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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25화 (125/163)

〈 125화 〉 122화

* * *

검은색의 피부를 가진 자르간.

그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는 마족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하급과 중급 마족이 아닌 상급 마족. 그 중에서는 마족 영웅들도 보이기도 한다.

저들이 죽은 게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은 것 같은데.

아마도 한바탕 전투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크으으윽..."

그 와중에 살아있는 마족도 있었다.

콰직! 자리에서 일어난 자르간이 마족의 머리를 짓밟아서 깨버린다.

벌레를 짓밟는 것처럼 무심한 표정이다. 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타앗! 눈에 살기가 깃들고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무게감이 있는 대검을 아무렇지 않게 휘둘렀다.

콰아앙! 가장 먼저 반응한 에우제니아가 그의 대검을 막아 세웠다.

손이 저릿저릿하다. 이런 묵직한 일격을 흘려내기엔 다른 이들이 다칠 수 있다.

상대의 검을 날려보낸 에우제니아는 오어를 피워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강력한 적이다.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한 녀석.

얼마 만에 만나는 강적인지 모르겠네. 그녀는 작게 웃었다.

"흐음.. 조금 치는 녀석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결국에는 전부 죽을 테니까.

자르간 대검을 거두고 마기를 끌어올렸다.

구슬처럼 압축된 마기 두개를 공중으로 날린다.

시체들이 두둥실 떠올라서 모이기 시작했다.

으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살덩어리가 뭉친다.

모인 시체는 점점 사람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으으...."

사람의 두 배 정도 크기인 시체덩어리는 괴로운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어어어....!!"

강한윤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내지르고 앞으로 달려왔다.

"이건 우리가 막을 게! 저 녀석을 처리해!"

이 녀석들까지 저쪽에 붙으면 싸움이 유리할 리가 없다.

에우제니아 혼자서도 이길 수 있을까. 아마 힘들지 않을까.

"저쪽에 붙을게요,"

단검을 꺼낸 라이라가 조용히 말을 건네왔다.

자르간의 경지를 알아차린 걸까.

에우제니아가 있는 쪽으로 그녀가 달려 나갔다.

그보다 자르간이 왜 여기 있지.

자르간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녀석이다.

봉인된 고대의 악마 중 하나인 자르간이 여기에 있다는 건, 누군가 봉인을 풀었다는 거다.

'대체 누가 풀었을까.'

봉인을 푸는 절차가 쉬운 게 아닌데.

봉인을 풀기 위해 아이템을 모으고, 퍼즐 요소를 풀고, 이동해야 할 장소도 다섯 곳이나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 녀석을 풀어둘 이유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녀석들부터 쓰러뜨려야 해."

마기를 중심으로 뭉친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몸 가운데에서 검은 빛을 내는 구슬이 보인다.

저 곳이 약점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저 녀석들이 약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마리아, 마로스가 한 팀으로 하나를 상대하고, 나머지가 모두 뭉쳐서 쓰러뜨려야 한다.

"그어어어어!!!"

자르간의 하수인이 마기가 섞인 피를 주변에 흩뿌리고 소리를 내지른다.

온다. 정신없이 달려오는 모습은 조금 소름끼쳤다.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월

마리아와 마로스는 여태까지 합을 잘 맞춰온 티가 팍팍 난다.

마리아는 공격. 마로스는 수비와 방해.

그 역할에 맞춰서 공략해나가고 있다.

마로스의 마법에 하수인의 발이 묶이고 마리아가 공격을 한다.

서로 합을 맞춰서 대처하는 게 금방이라도 쓰러뜨릴 것 같았다.

"그어어어어어!!"

"꺄아아악! 왜 저만 쫓아오는 거예요!"

그에 비해서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이쪽.

가장 먼저 어그로가 끌린 베아트리스가 도망치며 소리를 내질렀다.

"잘하고 있어! 그대로 어그로만 끌어줘!"

"언제! 언제까지요오!!!"

베아트리스에게 어그로가 끌린 덕에 공격할 기회가 생겼다.

"...조금 더 기회를 봐야해요."

노아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조준했다.

여기는 탱커도 없고, 저 하수인을 막을 방법도 없다.

베아트리스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을 노려서 일격에 죽여야 한다.

"제가 도와줄게요."

세리스가 노아에게 버프를 걸며, 화살에 신성력을 담았다.

"...후우"

천천히 심호흡을 한 노아가 날뛰고 있는 하수인을 쳐다보았다.

