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3화
* * *
"목걸이는 대체 어떻게 푼 거야?"
라이라가 말하기에 저 목걸이는 풀기 어렵다고 했다.
억지로 풀기 위해 충격을 가하면 마나가 흘러서 폭발하고, 마나와 반응해도 폭발하는 무서운 물건이다.
세베라의 목에 있는 걸 어떻게 풀었을까.
"가장 허술한 열쇠구멍을 부식시키고 마나를 먹는 벌레를 이용해 마나를 제거했다. 그리고 해체한 채로 놔뒀지."
대답은 달리스 쪽에서 들려왔다.
예상한 것보다 신기한 방법으로 목걸이를 해체했다.
저래 봬도 비싼 물건인데.
달리스가 가리키는 쪽에 검은색으로 된 목걸이가 놓여있었다.
"세베라가 불편해해서 제거했을 뿐이다. 그게 문제가 되나? 내가 그녀의 신분을 보장할 생각이다."
"음."
달리스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세베라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 최대한 순박한 표정이었다.
"그래... 뭐 반항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할 게."
강한윤은 세베라를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모양새.
세베라가 이 생활에 적응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그녀가 적당히 활약해줘야 하니까.
"강한윤. 목걸이를 확인하기 위해 온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세베라를 데려가야 해서."
"어디로?"
달리스의 동공이 커지며 경계가 서렸다.
"푸니아로. 거기에서 해야 하는 일이 있거든."
"위험한 일인가?"
"아니 전혀."
위험하기는 커녕. 오히려 안전한 일이다.
전 마탑 동료를 만나는 일에 불과하니까.
달리스의 눈이 다시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달리스. 요새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어? 할 만한가?
"3중 각인은 이제 익숙해졌다."
"그래?"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달리스의 성장에 강한윤이 웃었다.
종이에 각인을 그려 넣은 강한윤이 그대로 달리스에게 건넸다.
"이건..."
전보다 훨씬 촘촘하고 구조를 파악하기 힘든 형태의 각인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그림에 달리스가 황홀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4중 각인이군."
"그래. 4중 각인이야."
"이걸 준다는 건... 요구하는 게 있나?"
"당연히 있지."
강한윤이 또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에 적혀있는 아이템을 전부 구해야 돼."
"... 기한은?"
"일주일."
내용을 읽은 달리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물품들이 가득하다.
대륙에서 찾기 어려운 연금술 재료들만 가득했다.
그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물품이 눈에 띈다.
드래곤의 심장
"이건 절대 구할 수 없다. 내 능력 밖이야."
"그럼 나머지는 된다는 거지?"
달리스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 의문을 표했다.
"이런 물품을 어디에 쓰려는 거지?"
"현자의 돌을 만들려고."
마르실라와 대화를 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아인 베르첼은 어디에 쓰려는지 몰라도 현자의 돌을 필요로 한다.
협상을 하려면 일단 현자의 돌이 필요해.
강한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단 그가 원하는 걸 손에 거머쥐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관심을 보일 게 분명하니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모든 협상카드를 들고 있어야 한다.
"이번 일이 끝나면 5중 각인도 손에 넣게 될 거야. 달리스."
달리스의 할 일은 그저 시키는 대로 잘 해주는 것뿐이다.
달리스와의 얘기를 끝낸 강한윤은 바깥으로 나왔다.
"푸니아로 가야한다고?"
뒤에서 따라 나온 세베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푸니아에서 자신이 필요한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아니. 네가 해줄 일이 있어."
어떻게 보면 세베라가 가장 중요하지.
그녀는 고개를 갸웃한 뒤 강한윤을 따라 이동했다.
"...이렇게 이동하는 것 말고는 없어?"
"이동하려면 이게 제일 나아요."
세베라를 가슴팍에 안은 채로 이동하는 베아트리스.
몸집이 작은 세베라라서 잡고가기가 편한 것처럼 보인다.
"으... 무서워.."
아래라도 쳐다봤는지 세베라의 목소리는 잔뜩 겁을 먹은 상태였다.
