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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33화 (133/163)

〈 133화 〉 130화

* * *

다른 여자들은 별채에 머물러 있었다.

손님의 입장인 만큼 대접을 잘 해주고 있는지, 모두가 여유로운 티타임을 가지는 중이다.

'..지금인가?'

점심을 먹고 배부른 면접관이 점수를 잘 준다는 얘기가 있듯이.

아침을 먹고 난 뒤의 그녀들이 용서를 잘 해주지 않을까.

어쩌다보니 연회에서 몰래 빠져나가고 여자를 늘린 모양새였다.

"음..."

"강한윤. 어디 갔다 온 거야?"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차를 마시던 그녀들의 동작이 멈췄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흐응..."

자리에서 일어난 노아가 다가온다.

웃옷에 얼굴을 가까이 댄 뒤에 냄새를 킁킁 맡았다.

"약간의 땀 냄새와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나... 누구야?"

뭐야. 개냐고. 여자랑 놀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챈 노아가 도끼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때, 뒤에서 문이 열렸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레모리가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새로 노예가 된 그레모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레모리의 흑발이 휘날렸다. 자기 소개를 끝마친 그녀는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모두가 격하게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강한윤이 연회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마족을 데려왔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싫어하는 것보다는 에휴. 또 데려왔구나. 같은 느낌이었다.

"...마족이네요? 거기에 노예라니 대체 뭘 한 거예요?"

세리스의 시선은 그레모리의 머리에 닿았다.

양처럼 크고 안쪽으로 휘어있는 뿔. 그걸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굴복시켰지."

"...아"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세리스는 알아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분야는 섹스와 전략. 그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용서 못해요. 이스타르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거예요? 욕구 좀 절제 해보라고요!"

약간의 푸념이 담긴 꾸중과 함께 세리스가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그녀를 데려온 건 작전 때문이죠?"

"당연히 그렇지."

"정말이지.."

그의 사심이 담겨있다는 건 알지만 세리스는 넘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더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더 손해를 보는 법이었다.

"그래서 왜 데려온 건데? 그냥 데려오진 않았을 거 아냐. 네가 하는 거니까 그만큼 의미가 있겠지?"

"당연히 그렇지."

사실 우연이 겹쳤을 뿐인데.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말하는 에우제니아. 그녀의 기대를 배신할 순 없었다.

그레모리를 노리긴 했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릴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레모리가 숨어있는 마족을 찾을 때 도움을 줄 거야."

그녀의 능력은 간단하다. 남성을 홀리고 정보를 얻어내는 것.

라이라는 뒷세계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무작위로 얻는다면, 그레모리는 남섬들을 홀려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해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정보를 얻어낸다고? 직접 뛴다면 힘들 것 같은데."

에우제니아는 그레모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이 넓은 대륙을 그녀 혼자서 다 뒤질 수 있을까.

그렇게 수색한다면 그냥 직접 뛰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혹시 이상한 꿍꿍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베어버려야지.

그녀는 아공간 안에 잠들어있는 전투도끼를 꺼낼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괜찮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레모리?"

강한윤의 말에 그레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밖에 나가면 알게 될 거야."

그레모리의 계획을 설명할 시간이었다.

*

티타임이 끝난 뒤에 우리들은 바깥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분주한 상인들이 보인다. 북부의 도시에 비해서 훨씬 바빠보이는 모습이었다.

중부의 도시는 할 일이 더욱 많기 때문이겠지.

그 사이에서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거기 모험가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인데 여기에서 쉬고 가는 건 어때요?"

란제리 속옷 같이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바깥에 있는 여성이 보인다.

그녀는 지나가는 모험가 하나를 붙잡고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어때요? 네? 쉬고 가면 엄청 좋을 텐데... 기분 좋게 해드릴게요. 피로도 풀고요..?"

요염한 웃음을 섞으며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딱 봐도 남성을 꼬시려는 행동이지만 모험가들에겐 효과가 굉장했나보다.

"으음.. 그럴까...?"

"나도 좀 피곤한 것 같은데 오늘은 쉬자."

약간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따라간다.

건물 사이의 으슥한 골목으로 모험가 둘이 사라졌다.

"제가 잘 해드릴게요. 어때요? 응?"

그런 광경이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른 여성들의 꼬임에 넘어가는 남성들이 즐비했다.

'오...'

그레모리의 설명대로 확실히 퀄리티는 높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전부 저와 같은 동족들이에요. 남성의 정기를 먹고 생활하는 서큐버스죠."

"타락한 땅에서 넘어온 건가?"

"네. 그 안에 있으면 죽음뿐이니까요."

그레모리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무지막지한 괴물이 활동하고 다른 마족들은 움직이질 않는다.

도움을 청할만한 녀석도 없고 먼저 도와줄 녀석도 없다.

그 상태에서 타락한 땅에 남아있다는 건 최악이었다.

일족이 멸망하는 건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그녀는 먼저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먼저 빠져나왔어요."

빠르게 뤼네아까지 넘어온 다음 자리를 잡았다.

서큐버스들은 창관을 차지했고 하나의 길드를 형성했다.

뤼네아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나갈 생각이었지만 강한윤에게 걸려버렸다.

"뤼네아부터 서서히 세력을 넓히려고 했어요. 저희는 남자들에게 강하니까요?"

영주의 대부분은 남성이고 서큐버스는 그들을 먹고 산다.

