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105화
* * *
"마기라고?"
이 앞에 마기가 있다며 노아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였다.
"확실하지?"
"응. 확실해."
혹시나 싶어서 다시 물어봤지만 노아의 대답은 확고했다.
그렇다면 이 앞으로 계속 가는 건 위험하다.
"앞을 수색한 다음 마차로 다시 이동하도록 하죠."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마차에 남아있어야 하는데.
마침 딱 어울리는 인재가 있었다.
"라이라. 마차를 지켜줄 수 있어?"
"그렇게 할게요."
라이라는 무기를 집어넣고 마차에 앉아서 담배를 태웠다.
라이라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혹시나 누군가가 마차를 습격한다 해도 그녀는 대인 전에 강하니 말이다.
우리들은 인원 분배를 하고 무기 점검까지 마친 뒤 움직였다.
"그럼 가보죠."
마기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라색의 안개가 주변을 덮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 정도의 약한 안개지만, 숨을 쉴 때마다 마기 때문에 코가 따끔거린다.
세리스가 보호막을 만드니 그제야 코가 따끔거리는 게 사라졌다.
"... 진짜로 마족이 있었네요."
선두에서 마기를 정화하고 있는 세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린 뒤, 강한윤을 쳐다보았다.
마족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해서 따라왔지만 이상했다.
마족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그 보고서에서 알아차렸다고?'
세리스도 보고서를 읽어봤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내용에 마족의 마 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마족의 냄새를 알아차리는 개코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마족을 섬멸하기 위해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그의 말대로 마기가 이 지역 일대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마기를 퍼트리고 있어요. 의도적인 행동이에요."
이 정도의 마기라면 마나와 섞여서 정화가 되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계속 일정 수치의 마기가 느껴진다.
세리스는 신성력으로 세상을 물들이며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저쪽에서 특히 강하게 느껴져요."
"네. 저도 그 쪽이에요."
세리스가 가리키는 방향을 노아가 쳐다보았다.
저쪽에 뭔가가 있다. 색적도 신성력도 그 쪽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노아는 활을 쥐고 언제든지 화살을 쏘아낼 준비를 하며 앞으로 걸었다.
"흠... 마기가 있는 것 치고는 너무 조용하군."
"그러게요."
헨리크 공작의 말대로 주변이 고요하다.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벅 저벅 우리가 걷는 소리만 들린다.
"저기에 뭔가 있군."
에리엘의 말대로 뭔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성인 남성보다 더 큰 높이의 울타리였다.
그 앞에는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어서 배수로와 함정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고블린 같이 작은 몬스터들을 막기 위한 설비였다.
"수상하네."
생각보다 정비가 잘 되어있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로 통하는 문도 활짝 열려있고.
"안에 아무도 없나?"
"아니 있는데... 이상하네."
노아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듯하다.
"제가 안을 둘러보고 올 게요."
베아트리스가 날갯짓을 하며 마을의 위로 올라갔다.
주변을 둘러보고 올 때까지 기다리니,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도 없는 건 아닌데... 뭔가 이상해요. 들어가도 될 것 같긴 한데..."
대체 뭘 보고 왔기에 그러는 걸까.
신경을 최대한 곤두세운 채로 마을로 들어갔다. 입구에 함정 같은 건 없다.
"어.."
그렇게 마을 내부로 들어와서 보이는 건 정신이 나가있는 주민들이었다.
"그어어어"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달려든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에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아마.. 마족들의 마법에 당한 것 같아요....!"
세리스가 주민에게 신성력을 집어넣었다.
투욱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세리스는 주민을 품에 안았다.
"그저 기절한 것뿐이에요. 정신을 파괴하는 마법은 아니고... 정신에 영향을 주는 약한 마법. 최면 정도로 생각되네요."
"마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제거한다면 다들 원래대로 돌아가겠네."
"네. 그렇죠."
덮쳐오는 주민들의 떼를 피해서 이동했다.
빠르다고 하지만 여기에 있는 영웅보다는 한참이나 느리다.
"저기에요!"
마기가 가장 짙은 곳을 찾았다.
마을 한 가운데에 위치한 우물에서 보라색 안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로 들어가야 하는 건가. 싫은데.
