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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75화 (75/163)

〈 75화 〉 72화

* * *

"크윽!"

"기사님. 왜 그러시지? 슬슬 힘이 빠지나?"

레오폴드는 괴롭게 숨을 내뱉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의 강자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레오폴드를 제외하고 소드마스터가 세 명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숭기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숫자는 이쪽이 훨씬 많지만 오히려 밀리고 있었다.

'이 녀석을 뚫지 못한다면 안다이얄을 밟는 건 불가능하다.'

판단을 내린 레오폴드는 검을 다시 굳게 쥐었다.

"흐읍­!"

들고 있는 검이 무겁다. 공격을 해도 오히려 공격을 당하는 것처럼 손이 저릿했다.

레오폴드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이 빠졌다는 건. 상대도 지쳤을 가능성이 높다.

레오폴드는 다시 땅을 박찼다.

'하아... 젠장. 귀찮아.'

에우제니아의 움직임은 처음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이 기사들의 합이었다.

도끼를 휘둘러서 자세가 무너지면, 다른 녀석이 파고들어서 보완한다.

그리고 그 녀석을 쓰러뜨리면 다른 녀석이 달라붙는다.

세 명까지는 자세를 무너뜨리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타이밍이 나오면, 귀신같이 처음 쓰러진 녀석이 기세를 되찾는다.

'망할 새끼들.'

한두 번 어설프게 합을 맞춘 게 아니었다.

최소한 수십 번. 수백 번은 연습했을 모양새다.

에우제니아는 신경질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혹시나 해서 기사들을 도발해봤지만, 여전히 똑같은 움직임이다.

최대한 질질 끌어서 힘을 빼놓으려는 속셈이 보였다.

'강한윤이 아니었다면 문제가 생겼겠는 걸.'

그가 버프를 걸어주지 않았더라면, 빈틈이 생겨서 공격당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몇 번씩 틈이 발생했으니까.

상승한 신체 능력으로 억지로 비틀어서 막고 피할 수 있었다.

'하아.. 젠장.'

이런 걸 위해서 싸우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이런 답답한 전투는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저 병력들만 소모되고 질질 끌리는 그런 전투 말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난전이었다.

엎치락뒤치락 섞여서 칼과 화살이 오가는 그런 전투를 원했다.

도끼를 휘두르던 그녀의 시선이 멀리의 전선으로 향했다.

동쪽의 진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하. 이제야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있겠네.'

에우제니아는 미소를 지으며 도끼를 휘둘렀다.

"후우­"

레오폴드는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전황을 둘러보았다.

이 전투에서는 이길 수 있다.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이 여인. 에우제니아를 몰아세우는 데 성공했다.

병사들끼리의 전투도 압도적이진 못해도 승기를 잡는 도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걸리는 것은 동쪽이다.

동쪽의 용병들이 뚫려서 진형이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다.

'젠장.'

저 곳이 뚫린다면 후미까지 단숨에 돌파당할 터다.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공격당하면 안 된다.

보급을 하기 위한 마차도 후미에 있었다.

후미까지 뚫린 다음 전투 지속력을 잃는 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돈을 받았으면 값을 하란 말이다!'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용병들의 모습에 레오폴드는 이를 악물었다.

저 정도의 무위라면 소드마스터 중급의 실력자가 둘 이상이다.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막으려면 이 여인을 쓰러뜨리고 움직여야 한다.

레오폴드가 기세를 끌어올려서 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검기가 서로 부딪히면서 깨지고 재생한다.

어두운 밤하늘로 푸른 마나가 흩어졌다.

이대로라면 안 된다. 빨리 결판을 봐야 한다. 시간을 끌리고 있었다.

안다이얄을 점령하려면 마법사와 사제들이 필수다.

계속 전투할 병력들을 유지하는 수단이 중요하니까.

그가 검을 휘두르지만, 점점 검이 부딪히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상대가 검을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동쪽으로 지원을 가게 내버려두진 않을 것처럼 움직인다.

조금이라도 뒤로 빠진다면 매섭게 치고 들어오고 자세를 무너뜨렸다.

"어딜 가려고?"

