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전부 따먹음-90화 (90/163)

〈 90화 〉 87화

* * *

"왜 불렀어요?"

"궁금한 게 있어서. 사티라에 몰래 잠입할 수 있지?"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라이라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했다.

평야지대와 가까운 사티라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잠입하는 루트가 많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왜 물어보죠?"

"사티라를 점령하려면 밑 작업을 쳐야하니까?"

강한윤은 사티라를 점령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견제를 해보고 정 안되면 하이벤 산맥의 병력들을 동원해서 밀어버릴 생각이지만.

이왕이라면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인적 자원이 굉장히 중요해진 상태였으니까.

"직접 갈 생각인가요?"

그녀의 물음에는 왜 그런 위험 부담을 감수 하냐는 뜻이 담겨있었다.

굳이 본인이 직접 해야 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그야. 내가 가는 게 편하니까?"

작전이 잘 풀린다면 좋겠지만, 임기응변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다른 이들 보다는 나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전에 어울리는 인간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애초에 인간 자체가 없잖아.'

인간이 없는 연합군이라 작전에 어울리는 인간을 투입시키려면, 용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용병은 돈으로 구해야 한다.

돈으로 구한 용병은 돈에 매수당할 확률이 너무 높았다.

폴리모프를 사용해서 변장을 하는 것도 문제다.

계속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데다, 들키지 않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그렇다고 라이라 혼자 보내기엔 애매하지.'

연락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귀찮아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답답함을 겪으면서 작전을 진행할 생각은 없었다.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답답하면 스스로 뛰어야 한다고.

그 말대로 스스로 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처분해야 하니까."

­안스티프 백작. 100만 골드.

가장 값이 높은 어음이 100만 골드.

그 이하로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대략 500만 골드 정도 된다.

하지만 실제 가치는 이것보다 훨씬 낮을 거다.

팔 때 어음의 가치가 내려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팔아야했다.

오드웰 연합군 측에서 이걸 들고 있어봐야 사용할 방법이 없으니까.

이 물건을 들고 있기만 하면 가치는 0원에 수렴한다.

인간 세력 쪽에서 멋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음을 받으러 돌아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조용히 넘어가서 판매하고 올 예정이었다.

"블랙마켓을 이용할 생각인가요."

"그렇지. 그래서 사티라에서 가장 가까운 로세니아까지 갈 생각도 있어."

사티라도 멀지만, 그보다 훨씬 더 먼 북쪽으로 이동해야 로세니아가 있다.

거기까지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장물을 거래하기엔 블랙마켓이 가장 적합하고. 신성교단이 관리하는 사티라에는 블랙마켓이 없었으니까.

가장 가까운 위치가 로세니아밖에 없었다.

"로세니아까지 갈 이유가 있나요? 그 물건을 판매한다면서요."

"블랙마켓은 사티라에 없으니까."

"아뇨 있어요."

"있다고?"

사티라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보를 착각한 건가? 하고 눈을 굴리고 있으니.

라이라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야 제가 만들었으니까요."

라이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마냥 태연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블랙마켓을 만들었다고?

"요새 일을 하고 있던 게 이거였어요. 남부와 중부, 동부 쪽은 일정 지분이 있으니까. 이제 슬슬 북부 쪽에서 활동하고 싶었거든요."

뭐야. 왜 이렇게 능력이 좋아.

"그럼 이건 어느 정도나 건질 수 있을까?"

라이라에게 어음 뭉치를 건넸다.

그녀는 어음 뭉치를 반으로 접어서 지폐를 세듯이 슥 훑었다.

후우. 하고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세는 모습이 어딘가의 마담같다.

"글쎄요. 확실한 건 이것들은 못쓰겠네요. 여기 있는 녀석들에게 돈을 받아내긴 힘들어서 안 팔릴 어음이에요."

라이라가 1/3쯤 걸러내자, 남은 어음은 대략 350만 골드밖에 되지 않았다.

이거라도 남은 게 어디냐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에서 일정 비율 이하로 팔고... 수수료도 떼잖아. 수수료 면제 서비스 같은 거 없어?"

"없죠. 저희 블랙마켓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망할."

이런 면에서는 쪼잔하네. 쪼잔한 라이라 사장.

속으로 라이라 탓을 잠깐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에우제니아에게 다녀올게."

작전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한다.

*

에우제니아는 연병장에서 전투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공기를 가를 때 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 정도로 묵직한 한방이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

작전에 대해서 간략하게 전하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쿠웅­

전투도끼의 자루 부분을 땅에 내려찍은 에우제니아는 옷소매로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뭐? 상대 세력에 들어가서 어쩌겠다고?"

