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3화
* * *
성녀를 주축으로 이루어진 성기사 부대는 안으로 진격했다.
그녀가 소환해낸 작은 발키리들이 부대를 지원하고 있었다.
"저 타락한 놈들을 쓰러뜨려라!"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반 성녀파가 쓰러지고.
"크윽..."
성녀파 성기사 부대의 누군가가 쓰러졌다.
배에 칼이 꽂힌 채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
그의 위에서 날아다니는 발키리는 조용히 다가와서 상처에 손을 얹었다.
박혀있던 칼이 뽑혀져 나오면서 상처가 치유된다.
"이런...!"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치료받는 모습을 확인한 상대가 검을 휘두르지만, 발키리의 배리어에 막힐 뿐이었다.
"무슨 이런 기술이...!"
세리스의 기술을 처음 본 이들은 경악했다.
인원 수 대로 소환된 발키리는 성녀파 성기사단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주고 쓰러지면 회복과 동시에 배리어로 보호한다.
유지력에서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
버프, 회복, 배리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성녀 세리스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인 사제와 성기사는 적었다.
반 성녀파를 그녀 혼자서 압박하고 있었다.
"하아.."
세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성력이 쭉 빠져나가며 현기증이 일어난다.
그녀는 다리의 힘이 풀리는 걸 참아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락한 이들은 서서히 정리가 되는 중이었다.
'이 들이 회개를 한다면..'
다시 신성교단으로. 이스타르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 상해버린 술은 버려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들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처리하는 게 옳으리라.
강하게 저항하면 죽이거나 아니면 법의 심판대로 처리할 이들.
세리스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투항하세요! 더 이상의 인명 피해는 무의미합니다!"
세리스의 말대로 전황은 이미 기울었다.
모두가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고, 바닥에 하나둘씩 병장기가 떨어졌다.
무의미한 저항일 뿐이다.
"투항하지마라! 그런다고 우리를 살려줄 거라 생각하는 거냐!"
그 와중에도 저항하는 이들은 있었다.
중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이들.
그들은 여전히 칼과 방패와 창을 들고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성녀님 어떻게 합니까?"
"교전 수칙대로 해요."
이미 전투는 끝난 분위기였다.
투항하지 않고 교섭하지 않는 적은 몰살시킨다.
세리스가 말하는 교전 수칙대로 남아있는 수십 명의 고위 성직자들을 때려죽일 뿐이었다.
'정말이었구나..'
세리스는 남아있는 인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전부 신실하다고 소문난 인원들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저항하고 있었다.
"전부.. 처리하세요."
명단을 확인했을 때처럼 충격적이진 않았다.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겠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증거를 확보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이들의 행동은 타락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 중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프릭스님. 정말로 마족과 거래를 했나요?"
"그건 진실이 아니다!"
세리스의 물음에 프릭스가 악을 질렀다.
진심이 담긴 대답처럼 들리지만 그는 타락한 사제다.
연기를 하는 중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 외에는 전부 인정하시는 건가요?"
"크윽... 그래 맞아...! 그것 외에는 전부 저질렀다..! 증명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마족은 사실이 아니다!"
이미 명예롭게 죽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족과의 거래했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죽는다면 타락한 사제 정도를 원했다. 마족과 결탁한 이교도라는 딱지는 극구 사양이었다.
프릭스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때, 예배당의 가운데에 무언가가 흘러들어왔다.
"마기...!"
"어떻게 마기가 여기까지...!"
신성력으로 가득한 예배당에 침입을 한단 말인가!
성기사들이 소리를 내질렀고.
눈에 보일 정도의 칠흑색 마기는 성녀에게 다가왔다.
사아아! 발키리의 배리어에 막히고, 예배당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리고 먹잇감을 찾았다는 듯이 예배당의 구석에 있는 타락한 성직자들에게 다가갔다.
"크으으윽...!"
그대로 프릭스의 몸을 파고 들어간다.
몸이 어둡게 물들고 가지고 있던 신성력은 전부 몸 바깥으로 흩어졌다.
