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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100화 (100/163)

〈 100화 〉 97화

* * *

은발에 실눈을 가진 그는 교황이었다.

교황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서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수상하리만치 젊은 교황.

은발에 실눈. 인상 자체가 무언가를 숨긴 것처럼 생겼다.

인상 자체가 수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다르게 그는 말도 안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타락 내성'

다른 영웅은 상호작용을 일으키거나 이벤트로 타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절대 타락하지 않는다.

완벽한 성직자라는 컨셉인걸까.

그는 누구보다 청렴하고 깨끗한 영웅이었다.

"세리스."

그가 자리에 일어나서 다가왔다.

서서히 다가온 그는 털썩 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교... 교황님...!"

호위를 하던 성기사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미안하다! 세리스!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됐는데..! 전부 내 잘못이다."

바닥에 고개를 박은 교황이 세리스에게 소리쳤고 세리스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렇게까지 자책하지 않아도 돼요."

세리스는 그를 위로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가 거짓말쟁이들을 고위사제로 승진 시킨 건 맞다.

하지만 사람 속을 전부 꿰뚫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쁜 놈들이 섞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정말 잘못한 사람은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타락한 이들이었다.

"용서해주는 건가? 세리스?"

"네. 선배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들이 나쁜 거지."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녀의 대답에 안데르센의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안데르센은 안데르센인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죽을 것처럼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교황이라는 직책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 모든 게 게임하고 똑같은 모습이었다.

"선배?"

강한윤은 세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교황을 그런 식으로 불러도 되는 건가.

아니면 혹시 모를 배경이라도 있는 걸까. 궁금했다.

"전 성자잖아요. 그러니까 선배죠."

"아하."

그런 것도 선후배 관계가 있는 건가. 처음 알았다.

아무튼 자리에 앉아서 하려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교황. 안데르센이었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타락한 성직자들이 나오는 건 언제나 주시하고 있었는데.. 설마 주교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

안데르센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사티라의 주교였던... 아니 이름도 떠올리기 싫었다.

그 타락한 자가 앞에서는 선량한 척을 했다니. 분노가 치솟았다.

"연관된 이들은 전부 처리하고.. 관련된 이들은 조사에 들어갔으니까 일단은 기다려 줘.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보일 테니까."

"선배가 알아서 잘 하리라고 믿어요."

세리스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타락한 이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당연히 피를 흘리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기도 싫고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이번에 마족이 나왔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이야?"

"네. 사실이에요. 마족과 다른 기운을 가지고 있었어요. 돌연변이...라고 해도 되겠죠."

"예배당 내에 마족이 출현했다니.."

안데르센은 신음을 흘렸다.

예배당은 신성력으로 보호받는 건물이었다.

마족들에게 치명적인 신성력. 그렇기에 예배당은 마족에게는 굉장히 꺼려지는 건물이었다.

예배당을 부수면 부쉈지, 안에 들어올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거기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네. 거기에... 신성력을 포식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신성력을 먹는다고...?"

마족은 신성력에 약하다.

닿기만 해도 상처를 입고, 몸에 주입시키면 녹아내린다.

'하지만... 그게 틀렸다...'

안데르센은 이를 악물었다.

예배당 내부에 마족이 등장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활동했다.

그건 신성력에 구멍이 생겼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그 마족에겐 신성력이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어요."

"그런..."

세리스의 얘기에 안데르센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족에게 신성교단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네.'

그런 녀석은 대륙에 흔한 게 아닌데.

강한윤은 느긋하게 둘을 지켜보았다.

포식자 하이다렌.

그 녀석은 뭐든지 먹어치워서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

여러 가지를 집어먹다보니 마족의 피가 옅어져서 그럴 뿐.

다른 마족들에게 신성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녀석에게만 통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녀석들이 앞으로 계속 나온다면..."

"네. 신성교단의 안전지대는 무너져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생각대로 되네.'

마족에 대한 인식을 심각하게 만든다.

강한윤이 무엇보다 바라던 상황이었다.

"예. 마족이 가장 무서운 상황입니다."

"그 쪽은.."

"한스라고 합니다."

교황에게 자신을 소개한 강한윤은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상인입니다. 대륙을 돌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하죠.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이상한 것들을 목격합니다."

"이상한 것이라면..."

"사악한 것들 말입니다. 특히... 마기를 띄고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기라니...! 마족들이 사람들의 틈에 섞여 산단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교황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강한윤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이어서 얘기했다.

"오드웰 연합군과 인간들이 전쟁을 하는 곳에도 마족은 있더군요."

"...그런"

심각한 분위기가 고조된다.

교황은 큰 충격을 먹은 것처럼 얼이 나가있었다.

"그 모든 것을 보고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오드웰 연합군과 인간이 싸울 때가 아니라고.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마족들을 처리할 때입니다."

얘기를 끝마치자, 교황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명언 모음집을 10분 동안 읽은 사람처럼 눈이 감동에 젖어있었다.

"맞는 말이야. 맙소사. 대륙이 마족에게 병들고 있다니...! 그런...!"

"그래서 저는 전쟁을 멈추고 연합군과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류를? 하지만... 그들은.."

안데르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벌어진 전쟁이다.

오드웰 연합군과 친하게 지내려고 해도 명분 자체가 서질 않았다.

그들과 얘기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것 자체도 쉬운 게 아니었다.

"저는 오드웰 연합군의 장교들과도 거래를 했습니다. 제가 자리를 마련한다면 그들과 얘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대화를 시도한들..."

그들이 받아줄 지는 모르는 법이다.

안데르센이 고민을 하자, 강한윤은 슬그머니 제안했다.

"신뢰를 쌓기 쉬운 방법은 거래입니다."

