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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49화 (149/163)

〈 149화 〉 146화

* * *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예상과 다른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아니.. 크흠흠.. 그냥 조금 당황해서 그랬다네."

마족과 엮으려는 게 아닐까. 걱정한 사실을 숨기려고 헛기침을 했다.

그런 카이보옌의 모습을 보며 강한윤은 속으로 웃은 뒤,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아. 그럴만하죠. 이런 중대한 사항을 너무 가볍게 말한 느낌도 있군요."

강한윤은 일부러 무례를 범해서 죄송하다는 느낌을 팍팍 담아 얘기했다.

그러자 카이보옌 쪽에서 반응이 왔다.

"그렇지. 그래서 당황했다네. 갑자기 헤이네라스를 맡아달라니. 사전에 없던 얘기지 않은가."

살짝 안심했다는 느낌이 카이보옌에게서 팍팍 느껴진다.

마족에 관한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그런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

정말 애쓰네.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강한윤은 견뎌냈다.

"그런데 헤이네라스를 왜 중부에 넘기려는 거지?"

"아. 그거야..."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의미지.

목 끝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참은 강한윤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중동부의 상황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헤이네라스에 대해서 카이보옌님이 잘 알지 않습니까."

"크흠.. 그렇긴 하지."

은근슬쩍 띄워주니까 기분이 풀렸는지 용맹한 척을 한다.

이런 쪽으로 다루기 쉬운 영웅인 걸까. 생각보다 일이 편하게 풀릴 것 같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강한윤의 한마디에 카이보옌이 인상을 찌푸렸다.

"조건..?"

좋은 일에 조건이 붙는다면 대부분 안 좋은 거니 말이다.

카이보옌은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카이보옌님은 강하다고 소문이 나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용맹해서 항상 전투의 선두에 서 계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죠."

강한윤의 계속된 칭찬에 카이보옌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는 걸까.

한 편으로는 그 말을 들으며 기분이 좋아지려 하고 있었다. 북부까지 그런 소문이 퍼진 건가. 하고 말이다.

그래도 불안한 감정은 지울 수 없었다. 뭔가 찝찝하다.

하지만 헤이네라스를 먹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찝찝함은 무시할 수 있었다.

헤이네라스를 호족의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으니까.

"중부를 지금까지 잘 다스려온 카이보옌님이라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죠."

계속된 칭찬에 카이보옌이 계속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하다고?"

강한윤의 한마디에 기분 좋은 감상이 깨져버렸다.

"예. 동부와의 총력전을 위해 더욱 큰 힘이 필요한 법이죠. 혹시나 중동부가 밀린다면 어떻겠습니까."

"..."

그건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혹시나 중동부가 밀린다면? 중부가 최전방이 되는 상황이다.

그 때를 대비해 중부의 전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 장교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언제나 위험은 대비해야하는 법이지."

왠지 모르게 마음속의 불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의미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을 때 카이보옌은 에우제니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비웃음? 아니 즐겁다는 듯이 신이 난 웃음이다.

어째서? 그 의문은 길지 않았다.

"중부의 전력 강화를 위해 북부의 지휘관. 에우제니아가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망할.'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은 카이보옌. 그는 지금까지의 불안과 불길함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차렸다.

에우제니아. 저 오크 녀석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고?

아니 한 수 배우는 게 아니다. 무조건 무슨 짓을 할 생각이 가득하다는 건 확실했다.

그녀의 웃음에 확실히 드러났으니까.

"어떻게 도움을 주려는 거지?"

"그건 내가 답해주지. 전투 장교들은 내가 직접 단련시키겠다. 그리고 카이보옌. 너는 특별히 취급해서 매일 대련이다."

"...매일이라고?"

에우제니아의 말을 듣고 카이보옌이 눈을 찌푸렸다.

매일 대련. 아니, 대련을 빙자한 구타나 괴롭힘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를 수 있을까.

헤이네라스를 얻는 대신 에우제니아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녀에게 압박을 당하면서 영지 하나를 꾸역꾸역 먹거나.

헤이네라스를 포기하고 중동부로 진출할 기회를 버린다.

그에게는 어느 쪽이든 좋지 않은 선택지였다.

'망할..'

카이보옌에겐 욕심이 있었다. 호족의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욕심.

그 욕심을 여기까지 와서 버리고 싶지 않았다.

모두 영향력을 넓히는 와중에 혼자만 외면당한다? 그건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결국에는 결정을 내렸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군."

