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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26화 (126/163)

〈 126화 〉 123화

* * *

"임프들 중에서도 상위종인가? 아니면 돌연변이? 말을 할 줄 아네."

에우제니아의 발밑에 임프가 깔려있다.

아등바등 팔다리를 휘젓다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반항이 줄어들었다.

"살려주세요...!!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 대신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 임프에겐 기회로 느껴지는 걸까.

눈에 절망이 가득하지만 희망이 아주 약간 정도는 섞여있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임프는 아니야.'

일반 임프라면 말은커녕 멍청하게 행동할 텐데.

이 녀석은 그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잠깐만. 에우제니아."

일단 임프를 살려두기로 결정하자.

저 녀석이 뭔가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제가 아무리 마족이라도 얼마든지 친하게 지내고 사이좋게 지낼"

"아니 넌 좀 조용히 해봐. 임마."

쫑알쫑알 거리는 임프 녀석의 입을 조용히 시켰다.

에우제니아가 아닌 이쪽을 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눈치 빠른 녀석이네.

한마디 하자마자 누구에게 아부를 떨어야하는 지 눈치 챘다.

이 정도로 눈치와 머리가 좋아 보이는 녀석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까.

"야. 너."

"네...!"

"이름은? 있나?"

"모릅니다!"

"모른다고?"

"아뇨! 모르 입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빡대가리 임프인 줄 알았다.

"모르. 살고 싶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살고 싶습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는 임프 녀석.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모르. 몇 가지 정보를 듣고 싶은데."

"예...!"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건지 이 녀석의 표정이 밝아진다.

"이번의 마족 웨이브는 어떻게 발생한 거지? 알고 있나?"

많은 숫자의 마족들이 프로이벤으로 쳐들어왔다.

이해가 안 되는 양의 숫자였다.

하이스타인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더욱 놀랐다.

타락한 땅에서 넓은 영역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만큼의 마족들을 동원할 수 있을까.

"자르간이 군세를 조종했습니다."

"자르간이 조종했다고? 그 동안 다른 녀석들은 뭘 했는데."

자르간이 강한 건 맞다. 하지만 마족 녀석들이 협력을 한다면 잡을 만 하다.

자르간이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은 아니니까.

"모두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고?"

"예. 자르간을 잡아야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엔 무산됐습니다. 누가 그를 풀어 줬는지 모르는 상태라서 서로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결국엔 협동해서 싸우지도 못했죠."

확실히 그렇지.

마족이 살고있는 타락한 땅은 협력보다 약육강식이 어울리는 세계다.

잡아먹거나 잡아먹히거나.

좁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배틀로얄이나 다름 없다.

여기에서 서로를 믿고 등을 보인다는 건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자르간이 군세를 어떻게 획득한 거지?"

아직도 궁금한 것은 많다. 이 녀석이 전부 알고 있을 진 모르지만, 일단 질문을 던졌다.

"크흑... 더 말하고 싶은데...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에우제니아. "

에우제니아에게 시선을 보내니, 그녀가 발을 치웠다.

어차피 모르 이 녀석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바닥에 앉아서 대답을 기다렸다.

"으윽..."

하지만 대답 대신에 돌아온 건 신음소리였다.

고통스럽다는 듯이 배를 감싼 모르. 이 녀석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배가 고파서 힘이 나질 않습니다."

"하 진짜."

정말 가지가지 하네.

배낭에서 육포와 물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굶은 것 같은 모습이다.

살가죽만 간신히 붙어있어서 갈비뼈가 드러나있다.

허겁지겁 육포를 먹어치우고 손가락까지 쪽쪽 빤 녀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르간이 군세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 아무도 없어서입니다."

"아무도 없다고? 타락한 땅에?"

"예. 약한 녀석들은 대부분 빠르게 죽어버렸고, 강한 녀석들은 여기에서 싸우면 손해라는 생각을 했는지 전부 대륙으로 숨어들어 가버렸습니다."

"그걸 모두 내버려둔 건가?"

"다른 녀석의 세력을 먹으려고 하다간 자르간과 만날 가능성이 있으니 위험하고 먹지 않으면 언젠가는 잡아먹힐 겁니다. 미리 도망친 거죠."

