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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11화 (111/163)

〈 111화 〉 108화

* * *

'세계수의 수호자?'

강한윤은 눈앞에 떠있는 메시지를 보며 눈썹을 오므렸다.

칭호라는 개념은 게임시스템에 없었던 종류다.

확실하다.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았다.

스탯창을 켜서 맨 아래로 쭉쭉 내렸다.

마지막 칸에 추가되어있는 창이 보였다.

[칭호 ­ 세계수의 수호자]

­세계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세계수의 근처에 있으면 회복속도가 50% 증가합니다.

­엘프와 우호도가 증가합니다.

'.. 이게 다야?'

있나 마나 한 스펙의 버프다.

세계수 근처에 있으면 회복속도가 증가한다는 것도 좋긴 한데.

세계수가 세상에 널려있는 게 아니다.

조건이 붙은데다가 심지어 어렵기까지 하다.

거기에 엘프와 우호도가 증가한다고?

아니, 세계수를 구해줬으니 당연히 엘프들이 좋아하겠지.

그저 그 사실을 상태창으로 옮겨 적은것 뿐이다.

별거 없네.

실망한 강한윤은 상태창을 닫았다.

"세계수는 거의 완료 됐어요."

가장 신성력이 넘치는 세리스가 세계수의 정화를 담당했다.

그녀는 신성력을 흘려 넣으면서 세계수의 상태를 점검했다.

마기가 숨어있거나 남아있는 곳이 있나?

세계수의 가지 하나하나 신성력을 퍼트리면서 찾아낸다.

마기가 거의 다 사라졌다.

일을 완벽하게 끝마친 세리스는 손을 뗐다.

"이제 세계수가 다시 제 기능을 할 거에요."

세리스가 말하기 무섭게 세계수의 신성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의 마기 농도가 옅어지면서 공기가 정화되고 있었다.

"하아. 숨쉬기 편해져서 그런지 너무 좋네요."

"확실히 그렇네."

화생방 훈련을 받는 것처럼 코가 찌르는 느낌은 없다.

정화된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다들 나가죠. 제가 알기론 마족 하나가 더 남아있을 테니까요."

강한윤은 베아트리스의 등에 올라탔다.

마지막 남은 놈은 보티스.

그 녀석을 찾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여야한다.

'생긴 것처럼 뱀 같이 얍삽한 녀석이니까.'

상황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면 바로 도망치지 않을까.

지나왔던 통로로 그대로 나가니, 에우제니아와 비엔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깨에 비엔을 태운 채로 에우제니아가 따라붙었다.

그녀는 통로를 빠져나가는 속도에 맞춰서 나란히 달렸다.

"뭐가 이렇게 급해? 세계수를 정화한 것 같던데 일이 남아있어?"

이쪽이 급하다는 티를 팍팍 내니 에우제니아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한 녀석이 남아있거든. 그 녀석이 도망치기 전에 잡아야 해."

"아하. 그런 건가.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 데?"

"... 글쎄."

비열한 녀석이라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하지 않을까.

"주변의 마을을 미끼로삼아서 도망치지 않을까."

"...그건 좀 곤란한데."

"왜?"

"주변 마을에 피해가 가는 건... 음.. 빨리 처리할 필요가 있겠네."

상관없는 이들에게 피해가 가는 걸 꺼려하는 걸까.

에우제니아의 말대로 무조건 빨리 처리해야한다.

대화를 듣고 있던 베아트리스는 속력을 높였다.

"어디로 가야해요?"

통로를 거의 빠져나왔는지 앞에 빛이 보인다.

어디로 가야할까. 보티스가 있을 법한 곳을 떠올렸다.

"일단 왼쪽으로."

보티스라면 어디에 있을지 뻔하다.

내정 관련된 시설에 박혀있겠지.

고르미엔의 영주라고 할 수 있는 지도자.

그들이 머무르는 건물은 왼쪽에 위치했다.

통로를 빠져나온 베아트리스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쪽의 큰 건물인가요?"

"예. 빨간 지붕."

나무와 엮여있는 빨간 지붕을 가리킨다.

저 곳에 보티스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에우제니아! 저쪽의 빨간 지붕!"

"그래?"

아래를 보며 소리치자 그녀는 땅을 거세게 박찼다.

콰앙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다른 건물의 나무와 지붕을 밟으면서 이동하자 베아트리스보다 빠른 속도였다.