빠르다. 빠르게 움직이지만 한 번 쯤은 기회가 생길 거다.

딱 한 번의 기회만 있다면 맞출 자신이 있었다.

'버릇...'

하수인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통에 예측해서 쏘는 건 너무 도박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노아씨!! 빨리!!! 제바아알!!!!!"

베아트리스가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녀석의 손에 잡힌다면 무조건 사망이다.

톡! 도망치던 베아트리스의 발끝에 손이 닿았다.

"히이이익! 살려줘요오오!"

베아트리스가 아쉽게 빠져나가자, 하수인은 포기한 것처럼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흐아..."

이대로 포기한 건가? 베아트리스가 눈치를 보던 순간.

주저 앉아있던 하수인의 머리가 그녀를 향했다.

콰앙! 땅을 거세게 박찬 하수인이 베아트리스가 있는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흐잇! 흐엑!"

놀란 베아트리스가 날갯짓을 하지만 도망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베아트리스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하수인.

"후우.."

짧지만 기회가 생겼다. 뻔한 동선으로 움직이는 하수인을 짧은 시간동안 분석한다.

노아는 화살을 날렸다.

슈우우! 공기를 찢으며 화살이 날아간다.

하수인과 가까워지는 화살.

"히에엑!!!"

베아트리스에게 하수인이 손을 뻗는다.

발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콰직! 화살이 하수인의 가슴을 관통하며 핵이 부서졌다.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하수인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흐윽...흐으윽... 무서웠어요오...."

"그래요. 그래."

힘이 빠진 베아트리스가 다가왔다.

시간을 잘 버텨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마리아와 마로스 쪽을 보니 저쪽도 이미 하수인을 처리했다.

콰아아아앙!

에우제니아와 라이라가 있는 쪽에서는 굉음이 들려온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다. 대검을 회수한 자르간은 망설이지 않고 에우제니아를 향해 던졌다.

카아앙! 검이 튕겨져 나가며 벽에 박힌다.

벽에 박힌 대검이 바스라진다. 어느새 자르간의 손에 대검이 돌아와 있었다.

진짜 개사기인 아이템이었다.

무한의 대검. 사용자에게 귀속되며 원할 때마다 무기를 생성할 수 있다.

무게가 무거운 게 흠이지만, 자르간은 힘든 내색도 하지 않고 대검을 던졌다.

"저 놈의 검은 언제까지 던지는 거야!"

에우제니아가 소리치며 달라붙었다.

멀리서 간을 보거나 자세를 바로 잡으면 검이 날아온다.

가까이 붙으면 지옥 같은 연속공격에 손이 저릿저릿하다.

타앗! 라이라가 자르간에게 달려들었다.

경지가 높은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에우제니아를 지키기만 했다.

자르간이 강한 것도 있지만 저 무기가 까다롭다.

판단을 내린 라이라의 단검이 붉게 물들었다.

콰직! 라이라의 단검이 부식을 일으켰다.

자르간은 뒤로 무르며 부서진 대검을 땅에 버렸다.

"호오."

저 능력은 보기 힘든 것인데.

웃음을 흘린 자르간은 대검을 들어올렸다.

부서지면 다시 만들면 그만일 뿐이다.

콰지직! 그가 움직이려는 데 다리가 얼어붙었다.

그와 동시에 라이라와 에우제니아가 달려들었다.

"되도 않는 시도를 하는 군."

그가 검을 던져서 둘의 돌진을 막아내었다.

자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얼음의 속박을 벗어났다.

일단은 약한 녀석부터.

라이라에게 대검을 던졌다.

"크읏"

날아온 대검을 힘겹게 막아낸 라이라의 앞으로 자르간이 이동했다.

죽는다. 순간적으로 죽음을 감지한 라이라는 자리를 벗어났다.

일회용의 순간이동 아이템을 사용하고 또 다시 날아온 대검을 쳐낸다.

"이런 망할 새끼..."

에우제니아는 자르간을 묶어놓기 위해 도끼를 휘둘렀다.

완전히 괴물이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그 타이밍에 맞춰서 대검을 던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힘들겠는데.

일단은 자르간을 처리해야 한다.

마족 중에서 강하기로 소문난 놈들과 견줄만한 강한 녀석인 만큼 공략이 필요해보였다.

"마리아! 마로스! 저 녀석의 손을 얼려!"

