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54화
* * *
잠에서 깨어나니 침대 위였다.
어젯밤의 일이 꿈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듯하다.
주변은 깔끔하게 정돈되어있고 노아와 에리엘도 잠들어있다.
왼쪽에 에리엘.
오른쪽에 노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모두 알몸인 상태다.
어제 욕실에서 잠들고 뒤처리를 해준 건가.
옷을 입히지 않은 건 대략 이해가 간다.
자고 있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잠에서 깨지 않도록 배려를 해준 거겠지.
서로 알몸을 다 본 사이라서 알몸이라고 한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니까 괜찮고 말이다.
그런데 이건 생각 외로 좋네.
양손의 꽃.
왼손에 에리엘. 오른손엔 노아.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양쪽으로 유혹하는 것처럼 그녀들의 페로몬이 풍겨서 저절로 발기했다.
왼쪽의 에리엘에게 스킨십을 한다면 노아가 쓸쓸해 할 테고.
오른쪽의 노아에게 스킨십을 한다면 에리엘이 쓸쓸해하겠지.
둘 중 한명밖에 껴안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녀들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자.
그렇게 카사노바가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먼저 일어난 것은 노아였다.
내가 먼저 깨어있다는 걸 알아챈 노아가 반대로 돌아누웠다.
"잘 잤어..?"
눈을 비비면서 이쪽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응. 자고 일어나니까 개운하더라고."
어젠 진짜 죽을 거 같았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의외로 개운하다.
"그러면 다행이네.
섹스 도중에 잠들더라고... 진짜로 피곤한 것처럼 보였거든.
막 눈 밑에 다크 서클도 내려오고 말이야,"
그 정도였었나.
노아에겐 진짜로 심각해 보였나보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면서 입술을 가볍게 부딪혀왔다.
그리고 발기되어 있는 자지를 양손으로 살며시 쥐었다.
"한 발 빼줄까? 에리엘님 자고 계실 때...?"
들키면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처럼.
노아가 자그맣게 말했다.
나쁜 짓을 하려는 청소년같이 말이다.
"지금이라면 빠르게 한 번 되지 않을까?"
"그러려나."
노아가 소리를 죽이고 펠라를 해준다면 왠지 모를 배덕감에 더 꼴릴 것 같긴 하다.
"나를 빼놓고 재밌는 얘기를 하는 것 같군."
하지만 들켰다.
구석에서 손을 잡고 속삭이던 우리의 뒤로 에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어? 에리엘."
"그렇게 떠들고 움직이는 데 내가 깨어나지 않을 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나?"
소드마스터부터는 오감이 예민해진다.
당연히 작게 말해도 그녀에게는 들렸으리라.
"재밌는 작당을 하더군."
에리엘도 가슴팍에 손을 올려서 원을 그리듯이 만졌다.
"아침부터 할 생각이라니."
그녀가 다가와서 가볍게 키스를 했다.
노아와는 다르게 혀를 섞어오는 키스였다.
"흐응...♡"
그녀의 달콤한 숨결을 느끼면서 키스를 했다.
에리엘과 키스를 하고 있으니, 노아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자지의 뿌리를 붙잡고 펠라치오를 시작했다.
귀두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쾌락 위주의 펠라였다.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해야겠군."
에리엘이 가슴을 들이밀었다.
"어때. 좋지 않은가?"
좋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했다.
*
아침을 먹고 난 뒤 우리는 출발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어제와는 다르게 날이 우중충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비가 올 것 같네요."
"다들 우의는 챙겼나?"
"예. 챙겼습니다."
내가 하늘을 보며 감상을 말하고 있을 때.
에리엘과 노아는 자신들의 배낭을 점검했다.
엄청 성실하네.
"다 준비 됐습니까?"
"그래. 이제 출발하면 된다."
"그럼 배낭을 이쪽으로 주시면 됩니다."
"배낭을?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니. 강한윤 대위는 항상 나를 놀래키는 군."
배낭을 아공간에 넣어버리자 에리엘이 놀랐다.
아공간이라는 건 보기 드무니까.
사실상 플레이어 전용 특전이라 봐도 된다.
아공간 마법이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말이다.
"비가 오더라도 노아가 있으니 천만 다행이야."