"호오.."

그럴싸한 설명이고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이 녀석 생각보다 물건이다.

"도망친 이유는 다른 녀석들이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그런 거겠네."

"바로 그거죠! 모두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쳤습니다! 자르간의 봉인을 누가 푼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쁜 놈입니다!"

여기까진 이해가 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다.

질문을 던지려고 할 때, 모르가 입맛을 다셨다.

하아. 그래 네가 다 먹어라.

배낭에서 말린 바나나와 귤 같은 것들을 던져주니 모르가 열심히 받아먹었다.

"타락한 땅이 빈집이라면 바알처럼 강한 녀석도 도망친 건가? 왜 도망친 거지?"

바알은 자르간보다 훨씬 강하다. 1:1로 싸운다면 절대 지지 않는다.

타락한 땅에서 가장 강한 마족 영웅.

또 다른 특징은 자기 영토를 떠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알 말씀이십니까? 예. 바알도 타락한 땅에 없습니다. 그야 죽었기 때문이죠."

모르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

"죽었다고? 확실한 정보인가?"

마족들은 음험하다. 정보의 대부분이 거짓이기도 하고 실제로 교란을 즐기는 놈들이다.

바알이 죽은 게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예. 확실히 죽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죠. 자르간의 봉인이 풀리기 전.. 아마 일주일 전쯤이었을 겁니다. 그때 바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악마들이 확인을 했죠."

"죽은 척 할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하기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시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거짓 정보일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건 왜지?"

"곧바로 아몬이 그의 세력을 흡수했으니까요."

흐음. 이 정도의 정보라면 바알은 진짜로 죽었을 거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엄청 싫어하니까.

하지만 바알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지?

그만큼 강한 녀석이 없을 텐데 말이다.

바알이 어떻게 죽은지는 모르겠지.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족들은 전부 대륙에 숨어있다는 얘기네?"

"예. 대부분은 죽고 나머지는 대륙에 숨어있죠."

"그래?"

"네."

할 얘기가 끝나자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살려두긴 좀 그러네.'

대화를 끝내고 나니 모르가 생각보다 위협적인 녀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고 눈치도 빠르고 지능도 좋다.

살려주기로 약속은 했지만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분위기를 살피던 모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살려주세요."

"...필요 없어졌다고 죽이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길 안내를 할 게요! 정찰도! 집안일도 잘하고요...! 요리도 잘 하고요...! 똥밭에 구르라면 구르겠습니다!"

모르의 처절한 애원이 울려 퍼졌다.

*

결국에는 모르를 데리고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마족일 뿐이지 나쁜 녀석은 아닌 걸로 보이니 말이다.

지능이 없는 마수들과는 달리 지능도 똑똑해보이고.

특히, 에우제니아가 저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눈치가 있고 능력이 있는데다가 이제 연합군도 마족과 화합을 해야 한다나 뭐라나.

"마족인데 걱정 안 돼?"

"마족이라 해도 다 나쁜 놈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에우제니아의 생각은 생각보다 열려있었다.

보수적인 오크사이에서 태어난 진보적인 여자다.

별나네.

"그럼 쟤를 어떻게 할 거야?"

"뭐 어딘 가엔 쓸 만하지 않을까."

에우제니아는 쿨하게 답한 뒤에 모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비엔의 등에 탄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이 속도로 날아가는 건 신기한 걸까.

"까악! 까악! 싫다! 무겁다!!"

비엔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니 괜찮다.

우리는 프로이벤으로 돌아가기 전에 서쪽으로 향했다.

동쪽에 봉인되어 있는 악마가 자르간이었다면, 서쪽에는 티리스가 존재한다.

불의 마법에 능통한 악마. 세상 전부를 불태우고 싶어 하는 미치광이 녀석이었다.

그런 놈이 바깥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

걱정이 담긴 생각을 했지만, 봉인된 유적지는 이미 활짝 열린 채였다.

혹시 봉인은 멀쩡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완전히 박살난 상태네요."

세리스의 말대로 원래의 형체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루가 나있다.

"생각보다 오래된 흔적이야. 여기도 주변에는 아무도 없네."

노아가 바닥의 흔적들을 살피며 말했다.

