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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69화 (69/163)

〈 69화 〉 66화

* * *

광산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적에게 직접 타격을 줄 무기를 만들려고 했으니까.

무기를 만드는 것은 드워프가 적임자였다.

강한윤은 광산으로 움직이려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맞다."

맨 손으로 가기는 그렇지.

드워프들에게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치트키인 것이 있었다.

맥주.

맥주에 살고 맥주에 죽는 드워프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야했다.

강한윤은 당연하다는 듯이 주점으로 향했다.

맥주 네 통을 구입한 뒤에 잡화점에서 민트 농축액과 체리 농축액을 구입했다.

맥주의 통을 열고 민트 농축액을 넣자 기포가 솟아오르면서 맥주의 색이 민트 색으로 변한다.

그것을 지켜보던 세베라는 침음을 흘렸다.

"이게 뭐야...? 민... 민트..?"

"어때 냄새 좋지 않아?"

"맥주에 이런 걸 넣는다고? 진짜로? 드워프들에게 가려던 거 아니었어? 그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왜 맛만 좋은데."

강한윤은 작은 컵으로 맥주를 떠서 한 모금 마셨다. 저번처럼 상쾌하고 달달하기만 하다. 표정이 굳고 있는 세베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 맛을 모르다니. 진짜로 인생 헛살았구나 세베라."

"... 이리 줘봐."

혹시나 자신이 아는 민트가 아닌가? 아니면 민트와 맥주의 조합으로 색다른 맛이 탄생하는 건가?

세베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엑..."

민트 향과 함께 맥주의 맛이 난다. 어우러지긴 하지만 이 맛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치약으로 양치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느낌이다.

세베라는 입맛을 버렸다는 듯이 입에 남아있는 맥주를 뱉었다.

"그에엑.. 이게 무슨 맛이야..."

"맛있기만 한데?"

세베라가 요란을 떠는 거라고 생각한 강한윤은 민트 맥주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민트 맥주 2통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체리 농축액을 맥주통 속으로 던졌다.

퐁당 소리와 함께 기포가 올라왔다.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새로운 맥주가 탄생했다.

이제는 기포가 올라오지 않는다. 강한윤은 체리 맥주를 마셨다.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게 괜찮네.'

실패작이었다면 여러 번 시도를 했어야할 텐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 맥주는 성공작이었으니까.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라이라는 찌푸렸던 인상을 폈다.

민트. 그 치약 맛 나는 것을 왜 맥주에 섞는 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맥주는 향긋한 체리향이 나서 괜찮아 보였다.

"라이라 마셔볼래?"

강한윤의 권유에 체리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체리의 상큼하고 달달함이 맥주와 어울렸다.

"당신. 드디어 미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네요. 민트같은 게 아니라 이런 걸 만들다니요."

"아니. 원래 정상이었어. 민트도 맛있다니까? 한 번 먹어봐."

"으... 저리 치워요."

강한윤이 민트 맥주 통을 인벤토리에서 꺼내자, 라이라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자리를 피했다.

"그럼 세베라. 한 번 더 마셔볼래?"

"싫어요."

한 입 마셔보더니 영 반응이 좋지 않았다.

"맛있기만 한데."

강한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민트 맥주 한 잔을 비웠다.

*

맥주 네 통을 준비한 우리는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의 드워프들이 나눠 마시기엔 턱 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지금 만날 드워프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번에 찾아갈 곳은 로하르는 아니었다. 로하르가 실력은 가장 뛰어나지만, 권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드워프의 대표는 그림스위그였다. 우리는 그의 대장간을 찾았다.

"아! 강한윤 대위! 맥주의 선구자가 아닌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면서 강한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등을 팡팡 때리는 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호감도가 오른 상태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왼손에 들려있는 맥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한윤은 등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용건을 말했다.

"그.. 그림스위그님. 작전에 대해 논의할 사항이 있어서 왔습니다."

"작전?! 그렇다면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게나!"

그림스위그의 안내를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용광로를 지나치고 평범한 건물이 나온다. 그 안에는 다른 장교들의 집무실처럼 평범한 공간이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아니, 정돈할 것들이 없었다.

펜보다는 망치를 더 많이 드는 드워프들이다. 당연히 서류나 책을 책장과 책상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작전 얘기에 들어가기 전에 드릴 선물이 있습니다."

"오... 아공간이라니. 좋은 걸 가지고 있군 그보다 이것은 맥주 아닌가? 맥주라면 나도 있다네!"

