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63화
* * *
"그래. 오랜만이야. 정말 오랜만인데.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군."
급하게 말을 끝내려는 모양새의 달리스였다. 마치 문을 닫을 것처럼 말이다.
그 낌새를 눈치 챈 강한윤은 열려있는 문 사이로 발을 끼워 넣었다.
퍽! 콰직!
문이 닫히며 발등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크윽..."
크흐윽씨발존나아프네. 라고 소리칠 뻔 했지만 최대한 고통을 참아냈다.
문을 왜 이렇게 세게 닫는 거지? 망할 도마뱀 같으니.
느낌상 발등에 문제는 없지만 시퍼런 멍이 크게 들었을 것 같다.
강한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들여보내줘요."
"지금은 들여보내기 곤란한 상황이다."
"왜요. 안이 조금 더러워도 괜찮은 데."
"오늘은 안 된다. 개인적인 이유야."
"우리가 그런 사이밖에 안 돼요?"
강한윤의 얘기를 들은 달리스는 눈을 꿈틀거렸다.
그런 사이? 부려먹기만 했으면서 친한 척을 하다니.
달리스는 문을 열어주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또 다시 문을 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힘들었으니까.
저 인간이 찾아올 때마다 삶이 바쁘고 피곤해졌다.
마법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대신에 수명이 대폭 깎이는 느낌이었다.
"안 된다."
"손님을 문 앞에 두고 얘기하는 게 매너는 아니잖아요. 일단 들여보내줘요."
"절대로 안 된다."
"크흑... 발이 부러진 것 같은데.. 이래도 안 열어줄 건가요? 달리스?"
"밤중에 찾아오는 건 매너가 없지 않나?"
"그만큼 중요한 얘기에요."
"내일 찾아오도록."
달리스는 정말로 열어주고 싶지 않았다. 고통만 가득 안겨준 강한윤이 맘에 들지 않으니까.
하지만 뒤에서 정반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보게 달리스. 저 친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쫓는 건가?"
"그래. 들여보내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얘기를 들어보니까 서로 아는 사이 같은데. 차라도 한 잔 대접하는 게 어때?"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달리스는 고구마 30개를 먹은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문을 열어줘야 할 분위기였다.
그 얘기가 강한윤에게 들렸는지 오두막 바깥에서 말을 걸어왔다.
"맞아요. 달리스. 손님들이 있는 것 같은데 방해는 하지 않을게요. 볼일만 있어서 그래요."
"정말이지? 정말인 건가?"
"예. 정말이죠."
볼일은 맞지. 달리스와 세베라를 노예처럼 부려먹을 볼일.
강한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찰칵.
잠금 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며 강한윤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 구조는 바뀐 게 없다. 너저분하고 더러운 것도 그대로고.
다른 건 의자에 앉아있는 선객이 있다는 것이다.
'호오. 다 아는 얼굴이네.'
강한윤은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리자드족 달리스를 제외하고 있는 인물은 세 명.
카브란 산맥에서 마법 물품을 판매하는 NPC 2명과 연금술사다.
"파티라도 하고 계셨나 보네요."
"파티는 무슨. 이렇게 조졸한 파티가 있나?"
확실히 분위기로 보아선 파티가 아니다.
간단하게 마실 것들만 있을 뿐. 안주 거리는 없다.
마실 것들도 알콜 종류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이 주변에서 이름 좀 있는 마법사들만 모여있네.'
강한윤은 어떤 상황인지 대략 이해했다.
마법사들끼리 모임을 가진 것이겠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건넸다.
"강한윤입니다. 달리스와 거래를 하고 있죠."
"그대는.. 오드웰 연합군의 소속이군. 그 소문의 인간 장교인가?"
"알고 계시나보네요."
"알다마다! 이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저는 들어본 적 업습니다만."
"그래? 하긴. 소문이라는 것도 뜬구름을 잡는 소문이지. 인간 장교가 혼자서 북부를 밀어버렸느니. 남부를 쓸어버렸느니 하는 얘기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네!"
사실이 전부 소문으로 포장되고 있네. 강한윤은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
"그쪽은.."
"아. 내 이름은 하프반이고 이쪽은 나인과 디엔. 여기는 알다시피 달리스지."
강한윤은 이미 다 아는 이름이지만 최대한 모르는 척했다.
특히 디엔은 저번에 연금술 재료를 구입하면서 한 번 마주쳤던 인물이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이유가 뭡니까?
