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6화
* * *
마리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분노를 숨기지 않고 엘리고스에게 적대감을 표출했다.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입김이 나올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진다.
엘리고스도 무섭지만 분노한 마리아도 무서울 지경이다.
"괜찮아요?"
그녀의 뒤로 따라서 달려오는 미청년.
마리아와 똑 닮은 푸른색 머리칼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마로스.
키 140정도로 작던 녀석이 지금은 170에 가까이 성장한 모습이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보여서 다행이에요."
"어... 그래..."
성장기를 제대로 맞이해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귀엽던 꼬맹이는 어디가고 미청년이 여기에 있지.
하는 행동만 비슷하지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저 녀석을 처리하고 올게요."
듬직해진 마로스도 마리아를 따라서 이동했다.
사아아아! 콰지지직! 그곳에선 마리아가 이미 마법을 쏘아내고 있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을 한 번에 네다섯 개씩 던진다.
엘리고스가 막고 피하는 동안 주변이 전부 얼어붙었다.
파스스 주변이 얼어붙는 것을 보던 엘리고스는 중얼거렸다.
"흐음... 그런 건가."
승리로 이끄는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상대가 등장했다.
그렇다는 건, 여기서 이기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죽음만이 존재한다는 것.
엘리고스는 손을 뻗었다. 콰직! 얼음에 갇혀있던 창이 빠져나오며 손으로 돌아왔다.
"계획 변경이군."
저기에 있는 약한 인간을 먼저 죽이려고 했지만, 이렇게 방해를 당한다면 어쩔 수 없다.
저 녀석을 먼저 죽이는 수밖에.
"히이이잉!"
엘리고스의 말이 울부짖으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거추장스러운 인간들을 죽이고 먹을 생각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덤벼...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마리아는 맞선 채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강한윤이 죽을 위기를 맞았다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 그 죄는 죽음으로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얼음 갑옷
싸늘한 냉기가 손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감싼다.
비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서 전장의 온도가 내려갔다.
대규모 냉각
주변의 땅과 풀 나무가 전부 얼어붙었다.
발을 잘못 내딛으면 넘어질 정도로 바닥이 미끄러워졌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날뛰기 좋은 환경이 되었다.
"마로스."
"응."
마리아가 신호를 주자, 마로스도 마법을 시전했다.
창을 들고 오는 상대에게 얼음의 벽을 만들었다.
"히이이잉!"
땅에서 치솟은 얼음 덩어리에 말이 놀라면서 요리저리 피한다.
그만큼 속력이 줄어들고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얼음 폭발
콰과과! 바닥의 얼음이 폭발하며 말과 엘리고스를 덮쳤다.
날카로운 얼음 알갱이가 날아간다.
"흡...!"
엘리고스는 창을 휘둘렀다
큼직한 얼음은 막아내고, 작은 녀석들은 풍압으로 밀쳐낸다.
생겨난 얼음의 벽도 부수고, 점프해서 피한다.
공격의 기회가 생겨났다.
"끝이다!"
길이 열렸다.
몇 초 뒤면 닿을 거리다.
창을 뻗어서 한 번 휘두른다면 몸이 약한 마법사는 도륙이 날 터였다.
단 한 번.
한 번의 공격이면 이 모든 상황이 끝난다.
엘리고스가 웃으며 창을 역수로 쥐었다.
창이 닿기 직전.
마리아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블리자드
주변의 공기가 얼어붙으며 자그마한 단검처럼 변했다.
냉기의 창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창이 공중에 생겨났다.
혹한
모든 것을 얼려버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졌다.
동시에 세 가지의 마법을 사용하며,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공격이 상대에게로 향했다.
"해봐라."
엘리고스는 창을 휘둘렀다.
마법이라는 건 시전자가 살아있을 때나 유지되는 법.
엘리고스는 창을 더욱 세게 찔렀다.
단 번에 죽일 만큼 마기와 힘이 쏠려있는 공격이었다.
이 공격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
콰직! 엘리고스가 뻗은 창은 마리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니, 파고드는 것으로 보였다.
"무슨...!"
사람을 찌르는 게 아니라 돌덩이를 찌르는 것 같다. 치명상을 입힌 감각이 아니었다.
당황한 엘리고스는 또 다시 창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목을 조준했지만.
"늦었어."
마리아의 얼음 마법이 엘리고스에게 쇄도한다.
"크으으윽...!"
엘리고스가 팔을 뻗어서 창을 휘두른다.
하지만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몸이 얼어붙는 중이다.