뭐냐 저거.

에우제니아의 진심이 담긴 속도를 보고 있으니 조금 무섭다.

그녀의 뒤로 다른 이들도 따라가고 있지만, 헨리크 공작마저도 속도에서 밀린다.

라이라는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질 않는다.

"우린 천천히 가죠."

"네에. 알겠어요."

어차피 빨리 간다고 해도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이들에 비하면 약하니까.

약한 베아트리스와 답없는 스펙을 가진 작전 장교.

이 둘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오."

세계수로부터 신성력이 뻗어 나온다.

어두웠던 하늘이 개며 안개가 사라지고 점점 세상이 밝아지는 중이다.

작게 보이는 주민들에게도 신성력이 닿고 있었다.

콰아앙 지도자가 활동하는 관청 쪽에서 파괴음이 들린다.

에우제니아가 건물의 옆을 뚫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냥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

베아트리스도 부서진 벽을 향해서 날았다.

그곳에는 씩씩거리는 에우제니아와 주변을 둘러보는 라이라가 서있었다.

"죽었나?"

바닥에는 어디서 봤던 얼굴의 엘프가 쓰러져있다.

카이른. 에리엘의 약혼자였던 녀석.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채로 쓰러져있다.

"사...살려줘..."

"어우 뭐야."

살아있었구나.

마기에 범벅이 된 채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모습이었다.

어차피 여기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사형당할 텐데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낫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른의 눈에는 살고 싶다는 가득 욕망이 담겨있었다.

"카이른. 실망이군."

"에....에리엘님..."

"살고 싶다고 하니 살려는 주겠다. 하지만 이후에는 군법으로 처리당할 생각을 해야 할 거다."

"크윽..."

카이른은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예상하고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마족과 내통한 이상, 사형. 그것을 피할 길은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의 카이른을 대충 치료하고 있으니, 에우제니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새끼 어디로 튀었어?"

공기에 남아있는 마기, 여기저기 널려있는 서류들.

방금 전까지 보티스가 여기에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흔적이 널려있다.

에우제니아는 분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걸 놓쳐? 아니, 나도 좀 싸워보고 싶은데! 어디로 간 거야?"

그러게 보티스가 도망친 곳이 어딘 지는 알아야하는데. 사방이 마기로 가득하다.

어디로 도망쳤는지 숨기려는 듯이 마기의 흔적이 어지럽다.

'북쪽? 서쪽? 동쪽?'

일단 남쪽은 아니다. 우리가 온 방향이었으니까.

1/3 확률 찍기로 찾아야 하나.

도망칠 시간을 주면 안 되니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이쪽!"

그때 옆에서 누군가 까악거린다.

아니 어깨에 언제 타 있던 거지?

눈치 못 챌 정도로 조용히 있던 비엔이 서쪽을 가리키며 까악 거렸다.

"서쪽!"

"얘가 서쪽이라는데요."

솔직히 믿기 어렵다.

모두의 시선이 비엔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믿기 어렵다. 그래서 세리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마족이 어디로 도망 친지 모르겠어?"

"전혀요. 용의주도한 녀석인지 흔적이 애매해요."

세리스도 긴가민가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전문 마족 사냥꾼인 성녀가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다시 비엔을 쳐다보았다.

"진짜야?"

"진짜다! 진짜!"

"진짜라는 데요."

모두가 의심쩍은 표정을 짓고있다.

이 녀석의 말은 나밖에 이해를 못하니까.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를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다.

그저 까악 까악 소리로만 들리겠지.

"믿어줘!"

"믿어달라네요."

"일단 가보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정보가 없으니까.

여기에서 가장 강한 의견을 내는 비엔을 믿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서쪽으로 가보죠."

아니라면 이 녀석을 탓하면 되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결정을 내렸다.

***

'망할 녀석. 결국엔 져버렸군.'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빨리 무너지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틀어졌다는 사실에 보티스는 이를 갈았다.

'시간도 벌지 못했다니. 쓰레기 같은 자식.'

자신만만하게 나갔던 엘리고스를 믿은 자신이 바보 같았다.

이기기는커녕 상대의 공격을 지연시키지도 못했다.

단 하루.

그 시간만 있었더라면, 세계수를 기점으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마기에 물든 주민들을 기점으로 군대를 만들고,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

그런 기반도 마련되어있고 그런 상황도 만들어졌건만.