'너네 속셈이야 뻔하지.'

에우제니아는 저 기사들이 동쪽으로 지원을 가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곧 있으면 뚫릴 것 같았으니까.

"우리는 우리끼리 놀아보자고."

동쪽의 진형이 무너진다면 그녀가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

두 진형이 뒤섞인 진흙탕 싸움의 시작이었다.

*

"크아아아악!"

"진형을 유지해라!"

"크흐읍­! 조금 버겁지만 할만하군!"

하이벤 산맥에서 지원을 온 매복조가 용병들을 쓰러뜨리면서 전진한다.

특히 연합군의 복장을 한 인간이 가장 눈에 띄었다.

헨리크 공작.

그는 웃으면서 검을 휘두르고 전투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 옆엔 같이 인상을 찌푸린 채 활약하는 에리엘도 있다.

"크흐흐! 이 녀석들 겁도 없구만! 그래! 덤벼라! 덤벼야 강해진다!"

"헨리크 공작. 내가 왼쪽을 맡겠다."

"에리엘! 그 정도는 말 하지 않아도 된다네!"

용병들의 숫자가 많다 한들, 용병은 용병이었다.

개인 전투에만 특화된 이들이다.

소드마스터 같은 괴물을 상대로 다수로 쓰러뜨리는 연습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에리엘과 헨리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당연했다.

에리엘과 헨리크 공작이 검을 휘두를 때 마다, 바닥에 용병이 하나둘씩 쓰러진다.

진흙바닥엔 이미 수많은 시체들이 뒹굴고 있었다. 진흙과 뒤섞인 피가 강물처럼 모여들었다.

"크아아악!"

"젠장! 젠장!"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용병들이 에리엘에게 달려든다.

종잇장처럼 찢겨나간 용병은 바닥에 쓰러졌다.

"이 정도면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작전을 수행하겠다. 헨리크 공작."

"그래! 난 여기서 칼질이나 하고 있겠네!"

에리엘이 땅을 박차서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용병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 지금에서야 기회가 생겼다.

에리엘은 후미를 보호하고 있는 배리어를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며 검기가 또렷해진다.

콰지지직­!

배리어와 검이 부딪히면서 굉음을 내지른다.

에리엘의 마나가 급속도로 소진되면서 배리어의 색이 옅어졌다.

파스스­!

결국에는 배리어가 무너져 내렸다.

"빨리! 다음 배리어를 전개해라­!"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3급 마석 큐브를 예비로 준비해놨지만, 마법을 시전 하는 데엔 시간이 걸린다.

배리어를 전개하는 마법사가 캐스팅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술식을 외우고 계산을 해낸다.

"됐다­!"

배리어가 완성되기 전에 소리친 법사의 위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쇠로 보이는 물체였다.

"어."

콰과과­! 폭발이 일어난다.

후미에 있던 마법사들은 폭발에 몸이 찢겨졌다.

상처를 치유하던 사제들도 폭발에 휘말렸다.

후미의 2할이 넘는 병사들이 단번에 죽음을 맞이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위에서 떨어져 내린 물체가 폭발하다니.

폭발에 휘말렸던 병사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는 펄럭펄럭 날갯짓을 하는 천족이 보였다.

"이런.. 씨발!"

"우리 기사님 입이 좀 험하네?"

"닥쳐라 오크! 지금 당장 도륙을 내주마!"

"그래 해봐. 너 좆도 작지? 혼자서는 상대가 안 되니까 침대에서 여럿이서 따먹는 거 아냐?"

에우제니아의 말에 기사들의 표정이 썩어들어 간다. 그녀는 쿡쿡 웃었다.

서로 지친 상태에서 대치중인 상태다.

시간을 질질 끌리다가 천족의 폭탄 폭격에 전황이 뒤바뀌자, 기사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왜? 지금 당장이라도 후퇴하고 싶어?"

"큭."

그녀의 말대로 레오폴드는 고민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선 이길 수 있다. 이 여인을 쓰러뜨리진 못하더라도 전장에서 이탈시킨 뒤에 전투를 하면 충분하다.

수적 우위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투다.

