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15화 (115/163)

〈 115화 〉 112화

* * *

"저건 대체 뭐야."

검은색 후드를 쓰고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수상한 녀석들임이 틀림없다.

수상한 녀석들이 광장에서 당당하게 소리친다.

하지만 병사들은 시선을 잠깐씩 줄 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냥 소리만 지르는 게 전부인가? 그래서 놔둔 건가.'

애초에 저들이 여기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이 뒤집어 쓴 후드 망토를 보아하니, 정말로 북부의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들이었다.

망토에 작게 새겨져있는 마탑의 문양은 진짜다.

"북부의 마탑주 세베라를 풀어줘라! 우리는 협상하길 원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광장에서 소리치는 마법사들.

그들에게로 시선이 쏠리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는 것처럼 느긋한 분위기다.

"강한윤 소령님."

어느새 옆에 아가온 아르실 중위. 그는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인사 장교인 그라면 저들이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를 리가 없다.

"예. 아르실 중위. 저기에 있는 이들은 무슨 일이죠?"

"그게... 처음에는 저도 적이 쳐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협상할 수 있는 테이블에 앉혀달라는 것.

단지 그것뿐인 요구.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푸니아로 들어오기 위해 스스로의 마나를 포기했다.

마나 억제구를 착용하는 대신 출입허가를 받아냈다.

아르실은 그들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흐음.. 협상 말입니까?"

"예. 협상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봐야겠죠."

원하는 게 있는데 들어주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강한윤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협상을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강한윤을 본 이들은 경계했다.

오드웰 연합군의 인간. 그것도 높은 계급의 인간이라니.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오드웰 연합군에는 말도 안 되는 공적을 울리고 있는 인간이 있다고 말이다.

"부 마탑주인 마르실라 입니다."

후드를 벗자 얼굴이 드러난다. 부 마탑주 마르실라.

그녀는 이미 알고 있던 영웅이었다.

세베라와 비교한다면 마법 위력은 형편없다. 하지만 마법 연구로 본다면 그녀는 상위티어의 영웅이었다.

마르실라는 강한윤의 눈을 응시했다.

"예. 협상을 원합니다. 북부의 마탑주 세베라. 그녀를 돌려받고 싶습니다."

마탑주 세베라는 확실히 살아있다. 마르실라는 확신을 담아서 말했다.

마탑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각인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세베라가 죽었다면 각인이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마탑은 여전히 세베라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가능한가요?"

마르실라는 왠지 이 사내와 세베라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안쪽에서 얘기를 더 해보죠."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세베라를 넘기진 않겠지만 얘기는 더 들어보고 싶었다.

레오리스에서 무슨 일이 있으니까 그녀가 오지 않았을까.

건물로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하자 그녀는 따라서 이동했다.

손님 접객실에 도착하고 강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세베라를 원한다고...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까?"

포로인 마탑주를 받아내려면 보통의 가격으로는 절대 지불할 수 없다.

돈? 그런 걸로는 협상할 생각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강한윤이 마르실라를 느긋하게 쳐다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라면 바로 쫓아낼 생각이었다.

'마르실라를 포로로 잡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전투를 삼가고 싶은 상황이다. 괜히 부 마탑주를 구금했다가 레오리스가 덤벼오는 건 원치 않았다.

보급은 이제야 정상화가 됐고 레오리스는 언제든지 공격해올 가능성이 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릴 이유가 전혀 없다.

"돈으로 지불할 수 있어요."

"그게 될 거라 생각합니까?"

칼 같은 강한윤의 대답에 마르실라가 입을 다물었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정말로 협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내가 원하는 건 뭘까. 마르실라가 고민했다.

돈? 여자? 정보? 명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다.

마르실라가 눈썹을 찡그린 채 가만히 있자 강한윤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세베라를 원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걸 안다면 대화가 더 쉬워질 텐데요."

세베라를 포로로 붙잡은 지는 한참 됐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포로 송환을 위해 협상하는 건 이상하다.

그녀가 갑자기 필요해진 상황이 있지 않을까.

강한윤의 물음에 마르실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현자의 돌 때문이에요."

"현자의 돌?"

연금술의 최종 아이템.

모든 물질에 반응하고 재료와 매개체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세베라가 굳이 필요한 건가?

내용만으로 봤을 땐 오히려 그녀보단 현자의 돌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굳이 세베라가 필요한 겁니까?"

"그건..."

마르실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세베라가 없다고 해도 현자의 돌은 언젠간 완성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베라를 버리고 싶진 않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고향 친구였으니까.

강한윤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베라를 돌려드릴 수 없겠네요."

"읏... 그런가요."

마르실라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대로 협상이 결렬됐다는 건 확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강한윤이 말을 이었다.

"대신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마탑 소속 전원이 오드웰 연합군으로 오는 건 어떻습니까?"

***

이안 베르첼은 의자에 앉아서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최근에 많은 일이 있었다.

푸니아 거점을 빼앗겼고 다시 점령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매력적인 거점은 아니지만 안다이얄을 다시 노리려면 푸니아를 먹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전부 무산된 계획이었다.

사티라에서 마족이 등장했다는 소문.

그 소문이 레오리스까지 퍼지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마족이 등장했고 모두의 행동이 움츠러들었다.