"네! 알겠어요!"

마리아와 마로스가 지시를 따라서 급속 빙결을 사용했다.

자르간의 손이 얼어붙고 원거리 공격이 봉인되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템포를 가져왔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만.

"아하. 그렇군."

상황을 눈치 챈 자르간이 강한윤에게 달려들었다.

저 녀석을 놔두면 일이 까다롭게 돌아갈 거란 직감이었다.

"그렇겐 안 돼요...!!!"

강한윤이 노려진다는 사실에 분노한 마리아가 자르간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몸이 얼어붙고 깨지고를 반복한다. 한 순간이지만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후웅! 강한윤에게 자르간이 대검을 휘둘렀지만, 간발의 차로 닿지 않았다.

"하아... 고마워...."

베아트리스가 잡고 날아오른 덕분에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자르간이 대검을 바로 잡았다.

"본인에게 장난을 치는 군. 좋다. 전부 죽여주지."

그가 대검을 휘둘렀다.

*

물론 죽은 건 자르간 쪽이다.

아무리 강해도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지.

마기가 바닥난 그는 결국 공격을 허용했다.

온 몸에 구멍이 난 채로 죽어가는 자르간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누가 풀어준 거지?"

"누구인지 나도 모른다..."

역시 모르는 건가.

자그마한 힌트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단은 이 녀석이 봉인되었던 장소를 하나 가볼까.

곧 목숨이 끊어지려는 것처럼 헐떡이는 자르간이 입을 열었다.

"붉은 색..."

"뭐?"

"붉..은... 색..."

힘겹게 한 마디를 내뱉은 뒤에 그대로 숨을 거뒀다.

"붉은 색이라는데?"

"..."

힌트 치고는 너무 적은데.

예상이 가는 놈들이 떠오르지만, 확실하게 콕 찝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 것보다는 그냥 자르간을 처리하고 아이템을 얻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자.

[전투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전투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전투도 안했는데 경험치는 여전히 들어오고 있었다.

레벨업을 했다는 문구도 나오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무한의 대검]

­내구도 : 100 / 100

­소유자 : 없음

­어떠한 경우에도 파괴되지 않습니다.

간단한 설명이지만 스펙이 좋은 무기라는 건 알 수 있다.

왜 하필 대검이지.

파티에서 대검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투덜거리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대검을 손으로 잡았다.

"끄으응..."

대검을 인벤토리에 일단 챙겨둘 생각이었다. 잡고 들어 올리려했지만 미동도 하질 않는다.

어우 이거 엄청 무겁네.

"제가 챙길게요."

라이라가 대신해서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보다 이 녀석이 마족 웨이브의 원인이었을까?"

"아마 그럴 거야."

자르간이 봉인되어 있던 이유 때문일 거다.

통제되지 않는 폭력성.

이 녀석에게는 팀도 적도 없었다.

모든 걸 먹어치우는 괴물인 최상위 포식자다.

아마 군단을 손에 얻고 대륙 진출을 생각한 게 아닐까.

가장 그럴싸한 시나리오였다.

"그럼 갈까."

그 외로 챙길만한 물건은 없어 보이니 다음 행선지를 정할 시간이었다.

"일단은 동쪽으로 가자."

누가 자르간을 풀어준 걸까.

그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자르간이 봉인되어 있던 유적으로 향했다.

그 장소에 힌트가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

자르간이 봉인되어있던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봉인이 풀려서 문이 열려있다. 그 옆에는 부서진 스위치가 보였다.

부서진 스위치를 지나쳐서 우측의 방으로 이동했다.

문을 열기 위해 스위치를 작동하려는 데.

누군가 만진 흔적이 남아있질 않은 상태다.

스위치는 푸석푸석한 먼지가 잔뜩 끼어있었다.

"음..."

이상한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유적의 문을 열려면 이 곳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이 문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딸깍! 스위치를 누르자 문이 힘겹게 열렸다.

안에 퀴퀴한 먼지가 가득하다. 횃불을 켜서 구조물을 확인하자 확실해졌다.

이 안에 누군가가 들어온 흔적은 없다.

혹시 힌트가 적혀있는 서랍 쪽만 건드린 건가 했지만, 역시나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의심이 깊어갈 때,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히이익!! 살려주세요!!!!"

누군가의 외침을 듣고 바깥으로 나가니, 작은 임프 한 마리가 바닥에 바짝 엎드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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