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이 전부 따먹음-82화 (82/163)

〈 82화 〉 79화

* * *

"아쉽네."

"뭐가 아쉽다는 거지?"

마차에서 내리며 강한윤이 중얼거리자, 에리엘이 의문을 표했다.

"당연히 마차에서 못한 섹스지."

"하아... 정말 한결같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잖아. 어제 못하기도 했고."

강한윤은 어젯밤을 떠올렸다.

아르엔틸과 이어지는 길목에 조그마한 마을에 도착했더니, 여관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나무 간판은 썩어 문드러지고 내부는 허름했다.

침대는 더럽게 삐걱거렸고 방음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옆방의 투숙객의 코골이가 들릴 정도의 방음 때문에 섹스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여관에서 섹스를 했다면, 동네방네 소문났을 걸?

강한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절정을 느끼는 라이라는 조용하진 않다.

에리엘도 마찬가지로 신음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고 말이다.

둘 다 특수한 상황에서 소리를 죽이는 건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섹스를 할 이유는 없었다.

방음을 확인한 둘도 딱히 하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연히 섹스를 할 만한 분위기가 생겨나질 않았다.

"아쉬워."

"그렇게 아쉬우면 오늘 저녁에 하면 되지 않은가."

"에리엘 혹시 기대하고 있어?"

강한윤이 엉덩이를 슬그머니 만지자 손을 툭 쳐냈다.

"그런 행동은 저녁에만 하도록."

"네. 그러죠."

그래도 저녁에는 하게 해주는구나.

저런 반응을 보이지만 상냥한 에리엘이었다.

후우.

옆에서 담배를 다 핀 라이라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발로 비볐다.

불씨를 끄고 난 뒤에 나지막이 말했다.

"저는 여기서 따로 움직일게요."

"어디로 가게?"

"아르엔틸에서 정보를 수집하려고요."

"그러면 나중에 어디서 만날지 정해놓을까?"

"제가 알아서 찾아가도록 할게요."

"그래 그러면 나중에 봐."

라이라가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저건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신기하군..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나운용이야."

에리엘도 신기한 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우리끼리 거리를 둘러볼까?"

"그러지."

에리엘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회의까지 시간이 남아있으니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강한윤과 에리엘은 번잡한 거리를 걸었다.

아르엔틸은 상업적으로 규모가 큰 지역은 아니었다.

그저 풍요롭고 군부대가 주위에 많아서 인원이 몰려있는 대도시일 뿐.

할 일 없는 드워프들이 장인정신으로 건물을 짓다가 멋진 건물이 생겨났다.

그런 배경이 있는 대도시라서 그런지, 예쁜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이 되어있는 건물들이 눈에 띈다.

"알록달록한 게 마치 성당 같아서 예쁘네."

그런 감상을 내보이자, 에리엘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성당이라.. 강한윤. 신을 믿는 건가?"

"아니? 안 믿지."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인가?"

"그것도 아니긴 한데. 아마 신은 있지 않을까."

사실 신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다만 그는 신을 믿지 않을 뿐이었다.

신을 믿지 않는 대신에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했으니까.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작전을 수행하고 행동했다.

'신을 믿는 건 나약한 사람들만 믿는 거지.'

다른 존재를 믿고 의지하는 순간, 스스로가 약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리엘은 세계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소중한 존재다. 다른 종족들이 보기엔 그저 큰 나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엘프에게는 근본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존재지."

에리엘의 시선이 서쪽에 있는 세계수로 향했다.

세계수를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물론 세계수 외에도 소중한 존재는 하나 더 있다."

에리엘은 주위를 살핀 뒤 머뭇거리더니 손을 잡아왔다.

작고 따뜻하고 긴장했는지 땀으로 약간 촉촉했다.

"내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야?"

"굳이 들어야 만족하겠나."

"들으면 기분이 좋긴 하겠지?"

"하아.. 네가 소중하다. 내 부관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 그래.. 연모하고 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묘하게 시선을 피한다.

방금 전의 말이 굉장히 부끄러운 듯했다.

"우리 저기서 섹스하고 갈까?"