그레모리는 다른 영주들도 차지해나가며 조용히 강해질 생각이었다.

전투에 약한 서큐버스인 만큼 강한 남자들을 차지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은 전부 수포로 돌아간 계획이지만 말이다.

"소규모 길드를 이용해서 동부로 진출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됐어요. 그대로 진행하면 될 테니까요."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서큐버스가 대륙을 장악하기 위한 계획과 준비물 말이다.

준비한 막대한 돈과 파고들기 쉬운 영지의 목록이나 위치.

하나 둘씩 구입하고 재단장을 하고 있는 건물들까지 말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야?"

"아뇨.. 그건 무리일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필요해요. 한.. 이주일 정도?"

지금 당장 실행하기는 무리가 있다. 계획을 검토하고 서큐버스들을 미리 보내놔야 한다.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럼 앞당길 수 있나요?"

계획을 가만히 듣고 있던 라이라가 말했다.

매춘과 창관은 어떻게 굴러가는 지 잘 알고 있다.

동부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면 시간이 더 줄어든다.

거래와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이 가진 노하우를 얻어낼 수도 있을 테니까.

"네...! 그러면 더할 나위 없죠..!"

그레모리는 라이라의 손을 붙잡고 기쁨을 표했다.

"...둘이 따로 얘기를 해볼 게요."

라이라는 그레모리와 자세히 얘기를 나누겠다며 골목 쪽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사라리자 마리아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빠. 정말로 그녀를 믿어요?"

"뭐... 믿어야지."

그렇게까지 신뢰하진 않지만 그녀를 계속 옆에 둘 예정이다.

각인이 새겨진 상태니 명령 한 번이면 대륙의 모든 서큐버스를 소집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지 않도록 그레모리를 감시할 예정이었다.

'물론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지만.'

­호감도 : 81 / 100

그레모리의 호감도는 이미 올라있는 상태였다.

하루하루 큰 폭으로 오른다. 이대로라면 100까지 오르는 것도 금방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참기만 하면 된다.

"왜? 혹시나 그레모리가 배신할까봐 걱정했어?"

"...어떻게 안 해요."

마리아가 삐진 것처럼 뾰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볼을 부풀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았어요."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은 마족들은 전부 동부에 숨어있을까?"

"글쎄. 그럴 것 같긴 한데."

다른 지역엔 마족들이 숨기에 부적합하다.

마족을 잡기 위해 신성교단과 협력해서 수색하고 있다.

그 외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면 곧바로 보고하라는 공문도 모든 곳에 흩뿌렸다.

마족이 숨어있을 만한 곳은 동부. 혹은 남부뿐이다.

'어차피 몇 놈 안 남았을 거야.'

반절은 시작과 동시에 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든다.

동부만 남은 지금 상황. 마족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차근차근 진행하자.'

굳이 서둘러서 진행할 필요도 없으니까.

*

"느긋하네."

강한윤은 뒤뜰에 누운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일이 전부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그다지 할 게 없었다.

뤼네아는 항복해서 연합군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 헤이네라스는 휴전 상태다.

중부 쪽에서 남은 지역은 단 두 개. 고딘과 트라이든이다.

그 두 지역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항복할 것 같은데?'

고딘과 트라이든 둘 다 고립된 상태로 압박당하고 있다.

굳이 전투를 하는 것보다는 조건부 항복을 말하지 않을까.

무리한 조건을 부르진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 정도만 주장할 거다.

'그 정도야 뭐 얼마든지 받아주지.'

선을 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북부 끄트머리와 동부만 남게 된다.

'남은 마족들만 잡으면 그만이지.'

그레모리와 함께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그러다보니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누워서 느긋한 일과를 보낼 뿐이었다.

"여기서 농땡이나 피우고 있다니. 아주 상전이 다 됐어. 강한윤."

"거기에 앉아 있어도 할 게 없거든."

다가온 에우제니아가 옆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그래? 그럼 일을 만들어줄까?"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배수구 작업, 낙엽 쓸기. 그런 의미 없는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양할게. 아무 것도 안하면서 가만히 있는 게 좋으니까... 다른 녀석들한테 시켜줘."

그걸 위해서 쉬지도 않고 목표를 점령 해왔던 거다.

지금처럼 쭉 휴식하면서 돈을 받고 싶다.

"그래?"

에우제니아가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은 뒤, 주머니에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근데 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것도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아...."

대체 뭐지.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녀가 건넨 종이를 받아서 열었다.

종이에는 깔끔한 글씨로 뤼네아 빈민 구제 계획서라고 적혀있었다.

"빈민들을 도와주면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잖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망할"

진짜로 일이 생겨버렸다. 애초에 에우제니아는 무조건 일을 시키려는 생각으로 온 거다.

그녀의 웃음을 보아하면 확실하다.

"하아... 귀찮은데. 10분만 더 쉬고 움직일게."

주머니에 종이를 넣은 뒤에 벌러덩 누웠다.

이렇게 느긋한 일과도 끝이구나. 빈민지원이라면 금방 끝날 일이 아닌데.

눈을 감고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있으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느긋한 자세로 있군. 강한윤."

바로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눈을 떴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 잊어버릴 수 없는 목소리였다.

"에리엘...?"

"오랜만에 봤는데 반갑지도 않은 건가? 아니면 너무 오래간만이라 나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녀가 위에서 내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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