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84화
* * *
"소령이 된 기분은 어때?"
"그냥 별다를 건 없는데."
소령이 됐다고 해서 특별한 능력치가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니다.
병사들에게 직접적으로 징계를 질 수 있다는 권한이 생기고 월급이 조금 더 들어오는 것.
이런 차이가 생겼다고 생활이 극적으로 달라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특히 징계는 의미가 없지.'
병사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인지 알기 때문에 먼저 건드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선을 넘는 병사가 보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우."
복귀했다는 보고를 끝낸 뒤 강한윤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마차를 오래 타기도 했더니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안다이얄까지 걸어온 탓인지 다리도 피로가 쌓여있었다.
"이번 회의에 관한 내용은 내일 보고서로 정리해서 올릴 게."
"그래. 뭐 천천히 해. 어차피 시간이 촉박한 일은 아니잖아?"
그녀의 말대로 빨리 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고 그럴 내용은 아니었다.
아. 맞다.
"이번에 회의에 갔더니, 에우제니아 너를 대놓고 무시하는 사령관이 있더라고."
"뭐? 누구? 카이보옌?"
에우제니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 새끼라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호족이 그렇잖아. 싸가지 없는 거."
"그렇지.
"옛날에 처음 만났을 때 싸가지가 없어서 조금 패줬거든."
"팼다고?"
"멍청한 오크 족이니 뭐니 하면서 시비 걸길래 말이야. 참을 수가 없더라고."
어쩐지. 에우제니아의 이름을 입에 올릴 때 적의를 드러낸 이유가 있었다.
에우제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한윤에게 다가갔다.
"그 녀석 이야기는 그렇다고 하고."
허벅지 위로 살며시 걸터앉고 목덜미를 팔로 감았다.
"그래서 강한윤 너는 나 안 보고 싶었나봐? 며칠 동안 독수공방하게 만들어 놓고."
"그런 건 아니지. 나도 보고 싶었거든."
"그래? 거짓말 같은데. 내가 생각난 거 맞아? 에리엘과 라이라하고 보내면서 며칠 동안 즐거웠을 거 아냐."
그 둘하고 보낸 것을 질투하는 것처럼 눈을 잠시 찌푸린 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지 위로 자지를 스윽 스윽 만졌다.
"나는 엄청 쌓여있거든. 저번처럼 위로해 줄 거지?"
에우제니아가 손을 잡아서 자신의 바지 속으로 이끌었다.
바지 속. 팬티까지 들어간 손에 따스하고 물컹물컹한 것이 닿았다.
"읏.. 하아..."
에우제니아의 보지는 발정이 난 것 마냥 눅진눅진한 상태였다.
"바로 섹스 하러가자. 자지 빨고 싶어."
귓가에 속삭이는 에우제니아.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두 시간은 족히 남았는데. 너무 당당하다.
"지금 섹스 하러 가는 건 권력남용 아냐?"
"몰라.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독수공방 했으니까. 그 녀석이 잘못한 거야."
그 녀석이라는 게 누굴 뜻하는 건지는 뻔 한 내용이었다.
"저녁까지 기다리질 못하는 거야?"
안달 나서 끈적끈적한 보지를 괴롭히며, 귓가에 속삭였다.
에우제니아는 달뜬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에 더욱 비벼왔다.
"저녁? 저녁에는 못하니까 이러지."
"못한다고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의문을 담아서 말하자.
"너 오늘 당직근무인데?"
"응? 내가 당직이라고?"
뭐야 파견 근무 다녀왔는데? 왜 당직이야? 터무니없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당황해서 얼빠진 채로 있자, 에우제니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장교들 휴가에 근무에 빠질 사람들 다 빠지고 나머지는 휴식을 보장해주고 싶었거든. 그러다보니 남는 사람이 딱 한명이었어."
에우제니아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욕심을 부려서 강한윤을 당직에 넣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늘 하루를 독점하고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다른 장교들의 편의도 봐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일단 숙소로 가자. 오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거든, 응?"
에우제니아의 눈이 욕망으로 물들었다. 숨도 거칠게 쉬고 완전히 발정이 난 상태였다.
찔걱찔걱
보지를 계속해서 자극한 것 때문이려나.