"사기를 떨어뜨리고 작전에 도움 되는 정보 수집?"

"그걸 굳이 가겠다고?"

에우제니아도 라이라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보낼 사람이 없으니 방법이 없다.

직접 가는 수밖에.

흐음. 하고 한숨을 내쉰 에우제니아는 턱을 괴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 같네."

"가야하니까."

"하아.. 그러면 다치지 말고 돌아올 수 있지?"

그 정도야 당연하지.

다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라이라와 도망칠 생각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게."

"허락은 하겠지만 다치지는 마. 그리고 오늘 보내진 않을 테니까 내일부터 출발 해."

"내일? 아."

에우제니아의 눈에 욕망이 담겨있었다.

오늘은 정말로 죽도록 빨릴 듯하다.

"밥 먹고 씻은 후 기다리고 있어. 아. 거기는 물로만 씻어. 이따가 노아랑 같이 찾아갈게."

에우제니아는 욕망을 꾹꾹 눌러 담아서 얘기했다.

오늘부터 며칠간 또 다시 못 보게 될 텐데.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싶었다.

보내주더라도 오늘은 강한윤의 불알이 텅 비어버릴 때까지 섹스할 생각이었다.

***

"강한윤. 다치지 말고 다녀와."

"야. 어디 다치면 아무데도 못 가게 감금해버릴 거야. 알았어?"

노아와 에우제니아의 진심어린 걱정은 다음날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강한윤. 정말로 약속한 거지?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

특히, 노아가 가장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무슨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이야. 어린 애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녀의 눈이 너무 진심이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지장을 찍듯이 부딪쳤다.

그러자 만족했다는 듯이 노아가 웃었다.

"정말로 다치지 마."

그에 비해서 에우제니아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화해의 키스는 나오기 전에 질리도록 하고 나와서 그런지. 이번에는 생략이었다.

"라이라씨도 다치지 말아요."

"둘 다 멀쩡한 게 최고지."

"네."

여자끼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많이 간단했다.

엄청 축약하고 내용이 생략된 느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가보다 하는 반응이다.

노아와 에우제니아도 라이라가 쑥스러움이 많다는 걸 알고 있는 건가.

아무튼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다녀올게."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며 동쪽 문으로 나왔다.

후우.

어젯밤에 섹스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지만 참아냈다.

갈 길이 멀었으니까.

사티라까지 걸어서 사흘.

걸어서 사흘이 먼 거리는 아니지만,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마차라도 탈 수 있었으면 좋은데.'

마차가 다닐 수 없는 지형이라는 게 아까웠다.

사티라의 근방에 대충 떨어뜨려 주고 거기서부터 걸어가지 못한다니.

"하아. 지루하네."

걸은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옷은 땀에 젖어버리고. 피로가 몰려왔다.

자리에 주저앉아서 물을 마시니 피로가 조금 가시는 느낌이다.

"라이라. 여기서 단숨에 사티라까지 가는 아티팩트 같은 거 없어?"

그런 게 있다면 말이 안 되겠지. 밸런스 파괴다.

"있어요."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1인용이에요."

"아."

금세 실망해버렸다.

결국엔 걸어가야 하는 거잖아.

휴식이 끝나고 또 다시 걸었고, 지루함은 금방 찾아왔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강한윤은 정보창을 불러왔다.

'뭔가 달라진 건 없나.'

[강한윤 : 레벨 18]

­마나 : 23,775 / 23,775

­힘 : 5

­체력 : 8

­지능 : 9

­재치 : 33

특별할 것 없는 능력치다.

재치에 포인트를 넣은 게 아깝긴 하지만, 여기에 넣을 포인트를 다른 데 넣었다고 크게 차이 나는 건 없다.

그럴 바엔 방중술 쪽에 올인 하는 게 맞지.

상태창을 쭉 내리자, 스킬 목록이 나타났다.

[방중술 ­ 각인]

­대상 : 라이라 베르첼 (B)

­방중술의 효과가 30% 상승합니다.

­하루에 3번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 밑으로 노아(C), 에리엘(D), 베아트리스(E)로 적혀있었다.

'이번에도 에우제니아는 없네.'

에우제니아는 각인 목록에 추가가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쾌락 내성이 강한 거야.

소드 마스터 상급은 그 정도의 경지인 건가?

재치를 더 올리기 전까지는 답이 없을 것 같다.

어차피 강할 대로 강한 에우제니아지만, 성장이 끝난 마족 영웅과 맞붙게 된다면 버프가 필요할 테니까.