에리엘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는데.

여기에서라면 처녀를 단 번에 뚫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한윤은 거리에 있는 여관 하나를 가리켰다.

"그건.. 밤에 하도록 하지."

"섹스는 낮에 해도 좋은데."

"다음에 여유가 있을 때다. 회의까지 한 시간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한 시간이면 짧게 즐기기에 충분한데.

에리엘의 끈질긴 거부로 어쩔 수 없이 여관을 지나쳤다.

아쉽지만 아쉬운 대로 에리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지.

강한윤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에리엘과 애정행각을 벌였다.

닭꼬치를 사서 에리엘에게 먹여주기도 하고.

빨대가 이어져있는 커플 전용 음료수를 사서 마시기도 한다.

에리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지만, 강한윤은 멈추질 않았다.

에리엘의 부끄러움은 어디가 한계인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번에는 커플 머리띠, 커플 티를 입고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에리엘의 허리춤에 손을 얹고, 사이를 과시하듯이 가끔씩 볼에 뽀뽀도 했다.

"오늘 데이트해서 너무 기쁘다. 에리엘 그렇지?"

"큭... 강한윤... 그만... 그만.. 제발."

에리엘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다고 강한윤의 행동이 멈추는 건 없었다.

그녀가 부끄러운 반응을 보일수록 더 괴롭히고 싶었으니까.

"에리엘 우리 으슥한 데로 갈까?"

"...차라리 그게 낫겠군."

에리엘은 강한윤을 따라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아는 얼굴이 없다지만, 남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에서 애정행각은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그래. 차라리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 안이 낫겠지.

둘이 사라진 골목 안에선 쪽 쪽 하며 입술을 부딪치는 소리와 격하게 숨을 내뱉는 소리만 들려왔다.

***

작전 회의 시간 10분 전.

강한윤은 미리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주변에는 병력들이 많이 있었다.

건물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만 수백은 되는 숫자에경지가 높은 영웅들도 몇몇 보였다.

소드마스터 중급 엘프 아르닐.

소드마스터 중급 오크 세이네르크.

소드마스터 중급 묘족 바인.

대체 뭐지. 강한윤은 의아하다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별거 없는 작전 회의라 했는데?"

"강한윤 설마 모르고 온 건가?"

에리엘은 오히려 놀랐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앞으로 작전을 어떻게 할 건지 대략 설명하는 자리라고 하더라고."

강한윤은 에우제니아가 귀찮다고 대신 가라고 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모든 사령관들이 모여서 하반기 작전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알려주는 자리다."

'사령관들이 모인다고?' 이건 예상 못했는데.

그제야 강한윤의 머릿속에 퍼즐이 맞춰졌다.

부대 건물에 병사들이 왜 이렇게 경계를 서고 있는지.

경지가 높은 영웅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말이다.

강한윤은 회의실 앞으로 도착했다.

회의 예정시간 5분 전이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강한윤은 가볍게 문을 열었다.

'잠깐. 사령관들이 모인다고 했나?'

서부의 드워프 사령관 아르기르.

중부의 수인 ­ 호족 사령관 카이보옌.

남부의 엘프 사령관 에키르.

그렇다면 에키르가 이 안에 있다는 얘기였다.

에리엘의 아버지 말이다.

강한윤이 문을 열자 시선이 쏠렸다.

입구를 원형 테이블이 감싸는 형태라서 자연스럽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강한윤은 에키르와 눈이 마주쳤다.

게임에서 봤던 것처럼 날카로운 인상의 엘프다.

청년처럼 젊은 인상이지만, 눈빛에 세월이 녹아들어있었다.

에키르는 이 인간은 뭐지? 라는 듯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에리엘이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라는 표정이었다.

에키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간... 북부로 간 강한윤 대위군."

"예. 맞습니다."

"그 쪽에서에우제니아 대리로 온 건가?"

"예. 에우제니아 사령관님 대리로 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옆은 누구지?호위와 함께 온 건가?"

