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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18화 (118/163)

〈 118화 〉 115화

* * *

"죽은 자를 되살린다고?"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되물었다. 라이라가 작게 끄덕였다.

현자의 돌에 그런 설정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 설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엘릭서가 그런 효과긴 하지.'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도 회복합니다. 라는 간단한 설명을 가진 회목 물약이다.

죽기 직전에 엘릭서를 사용한다면 살아나긴 한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죽기 직전. 죽음에 가까운 상태일 뿐. 죽고 난 뒤는 해당되지 않는다.

죽은 영웅은 되살아나지 않고 게임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죽으면 그대로 끝이다. 실제로 죽은 것과 같다.

판타지 세계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치트를 사용하듯이 기적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세리스. 신성 마법으로 가능해?"

"죽은 지 얼마 안 된 상태라면 살릴 수 있긴 해요. 되긴 하는데...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은 불가능해요.."

라이라가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어린 소녀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렇다면 몇 년 전일까. 10년 전? 그렇다면 살릴 확률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레저렉션.

성녀인 세리스도 겨우겨우 시전할 수 있는 신성마법이었다.

몸에 있는 모든 신성력을 사용해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거기에 그녀도 그렇게 살려본 적이 몇 번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 몸이 최대한 멀쩡한 상태여야 한다.

쇼크, 심장마비, 중독 등등. 그런 식의 죽음이 아니라면 살릴 수 없다.

그리고 수명으로 인한 자연사는 절대로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시도할 기회가 있다 해도...'

정말로 살아날 확률은 적다.

어려운 데다가 실패할 확률도 높은 기술이기에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면 정말로 기적이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니. 너무 허황된 얘기다. 세리스의 생각은 그랬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 오크의 주술로도 불가능해."

에우제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엘프는 죽으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니까. 살아나는 경우는 아예 없어요."

노아도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모두의 반응을 살핀 라이라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가문에서 나왔어요."

그 꼴을 보기 싫었으니까.

어머니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라이라에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가 망가지는 것은 더욱 견디기 어려웠다.

상냥하고 멋있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연금술과 현자의 돌에 미친 사람만 있었으니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죠."

현자의 돌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퍼붓고, 얼어붙은 채 보관되어있는 어머니의 시체를 매일 정성스럽게 관리한다니.

매일을 그렇게 보내는 아버지가 죽을 만큼 싫은 라이라였다.

허무맹랑한 것에 빠져서 나오질 않는 아버지를 떠났을 뿐이다.

구하기 어려운 현자의 돌을 구하려는 모습에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번에 그를 잡으면 어떻게 할 거야?"

"..."

라이라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어머니를 구할 생각이었다.

"제 손으로 어머니를 해방시킬 거예요. 아버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

"이안 베르첼님 도움이 필요해보이시군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잔뜩 긴장했다.

인기척을 느끼지도 못했지만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마나에 조예가 없는 이안이라도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몸에는 마기가 흐르는 것으로 보아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게이브."

그의 부름에 집사 게이브가 나타났다.

공기를 잠식해 나가는 마기에 곧바로 검을 뽑고 겨눴다.

"너는 누구지?"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하수인에 불과한 이자크입니다."

"이자크."

"예. 맞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겁도 없군.

누가 뒷배로 있는 진 모르겠지만, 여왕이 거처하고 있는 왕궁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이안 베르첼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찰나,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거래를 원합니다. 이안 베르첼님도 상인이시지 않습니까? 그것도 물불 가리지 않고 거래를 하는 훌륭한 상인이시죠. 저의 거래 품목을 들어보시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이안 베르첼은 상대와 물건만 있다면 거래를 했다.

어디선가 몰래 정보가 흘러나간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지만.

"...들어보겠다."

그의 요구조건을 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지 않습니까? 금은보화, 보물, 유적, 지식. 뭐든지 거래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사악하게 웃는다.

뭐든지라. 이안 베르첼은 자신만만해 하는 그에게 말했다.

"현자의 돌을 구할 수 있나?"

"저희가 구할 수 있는 물건만 가능합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이안도 구하지 못한 물건은 마족도 구하지 못하는 듯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나?"

"그건."

그가 잠시 뜸을 들였다.

"불가능하군요."

이자크의 대답과 동시에 게이브가 움직였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른다.

서걱 살이 베이는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져나갔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안 베르첼님."

바닥에 떨어진 얼굴이 말을 끝맺은 뒤, 모래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 베르첼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불가능하다.

그런 대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아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마족과 계약을 할 수 있을 텐데.

속내를 모르는 녀석들이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계약이 위험한 행위라는 건 알지만, 그만큼 그는 진심이었다.

'푸니아를 향해 진격한다.'

그리고 연금술에 통달한 자들을 만나서 현자의 돌을 만든다.

그 방법 말고는 현자의 돌을 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영지로 돌아온 이안 베르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고서 더미를 쳐다보았다.

자리를 며칠 비운 것으로 보고서가 이렇게 쌓였다니.

다른 실무자들이 일을 못하는 건지, 반대로 레오리스에서 많은 일이 터지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 푸니아를 향해서 군대를 이끌고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영주님...!"

그때, 문이 거칠게 열린다.

내정 업무에 배정받은 담당자 파로반이 땀을 흘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무슨 일이지?"