마기와 갑옷을 뚫고 파고든 한기가 엘리고스를 서서히 얼리고 있었다.
"이렇게....!"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엘리고스가 마지막으로 창에 힘을 실었다.
스륵 마리아의 목에 창날이 닿지만 그게 전부였다.
콰지지지직! 엘리고스의 몸은 완전히 얼어붙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완전 동결.
얼어버린 엘리고스를 무심히 쳐다보던 마리아는 마법을 시전 했다.
얼음 파쇄
파아아앙! 사르륵! 엘리고스의 몸이 안에서부터 터져나갔다.
얼음 조각이 되어버린 상대가 혹시 살아있지 않을까.
마나를 퍼트려 확인했지만 생명 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마리아는 곡개를 들었다.
히죽.
그녀는 방금 전까지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웃었다.
반 바퀴 빙그르르 돌아선 그녀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강한윤에게 향했고,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진심을 내보였다.
"마리아. 네 덕이야 고마워."
네 덕이야.
강한윤의 칭찬에 마리아는 입이 귀에 걸릴 것처럼 웃었다.
어떡해 내 덕이래.
역시 마법을 단련한 성과가 있었다.
잠을 자는 6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18시간을 전부 수련에 사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이번에 북부에서 일이 터졌다고 해서 사령관님이 파견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내 아니. 마나가 느껴져서요."
하마터면 냄새라고 말할 뻔한 마리아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본심을 숨겼다.
"정말 다행이에요."
마리아는 강한윤에게 꼭 붙어있는 채로 몸을 떨었다.
공격당하는 장면을 봤을 땐 놀라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겠지.
긴장이 풀린 마리아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행이다! 다행!"
"응?"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꽥 꽥 거리는 거슬리는 목소리. 그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고개를 올려서 하늘을 쳐다보자 까마귀 한마리가 날고 있었다.
"죽을 뻔 했다! 바보! 아니 주인!"
익숙한 목소리와 생김새.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말투까지.
남부에 놔두고 온 까막이 여기에 있었다.
아니 쟤가 어떻게 여기 있지.
의문이 해결되지 않아서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마로스가 다가왔다.
"저희가 키우는 까마귀에요."
"키운다고?"
저 녀석을? 성질머리가 아주 나쁜 녀석인데?
"저희를 잘 따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파견에 같이 왔어요. "
마로스가 손을 뻗자 그 위로 까막이 가볍게 앉았다.
멋진 폼을 잡으면서 앉아있는 게 은근히 열 받는다.
"비엔."
까막의 이름을 비엔이라고 지어줬나 보다.
마로스가 턱을 살살 긁어주니 눈을 감고 즐기고 있었다.
"뭐 정보 같은 건 없나."
마로스와 까막이었던 비엔을 뒤로하고 엘리고스의 사체로 향했다.
몸을 수색하면 쓸 만한 물건이나 정보가 있지 않을까.
엘리고스였던 것을 둘러보았다.
시체는 얼음 조각이 되어서 건질 게 없고, 그 녀석이 사용하던 창은 엉망인 상태였다.
내구도 3에 복구한다 하더라도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게 엘리고스의 사체를 발로 툭툭 차면서 아이템이 있나 없나 둘러보던 도중.
"응?"
무언가를 발견했다.
[엘리고스의 사념이 담긴 정수]
까만색의 바다가 들어있는 진주처럼 생긴 아이템이다.
마기가 조금씩 흘러나오는 게 확실히 좋은 물건처럼 보이진 않는다.
깨뜨려서 처리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덥석
"어?"
까막이었던 비엔.
이 까마귀 녀석이 정수를 삼켜버렸다.
"야! 뱉어! 뱉어 이 새끼야!"
"비엔! 빨리 뱉어!"
까마귀의 목을 붙잡고 흔들었다. 뱉으라고! 빨리! 이걸 왜 쳐 먹는데!
마로스도 옆에서 전전긍긍하면서 비엔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리아는 상황을 봐서 죽여 버릴 생각인지 마나를 끌어올리는 중이다.
"야!!! 뱉으라고!!!!!!"
그때, 까마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
"..."
강한윤이 사라진 결계 내부에서는 적막이 흘렀다.
"살아있겠죠...?"
베아트리스는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가 몸을 휘청하는 모습까지는 봤다. 땅에 손을 짚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당연히 살아있겠지. 그렇게 죽을 사내는 아니니까."
묵묵히 답한 에리엘은 한 걸음 나아갔다.
... 무사하겠지. 아니 무조건 무사해야 한다.