"나쁘지 않다라.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마음에 들기는 망할. 카이보옌은 욕을 참으며 일부러 웃음을 내보였다.

"뭐. 카이보옌님은 당연히 잘하시겠지요. 저기에 마족과 결탁한 녀석과는 다르게 말이죠. 하하."

강한윤은 일부러 영주와의 관계를 추궁하지 않았다는 티를 팍팍 냈다.

"큼...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그 옆에 서있는 아르기르와 에키르도 일부러 가만히 있는 걸 보아하니 이미 얘기가 된 내용인가.

압박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카이보옌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영주와 로비를 했다는 것을 걸고넘어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동부에 대한 일정 지분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그들이 모르더라도 말이다.

마족과 관련이 있지 않냐. 부터 시작해서 굳이 저런 자와 거래를 했냐. 까지.

그걸 묵인해주겠다는 강한윤의 태도에 카이보옌은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그렇지. 카이보옌이 무슨 마족과 결탁이야. 그럴 성격이 아니거든. 욕심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지."

에우제니아는 옛날에 북부의 전선이 밀리던 시절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는 욕심을 드러내며 북부까지 장악하고 싶어 했었으니까.

이번에는 욕심을 좀 자제할 필요가 있지? 카이보옌?

웃음을 흘린 에우제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카이보옌. 기대해도 돼. 매일 매일하는 대련은 재밌을 테니까. 한 편으로는 참 아쉽다 야. 마족과 손잡길 바랐는데. 그랬다면 내가 두 동강 내버릴 생각이었거든."

살기가 살짝 서린 목소리에 카이보옌은 몸을 살짝 웅크렸다.

다른 건 하더라도 마족과는 거래하지 않아야겠다. 그 생각 하나는 뇌리에 확실히 박혔다.

협박을 담아서 말한 에우제니아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아무튼. 카이보옌님. 헤이네라스를 잘 부탁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강한윤이 악수를 건넨다.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카이보옌은 손을 붙잡았다.

"...알겠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마족과 거래하지 않아."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그래 이 대답을 원했지. 강한윤은 웃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

에우제니아는 자연스럽게 강한윤에게 팔짱을 꼈다.

아무도 없는 지금이라면 그를 독점할 수 있으니까.

주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길로 걷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야. 강한윤. 근데 헤이네라스를 줘도 문제없어?"

"그야.. 별로 필요없는 지역이니까?"

누가 관리하든 상관없다. 강한윤은 그저 배신을 안 하는 아군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쁜 건 아니니까.'

여차해서 뤼네아가 밀린다면 헤이네라스에서 대기하는 카이보옌의 부대 지원도 받을 수 있을 터.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래에 속했다.

뤼네아 쪽과 동부 내부의 정보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다.

병력을 쪼개서 헤이네라스까지 먹을 바엔, 카이보옌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목적은 이뤘으니까 괜찮아."

이번의 경고로 카이보옌은 마족과 거래하지 않을 거다.

웬만하면 욕심보다는 목숨을 소중이 여길 테니 말이다.

카이보옌이 타락할 확률이 높은 영웅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미리 언질을 줄 필요는 있었다.

욕심이 강한 녀석은 언젠가 터트리고 마니까.

"그거면 만족한다고?"

"만족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뤼네아에 더 신경 쓰는 게 맞으니까."

강한윤은 고민하고 있었다. 뤼네아는 좋지 않는 위치다.

동부로 이어지는 세 갈래 길을 막아서야하는 상황이니까.

뤼네아 아래에 남부의 루프란과 연결되는 브란디아 영지가 그나마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만을 믿고 행동하긴 힘들었다.

'전력 보강을 위해 헤이네라스의 병력 지원을 받는 건 확정인데.'

어떻게 움직일 지가 관건이었다.

동부가 움직이는 걸 기다려서 카운터를 치거나.

미리 움직여서 동부의 빈틈을 비집어서 기회를 엿본다.

어느 쪽이 더 유리할 지를 저울질 하던 그때, 강한윤의 앞에 키리아가 나타났다.

"일이 잘 풀렸나요?"

키리아는 강한윤의 지시대로 행동하고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내린 지시는 영주의 성 지하에 몰래 잠입해서 흑마법에 관련된 증거를 만들라는 것.

그건 그녀의 특기였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흔적을 위조하고 슬며시 빠져나왔다.