봉인이 풀리고 얼마나 된 건지 어떻게 아는 걸까.

궁금증을 마음 한구석에 치워두고 주변을 살폈다.

여기도 자르간의 봉인 유적지처럼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을까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튼 하룻밤 자고 난 뒤에 돌아가자."

별 다른 수확 없이 프로이벤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

"마...마족...!"

모르를 보자마자 하이스타인이 검을 꺼내들었다.

스릉 하고 튀어나온 검에 모르가 다리 뒤로 숨는다.

덜덜 떨고 있는 모습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마족이긴 한데. 안전한 녀석입니다. 말도 통하고요."

하이스타인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위협이 될 것 같습니까?"

이 녀석은 일부러 다리 바깥으로 몸을 내밀었다.

앙상한 팔과 다리. 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작은 몸을 내보였다.

얼굴은 임프다워서 나쁜 인상이었지만,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그나마 봐줄만했다.

"흐음... 그런가."

한참을 쳐다보던 그가 검을 거두었다.

물론 의심의 시선은 거두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저 녀석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숨겨야할 겁니다. 다른 이들이 본다면 난리를 치겠죠."

마족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중인 상황이다.

여기에서 마족이 갑작스레 등장한다면 모두의 반응이 어떨지 상상할 수 없는 하이스타인이었다.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비를 해야 하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하이스타인이 눈치를 주자 병사들이 안내를 시작했다.

숙소로 이동하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많은 정보를 얻었어.'

대륙에 마족이 숨어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정도의 스케일일 줄이야.

앞으로 숨어있는 마족들을 찾아야한다.

어디에 있는지, 누가 숨어있는 지 힌트조차도 없는 불합리한 숨바꼭질이다.

하지만 강한윤은 속으로 웃었다.

'숨어봐라. 숨어지나.'

세력을 확장하고 싶어 하는 이상 결국에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움직이면 정보가 노출되고 결국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 자그마한 정보를 힌트삼아 마족을 찾아내는 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거지?"

에우제니아가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본다.

"일단은..."

휴식을 취해야겠지.

지금까지 힘들게 움직였으니 말이다.

"씻으러 가자."

*

노아와 에우제니아가 허벅지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좋아?"

"당연히 좋겠지. 우리들의 서비스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기분이 좋다.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따스하게 채워지는 이 기분은 버티기 힘들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도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정보를 가져왔어요."

허공에서 나타난 라이라가 보고서를 건넸다.

탕에 발만 담군 채로 그녀가 건넨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다.

"일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

"오히려 일하는 도중이라 좋아할 수도 있지."

노아와 에우제니아가 웃으며 속닥거린다.

본체는 위에 있는데 왜 아래에 말하는 걸까.

"중부 위주의 정보로 가져왔나보네."

"동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동부에 대한 정보는 급하지 않으니 괜찮다.

가장 급한 건 마무리 못한 북부와 중부 쪽 정보다.

'흐음...'

라이라가 가져온 정보를 훑듯이 슥 읽었다.

군대의 움직임이 뚜렷한 곳은 없으니, 물자의 이동 위주로 볼 생각이었다.

물건이 어디론가 흘러들어간 뒤에 종적을 감춘다? 그런 건 수상하기 마련이니까.

"언제까지 일 할 거야?"

"글쎄. 시간이 촉박한 지 아니면 여유가 있는 지. 그것도 모르겠으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래? 지금은 여기에 열중해줬으면 좋곘는데."

허벅지 사이에서 즐기던 노아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에우제니아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흐응."

마리아와 눈이 마주친 노아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언니들에게 기가 죽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보였다.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는 마리아의 손목을 붙잡고 끌어왔다.

"일 끝날 때까지 피로를 풀어줘야지?"

"앗...네에..."

나중에 혼자 몰래 강한윤의 방으로 들어가서 덮칠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마리아는 강한윤의 허벅지 사이로 이동했다.

'중부에서 가장 이상한 곳은...'

의외로 사티라와 가장 가까운 뤼네아인가.

일단 다시 사티라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결정을 끝낸 강한윤은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리아. 이번에 열심히 싸웠으니까 상을 줄까?"

"상... 네에...!"

마리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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