오드웰 연합군에서 거짓말을 흘린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신성교단에서 증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이안 베르첼은 그 사실을 떠올리고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드웰 연합군과 신성교단이 손을 잡았다.'

마족의 등장에 움츠러들기 무섭게 신성교단에서 동맹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배신을 했다는 얘기라고 하기엔 표현이 모호하다.

대륙을 위협하는 공동의 적 마족을 멸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적은 오드웰 연합군이 아니라 마족이다. 라고 신성교단의 교황이 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드웰 연합군을 공격하면, 신성교단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마족을 옹호하는 세력이냐. 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는 법.

그래서 대륙 전체가 소강상태였다.

모든 전선이 치고 박고 싸우던 때와 다르게 어지러워졌다.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싸우자고 소리치고.

욕망을 실현하는 자들은 지금을 틈타서 횡령과 비리를 저지른다.

둘 다 해당되지 않는 이안 베르첼은 의자에 앉아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안다이얄을 뺏긴 이후로 되는 일이 없군.'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다.

카브란 산맥까지 점령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데 말이다.

높게 솟아오른 마탑.

그것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안 베르첼은 마탑에 보낸 서신을 떠올렸다.

현자의 돌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지금까지 지원해줬던 것을 생각한다면 결과를 내놓으라고.

그는 현자의 돌. 그것을 얻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현자의 돌을 얻기 위해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고 정보를 찾았다.

북부, 동부, 남부, 중부.

모든 곳을 찾다가 오드웰 연합군의 정보까지 입수했다.

그러다가 연굼슬에 능통한 리자드 족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카브란 산맥까지 점령해야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전투를 하기엔 애매한 상황이니까.

"오드웰 연합군은 어떻지."

"싸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역시 그런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드웰 연합군에서 먼저 움직여서 이런 상황을 유도하고 만들었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일이다. 수정구가 밟게 빛나자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연락이 왔다.'

그가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왕의 호출은 평상시엔 귀찮은 일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달가운 상황이었다.

북부 전체의 분위기와 상황을 알 수 있으니까.

'신성교단과는 부딪쳐야 하는가.'

연합군 하나만 상대해야한다면 상관없지만 신성교단까지는 버거운 상대다.

거기에 마족과 결탁한 귀족이라는 오명을 쓰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러워질 뿐이었다.

'신성교단이라,,.'

이안 베르첼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

"..."

톡 톡 톡

마르실라가 손님용 객실 안에서 턱을 괸 채로 책상을 두드렸다.

몇 시간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이쪽으로 오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 태평한 말이었다.

세베라를 줄 수 없으니 마탑이 와라.

마르실라가 인상을 쓰며 배신을 하라는 거냐는 물음을 던지자 그는 작게 웃었다.

'아뇨.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거죠. 더욱 도움이 되는 쪽으로.'

그러면서 종이에 무언가를 끼적였다.

대충 그려서 엉망이었지만 뭘 그린 건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각인. 그것도 3중 각인에 관한 것이었다.

'세베라도 저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고민 정도는 해봐도 되지 않겠어요?'

그의 말에 마르실라의 마음이 잠깐이지만 동했다.

마탑은 어차피 세베라가 없어서는 활동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연합군 쪽으로 붙어야하지 않을까.

"하아.."

마르실라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다음날 아침.

강한윤은 베아트리스와 함께 카브란 산맥으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세베라를 만난 적이 없었다.

푸니아를 점령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크롤을 확인하고 자유롭게 있으라고 했다.

'... 세베라 도망친 건 아니겠지?'

달리스와 사이가 좋아보였는데. 설마 같이 야반도주를 했다거나?

그런 상상을 하고 있으니 괜히 불안해졌다.

세베라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안 본지는 꽤 오래됐다.

"서쪽으로 가자. 아래에 오두막이 보일 거야."

"서쪽에 오두막이요."

베아트리스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카브란 산맥과 가까워지자 서쪽으로 비행 방향을 틀었다.

날아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아래의 오두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달리스는 확실히 있고 세베라도 여기에 있나?

베아트리스가 땅에 착지하고 내린 강한윤은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더니 그대로 열린다.

평상시엔 잠겨있는데. 이상하다.

발소리를 내지 않고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달리스의 뒷모습이었다.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건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달리스 커피 멀었어?"

"기다려라. 준비하고 있으니까."

안쪽에서 세베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만 살짝 내밀어서 안쪽을 확인하니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자세가 불편해서 발을 옮겼더니 바닥에서 소리가 난다.

삐걱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무안한 상황이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강한윤. 무슨 일로 왔지?"

"볼 일이 있어서.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좋아 보이네."

특히 세베라는 기가 자기 안방인 것 마냥 잠옷을 입고 있다.

이 상황에 완전히 적응을 한 것처럼 보인다.

마탑의 인원들을 연합군으로 빼오기 위해서 세베라가 도와줘야하는데. 오히려 괜찮을 지도 모른다.

달리스와 지내는 것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읏."

눈이 마주친 세베라가 흠칫하며 작게 떨었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그러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

의문을 담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세베라의 목에 분명히 폭탄 목걸이를 장착해놨는데.

"너 목걸이 어딨냐?"

그녀의 목은 깨끗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