그의 안위에 이상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에리엘은 세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후우."
마기가 흘러나오는 곳에서 적을 처리한 에리엘은 주위를 살폈다.
마기의 원흉인 오브를 부쉈지만 결계가 사라지질 않는다.
결계가 옅어지고 있을 뿐. 남아있는 마기로 결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세리스가 정화를 하는 만큼 결계가 빠르게 사라지겠지만, 급한 마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렸다.
'시간이 지체됐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위험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다른 이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라이라. 혹시 결계를 빠져나가는 건 안 되는 건가?"
"불가능해요."
물리적인 공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마법적인 공간으로 뒤틀려있다.
밖으로 나간다 해도 길을 잃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까요."
세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가 어디로 간 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움직이는 건 위험할 뿐이었다.
"열렸어요."
결계는 옅어지다가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모두 강한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주위를 살폈다.
"노아라도 있었다면 편했을 텐데."
색적으로 넓은 범위를 찾으면 금방 찾을 텐데.
이제는 직접 찾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베아트리스는 날갯짓을 하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공중에서 마나를 퍼트리고 눈으로 수색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녀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저긴...'
강한윤의 마나와 신성력이 느껴진다.
그것도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마차로 돌아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에리엘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행이다. 다른 이들도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마차로 향했다.
"강한윤."
마차에 가까워지자 강한윤의 모습이 보인다.
무사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에리엘은 마차로 다가갈수록 발걸음이 느려졌다.
강한윤에게 찰싹 붙어있는 푸른 머리칼의 여자.
에리엘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남부에 있을 때 같은 부대 소속이었으니까.
마리아가 강한윤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마리아가 슬그머니 강한윤에게서 떨어진다.
"흐음. 즐겁나보군."
그 모습을 본 에리엘은 싸늘한 목소리를 냈다.
방금까지 걱정하고 전전긍긍했던 게 바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다행이군."
강한윤의 이야기를 들은 에리엘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발을 헛디딘 뒤 강력한 마족의 등장.
공격당해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마리아가 때마침 와줘서 살았다니.
"마리아 소위.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할 지 모르겠군. 목숨의 위협을 느꼈을 텐데... 대견하군."
"아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마리아가 손을 내저었다.
몸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 덕에 강한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낼 수 있었으니 마리아에겐 좋은 일이었다.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야. 그런데..."
에리엘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향했다.
"이 여자는 누구지?"
마로스와 함께 있는 여인.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모습으로 보아선 기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보랏빛의 피부와 관자놀이에 염소같은 뿔이 나있다. 아무리 봐도 마족이었다.
여차하면 지금 당장 칼을 뽑아서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엔 원래 모습을 보여줘."
강한윤이 명령하자 마나를 끌어올렸다.
검은색 안개가 피어오르며 모습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사라지자 바닥에는 털에 윤기가 흐르는 까마귀 한마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까마귀..?"
"얘가 그런 능력을 얻었다는데."
"신기한 일이군. 들어본 적 없는 능력이야."
아무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엔 : 레벨 15]
영악한 까마귀
대상의 능력을 복사해서 가져옵니다.
'...이게 무슨 능력이야 대체?'
물론 정보창을 본 강한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능력은 본 적 없다. 더미데이터에도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었다.
"데려가도 괜찮겠지. 여차하면 죽이면 되고."
에우제니아의 심드렁한 대답에 놀란 비엔.
녀석은 총총 걸어가서 에우제니아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마치 자기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듯이 행동한다.
예전에 바보라고 인성질 하던 까마귀 맞나? 아닌 것 같은데.
"허 참."
강한윤은 헛웃음을 흘렸다.
모두가 마차에 탑승하고 움직이게 되었다.
8명하고 1마리. 마차의 내부는 처음과 달리 북적거렸다.
고르미엔까지 앞으로 하루.
이 속도로 하루 정도만 더 움직이면 된다고 에리엘이 알려주었다.
"고삐도 쥐고 싶나?"
"아뇨. 그런 생각 없는데요."
"그런가."
에리엘이 피식 웃었다.
말을 다루는 건 그녀가 전문가니까 굳이 하고 싶진 않았다.
"이제 슬슬 보인다."
뭐가 보인다는 걸까.
에리엘을 따라 안개가 자욱한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실루엣만 봐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세계수. 시야에 가득 찰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보인다.
고르미엔의 중앙에는 세계수가 있었지.
그런 사실을 떠올리고 세계수를 보고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
"어..."
세계수의 이파리가 까맣게 물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