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4화
* * *
힐링을 제대로 해서 그런 건가. 모두의 얼굴에 빛이 난다.
마사지 효과가 극대화돼서 버프를 제대로 받아서 모두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몸이 가벼워요. 신성력도 뭔가 더 많아졌고 이건..."
특히, 세리스는 지금의 상황이 적응되지 않는지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마사지를 해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버프를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기술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래?"
생각보다 알려진 기술이 아닌 건가.
아니, 그런 것보단 배워도 남에게 드러낼만한 기술이 아니니까 모르는 게 아닐까.
강한윤은 기운이 빠진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침도 간략하게 먹었더니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강한윤. 이거라도 먹으면서 쉬어."
노아가 먹고 있던 육포를 건넸다.
그래. 이거라도 먹어서 칼로리를 보충해야지.
강한윤은 힘없이 육포를 받아들고 입에 집어넣었다.
어제 밤에 너무 힘을 썼는지 자고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없다.
"가면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야겠지."
걱정하는 베아트리스의 등에 올라탔다.
여기에서 카브란까지 빠르게 움직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른 이들의 속도에 맞출 수가 없었다.
낮은 체력과 힘으로 따라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니 말이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
시간은 금이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불가의 이벤트가 벌어졌을 땐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터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준비됐지?"
모두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서 베아트리스가 날갯짓을 했다.
확실히 빠르다. 하늘을 날고 있으니 바람이 시원하다.
풍경이 빠르게 바뀌면서 멀기만 하다고 느껴진 카브란 산맥이 벌써 눈에 보인다.
"바로 출발할 거지?"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는 카브란 산맥에 도착하자마자 슬로반으로 향하는 마차를 구했다.
인원 8명 정도 타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커다란 마차다.
마부 2명이 앉을 자리까지 합치면 총 10명이다.
마부 자리에 앉을 사람을 로테이션으로 정하기로 했다.
처음 마차를 운전할 사람은 노아와 세리스였다.
"마차를 끄는 건 오랜만이네요."
"저도 오랜만이에요."
세리스가 자신만만하게 고삐를 쥐었다. 꽤나 터프한 모습이다.
노아는 말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세리스와 마찬가지로 고삐를 살며시 쥐었다.
"그래 잘 부탁해."
둘 다 경험이 있으니까 잘 하겠지.
나머지 인원은 마차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하암."
안에 들어오니까 잠이 솔솔 온다.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고 있으니 베아트리스가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여기에 누우실래요?"
새하얗고 통통한 허벅지. 확실히 누우면 편할 것처럼 생겼다.
"... 강한윤 이리 와."
에우제니아도 눈치를 보더니 허벅지를 두드렸다.
라이라는 굳이 이 싸움에 끼고 싶지 않은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서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눈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에우제니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베아트리스. 사령관인 나에게 양보하는 건 어떻지?"
"억지로 부하의 즐거움을 뺏으려고 하다니. 그건 용납할 수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에우제니아가 주먹을 꺼내들었고.
"가위 바위 보...!"
정당한 싸움을 걸었다.
물론 패배한 것은 말을 꺼낸 에우제니아였다.
말을 꺼낸 쪽이 패배하는 건 국룰인가.
"흐흥흥♪ 에헤헤... 편하신가요?"
"엄청 편해."
푹신푹신하고 포근하다.
베아트리스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서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분한 표정의 에우제니아였다.
...
..
.
"일어나요 도착했어요."
누군가가 상체를 흔드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베아트리스의 간질간질한 목소리를 들으니 눈이 확 떠진다.
마차는 멈춰있고 주변이 소란스럽다. 슬로반에 도착한 것이 확실하다.
마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니 가장 먼저 번화가가 보인다.
"강한윤. 오랜만에 만나는 군."
그리고 에리엘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오랜만에 만난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저번에 아르엔틸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에리엘은 미소를 지었다.
"어제는 아주 즐거웠나보군."
그녀는 슥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듯한 음흉한 웃음이었다.
"그런 일 없었는데요."
"그래? 그런 것치고는 다른 이들의 얼굴에 광이 흐르는 군. 마사지라도 해준 건가?"
마사지를 해줬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
에리엘이 그렇게 놀리고 있을 때, 그녀를 거드는 한 사람이 있었다.
"크흐흐! 젊을 때 하는 건 좋지만 많이 하면 뼈가 삭는다네! 조심해야하지 않겠나!"
헨리크 공작은 웃으면서 다가온 뒤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니..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헨리크 공작도 마찬가지로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낸 게 분명하다.
그런 점 하나는 귀신같이 눈치를 채는 괴물이니까.
하아. 이제는 변명할 기운도 없었다.
"일단은 타세요."
타고 나서 이야기를 해도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
"저희는 지금 고르미엔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슬로반에서 서쪽으로 이틀은 넘게 가야 고르미엔의 끄트머리에 닿을 수 있다.