에키르의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다. 에리엘과의 관계를 추궁하듯이 물어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 만 하다. 에리엘과 함께 있을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에키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고, 비어있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하지. 회의시간이 다 됐으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강한윤은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편안하게 앉았다.

사령관이라고 한들, 다 많이 봐온 얼굴들이다.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크흠. 그렇다면 나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서부의 사령관인 아르기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짤막한 키. 매부리 코. 덥수룩한 수염.

전형적인 드워프의 모습인 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전투는 북부, 중부에서 몰리고 있고 남부는 소강상태지.

물자들의 보급은 대부분 북부와 중부로 향할 예정이다.

남부에서 필요한 물자가 있다면 따로 요청할 수 있도록.

이상 이 사항에 대해서 불만이 있나?"

회의실에 침묵이 맴돌았다.

당연하지. 물자 보급에 대해서 굳이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이다.

물자 보급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넘치는 오드웰 연합군이니까.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인재풀이 부족할 뿐이다.

강한윤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신병은 언제 오는 지 알 수 있습니까?"

"이봐 애송이. 병력은 중부도 부족하다. 그냥 닥치는 대로 받아. 네가 닦달한다고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질문할 수도 없습니까? 북부는 안다이얄 전투에서 병력을 손실했습니다."

"그건 중부도 마찬가지다."

강한윤은 중부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최근 들어 전투가 있었다고 한들, 소규모 교전이었을 텐데.

안다이얄처럼 총력전을 벌인 적은 없었다.

소규모 교전 몇 번 했다고 앓는 소리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망할 새끼.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거네.'

강한윤은 호족이라는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정에 호전적이라고 적혀있지만, 강한윤은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신병 확보는 아마 한 달 뒤에나 가능할 듯싶네."

"알겠습니다."

드워프 아르기르의 대답을 듣고, 강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뒤라. 애매하긴 하네. 아주 어정쩡한 시기다.

공격, 수비 어느 하나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없는 신병 확보라니.

'카이보옌 넌 나중에 보자.'

강한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이후의 회의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중부는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소규모 교전을 유도하고 견제를 하겠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고.

남부는 하던 대로 내실을 다지며 동부의 진출 타이밍을 엿보겠다며 말했다.

"북부는 진격을 멈추고 정비를 한 뒤, 중부 쪽으로 진출할 생각입니다."

"중부로 오겠다고? 애송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북부와 중부는 협력해야 할 지역이 많습니다. 서로 협력해야 쉽게 이기지 않겠습니까?"

"중부는 그쪽 더러운 오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이새끼 선을 좀 넘네? 강한윤은 눈을 약간 찌푸렸다.

"...이 내용 그대로 에우제니아 사령관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카이보옌이 콧방귀를 뀌었다. 해보던지 라는 반응이었다.

"나는 전선으로 복귀하겠다. 에우제니아. 그 년하고는 마주칠 생각도 없으니 알아서 해라. 인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할 얘기가 끝난, 다른 사령관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보옌, 아르기르가 차례대로 떠나고 회의장에 남은 건 에키르와 이름 모를 호위뿐이었다.

강한윤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강한윤 대위. 왜 에리엘과 함께 있지?"

에키르가 말을 걸어왔다.

"저 혼자 다니는 건 위험하다고 에리엘 준장님과 같이 움직이려 했습니다."

"호위인가."

대위를 호위하는 준장..?

에키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때, 에키르의 옆으로 엘프 하나가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호위라고 했지."

"예. 맞습니다."

"요즘은 번화가에서 호위와 애정행각을 벌이는 건가? 품위가 떨어지게?"

"..."

완전히 들켜버렸네.

아마도 주변을 감시하던 호위의 눈에 띈 것 같았다.

"아버지. 그건 제가 설명­"

에리엘이 변명하려고 입을 열었다.

에키르가 날카롭게 쳐다보자,에리엘의목소리가자연스럽게줄어들었다.

침묵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그때, 강한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연히호위와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게무슨 소리지?"

"호위가 아니라 애인 관계입니다. 애인끼리의 애정 행각은 이상한 게 없지 않습니까?"

강한윤의 대답에 에키르의 얼굴이 굳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