강한윤이 꺼낸 맥주통을 보며, 그림스위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맥주통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색다른 겁니다."

"색다른 거라고..?"

그림스위그는 들고 있던 맥주통을 내려놓고서, 강한윤이 꺼낸 맥주에 관심을 가졌다.

색다른 거라니? 그는 맥주통의 뚜껑을 열고서 감탄을 내질렀다.

"오.. 색이 예쁘군. 마치 와인 같아. 하지만 수면위에 떠있는 거품을 보아하니 맥주야.

이 향은... 체리인가?! 이번에는 체리 맥주를 가져온 건가?!"

"예. 체리 맥주를 가져왔습니다."

"일단은 한 잔 마셔보겠네."

그가 맥주통 채로 들이켰다. 꿀꺽. 꿀꺽. 맥주를 마신 뒤, 거대한 트름과 함께 탄성을 내질렀다.

"크으.. 맛있군..! 젠장! 역시 대단해. 저번의 민트 맥주는 약간의 호불호가 갈리더군. 하지만 이건 모두가 좋아할 맥주야!"

"잘 됐네요."

그 뒤로도 그림스위그는 맥주에 대한 찬사를 내뱉었다.

다른 드워프들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얘기도 하고.

이런 맥주를 개발하는 것은 드워프들이 못하는 것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드워프들은 맥주를 만들고 연구하는 것보다 마시는 쪽을 월등히 좋아한다나 뭐라나.

맥주의 이야기에 지쳐버린 강한윤은 작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만들고 싶은 무기는... 투석기입니다. 그것도 작은 투석기가 아니라 거대한 투석기를 원합니다."

"거대한 투석기라니? 얼마만큼이나 거대한 것을 원하는 거지? 만들어 줄 순 있다네.

하지만 견적을 낼 수 없다면 만들어줄 수 없네.

투석기는 거리조절이 가능하지만 오차범위에서 벗어난다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

"흐음. 역시 그런가요."

강한윤은 인벤토리에서 배낭을 꺼낸 뒤에 지도를 폈다. 그리고 뒤에 서있는 세베라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왜?"

"여기 안다이얄 거점이야. 그리고 인간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푸니아 거점. 어디인지 알지?"

"당연히 알지."

그녀가 예전에 활동했던 곳이 푸니아 거점이기도 했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음... 안다이얄 거점과 푸니아 거점의 거리는 지도로 확인 할 수 있고... 세베라. 가속 마법의 계산식은 알고 있지?"

"응."

세베라는 가속 마법의 계산식을 떠올렸다. 그것 정도야 아주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암산을 끝낼 정도로 아주 간단한 마법이었으니까.

강한윤은 지도를 살펴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30kg의 질량을 가진 쇠구슬을 안다이얄 거점에서 푸니아까지 날린다고 가정 했을 때, 30kg의 쇠구슬을 날려야 하는 투석기는 어느 정도의 힘을 가져야 할까? 단, 쇠구슬에는 가속 마법이 걸려 있다는 가정이야.

빨리 계산 해 봐."

"...어?"

하지만 강한윤의 말을 들은 세베라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걸.. 계산 하라고?"

"응.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

물리 계산식에는 약한데. 그래서 대기 마법 계열만 주구장창 연구한 건데.

세베라는 울상이 된 채로 펜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포로였으니까. 까라면 까라는 대로 해야 했다.

머릿속에서 희미한 기억을 되짚으며 물리 계산식을 떠올린 세베라는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하나하나 계산을 해나갔다.

"얼마든지 기다려줄 테니까 틀리지만 마. 틀리면 네가 책임을 져야할 테니까."

"히끅..."

"아 그리고 이거 끝날 때까지 휴식은 없다."

세베라에게는 강한윤이 악마로 보였다.

*

세베라가 몇 번이고 계산하고 검토를 끝낸 뒤에 정확한 투석기의 스펙이 나왔다.

그것을 확인한 그림스위그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군! 어차피 빗나간다면 영점을 맞추면 되는 문제 아닌가! 이대로 만들면 되는 건가?!"

"예. 일단은 3대 정도만 만들려고 합니다."

그 이상으로 운용을 하고 싶지만 마법 스크롤의 수량이 부족하다.

마법사를 어디서 더 고용하지 않는다면 투석기의 숫자를 늘리더라도 의미가 없다.

강한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라면 안 나오고는 못 배길 걸.'

방어에 유리한 안다이얄 거점은 이젠 공격까지 유리해질 테니까.

고지대를 먹고 다른 지역에 포격을 계속 때릴 생각이었다.