예를 갖추지 않고 급하게 올 정도라면 큰 일이 벌어졌을 터.

크게 터질만한 일을 떠올렸다. 몬스터들의 침공? 범죄자들의 폭동?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다른 것이었다.

"마탑에서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보이콧이라고..?"

그렇다면 마탑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자의 돌 연구가 멈췄다는 소리다.

이안 베르첼에게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였다.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았는데.

다른 마법 연구를 하겠다는 부탁도 전부 들어주고, 아무런 차도가 없어도 참아줬다.

세베라가 인질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편의를 들어주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터지다니.

그는 의자에 걸려있는 코트를 거칠게 잡아든 뒤에 바깥으로 나갔다.

"마탑의 살인적인 업무를 멈춰라! 멈춰라!"

"마탑의 사람들도 인생이 필요하다! 돈이 아닌 삶을 원한다!"

마탑의 모든 이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광장을 메웠다.

마탑의 사정을 듣고 난 주민들도 합세해서 소리치고 물결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영주님. 불만이 터졌습니다. 특히, 주 80시간에 달하는 근무 환경이 가장 문제라고 합니다."

"그 대신에 그만큼 돈을 주지 않았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건가? 그럼 얼마든지 줄 수 있다네."

저 성난 마탑의 인원들을 진정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돈을 낼 생각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는 멈춰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안에게 돌아오니까.

"이미 말해봤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1.5배까지 협상해봤나?"

"..이미 2배까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3배까지 원하는 건가?"

마법사들의 임금에 비해서 원래 돈을 많이 받던 마탑이었다.

3배로 올리게 된다면 피해가 막심하다. 하지만 급한 건 이안 베르첼이었다.

현자의 돌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있으니까.

별채에 안치되어있는 아내. 이리스를 떠올리고 주먹을 세게 쥐었다.

'시간이 없다..'

마법으로 시체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죽은 사람의 피를 움직이게 해서 썩지 않도록 관리를 하고, 일과가 끝나면 최상의 상태로 얼린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한계가 오는 법이다.

몇 달 지나지 않으면 그녀의 몸은 붕괴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이안은 더욱 급해졌다.

"3배도 힘들 겁니다."

"그렇다면 4배..."

"아뇨. 그들은 돈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휴식을 원한다.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해서 화가 난 것뿐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돈을 더 준다고 한들, 쓸 시간이 없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돈을 주는데 어째서 거절하는 것이냐!"

주먹을 쥔 이안 베르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돈이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세력을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없는 마법사를 탄생시킬 수는 없었다.

진척이 느린 연금술의 특성을 무시하고 현자의 돌을 만들 수는 없었다.

죽은 아내를 살릴 수 없었다.

"마탑에 이어서 마법 길드, 마법 상점, 대장간, 잡화점, 연금술사의 집도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들을 응원하는 군인들도 나오는 중입니다. 마탑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주님."

"..."

사기가 박살나있는 영지를 보고도 이안 베르첼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저들의 요구를 들어줘라. 그리고 푸니아로 진격한다. 전투를 준비해라."

지금 영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사기가 박살나있는 상태다.

이 상황에서 싸우는 게 최선은 아니다.

푸니아를 점령한다고 해서 현자의 돌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 베르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영주님."

"무슨 일이지."

광장을 내려다보는 이안의 뒤로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편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편지를 건네고 짧은 경례와 함께 바깥으로 되돌아나갔다.

푸니아에서 온 편지다.

혹시나 마법으로 함정을 숨겨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마나의 반응은 없었다.

어디에서 보낸 건지 확인한 이안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었다.

­이안 베르첼님.

현자의 돌로 협상을 하고 싶습니다.

일주일 뒤. 푸니아와 레오리스의 중간에 위치한 연못에서 레이네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오드웰 연합군 작전 장교 강한윤

짧은 내용의 편지다.

하지만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내용이 가득했다.

현자의 돌과 그의 딸 레이네.

이안 베르첼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결정을 내렸다.

"..전투 준비는 취소한다."

함정일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현자의 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아하니 의심스럽다.

모든 게 이상한 상황이지만 그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게이브. 경호에 적합한 이들을 추려서 준비해놓도록."

함정이라고 한들 이안은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하아아암."

푸니아와 레오리스 중간에 위치한 연못에서 강한윤이 느긋하게 하품을 했다.

나무 밑동에 앉아서 이안이 언제 올까. 하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가 나올지 나오지 않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 따른 계획은 전부 짜여 있었따.

나온다면 협상을 시도해서 그를 끌어들이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레오리스를 제외한 북부를 먹는 거다.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 레오리스를 먹는 건 불가능하지.'

압도적인 무력으로 레오리스를 함락시키는 것 외엔 꼼수를 사용하거나, 협상으로 레오리스를 먹는 것뿐이다.

협상으로 이안 베르첼을 끌어들인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당신. 뭐라고 편지에 보냈었죠?"

"현자의 돌로 협상을 하자고 했지."

"...있나요?"

라이라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현자의 돌이라는 건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빨라도 일주일. 혹은 한 달까지는 봐야하는 작업이다.

"아니없는데?"

여유가 없어서 현자의 돌을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여기서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한다.

바스락

풀숲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 이안 베르첼.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자의 돌은 없지만 아무튼 현자의 돌로 협상할 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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