하지만 이긴다한들 미래가 있는가? 안다이얄을 점령할 수 있는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최소한 무너진 진형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었다.

레오폴드는 힘들게 결정을 내렸다.

"모두 퇴각하라! 모두 퇴각해서 진형을 바로 잡는다!"

그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이제는 퇴각을 할 준비만 하면 되건만.

콰아아아앙­!

전투 도끼가 바닥에 박힌다.

"크윽...!"

가까스로 일격을 피한 레오폴드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얀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기사갑옷은 온데간데없다.

진흙탕에 한바탕 구른 레오폴드의 얖으로 에우제니아가 다가왔다.

"일대일로 덤벼라. 그러면 다른 기사놈들은 살려서 보내주지."

그녀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너를 쓰러뜨리고 돌아가겠다."

"그래. 해보던가."

레오폴드는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검을 붙잡았다.

후퇴를 하려면, 이 괴물을 붙잡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

레오폴드는 그 사람이 본인이라는 걸 깨닫고, 검을 휘둘렀다.

***

"주인님. 이틀 치 식량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보급은 일주일이 남았다고 했나?"

"예."

식량 저장고에 폭발이 일어나며 불이 붙었다.

비가 오는 덕분에 화재는 빠르게 진압됐지만, 그런다 한들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건물의 파편과 뒤섞인 군량들을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최대한 걸러내고 건져낸 식량은 고작 이틀 치에 불과했다.

'여기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 거점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내어주는 게 좋다.

푸니아 거점은 사방이 뚫려있어서 방어하기에 어렵다.

'차라리 후퇴한 다음 재정비를 하는 게 맞군.'

푸니아 거점이 전략적 요충지도 아니다.

그는 이 거점을 지키기 위해, 자원과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주인님."

의자에 앉아 상념에 잠겨있던 이안을 그의 집사가 불렀다.

"전투에 패배했습니다."

"그런가."

전투라는 건 무조건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이안 베르첼은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비를 끝낸 뒤, 레오리스까지 후퇴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정이었다.

***

"스읍."

노아는 숨은 채로 중요해 보이는 인물만 저격하는 중이었다.

활시위를 당기고 마나를 끌어올린다. 마나화살이 생겨나면서 시위에 장전이 된다.

그녀는 정확하게 적의 목을 조준하고 시위를 놓았다.

투웅­!

화살이 날아가면서 상대의 머리에 박힌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를 죽이고, 에우제니아 싸우는 기사들을 방해하기 위해 화살을 날렸다.

그러다가 전황이 뒤집혔다. 상대는 퇴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노아는 화살을 쏘는 정찰대에게 신호를 보냈다.

퇴각하는 상대를 추격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반대로 큰 타격을 입힐 기회였다.

'배리어도 없는 지금이 최선이야.'

노아는 활 시위를 당겼다.

콰직­!

병사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방패를 들어라­! 몸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퇴각해라!"

누군가가 소리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막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계속해서 쓰러진다.

정찰대의 부하들과 노아는 또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기사들이 노아를 잡으려고 달려들면 그녀는 저 멀리 도망쳤다.

그 다음 다시 쫓아가서 화살을 쐈다.

"노아 중위님. 여기서부터는 인간 세력의 구역입니다."

"흐음."

노아는 고민했다. 더 쫓아가서 피해를 입혀야 하나? 아니면 여기에서 멈춰야하나?

가만히 앉아있는 노아의 색적에 무언가가 걸렸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추격은 멈추고 여기에서 대기하자."

저 멀리서 강한윤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겼네요."

복귀를 하던 중에 라이라가 갑자기 말했다.

"이겼다고?"

"예. 병사들의 걷는 소리가 들려요."

강한윤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라이라가 그렇게 말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노아. 그녀도 있어요."

"노아가 있다고? 이 근처에?"

"그녀 특유의 활 소리가 들려요."

라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안다이얄과 푸니아 거점의 중간 지점이다.

그녀가 여기까지 있다는 건. 정찰대를 이끌고 추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쪽으로 합류하자."

"예. 그러죠."

강한윤은 노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아를 만나서 복귀를 하는 것이 더 안전할 테니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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