'망할. 망할. 망할.'

지금 와서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모든 계획은 갑자기 찾아온 녀석들에 의해서 무너졌다.

도망자 신세가 된 보티스는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살아남는다면 기회는 온다...!'

여기에서 도망친 다음 숨어서 기회를 보자.

다른 악마들을 꼬드겨서 팀을 만들고,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런 허점은 또 다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응?'

혼자 또 다른 계획을 세우던 보티스는 서쪽에서 다가온 물체에 고개를 들었다.

"크엑!"

주먹에 나가떨어진 보티스는 나무에 처박혔다.

"누구냐... 누가 날....!"

마기를 끌어올리면서 전방을 쳐다보자 붉은 피부의 오크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야. 내 구역 더럽힌 새끼가 너냐?"

"오크 따위가.."

보티스는 마기를 끌어올렸다.

별 것도 아닌 오크. 이 녀석이 발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스피드로 봐서는 쫓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쓰러뜨리고 가는 수밖에.

사아아 진득한 마기를 뿜어낸 보티스는 오크를 향해 휘둘렀다.

독이 발린 것처럼 공기를 오염시키며 날아간다.

"흠.. 마기인가."

오크가 마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멍청한 녀석! 마기에 중독이 되어서 죽어라!

보티스는 웃음을 지으며 마기를 흩뿌렸다.

스으으 마기가 주먹에 닿자 피부가 녹아내린다.

"간지러운 수준이군!"

그럼에도 오크의 주먹은 느려지지 않았다.

더욱 힘을 실어서 보티스의 안면에 주먹을 꽂았다.

"크하아악...!"

주먹에 맞고 날아가는 보티스.

오크가 그에게 따라붙어서 주먹을 욱여넣는다.

콰앙 쾅 콰아앙 바닥에 엎어진 보티스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한다.

"크학! 컥! 케흑!"

마기를 내뿜으면서 팔을 휘젓는다.

최대한 방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먹은 여전히 묵직했다.

"어째서! 마기가 통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약하니까."

콰아아앙 보티스의 얼굴에 주먹이 내려꽂힌다.

보티스의 뿔과 이가 전부 나갈 정도로 강력한 일격.

몸을 바르르 떨면서 움직이지 못한다.

오크는 바닥에 쳐박힌 보티스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올렸다.

"흐음. 마족인가."

약한 것 치고는 마기의 수준은 높고.

마기의 수준이 높은 것 치고는 너무 약하다.

전투에 특화된 녀석은 아니었던 건가.

뭐가 됐든 이 녀석은 용서할 수 없었다.

지역을 오염시키는 마기의 원인이 이 녀석과 관련이 있을 테니까.

보티스의 목을 잡고 힘을 주자 까드득 소리와 함께 목뼈가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크학! 카학...!"

빠각 그대로 목이 부러지고 절명한다.

보티스를 가볍게 쓰러뜨린 오크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몸이 축 늘어진 보티스를 버리려던 찰나.

"이쪽에 누군가 있어요!"

오른쪽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린다.

이 마족을 쫓아온 이들이겠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에우제니아."

그의 부름에 에우제니아가 작게 웃었다.

"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이 녀석을 잡으러 온 거냐?"

"예. 그렇죠."

"흐음."

북부에서 여기까지 온 건가.

에우제니아의 아버지인 바르바고프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남자 둘에 여성 다수. 전투 분야는 전부 제각각 인 것처럼 보이고.

마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신성력을 가진 이가 세 명이나 된다.

'이상한 조합이긴 하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남성이 있다.

바르바고프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남자가 생긴 거냐. 에우제니아."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동네의 오크 남자들은 약해빠지고 매력이 없다고 하던 딸이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난 동안 남자가 생겼다니.

바르바고프는 인정할 수 없었다.

오크와 교제하려면 오크의 법을 따라야하는 법. 힘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 그렇군."

바르바고프는 눈에 띄는 남성에게 다가가서 소리쳤다.

"싸워서 증명해라. 그렇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역시 오크는 호전적이군...! 크흐흐! 그래 나도 질 순 없지!"

헨리크 공작에게 호승심을 불태우는 바르바고프.

그를 뒤에서 쳐다보던 에우제니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쪽이 아닙니다... 아버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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