 달려왔지만 손을 내저었다.

"빨리 도와주러 가."

이 정도라면 조금 쉰다면 회복할 수 있다. 마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마로스는 가미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후우..."

이게 뱀인가 아니면 독 개구리인가. 라이라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독을 피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아아! 뜨거운 독을 가미긴이 내뿜었다.

최대한 피하면서 사각지대를 찾으려고 땅을 박찼다.

은신상태에 들어간 라이라는 가미긴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이대로 뒤통수에 칼을 꽂는다면 유효타가 되겠지만.

스륵 뒤통수의 표피가 벌어지며 눈동자가 생겨난다.

"찾았다."

"큿. 젠장."

가미긴의 재빠른 반응에 라이라는 또 다시 공격 기회를 잃었다.

저 녀석의 눈동자. 저게 심히 거슬린다. 라이라는 또 다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다.

콰직! 라이라가 던진 병이 가미긴의 꼬리에 깨지며 부서진다.

치이익! 피부에 독이 스며들지만, 가미긴은 우스운 듯이 소리쳤다.

"간지럽다! 언제까지 장난질이나 할 거지?"

역시 독은 통하지 않는 걸까. 라이라는 이제 독 공격을 시도해보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또 다시 사각지대를 공격하는 걸 노려야하나.

라이라는 가미긴의 표피가 벌어지며 생겨나는 눈동자를 떠올렸다.

가면을 쓴 사내가 가미긴에게 흡수되고 나서 생긴 능력이었다.

가면을 쓴 사내의 능력인건가. 아니면 가미긴의 능력인가?

저 녀석에게 저것만 없었더라면 더 쉽게 이길 수 있었을 텐데. 라이라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철푸덕. 가미긴의 앞으로 또 다른 사람이 떨어진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제물에 그레모리가 질린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만 먹으라고! 뱀 대가리야!"

저걸 먹어치울 때마다 마기를 미약하게 회복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그레모리가 마기를 끌어올리며 흑염을 만들어냈다.

어차피 죽임을 당한 채로 배달하는 시체들이다.

먹지 못하도록 방해만 하면 충분하다. 가미긴이 시체를 먹기 전에 흑염으로 시체를 태웠다.

"배신해서 인간에게 붙어먹은 서큐버스년이!"

분노가 담긴 가미긴의 외침과 함께 그레모리가 공중으로 도망쳤다.

"배신해서 인간에게 붙어먹었다니. 서큐버스란 원래 붙어먹는 종족이라고. 그것도 모르냐?"

날아오는 독을 요리조리 피한 그레모리가 비웃음을 섞었다.

가미긴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려있는 동안, 라이라는 세리스에게 다가갔다.

"가미긴이 생각보다 강해."

배리어를 전개해서 귀족들을 보호하고 있는 세리스가 의문을 표했다.

"생각 보다요?"

"그이가 전해준 정보가 잘못됐다고 여겨질 정도야."

라이라가 들은 내용으로는 가미긴이 이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규모 전투에서 수족을 부리는 게 가장 문제고 기회가 한 번쯤은 온다고 했는데.

그의 말이 전부 틀렸다.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도움이 필요한 건가요?"

배리어를 만들기 위해 발이 묶여있는 세리스가 소리쳤다.

여차하면 귀족들의 목숨을 포기하고 공격해야할 지도 모른다.

"저..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겁에 질린 귀족의 외침에 세리스는 눈을 감았다.

한 쪽을 고르는 것보다는 둘 다 선택하고 싶은 상황이다. 귀족들을 지키고 가미긴을 쓰러뜨린다.

치이이익! 배리어에 독이 닿자 살짝 녹아내린다.

이대로라면 옴짝달싹 못한 채로 말려죽을 수도 있는 상황.

그때, 날아오는 독 앞으로 거대한 얼음벽이 생겨났다.

얼음벽이 녹아내리며 가미긴의 독이 중화된다.

"제가 막고 있을 게요!"

발레포르와 부에르를 쓰러뜨리고 돌아온 마로스가 크게 소리쳤다.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거대한 얼음벽을 보고 세리스는 배리어를 없앴다.

"가요. 가서 가미긴을 쓰러뜨리죠."

세리스가 라이라의 단검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붉게 빛나는 단검 위로 노란색의 빛이 감싼다.

축복을 받은 라이라는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역시 성녀는 성녀라는 걸까. 효과에 짧게 감탄한 라이라는 땅을 박찼다.

"그런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가미긴의 외침과 함께 독과 마기가 뿜어져나온다.

인상을 찌푸린 라이라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단검을 뻗었다.