"마족..."
그를 잡아먹은 어둠은 서서히 자리를 넓혀서 다른 이들까지 삼켰다.
"살려...살려줘! 크아아악!"
도망치려던 사제까지 잡아먹고서 어둠은 넓어지는 게 멈췄다.
그리고 한 곳으로 모여들어서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마족"
누군가의 외침대로 마족의 형상을 한 인간이었다.
말끔한 옷차림에 창백한 얼굴을 지닌 미남.
하지만 머리 위에 두 개의 큰뿔이 자리하고 있었다.
"흐음."
그는 주변을 둘러본 뒤에 웃음을 지었다.
"먹을 게 아주 많다니. 마음에 드는 군 나를 위한 만찬식인가?"
"아뇨."
얼어붙은 예배당의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입을 연 자는 세리스였다.
"어디에서 굴러온 마족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가 당신의 무덤이겠죠."
"방금 전 무덤에서 나온 본인에게는 너무 심한 말이군."
그는 쩝쩝 입맛을 다셨다.
"먹어치운 녀석들은 신성력의 농도가 보잘 것 없었는데. 자네는 맛있어 보여. 그리고 마족 따위랑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하네."
그가 손짓을 하자, 죽어있던 시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은 그런 녀석들과는 궤를 달리하니까 말이야."
"모두 전투를 준비하세요!"
세리스의 외침에 투항했던 이들도 무기를 들어올렸다.
움직이는 시체들을 향해서 무기를 겨눴다.
"맛있는 식사군."
그의 읊조림과 함께 시체들이 움직였다.
그아아 하는 울음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시체들.
"크윽..."
성기사들은 눈물을 그렁거렸다.
방금 전까지 쓰러져있던 동료들을 베어야 한다니.
망설임 가득한 채로 칼을 휘둘렀고 동료를 또 다시 죽였다.
"시체는 시체에 불과하다! 전투 능력은 약해!"
그의 외침을 비웃듯이 시체들은 다시 일어났다.
몸이 조각나더라도 신성력으로 치유가 되는 것처럼 다시 엉겨 붙었다.
"... 저 남자를 죽여야 하나 보네요."
세리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렸다.
"이스타르님의 축복을."
신성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며 강력한 신성결계가 펼쳐졌다.
예배당을 뒤덮을 정도의 크기.
그녀는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신성력을 흡수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베일님!"
세리스의 외침에 제1 기사단장 베일이 달려왔다.
그도 지금까지의 전투로 인해서 지쳐있는 얼굴이었다.
"목표는 저 자입니까?"
"예. 쓰러뜨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시체는 계속 일어날 거예요."
세리스의 어깨로 발키리가 살포시 앉아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스타르님의 축복을."
세리스와 베일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
"하아..."
세리스는 검을 바닥에 꽂아 넣고 주저앉았다.
무한히 재생하는 시체와 무한히 재생하는 적.
강한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까다로운 적이었다.
그가 가진 마나? 마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소모될 때까지 싸워야했다.
지금은 재가 되어버린 시체를 다시 확인했다. 생명 반응은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
그는 죽은 게 확실했다.
"하아...."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에 세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이틀 연달아서 탈진할 정도로 신성력을 사용했다.
피곤했다. 그녀는 검 손잡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눈을 감았다.
툭툭.
그때 옆에서 누군가 그녀를 건드렸다.
온 힘을 쥐어짜서 고개를 들었다.
"어마어마했네요."
"...한스"
그는 수건을 세리스에게 내밀었다.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예배당을 정리할 봉사자들 사이에 껴서 들어왔죠."
주변을 둘러보니 난장판이 된 예배당을 모두가 정리하고 있었다.
부서진 벽의 잔해나 먼지를 치우고,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2인 1개조로 옮기는 중이었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전부 바깥으로 끌려가고 말이다.
세리스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수건을 받아들었다.
땀과 피로 얼룩진 얼굴을 닦으니, 조금이나마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이유가 뭐에요?"