나머지는 강한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 잘했어. 덕분에 일이 술술 풀렸거든."

증거가 없어? 그럼 만들면 된다.

사람하나 마족과 관련 있는 놈으로 만들기는 참 쉽다.

어차피 영주는 갈아치워야 했으니 겸사 겸사지. 강한윤의 눈앞에 도시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헤이네라스]

­치안 : 41 / 100

­민심 : 20 / 100

­세율 : 65%

진짜 지독하지만치 관리를 안 해야 이 정도 까지 오는데.

곳곳에 부랑자들도 널브러져있고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심각한 도시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 강한윤의 비어있는 팔에 무언가가 물컹하고 닿았다.

".. 왠지 부러워서요."

눈을 마주친 키리아는 마치 변명하듯이 중얼거렸다.

발걸음이 꼬인다.

양쪽 팔에 에우제니아와 키리아가 달라붙어서 걷기 힘들다.

하지만 기분만은 날아갈 것처럼 좋은 강한윤이었다.

그 상태로 에리엘이 대기하고 있는 숙소의 방까지 들어가자.

"쓸쓸히 방을 지키고 있는 나에게 과시하는 건가?"

에리엘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주일동안 독수공방한 대가가 이거라니. 좀 너무하군. 강한윤. 이건 내가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한 에리엘은 옷을 서서히 벗었다.

옷을 한 꺼풀씩 벗으면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었다.

자신이 성욕에 굶주리고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리듯, 강한윤에게 다가와서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후우... 엄청 기다렸다. 이 순간을."

목을 껴안은 에리엘의 눈빛은 몽롱했다.

아. 발정한 상태다. 성욕에 눈동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 챈 강한윤의 바지를 누군가가 벗겼다.

"언제까지 입고 있을 거야. 빨리 빨리 벗어야할 거 아냐."

마찬가지로 에리엘과 똑같이 굶은 에우제니아는 행동이 빨랐다.

강한윤의 바지를 벗기고 자신도 옷을 벗었으니까.

간단한 속옷만 입은 에리엘과 에우제니아는 강한윤을 침대에 눕혔다.

"당연하지만 오늘은 빨리 안 재울 거야."

"이렇게 될 걸 눈치 못 챈 건 아니겠지."

양 옆에 에리엘과 에우제니아가 야한 웃음을 흘렸다.

"저... 저도..."

그녀 둘의 눈치를 보던 키리아는 옷을 벗었다.

강한윤을 독점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녀도 하고 싶었으니까.

"키리아. 우리들 먼저 즐긴 뒤에 난입하도록."

"맞지. 우리는 일주일이나 참았어."

"앗...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지만 키리아도 흥분하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고, 그녀도 강한윤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제 차례죠?"

강한윤에게 오늘 밤은 아주 길 것 같았다.

*

다음날, 광장으로 나간 강한윤의 눈에는 빼곡하게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영주의 사형집행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인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영주의 사형은 진행되는 중이었다.

저 놈 배때기를 봐라. 얼마나 쳐 먹었으면 저래 나왔나.

어휴. 그래 죽어도 싸지. 귀족이란 놈들은 그래도 싸.

저번에 눈 마주쳤다고 때리더라. 맞았던 곳이 아직도 아프다니까?

작게 들려오는 주민들의 소곤거림엔 원망이 담겨있었다.

저 녀석이 유능한 영주라면 살려줬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영주의 목이 매달리는 것으로 교수형은 빠르게 끝났다.

헤이네라스의 새로운 지도자는 당연히 카이보옌이 되는 것으로 결정 났다.

"강한윤. 이제 뤼네아로 돌아갈 생각인가?"

"그래야지. 동부만 집어 삼키면 되니까."

강한윤은 에리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뤼네아에 가는 마차를 타기만 하면 된다.

에우제니아는 시간이 날 때만 뤼네아로 온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나.

"..."

에리엘과 마차에 탑승한 강한윤은 슬며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있다. 처음 맡아보는 향긋한 내음. 그 냄새를 따라 시선이 닿은 곳엔 흑령이 앉아있었다.

꼬리를 이리 저리 움직이며 에리엘의 옆에 슬며시 붙어 앉았다.

"...흑령"

"오늘부터 중동부로 파견이야.너무 좋아... 에리엘 너도 그렇지?"

혐오가 가득 담긴 에리엘의 시선을 무시하는 흑령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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