특히 산악지대라면 화력으로 승부를 보는 게 제격이다.

'대포가 탄생하려면 시간이 남았으니까.'

투석기로 뽕을 뽑아보자. 화력으로 인간 세력을 몰아낼 예정이었다.

'나에게도 포방부의 피가 흐르기라도 하는 건가?'

게임에서도 자주 사용했던 전략이긴 하지만, 지금은 화력에 올인하는 계획도 떠올리고 있었다.

'투석기 부대도 괜찮겠는데.'

효율성은 낮지만 때리다보면 거점은 언젠간 무너진다.

"그럼 사령관님의 결재를 받아서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도 맥주를 가져올 텐가?"

"얼마든지요."

그림스위그가 악수를 건네고, 강한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그가 만드는 무기는 큰일을 해줄 테니까.

*

"드디어... 끝났다.."

세베라는 피곤이 절어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을까지 걸어갔다 오는 것도 힘들지만,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물리 계산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몇 시간 동안 시달린 덕에 그녀는 이제 걸을 힘도 없었다.

잠이라도 제대로 잤다면 덜 피곤할 텐데. 라며 생각을 할 뿐이었다.

세베라는 오두막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리자드족이 사는 오두막에서 지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위기에 처한다고?

"하아..."

세베라에겐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세베라."

"왜."

"너도 오늘부터 스크롤 작업에 들어가."

"..."

그녀는 마법으로 강한윤을 통구이처럼 구워버리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그의 옆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여인이 훨씬 무서웠으니까.

소드마스터 급의 실력자는 마법사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알았어."

억지로 대답을 한 세베라는 오두막을 향해 걸었다.

그래. 일단 들어가서 잠을 조금만 자자.

리자드 족. 달리스였나? 그 사람한테 깨워달라고 부탁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을 옮겼다.

"우리도 돌아가자."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세베라를 지켜보던 강한윤은 라이라에게 달라붙었다.

"안다이얄까지 데이트하듯이 걸을까?"

"당신. 체력이 저질이라 그것도 안 될걸요."

"아냐. 천천히 걸으면 할만 할 거야."

안다이얄이 있는 높은 협곡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기를 어떻게 다시 올라가냐.

강한윤은 한숨을 내쉰 뒤, 발걸음을 옮겼다.

라이라와 장난도 치고, 농담 따먹기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안다이얄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상관없었다.

빨리가나 늦게가나 일과시간이 끝나고 도착하는 건 당연했으니까.

안다이얄에 도착한 강한윤은 에우제니아의 막사를 찾았다.

"오랜만에 보네."

"예.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별 일은 없어 보이네. 다친 곳도 없고 말야. 어디 하나 다쳐서 돌아오면 내가 죽이려고 생각했거든."

"제가 다칠 사람으로 보입니까? 안전 제일입니다."

"참나. 웃긴 새끼. 아무튼 보고할 내용은?"

삐뚤어진 자세로 앉아서 다리를 꼰채로 얘기하는 에우제니아.

책상 바깥으로 삐져나온 다리가 위아래로 살랑살랑 움직였다.

"네.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북부의 마탑주인 세베라를 포로로 잡고, 이번에 드워프 대표 그림스위그에게 무기 제조를 부탁했습니다."

"...누구를 포로로 잡아? 북부의 마탑주? 그리고 무기 제조를 부탁했다고? 야이 새꺄. 그게 특별한 일이잖아! 일단은 내일 결재할 테니까. 적어서 보고서로 올려놔."

"예. 알겠습니다."

경례를 하고 나가려는 강한윤의 뒤로 에우제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따 내 막사로 찾아와."

"이미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안 오면 허리를 접어버리려고 했는데. 눈치는 있네."

"당연하죠."

사령관이랑 이런 관계를 맺으면서 문어발식 연애를 하는 데 눈치가 없으면 안 되지.

강한윤은 피식 웃은 뒤에 바깥으로 나갔다.

밖은 어두컴컴하다. 그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배낭에 들어있던 짐을 풀어서 정리했다.

할 일을 전부 끝낸 뒤, 에우제니아의 막사를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그는 주변에 누가 있나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 한 뒤 막사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강한윤. 드디어 왔네."

"막사가 멀어서 시간이 걸렸어."

강한윤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에우제니아가 등불에 불을 붙였다.

막사 내부가 밝아지면서 서로의 모습이 보인다.

"오."

속이 비치는 네글리제 속옷을 입고 있는 에우제니아를 보고 강한윤이 중얼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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