"신뢰를 쌓는다. 그게 확실한 방법이긴 하군."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거래와 교류를 하는 거죠. 개인 상인들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신성교단이 나서서 거래를 해야 합니다."

"거래를 할 품목은 이쪽이 정해도 되겠나?"

"예. 그 정도 협상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가."

안데르센은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다.

타락한 성직자들을 색출해내면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횡령이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십 개월에 걸친 오래 지속된 횡령이었다.

물자 거래를 할 때 값을 시세보다 조금씩 높여서 거래하고 업자와 나눠 가진다.

원래의 대금보다 많은 돈을 요구해서 그만큼 부를 축적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싹을 뽑으면서 거래처가 줄어들긴 했어.'

신성교단이 거래를 끊으면서, 새로운 상인 길드가 생겨나긴 했지만 아직 모자라다.

부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오드웰 연합군과 거래를 한다면.

그쪽에겐 신뢰를. 이쪽은 물자를.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였다.

'마족들이 연합군에도 숨어있을 거야...!'

분명히 그렇다. 신성교단은 연합군과 함께 마족을 멸절시킬 필요가 있었다.

'다만.. 왕국 쪽과 귀족들이 문제인데.'

그건 마족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면 잠잠해질 거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바쁘다.

만약, 마족 척결에 오드웰 연합군이 힘을 써준다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한스. 대화할 장소를 한 번 마련해줄 수 있겠나?"

"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는 일개 상인일뿐이니까요."

"일개 상인이라니. 그럴 리가."

안데르센은 강한윤의 가슴을 가리켰다.

"신성력을 품고 있는 게 느껴지는데 말이야. 이번에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라기에 같이 불렀는데. 확실히 그럴만한 인재야. 아니 그 수준이 아니지."

그는 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서 무언가를 적었다.

"한스. 오늘부터 3급 사제로 임명한다. 더 활동을 한다면 2급까지는 금방 오를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강한윤은 그가 건네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한스 3급 사제로 임명

평범한 내용이지만, 글자에 담겨있는 신성력은 그렇지 않다.

이 간단한 문장에 막대한 신성력이 담겨있었다.

"앞으로도 마족을 근절하도록 힘써주고... 잠시 자리를 비워줄 수 있을까? 한스"

"예."

뭐 그 정도쯤이야.

강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안데르센이 손짓하자 호위하고 있는 성기사들도 따라서 나갔다.

열렸던 문이 닫히고 방 안에 안데르센과 세리스만 남게 되었다.

"세리스. 저 한스라는 사내가 예언의 사람이야?"

"네. 제가 봐온 대로면요."

예언대로 빛나는 나비와 함께 했고, 얘기를 들어보면 평화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마족들과 대비하고 전쟁을 멈춰야 한다.

확실히 평화와 관련된 내용이고, 그는 그것을 위해 움직였다.

"...드디어"

안데르센은 목이 멘 상태로 중얼거렸다.

성자가 됐을 때 받은 예언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었다.

­길을 닦아 놓아라. 태평성대가 오리니

말 그대로 안데르센은 다음에 등장할 성자, 성녀를 위해 길을 닦아놓았다.

세리스에게 애착을 가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녀가 받은 예언. 평화를 가져올 또 다른 성자가 등장한다는 것.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둘은 가벼운 미소를 지은 뒤, 하이파이브를 했다.

"또 다른 성자... 그에겐 말하지 않았지?"

"네. 예언이라는 건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할 진 알지?"

"네."

그를 최대한 도와준다.

세리스가 예언을 받았을 때부터 정해놓은 일이었다.

*

"날짜는 최대한 가까이... 이동시간을 따져서 일주일 뒤로 정할까요?"

"빠른데? 그 정도로 되나?"

"예. 일단 얘기해보고 일정 조율에 실패하면 따로 말하겠습니다."

물론 일정 조율을 실패할 가능성은 없다.

오드웰 연합군과 협상을 하는 건 손쉬운 일이니까.

교황 안데르센과의 얘기를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면 떠나야하는 거네."

옆에 있는 세리스가 아쉽다는 듯이 얘기했다.

사티라에서 푸니아까지 이동하려면 걸어서 사흘은 걸리는 곳이다.

그만큼 못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잠깐인데 그럴 수 있지."

"... 아무튼 빨리 다녀와."

"우리 성녀님 쓸쓸하지 않게 빨리 다녀올게."

강한윤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했다.

천천히 손을 놓고 사티라의 남쪽 문을 나섰다.

세리스가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푸니아로 떠나야 한다.

그래야 하니까.

강한윤은 푸니아를 향해서 걸었고.

"당신 이제야 오네요."

담배를 피우고 있는 라이라와 마주쳤다.

어젯밤은 같이 보내지 않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나는 느낌이다.

"바로 이동할 건가요?"

"그래야지."

오래 기다렸는지 그녀의 목소리에 지루함이 서려있다.

강한윤은 라이라를 따라서 산 안쪽으로 이동한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들어간 뒤, 그녀는 자그마한 물건을 하나 꺼냈다.

[즉석 포탈 생성기]

삼각형 통처럼 생긴 외형.

맨 위에 ▲ 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이 방향으로 포탈이 생긴다는 뜻이겠지.

아이템을 바닥에 놓고 마석을 가져다 댔다.

스륵­

마석이 아이템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그렇게 라이라가 챙겨온 마석을 어느 정도 넣으니, 아이템에 빛이 들어온다.

'이걸 누르면 포탈이 생기는 거겠지.'

강한윤은 망설이지 않고 빛나는 버튼을 눌렀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포탈이 생성되고 푸니아로 가는 길이 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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