가장 땅이 넓은 지역인 만큼 중심부까지 이동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문제를 직접 처리하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헨리크 공작의 물음대로 그것 하나만을 보고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한다. 보급이 늦어진다는 건 보통의 문제가 아냐."
에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 후방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건 심각하다.
거기에 연락도 되지 않고 시간만 질질 끌리는 것은 좋지 않았다.
처리할 수 있는 전력이 있다면 처리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터.
마침 시기적으로 나쁘지도 않았다.
"아니 근데 왜 하필 우리 보급일 때 지랄이냐고 망할."
에우제니아가 화를 터트렸다. 손에 쥐고 있는 패를 바닥에 내던지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거기에 왜 난 원페어도 안 만들어지냐고!"
"원래 그런 게임이니까요...?"
베아트리스도 자연스럽게 패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패가 영 좋지 않은지 곧바로 다이 선언을 해버렸다.
'나도 별로 좋진 않네.'
따분함을 참기 위해서 포커를 시작했는데 오히려 화만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7번째 카드까지 받은 강한윤은 조용히 바닥에 카드를 내려놓았다.
1,3,4,5,7,K,K
어떻게 스트레이트를 이렇게 피해가는 건지.
원페어같은 쓰레기 패로 덤비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미 바닥에 원페어가 만들어진 사람이 둘이나 있었으니까.
"...헨리크 공작."
에리엘의 공개된 패는 3,3,5,6
"크하하! 에리엘 또 여기서 싸우게 되다니. 재미있군!"
헨리크 공작의 공개된 패는 A,3,7,K다.
"저번의 내기는 패배했지만 여기서 질 수는 없지. 안 그런가?"
또 대련으로 내기를 해서 패배했나보다.
에리엘은 분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패배의 설욕을 여기서 씻으려는 걸까. 그만한 패가 들어온 것으로 보였다.
"그런가? 크흐!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이길 것 같은데!"
헨리크 공작의 패도 좋은 건지 심리전 인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에리엘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헨리크 공작. 얄팍한 수다. 좋은 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가지고 있는 건 고작 투페어 정도겠지."
에리엘이 가지고 있는 칩을 전부 가운데로 밀어넣었다.
오 조금 세게 나온다.
"저번의 설욕을 갚을 기회가 왔군."
당당하게 웃는 에리엘의 모습만 봐서는 패를 읽을 수가 없었다.
저 패가 정말 센 패인지 허세인지 말이다.
하지만 헨리크 공작은 웃음을 흘렸다.
"싸워야할 때와 빼야할 때를 모르니 항상 대련을 지는 거라네. 에리엘."
"그것과 포커가 무슨 상관이지?"
"공수 판단과 심리전이 약하다는 소리네. 에리엘."
그도 마찬가지로 칩을 전부 밀어 넣었다.
에리엘의 올인을 받아친 헨리크 공작이 받아쳤다.
"호오. 자신이 있나보군."
에리엘이 웃으면서 패를 하나씩 공개했다.
3,3,5,6
이어서 공개된 패는 3,K,6
3,3,3 6,6
트리플과 페어 하나. 풀하우스였다.
에리엘이 자신만만해하던 이유가 있었다.
"헨리크 공작. 미안하지만 이긴 것 같군."
에리엘은 그의 패를 쳐다보며 웃었다.
공개된 패는 A,3,7,K
여기서 더 높은 풀하우스가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
7,K는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서 죽었으니까.
에리엘이 칩을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 헨리크 공작이 웃음을 흘렸다.
"에리엘. 아직도 이긴 것으로 보이는 건가?"
A,3,7,K
이어서 공개된 나머지 세 개의 패는 A,A,A.
A 포카드였다.
"크하하!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이겼군!"
"어...어...?"
에리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헨리크 공작의 패를 쳐다보았다.
A 포카드? 여기에서? 풀 하우스를 받았는데?
혹시 조작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조작은 없었습니다."
라이라가 매몰차게 대답을 했다.
"..."
한 순간에 칩을 전부 잃어버린 에리엘은 고개를 떨궜다.
"이번에도 에리엘이 부대 전원의 회식을 책임지겠군! 크흐흐!"
생각보다 판돈이 컸네.
돈을 전부 잃어버린 에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넋이 나가버린 모습으로 다가온 에리엘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 잃었다.."
"네. 네. 알고 있습니다."
등을 토닥이면서 위로하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에도 헨리크 공작에게 패배했으니 상심이 크겠지.
그렇게 에리엘을 위로해주고 있을 때 마차가 서서히 멈춰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고르미엔까지 가려면 하루는 꼬박 더 달려야 끄트머리에 겨우 닿는다.
여기에서 멈춰 설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마차가 완전히 멈춰서고 난 뒤에 바깥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강한윤의 외침과 동시에 노아가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활을 꺼내들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 앞에서 마기가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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