거래를 하려고 왔는데. 신경이 쓰이네요.
여기에 있는 마법 술식을 보니 다들 마법사인가 봐요?"
"그렇지! 하하! 오늘은 정기 마법 회의가 있어서 모두 모였다네!
이번엔 모두의 성과를 발표할 시간이지!"
"오. 저도 참여해도 되나요? 마법에 관심이 있어서요."
"안 될 건 없지. 안 그런가? 다들?"
하프반의 말에 나인과 디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달리스만 팔짱을 낀 채 목석처럼 서있을 뿐이다.
"마음대로 해. 상관없으니까."
달리스는 포기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저 망할 인간이 꿍꿍이가 있을 텐데.
여태까지 해온 것을 보면 아무 생각도 없진 않을 거였다.
특히, 저 뒤에 서있는 두 명이 제일 거슬렸다.
옆트임이 심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경지가 가늠이 안 된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나 봉인 목걸이를 차고 있는 흰색 머리칼의 여인은 낯이 익다.
그녀는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달리스가 기억해내려는 도중에도 하프반과 강한윤은 대화는 이어졌다.
"그렇다면 하프반님은 화염 마법과 바람 마법의 조합에 대해서 연구를 하셨다는 거네요."
"그렇지! 이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야! 제일 효과가 좋은 마법을 찾아낸다는 건. 같은 마나 대비 효율을 만들어낸 다는 거거든!"
"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강한윤은 맞장구를 쳤다.
이 분위기에 녹아드는 게 중요했으니까.
"그렇다면 다른 분들의 연구는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인은 독극물의 부작용을 이용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디엔은 전기 마법의 매개체를 주로 한 연구라네.
이번엔 달리스가 발표를 할 차례였는데. 자네들이 찾아왔지."
"아하 그렇군요."
강한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의 연구는 시시한 것들이었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이라면 당연히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들.
그리고 그 해답을 전부 알고 있는 강한윤에게는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달리스 네가 뭘 준비 했나 구경이나 해보자.'
그는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서 달리스를 바라보았다.
달리스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 내가 준비한 것은... 3중 마법 각인이다.'
"3중 마법 각인?!"
"그걸 성공했다고? 정말로?"
"앞으로 많은 분야의 발전을 불러올 내용이잖아."
다들 놀랐다는 듯이 달리스를 쳐다보았다.
다만, 강한윤만 빼고 말이다. 그는 미묘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그 표정을 본 달리스의 심정은 착잡했다.
'이래서 오늘은 아니었으면 했는데...!'
마법 각인을 알려준 당사자 앞에서 잘난 체를 해야 한다니. 속이 쓰렸다.
"저게 상용화가 된다면 마법 스크롤과 무구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겠군..."
"그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마법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연구될 거야."
"3중 마법 각인에 대한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해냈구나 달리스!"
"진짜야? 진짜로 3중 마법 각인이 성공한 거야? 동부 마탑주가 겨우 했다던 그걸?"
뒤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세베르였다.
세베르는 3중 마법 각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2중 마법 각인도 세밀하고 촘촘해서 마법 각인을 새기는 데에 어려움이 따른다.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문제가 생기고.
조금이라도 설계를 잘못하면 모든 마법이 무효화가 된다.
세베르도 고작 2중 마법 각인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3중 마법 각인에 성공했다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3중 마법 각인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온 게 다행인가?'
포로로 잡혔을 땐 어김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이런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축하해주는 가운데. 달리스의 표정만이 미묘했다.
"으음.. 내가 완벽하게 이해한 3중 마법 각인은 총 세 개다."
"세 개나 된다고?!"
"한 개도 아니라 세 개?!"
"달리스! 여태까지 이걸 숨기고 있었던 거야?"
달리스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소리쳤다.
모두가 소리치는 것도 압박감이 심하지만, 그래 어디 계속 얘기 해봐.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강한윤도 부담이 된다.
망할 이럴 줄 알았다니까. 달리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양쪽으로 가해지는 압박감에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3중 마법 각인은.. 사실... 내가 한 게 아니다."
사실대로 토로하는 것.
달리스는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아니 굳이 그걸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이유가 뭐지?"
하프반의 말대로 모두가 달리스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사실을 얘기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3중 마법 각인 이야기도 거짓인가?"
"아니 그건 사실이다. 3중 마법 각인은 성공했어."
"달리스. 연구를 한 게 아니라는 얘기인가?"