이쪽도 마찬가지로 근질근질하다. 묘하게 자극당한 자지가 섹스를 원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러브호텔에 가는 것처럼 집무실을 빠져나와서 숙소로 이동했다.
새롭게 올라가는 건물은 아마 숙소부터인가 보다.
예전의 허름한 막사는 사라지고.
제대로 된 3층짜리 건물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몇 층이야?"
"당연히 1층이지."
에우제니아를 따라서 방으로 이동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에우제니아는 목덜미를 껴안으며 키스해왔다.
문이 닫히는 와중에도 키스를 한다.
몸을 최대한 밀착해서 그런지, 군복 위로 그녀의 가슴이 느껴진다.
벽에 밀어붙여진 상태로 격렬하게 키스를 당했다.
"빨리.."
옷을 벗으라는 거겠지.
에우제니아는 이미 옷을 벗는 중이었다.
상의를 벗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쪽 쪼옥 쪽
침대로 이동하면서 입술을 부딪치고 혀를 빨았다.
바닥을 어지럽히듯이 대충 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위로 누웠다.
"하아.. 이걸 엄청 원했어."
이걸 위해서 며칠을 참았는지 모른다.
에우제니아는 자지의 기둥을 붙잡고 천천히 입에 머금었다.
*
섹스가 끝나고, 침대에 퍼져있는 에우제니아를 뒤로하고 옷을 입었다.
"하아... 이제 가는 거야? 아주 나쁜 사내야. 여인을 내버려두고 가다니."
"그런 식으로 장난치지 마. 나도 당직서기 싫다고..."
"큭큭 그렇지. 야. 이왕 당직 서는 거 즐겁게 다녀와. 부적으로 이걸 줄 테니까."
에우제니아가 검은색 물체를 던진다. 받고 보니 그녀의 팬티였다.
"나 생각나면 그거 가지고 딸딸이라도 쳐."
"..."
아니, 당직 서다가 딸딸이를 왜 쳐.
하지만 그녀가 챙겨준 거니, 주머니에 넣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는 정말로 근무에 투입될 시간이었다.
느긋하게 걸어서 상황실로 향했다.
"강한윤 소령님. 근무 중 이상 없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보고서를 작성하던 오크 병사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 같은 경례를 한다.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로 경례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적당히 경례를 받아주고, 손짓을 했다.
"다들 하던 거 계속하면 되고... 뭐 연락 온 건 없나?"
"예. 없었습니다."
수정구를 보고 있던 엘프 병사가 답을 했다.
흐음. 별로 신경 쓸건 없나보네.
다들 맡은 바 일을 잘 해주고 있는데다가, 문제가 생길 타이밍도 아니다.
적들은 물러나서 소강상태니, 몬스터가 갑자기 쏟아져 나온다거나 하는 이상현상만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
'일이나 좀 해야지.'
종이를 꺼내서 아르엔틸에서 있었던 일들을 적어 내려간다.
서부에선 보급을 원활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중부에서는 소규모 교전을 위주로 하고 남부는 동부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용으로 적으니 얼마 안 되는 분량이다.
그렇게 보고서를 적다보니, 어느새 순찰을 나갈 시간이었다.
"읏차."
"호위는 필요 없으십니까?"
"혼자 다녀오지 뭐."
호위가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정 위험하다 싶으면 라이라가 알아서 등장해줄 거라 믿고 있다.
바깥으로 나가니 묘한 분위기다.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와 근무를 서는 병사들의 자그마한 소리만 들렸다.
'그럼 출발해볼까.'
안다이얄 서쪽부터 돌아보도록 하자.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성벽의 내구도는 문제가 없고..
칼로 벽을 툭툭 건드리니, 노란색 배리어가 드러난다.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것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개구멍 같은 것도 없고.
이대로 쭉 돌면서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임시 소초로 가보자.
기척을 죽인 채로 일부러 바깥으로 나가서 멀리 돌았다.
천천히 소초에 다가가자.
"정지! 누구냐!"
"경계 상황. 식별 안 된 거수자 발견."
병사들이 빠르게 반응했다.
만족스러운 상황인데. 활을 겨눈 건 멈춰줬으면 좋겠다.