더 노력을 해보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상태창을 닫았다.

이번에 찾아온 침묵과 지루함은 길었다.

밤에 캠프파이어 분위기로 불을 피워놓고 하늘의 별을 보며 자는 건, 조금 즐거웠지만 나머지 시간은 지루했다.

휴식 때마다 라이라의 가슴을 만지고 쪽쪽 빨고, 가끔씩은 짧은 섹스를 즐겨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으며, 또 걷다보니 사티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갈 준비를 할 게."

강한윤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배낭에서 평상복을 꺼냈다.

도시의 평민들이 주로 입는 작업복 같은 옷이었다.

적갈색이 유독 촌스러웠지만, 이렇게 입으니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어때?"

"그냥 평범하네요. 머리색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동부에서 왔다고 하면 믿을 걸요."

"그래? 근데 라이라 너는?"

"저요?"

반대로 라이라의 옷은 너무 튀었다.

붉은색의 옆트임 드레스와 누가 봐도 귀티가 흐르는 모습이 누가 보더라도 준귀족. 그 이상의 계급처럼 보인다.

"왜요?"

"나랑 있으면 이질감이 들지 않을까? 안 어울리잖아."

평민처럼 보이는 검은 머리의 청년.

귀족처럼 보이는 드레스 입은 귀족.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그렇긴 하네요. 제가 귀족이고 당신이 시중을 드는 평민인 걸로 해요."

"시중을 들라고?"

"예. 그게 자연스러우니까요."

듣고 보니 그럴싸한 것 같다. 라이라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실까요? 영애님?"

라이라를 에스코트 하려는 것처럼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였다.

최대한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강한윤을 보던 라이라는 작게 웃었다.

"크흣. 어울리네요."

"...밤에 보자."

라이라의 진심 어린 웃음에 강한윤은 작게 중얼거렸고, 사티라에 몰래 잠입하기 위해 움직였다.

'확실히 성직자들이 많네.'

거리에 보이는 이들의 많은 수가 사제, 수녀, 성기사였다.

그 외로 검이나 활, 방패를 들고 다니는 추레한 옷차림의 사람들도 보인다.

모험가나 용병이겠지.

라이라는 그들을 지나쳐서 골목과 골목 사이로 쭉 걸어 들어갔다.

마치 여기가 자기 집 안방인 것처럼 막힘없이 걷고 평범하게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평범했다. 다가구 주택인지 1층부터 3층까지 계단이 쭉 올라가고. 각 방으로 이어지는 문들이 있었다.

라이라는 3층으로 올라가서 맨 왼쪽 2번째 방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플레라."

라이라가 말 한마디를 하자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곳에는 또 다시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존재했다.

"계단?"

"마법으로 이 공간을 뒤틀었어요. 여기가 3층이 아닌 거죠."

여기가 3층이 아니라고?

그녀의 말에 혹시나 해서 계단 아래로 침을 뱉어봤다.

툭­

1층에 떨어지고 부딪힌다. 3층 맞는데?

의심을 담아서 쳐다보자.

"이해하려 하지 말아요."

그녀는 짧은 대답을 하고 안으로 들어 가버렸다.

라이라를 따라서 계단을 올라가자, 방금 있던 곳이 3층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빛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

텁텁한 공기와 높은 습도. 이 모든 게 여기가 지하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써요."

그녀는 가면 하나를 건넸다.

특징이라고는 없는 하얀색 가면.

오히려 새하얗기만 해서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가면을 착용한 뒤 라이라와 함께 어둠속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공간이 바뀌었다.

여기는 밝은 곳이다.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게임의 스테이지가 바뀌듯이 공간이 휙휙 바뀐다.

"여기가 블랙마켓이에요."

여기에 있는 놈들 얼굴만 봐도 다들 나쁜 놈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자,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 위에서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 다리를 벌린 채, 좌우로 골반을 살짝 살짝 흔드는 이상한 춤을 춘다.

하지만 묘하게 야하고 남성의 무언가를 자극 하고 있었다.

중요한 부위를 하트 스티커로 조금씩 가려놓은 건 대놓고 꼴림을 자극했다.

"와.. 엄청 야하긴 하네. 무슨 춤이야 대체?"

"제로투 댄스? 라고 하더라고요."

제로투 댄스? 오묘한 이름이네.

그렇게 춤추는 여자들의 아래로 남성들이 모여 있었다.

마을에서 자주 보였던 옷을 입고 있다.

하얀색 위로 노란색이 길게 그어져 있는 디자인의 옷.

그들은 성직자들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