"세베라."
"왜..?"
"푸니아로 가게 되면 마르실라가 있을 거야. 오드웰 연합군으로 와달라고 설득해줘."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오드웰 연합군의 포로인 상황이라지만 얼토당토 없는 요구에 응할 이유가 있을까.
세베라가 망설임 없이 답하자, 베아트리스의 손힘이 느슨해졌다.
"베아트리스."
"자...잠깐!"
여기에서 떨어뜨리면 100% 죽는다.
마법으로 속도를 상쇄하더라도 죽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겁한 세베라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할 게! 할 테니까!"
세베라는 어쩔 수 없이 강한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떨어지기 싫었으니까.
*
"세베라...!"
"아하하.. 마르실라 오랜만이야."
세베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분명히 유적지로 떠날 때까진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상상도 안했는데.
포로로 잡혀서 부려먹어지고 리자드족인 달리스와의 생활에 익숙해질 줄은 전혀 몰랐다.
"다친 덴 없어? 뭔가 이상한 짓을 당했다 거나..."
"아니 전혀 없어."
오히려 포로인 것 치고는 상냥한 대우를 받았다.
마탑에서 생활하던 때보다 살이 오를 정도로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거 아냐?'
지금의 상황을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포로라고 하지만 사실상 마법 연구에 모든 시간을 쏟을 수 있다.
오드웰 연합군에 돈을 청구하면 돈도 받아낼 수 있다.
닦달하는 사람도 없으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거기에 능력이 가장 좋은 인물이 알아서 일을 시킨다.
강한윤 소령.
연금술 기술을 다루지 못할 뿐. 연금술에 굉장히 능통하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의문투성이인 남성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니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괜찮네..'
다크서클이 발끝까지 내려올 정도로 피곤한 마탑 생활보다는 오드웰 연합군이 낫다.
세베라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마르실라... 마탑 전체가 오드웰 연합군으로 합류하는 건 어떨까."
"그게 무슨... 당신이 무슨 짓을 한 거죠? 세뇌를 했나요? 최면? 대체 뭘 한 거죠?"
마르실라가 으르렁거렸다.
세베라가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최면? 세뇌? 아니면 약물?
무슨 일을 했음이 분명한 상황.
그걸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데려온 것처럼 보였다.
"세베라를 풀어줘요! 뭐든지 하겠다고요!"
"뭐든지?"
강한윤의 말에 마르실라가 흠칫했다.
여기서 무리한 요구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몸을 움츠린 채로 올려다보았다.
"뭐든 지는... 아닐 수도 있지만요..."
"어차피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다. 단 한 가지만 해주면 돼. 아주 간단한 거야."
"그러면 세베라를 풀어주는 건가요?"
"그래. 뭐.. 포로에서 해방시켜주지."
물론, 오드웰 연합군에서 편한 생활에 익숙해진 세베라가 돌아갈지는 모르겠다.
",..하겠어요."
마르실라가 굳건한 의지를 담아 대답했다.
세베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
북부의 가프라.
여왕이 거주하는 수도에 대부분의 귀족들이 모이고 있었다.
아인 베르첼은 여왕을 알현하기 위해 이동했지만, 다른 이들은 전부 호출을 받은 상태였다.
북부의 어지러운 정세를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공격을 하지 않으면 영토를 되찾을 수 없고.
공격을 한다면 신성교단이 걸리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후퇴를 한다면 왕국이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 여왕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회의실 가운데 금칠이 되어있는 의자에 앉아있다.
심기가 불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호출한 귀족들 중에 모일 이들은 다 모였고.
일단은 교황 안데르센과 이야기를 끝맺어야 했다.
"신성교단의 위세가 강하다고 한들 너무하지 않나요? 예의를 벗어난 행동이라 생각하는 데요. 안데르센 교황."
".. 지금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마족이 활동하고 있고 이번에는 오드웰 연합군이 마족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위험한 상황입니다. 세르브리아 여왕님."
대놓고 연합군 편을 드는 안데르센이다.