"순찰 중인 강한윤 소령이다."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천천히 다가와라!"
병사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꽤나 FM으로 하는 모습이다.
"... 확인 되었습니다."
"상황 종료. 거수자는 강한윤 소령으로 식별."
남성 엘프 병사 둘. 만점을 줄 만큼 잘하고 있었다.
"둘 다 특이사항은 없나?"
"배가 좀 고픕니다."
"그건 나도 그래."
저녁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배고프다.
취사장에서 뭐 하나 훔쳐 먹어야지.
다른 엘프 병사도 말한다.
"심심합니다."
"그것도 누구나 그렇지."
경계근무를 서면서 재밌는 놈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특이사항이 없으니 무난하게 다음 소초로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여기도 이상은 없네."
그렇게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소초에 도달했을 때, 오크 병사가 강한윤에게 다가왔다.
"그보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뭘?"
진지하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오크 병사가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귀신이 나온답니다."
"귀신이 나와?"
무슨 귀신? 이라는 느낌으로 되묻자 정보를 술술 말했다.
"여기에 한 맺힌 귀신이 살아서 가끔씩 본다고 합니다. 혼자 걷고 있는 남성을 뒤에서 덮치기도 하고..."
"에이 무슨 귀신이야."
"아무튼 소령님은 혼자 오시지 않았습니까. 귀신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 오크 녀석 진심으로 무서워하고 있다.
귀신 10마리는 가볍게 잡아먹을 것처럼 험상궂게 생겨가지고 오한이라도 느끼는 건지 팔에 닭살이 돋아있었다.
"그래. 귀신이 나온다고. 확인하러 간다."
"저.. 정말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무슨 귀신이야.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세상에 귀신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알았다는 듯이 손을 대충 흔들고서 다음 소초를 향해 걸었다.
"무슨 귀신이야."
주변은 어두컴컴하고 적막하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평범한 산의 모습이었다.
귀신같은 게 있겠냐고.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소초로 향할 때.
와락
무언가가 등 뒤에서 껴안아왔다.
화들짝 놀라서 소리조차도 지르지 못했다.
놀라서 3초 정도 몸이 굳어버린 채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익숙한 향기가 났다.
코코넛처럼 달달한 향기.
"...노아?"
"어떻게 알았어?"
"그야 네 냄새가 나니까."
"냄새? 그렇게 냄새가 심해? 작전 뛰고 오는 길이라서 땀을 흘렸는데. 그것 때문인가?"
킁킁
노아는 자신의 팔과 목덜미 부근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라기 보단 향기지. 엄청 좋은 냄새거든."
"그래?"
안심했다는 듯이 노아는 강아지처럼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왔다.
그리고 또 다시 킁킁 냄새를 맡았다.
"정말 오랜만이야."
며칠 만에 만난 노아는 그리움을 표현했다.
키스를 하려고 까치발로 서서 입술을 내미는 노아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번에 아르엔틸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에리엘님하고 같이 움직였다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강한윤은 노아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회의를 한 것부터 에리엘의 아버지를 만난 것.
그리고 설득에 성공해서 우리들의 사이를 인정받은 것까지 말이다.
"결혼..."
얘기를 전부 들은 노아는 결혼이라는 단어에 꽂혔는지. 계속 곱씹고 있었다.
"할 거지?"
노아의 물음.
그 한마디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지. 근데... 음... 다른 사람들하고도 하지 않을까?"
한 사람하고만 결혼한다면 나머지가 너무 슬퍼지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담아서 말하니 노아가 해맑게 대답했다.
"가족이 많아지게 되겠네."
노아는 먼 미래에 결혼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강한윤 한 명에 여자 여럿과 결혼이라니. 시끌벅적할 것 같았다.
질투가 생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미리 받아들이는 게 낫겠지.
강한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그녀는 넌지시 물었다.
"결혼은 언제 하고 싶어?"
"글쎄. 대륙을 점령하면? 아니면 노아 네가 사령관 쯤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
"사령관이라니. 힘들지."
강한윤이 장난기 섞인 말로 대답하자, 노아가 피식 웃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엔 진심도 담겨있었다.
이 전쟁의 끝을 봐야 할 수 있지 않을까.
강한윤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노아도 그 날이 오기를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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