치이이익! 라이라의 몸을 지켜주는 배리어가 녹아내렸다. 주황빛의 배리어의 색이 점점 옅어진다.

가미긴과 거리는 조금 멀다. 배리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옅어지자, 세리스가 또 다시 배리어를 전개했다.

"그래봐야 헛수고라는 걸 왜 모르는 거지?"

라이라가 녹아내리지 않는 것을 확인한 가미긴이 꼬리를 휘둘렀다.

거칠게 휘둘러지는 꼬리. 이대로라면 라이라에게 직격할 상황이지만 닿지 않았다.

"라이라 언니!"

마리아가 만든 공중에 만들어진 얼음 구체에 막혔으니까.

콰앙! 얼음 조각들이 터져나간다. 가미긴의 꼬리가 찢기며 라이라를 막을 수 없었다.

"후우... 입 냄새가 심하네."

지독한 독과 마기에 인상을 찌푸린 라이라가 가미긴의 머리에 단검을 내리 꽂았다.

콰직! 두개골을 부수며 라이라의 단검이 파고들었다.

"크하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 가미긴은 몸을 꿈틀거리며 요동쳤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확실히 죽는다. 상황을 인지한 가미긴은 벽을 향해 독을 내뿜었다.

콰르릉! 살짝 녹아내린 벽에 머리를 부딪치자 벽이 무너져 내렸다.

몸이 불타는 것처럼 아프다.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도망치려는 가미긴에게 공격이 퍼부어지는 상황. 생존본능 하나만으로 마을이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마을로 향하고 있어요!"

가미긴이 빠른 속도로 도주한다. 라이라 조차도 붙잡지 못할 정도의 빠른 속도다.

이대로 도망친다면 위험하겠지. 세리스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녀의 주변으로 신성력이 흘러나와 노란 빛의 물결을 만들었다.

신의 천벌.

세리스가 중얼거리자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땅을 강타했다. 어둡던 헬리에크를 밝게 비출 정도로 강렬한 빛이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가미긴이 있던 장소에 내리꽂혔다.

"목숨이 질기네요."

가미긴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다.

지금 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가미긴은 중얼거리며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크흐... 준비된 연회였건만..."

실패했다.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가미긴은 숨을 마지막으로 내쉬고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일단 이것부터 처리하는 게 좋겠어."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가미긴의 시체를 라이라가 발로 툭 건드렸다.

크기도 크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진한 마기가 흘러나온다.

세리스가 신성력으로 가미긴의 시체를 불태우며 정화했다.

"준비된 연회.."

라이라는 담배를 문 채로 가미긴의 말을 곱씹었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있다는 걸까. 가미긴의 전력이나 대처법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펠리컨 자작의 배신? 아니다. 그가 배신을 했다고 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라이라의 눈에 도망치는 귀족들이 눈에 밟혔다.

"다들 여기 있어."

마족과 연관된 기사들도 많고 귀족들도 많다. 저들을 그대로 보내줄 생각은 없다.

라이라는 마족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향해 달리며, 단검을 들어올렸다.

*

저기 보이는 거대한 성 안에 적이 있다. 색적으로 위치를 알아낸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간단한 임무다. 아몬이라는 마족을 죽이면 되니까.

가이안의 성벽을 타고 올라간 에리엘과 노아. 둘의 몸을 흑령이 어둠으로 감쌌다.

성 내부까지 이동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는 상황. 경계를 서는 병사들이 어둠을 스치고 지나갔다.

"응?"

병사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것처럼 잠시 멈췄지만.

"졸려서 그런가."

결국에는 흑령의 은신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후우.."

아몬만 죽이고 돌아간다. 남들이 눈치 채고 지원을 오기 전에 처리하면 된다. 다치지 않으면 된다.

에리엘은 자신의 임무를 상기하듯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흑령은 주변에 사람이 있나 둘러보고 있었고, 맨 앞에서 앞장 선 노아는 길을 찾아서 움직였다.

맨 위층에 가장 강한 적이 있다. 색적으로 목표를 찾은 노아.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목표를 향해 걸었다.

성의 맨 위층으로 도착하자 닫힌 문이 하나 보인다.

여기에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노아가 활을 들어 올렸고, 흑령과 에리엘도 마찬가지로 무기를 꺼냈다.

끼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문이 슬며시 열었다.

노아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황량한 빈 방이다.

그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쿠션위에 여유로운 자세를 취한 늑대가 하나 있다.

마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검은색의 늑대.

아몬과 눈이 마주친 노아는 활 시위를 당겼고.

"기다리느라 지치는 줄 알았다."

아몬이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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