그녀의 입가가 작게 떨렸다.
"예의가 그까짓 건가요?"
"그것보다 중요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아.."
며칠간 했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그녀는 신성교단과 더 이상 협상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세간에서는 신성교단이 타락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더군요. 일부러 전쟁을 멈추고 마족을 잡는 척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냐고요."
".. 그렇습니까?"
안데르센은 품에서 물건을 꺼냈다.
물건을 감싸고 있는 하얀색 천을 걷어내자, 작은 상자가 하나 드러난다.
그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작은 손가락이 하나 있었다.
사악한 마기가 공기 중으로 흐른다.
작은 손가락에서 나온 거라고 믿기 힘든 마기.
모두가 입가를 옷소매로 가렸다.
"사티라에서 얻었던 증거입니다. 그리고 곧 있으면 오드웰 연합군 측에서 증거를 가져오겠지요. 마족은 실재합니다. 대륙을 위협하고 있고요."
"그렇다한들 우리가 무슨 상관이죠? 마족을 잡는 건 신성교단과 정화성전교단에서 해야 할일 아닌가요?"
세르브리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은 어떻게든 진행되어야 한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귀족들은 특히나 공감했다.
마족을 잡는 게 그렇게 급한가?
안데르센의 주장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너무 급진적이다라는 생각이 강했다.
"마족.. 그래 마족을 잡는 건 중요하지. 하지만 우리가 잃은 영토는 어떻게 할 건가요?
우리는 오드웰 연합군과 칼을 겨누고 있어요. 그건 신성교단에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인가요?"
"그건..."
해결할 수 없었다. 안데르센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전쟁을 끝낼 생각인가요? 신성교단이 해결할 수 있나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할 말이 없었다.
신성교단에선 전쟁을 멈추기 위해 노력할 뿐이니까.
"왕국의 결정에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세르브리아가 턱짓하자 서있던 병사들이 안데르센을 호위했다.
아니, 호위를 빙자한 쫓아내기였다.
"미안하지만 나가는 길은 마중할 수 없겠어요. 안데르센."
교황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여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국은 신성교단과 다른 길을 걸을 예정이다."
그녀는 야망을 드러내었다.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다."
***
"드래곤이 여기에 산다고?"
버려진 광산 주변에 무덤이 보인다.
으스스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산이다.
아무리 봐도 여기에 드래곤이 살 것 같진 않은데.
노아가 중얼거렸다.
드래곤의 심장을 얻으러 간다는 이야기에 노아, 세리스, 라이라, 에우제니아, 마리아, 마로스가 함께 움직였다.
"드래곤의 심장을 어디에 쓰려는 거야?"
"북부를 먹으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에우제니아의 물음에 강한윤이 답했다.
마족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배신할 곳은 정해져있다.
그 녀석들을 처리하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 거다.
아인 베르첼은 마족과 협상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내정형 영웅이니까.
일단은 그와 대화를 해보는 게 맞다.
강한윤은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밟으며 나아갔다.
이미 폐광해버린 광산으로 들어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횃불을 밝히자 폐광 내부에서 고블린이나 슬라임같은 작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파앙!
노아가 활을 당길 때마다 녀석들이 가볍게 쓰러진다.
몬스터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안으로 쭉 걸었다.
"흐음.."
광산 최하층에 도착한 강한윤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쯤에 있을 텐데.
아무것도 없는 벽을 손으로 슥슥 짚으면서 무언가를 찾았다.
손에 검댕이가 묻지만 계속해서 벽을 만졌다.
톡
벽에 붙어있던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돌을 들어 올린 강한윤은 바닥에 강하게 내려쳤다.
아무런 흠집이 없는 돌.
그걸 보자마자 강한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모두 전투를 준비해."
강한윤이 벽에 신성력을 흘려 넣자.
"크르르르르 어떤 놈이냐...!"
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이 가로 기울어지며 실체가 드러났다.
[상처 입은 블랙 드래곤 프리엘]
최하층의 공동을 전부 메울 정도로 커다란 덩치의 드래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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