뭔가 질척질척하고 냄새도 날 것 같이 생겼다.
'어쩔 수 없지.'
끈을 묶어서 우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퍽 물이 발목까지 잠겼다.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쉬자.
"케흑."
마기가 진하다. 마치 화생방 훈련을 받는 것 같은 느낌에 코를 감싸 쥐었다.
띠링
[신성력과 높은 재치로 마기에 저항합니다.]
[최면에 저항합니다.]
[혼란에 저항합니다.]
[매혹에 저항합니다.]
순식간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시스템이 여기가 중요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네.
뒤따라서 내려온 에우제니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우. 마기가 왜 이렇게 진해. 빨리 처리하고 나가자."
"맞지."
빨리 처리하고 신성력으로 정화하고 난 뒤에 나가자. 우물 속을 둘러보았다.
어디에서 마기가 흘러나오는 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철퍽 철퍽 물을 가르며 마기의 근원지를 찾았다.
굳게 닫힌 나무 문.
여기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물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실 같은 걸까.
쾅 콰직 에우제니아가 문을 발로 부쉈다.
안에는 검은 두건을 뒤집어 쓴 누군가와 마기가 흘러나오는 오브가 있었다.
그때, 검은 두건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여기까지 오다니 모두 살아갈 수 없을"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콰직 에우제니아의 발차기가 작렬한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원샷 원킬. 발차기를 맞은 상대는 아무 말도 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시체는 수십 년이 빠르게 흐른 것처럼 부식되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마기에 비해서 약하네요."
확실히 그렇지. 그러나 그럴 만하다.
본체는 이 녀석이 아니라 여기에 놓여있는 오브니까.
[정제된 마기가 담긴 원석]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내구도 93/100
이 아이템으로 어떤 마족이 침투한 건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엘리고스, 보티스, 제파르.
이 3인방 녀석들이 여기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조금 까다로운데.'
미래를 볼 수 있는 엘리고스.
군단을 지휘하는 보티스.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제파르.
이 셋은 특히 마족 세력 중에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전투는 엘리고스. 내정은 보티스. 간계는 제파르.
이렇게 공식이 정해져있을 정도로 특화된 능력치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엘리고스가 까다로운데.'
미래를 볼 수 있어서 전장에서 승리한다. 이런 설정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게임에서는 이기는 싸움만 하는 것으로 컨셉을 유지했는데.
실제로는 어떨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실제로 그런 능력은 아니겠지.'
기껏 해봐야 전장을 유리한 방법으로 바꾸는 정도가 아닐까.
'설마 그렇게 사기적인 스킬이 있겠어.'
강한윤은 세리스를 도와서 마기를 정화하기 시작했다.
***
"침입자가 있다."
오브를 바라보고 있던 보티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브 하나가 부서지면서 영역이 줄어든 것을 눈치 챈 상황이었다.
"침입자는 저번에도 제거하지 않았나?"
자신의 애마를 쓰다듬고 있던 엘리고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세력이 안정화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니.
그렇게 말하면서 침입자가 있을 때 마다 부려먹는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좋지 않지만. 부대 운용에 관해서는 저 녀석을 이길 악마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로 가면 되지?"
"남동쪽.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그 근처에 가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래?"
엘리고스는 자신의 창을 가볍게 쥐었다.
눈이 붉게 빛나면서 수많은 미래가 보였다.
미래를 볼 수 있다 해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이기는 전투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알아냈다.'
엘리고스는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미래를 확인하고 말고삐를 쥐었다.
"푸르르"
엘리고스의 애마도 앞으로 이길 전투를 알고 있는지 흥분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그래. 전투를 이긴다면 마음껏 먹게 해줄 테니 기다리렴.
엘리고스가 전투를 위해서 움직였을 때.
제파르는 무료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 녀석은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엘프. 카이른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계약을 하는 대신에 여성 엘프를 얻고 싶다는 소원을 빈 불쌍한 엘프. 그깟 여자가 뭐라고.
여성 엘프. 에리엘이라 했던가.
그 여자를 꿈에서라도 얻게 해줬으니 계약 위반은 아니었다.
"이제는 쓸모가 없지 않나."
그는 카이른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이 녀석은 계약자로서의 가치가 다 한지 오래였다.