"그렇지. 나는 연구를 한 게 아니다."
"망할. 그렇다면 어디에서 훔쳐온 3중 마법 각인이라는 얘기인가? 이 사실을 들은 우리도 위험해질 수 있잖나!"
3중 마법 각인이나 되는 연구를 훔쳐왔다면 문제가 될 터.
하프반은 달리스에게 소리쳤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생각인가?!"
"아니 그건 아냐. 3중 마법 각인을 알려준 이는 여기에 있거든."
"여기에 있다고..?"
달리스의 말에 하프반은 더욱 의문이 생겼다.
여기에 있다는 것은 일단 나인, 디엔, 달리스는 아니다.
그렇다면 방금 들어온 3명 중에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강한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달리스. 솔직하네요. 구경하는 거 재밌었거든요."
"망할. 우리들끼리 있으면 잘난 척을 할 수 있겠지만. 알려준 당사자 앞에서 어떻게 하냔 말이다."
"그렇다면... 자네가..?"
마법에 조예가 없어 보이는 사내다.
펜을 많이 만지는 것도 아닌지 중지나 검지에 굳은살도 없다.
마법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만 가득한데 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하프반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자네가 알려준 건가?"
강한윤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인 뒤 만족스럽게 웃었다.
'3중 마법 각인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이 많다니.'
그렇다면 모두에게 알려줄 생각이 있었다.
"3중 마법 각인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구조에 대해서 강의도 해드리죠. 다만, 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정말인가? 그렇게 귀한 걸 알려주겠다고?"
"거짓말 아닌가요?
"쉽게 믿기 힘든 내용이긴 해."
"믿기 싫으시다면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달리스에게는 확실히 3중 마법 각인에 대해서 알려줬었죠. 여러분들에게도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걸 믿어도 될까. 혹시 이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눈빛에 서려있었다.
하지만 달리스가 거짓말을 하는 사내는 아니다.
3중 마법 각인을 배웠다는 건 사실일 터.
고민을 끝낸 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배워두면 손해는 아니니까 배우고 싶긴 해."
"그렇다면 나도 배우도록 하지."
"흐음.. 모르겠네. 하지만 3중 마법 술식은 배우고 싶어."
모두가 배움에 목말라 있었다. 마법의 성취를 올리는 것은 어려우니까.
마법이라는 건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선 헤매고 또 헤매야하는 지루한 작업이다.
그러던 도중 지름길이 나왔으니 이끌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럼 모두에게 3중 마법 술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강한윤은 웃으면서 얘기했다.
3중 마법 술식을 알려주는 대신 작전에 사용할 스크롤을 만들도록 시킬 거였으니까.
"대신에 작업을 해주시면 됩니다."
그 미래를 아는 것처럼 달리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
모두에게 3중 마법 각인을 알려주는 대가로 강한윤이 부탁한 것은 2중 마법 스크롤을 만들어 오는 것이었다.
하루에 50장.
1시간에 10장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면 5시간이 걸린다.
"크음.."
모두가 고민했다.
2중 마법 스크롤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0장을 1시간 안에 그릴 수 있을까?
1시간 동안 6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계지 않을까.
한 편으로는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뒤쳐지는 게 된다.
마법 연구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항상 뒷북이나 칠 게 분명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50장을 만들어 내는 게 힘들긴 하겠지만, 마법연구를 위해서라면 방도가 없었다.
"하겠네."
"나도 할게."
"저도.. 해야겠네요."
"크윽.."
그 모습을 본 달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망할 이렇게 되는 구나. 말린다고 한들, 마법사의 탐구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달리스는 어떻게 하실래요? 이번에도 새로운 3중 마법 각인을 알려줄 건데. 싫어요?"
"...하겠다."
달리스도 마찬가지로 마법사였다.
마나를 잃지 않는 이상 이 탐구욕이 사라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노예처럼 일을 하더라도 마법의 경지 상승을 원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저기 나는?"
라이라와 함께 서있던 세베라가 강한윤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세베라. 너는 당연히 참여지."
그 대신에 또 다른 조건이 붙는다.
강한윤은 라이라에게 눈빛을 보냈다.
합의된 내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라이라는 아공간에서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마나 봉인 목걸이처럼 투박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이 목걸이를 대신 차고 참여해."
"이게 뭔데?"
"폭탄 목걸이. 물론 거절은 불가능해 포로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지?"
"..."
세베라도 마법 스크롤을 만드는 노예가 될 예정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