이쯤 되니 세리스는 궁금해졌다.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뭘까 하고.
"이스타르님의 신도니까요. 성녀님을 응원하고 싶은 신도."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었다.
세리스는 어지럼증이 사라질 정도로 신성력이 회복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따라와요."
그녀는 제1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성녀 전용의 예배당으로 향했다.
문손잡이를 잡고 신성력을 흘리니, 문이 가볍게 열린다.
그녀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로 강한윤이 따라 들어갔다.
"이스타르님의 신도라고요."
그게 사실인지 확인하듯이 세리스가 중얼거렸다.
"예."
대답한 강한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 사실은 아니지.'
당연하지만, 이스타르의 신도는 아니었다.
교리는 마음에 든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고.
사회의 발전을 원한다면 당연히 지향해야할 것이었다.
'그런 점은 마음에 들지만.'
신앙을 가질 정도로,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강한윤은 인간 본연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 했으니까.
신에게 의지할 정도로 본인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리 와요."
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강한윤에게 세리스가 손짓했다.
이스타르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이들이 드나든 적은 있었지만.
그녀가 성녀 전용 예배당에 개인적으로 남성을 데리고 온 건 처음이었다.
"여기에 손을 대봐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엔 이스타르의 조각상이 있었다.
책과 검을 치켜든 여신의 조각상.
생각보다 훨씬 크네. 게임에서는 조금 작아보였는데.
강한윤은 속으로 감탄하면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세리스는 그를 관찰하듯이 지켜봤다.
'이상한 사람이야.'
그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뒷세계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다.
떳떳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순수해보였다.
거짓말로 점철된 고위 사제들보다는 나아보였다.
톡
그의 손이 조각상에 닿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세리스는 속으로 실망했다.
이스타르님의 축복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걸까.
축복을 받는 방법은 간단했다.
이스타르님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신앙심.
혹은 먼저 사랑 받을 정도로 뛰어난 잠재력.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건.
그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다는 얘기였따.
세리스가 속으로 실망하고 있자.
"어..."
어두운 예배당이 서서히 밝아졌다.
예배당 천장에서 나타나 밝은 빛.
세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이건.."
이스타르님의 축복? 이라기엔 무언가 달랐다.
신성력과 함께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빛이 여러 개로 쪼개지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정령...?
수많은 정령들이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예쁘네"
솔직한 감상을 내뱉은 강한윤은 나비처럼 보이는 정령에게 손을 뻗었다.
손등에 닿자 녹아내리는 것처럼 손에 스며든다.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가슴 언저리로 흘러 들어왔다.
다른 나비 정령들도 강한윤을 향해서 날아왔고, 그의 품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좋은 느낌이긴 한데.'
뭔가 간지럽네. 가슴이 근질근질해진다.
예배당을 밝게 비추던 나비들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이게 끝인가?'
축복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막상 받아도 뭔가 달라지는 게 없었다.
강한윤은 뭔가 달라진 게 없나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열었다.
마나 & 신성력
마나의 옆에 다른 탭이 생겼다. 한 눈에 보이는 변화였다.
'신성력?'
마족을 상대할 때 극상성이라 좋은 효율을 보여준다.
신성력을 조금 섞어서 공격을 먹인다면 치명타로 들어갈 정도다.
마족을 설설 기게 만드는 능력치다.
'하지만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데?'
문제가 있다면 신성력을 꽂아 넣으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
이 답 없는 스탯으로 공격하러 간다면 한참 전에 뒤진 칼레보른과 스틱스 강에서 만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지.'
속으로 툴툴 거리는 강한윤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스타르의 축복
버프에 신성력을 부여한다.
세계수의 축복
임신 : On / [Off]
"어라."
맨 아래에 뭔가 더 생겨나 있었다.
축복 두개에 달려있는 능력치가 이상하다.
버프에 신성력 부여와 임신 온 / 오프? 이런 걸 축복으로 준다고?
강한윤은 눈을 찌푸린 채 상태창을 보고 있었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세리스는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