세력을 먹어치울 때까지 마력을 공급해줬고, 마기를 보충시켜줬다.
그러나 이제는 계약자가 없더라도 활동할 만큼의 충분한 마기가 있었다.
환상을 그려내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워진 참이라 죽이고 싶었다.
붉게 빛나는 검을 꺼내든 제파르에게 보티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 아직은 더 빨아먹을 수 있다. 그리고 계약자가 있어야만 진행되는 일도 있다."
보티스의 시선은 세상을 덮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로 향해 있었다.
***
"젠장."
강한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마기를 정화하고 나아가고. 정화하고 나아가고 그렇게 반복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마족이 싼 똥을 하루 종일 치우는 건 좋지 않았다.
잠을 자기 전에도 마족의 똥을 치우고.
잠을 자고 일어난 뒤에도 마족의 똥을 치우는 중이었다.
"하아."
거기에 똥만 싸놓은 게 아니라 지뢰도 깔아 놨다.
들어올 땐 마음 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라는 건가.
공간 왜곡 마법이 시전 됐다.
한 걸음 한 걸음 잘못 걸으면 오지로 빠져서 길을 잃게 되는 무서운 마법이었다.
"모두 조심해야 한다! 발자국을 따라서 걸어라!"
에리엘의 외침에 정신을 다잡았다.
조금이라도 잘못 걸으면 문제가 생기니까 조심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노아랑 함께 마차나 지키고 있을 걸.
헨리크 공작의 뒤에서 따라가고 있던 강한윤이 발을 들어 올렸을 때 발에 뭔가가 걸렸다.
휘청
몸이 흔들린다.
"어..."
씨발.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얼굴이 땅과 가까워지고 바닥에 손을 짚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바닥에 흔적도 없다.
이게 공간 왜곡 마법인가?
주변의 모든 모습이 방금 전과는 달랐다.
마치 다른 장소에 뚝 떨어진 것처럼 모든 게 바뀌어있었다.
"하.. 씨발..."
순식간에 바뀐 주변 환경에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먹잇감이 나타났군."
푸르르
뒤에서 말이 투레질 하는 소리가 들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검은색 말을 타고 있는 기사가 있었다.
은색의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는 기사.
검은색 장창을 집은 채로 천천히 투창의 자세를 잡았다.
"이런... 씨발."
등골이 절로 오싹해졌다.
저 기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마족에서 가장 멋있는 악마. 엘리고스.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기사.
엘리고스가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반대로 무조건 패배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 좆됐네.'
엘리고스를 이길 방법 따위는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도망쳤겠지.
강한윤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살 수 있을까?
산다고 해도 몇 초나 더 살 수 있을까. 1초? 2초?
'불가능 해.'
생존 가능성은 없다.
엘리고스를 설득할 방법도 없다.
엘리고스가 창을 던진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온다.
찢어지는 굉음을 내며 날아오는 창.
대체 이걸 어떻게 피해.
강한윤은 눈을 감은 채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창에 찔리는 고통은 없었다.
어느새 창이 날아오는 소리도 멈췄다.
서서히 눈을 뜬 강한윤.
그의 앞엔 얼음 방벽에 막힌 창이 얼어붙은 채로 멈춰있었다.
얼음 마법? 그런 의문도 잠시.
강한윤의 뒤로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누굴 건드리는 거죠..?"
푸른 머리칼의 소녀 마리아.그녀가 그 곳에 서있었다.
주변이 서서히 얼어붙으면서 모든 공간을 장악해나간다.
공기조차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
그녀가 강해졌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리아...!"
대체 여기를 어떻게 찾아온 거지?
죽을 뻔한 상황에 살려줘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근데 얼마나 성장했길래 엘리고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거지?
마리아의 스탯이 눈앞에 떠올랐다.
[마리아 : 레벨 35]
마나 : 1,527,553 / 1,576,489
힘 : 5
체력 : 35
지능 : 55
재치 : 12
낮은 레벨이지만 스탯이 미쳐 날뛰고 있다.
이래서 엘리고스와 맞먹을 수 있는 거였다.
그렇게 마리아의 스펙에 감탄하면서 정보를 둘러보던 도중.
....?
[호감도 : 120 / 100]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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