"예. 색적이 있으니까요."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는 노아가 누구보다 도움이 된다.
비가 오는 건 찝찝하지만 우리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빗소리에 가려 누군가가 우리를 눈치 챌 위험도 적어지고.
우리는 노아의 색적을 이용하면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럼 준비는 끝난 것 같으니 출발하겠습니다."
우리는 북문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던전이 있는 방향인 북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번 던전에서 작전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
던전에 대한 소문이 돌면 용병이나 모험가들이 꼬이는 건 당연한 얘기다.
거기에 고급 정보라면서 던전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용병들이 안 올 리가 없다.
몇몇 모험가들이 휘말리긴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고대 유물이 있는 던전에 오면서 그 정도의 각오는 다들 하지 않았을까?
뭐. 실제로는 고대 유물이 잠들어 있진 않지만.
그와 비슷한 아이템이 있는 던전이긴 하다.
고대 유물은 여기가 아니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얻을 수 있다.
그것도 엘프, 수인, 드워프, 오크 전용 아이템으로 나온다.
레벨 디자인의 일환인지 오드웰 연합군의 지역엔 인간과 마족의 고대유물이 묻혀있다.
반대로 인간 세력과 마족 세력의 땅엔 타 종족들의 유물이 묻혀있다.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유물을 찾으러 떠나볼까.'
쓸모 있는 아이템 한두 개는 미리 얻어두면 좋으니까.
던전이 있는 방향으로 걸은 지 두 시간 정도가 흘렀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꺾어서 라이라와 합류를 먼저 해야 한다.
일부러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골라서 만나려고 외진 곳에서 합류하기로 정했다.
그렇게 걸어가다가 먼저 반응한 것은 노아였다.
"주변에 누군가 있어."
"인간이야?"
"응. 키가 조금 큰 여자인데... 나보다 조금 더 강해."
딱 봐도 라이라가 맞았다.
정보가 라이라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노아는 라이라랑 이번이 첫 대면이다.
"그럼 그쪽으로 가자."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앞장을 섰다.
색적으로 라이라가 있는 곳으로 일직선으로 향한다.
숲 속을 걷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달달한 향이 난다.
라이라가 피우는 담배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나와 눈이 마주친 라이라는 느긋하게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이번에 같이 작전을 하게 된 라이라라고 하고.
이쪽은 노아 중위, 에리엘 준장님."
"준장... 엄청 높으신 분이네요."
라이라의 눈이 에리엘에게 향했다.
그녀를 쳐다본 뒤에 노아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작전은 별거 없습니다.
던전 내에선 제가 말하는 대로 진행해주시면 되고.
그 외로 팀 내의 분쟁만 없으면 됩니다."
"그건 괜찮다."
"응. 문제없어."
"저도 괜찮아요."
그녀들의 대답을 들은 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던전으로 향하겠습니다. 따로 질문 사항은 없습니까?"
그녀들은 서로를 쳐다본 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출발하죠. 입구까지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겁니다."
던전으로 가기 위해 내가 앞장섰다.
그리고 뒤에 노아가 따라 붙었다.
"강한윤. 라이라..? 저 여자랑 그런 사이지?"
어떻게 알아챘지.
라이라의 미묘한 눈빛을 읽어낸 건가?
"작전 끝나고 얘기 좀 하자."
"..."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서운 말투가 아니라 오히려 상냥해서 더욱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무튼 우리는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의 입구는 총 8개다.
그 중에서 우리가 향할 곳은 던전의 남동쪽에 있는 외진 곳이다.
던전이 발견되기 어렵게 외진 곳에 있기도 하고.
우리가 가려는 입구는 그 중에서도 제일 외진 곳이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산 밖에 없는 지역.
부대의 병력이 이 곳까지 굳이 순찰을 오는 것도 애매하다.
그래서 여기에 숨겨져 있는 입구를 찾긴 어렵다.
"도착했습니다."
"흐음.. 뭔가 미약한 마나가 흐르긴 한다만... 모르겠군."
에리엘이 입구를 보면서 얘기했다.
덩굴로 빽빽하게 덮여있는 돌.
특이할 것 없는 돌이지만 여기가 확실하게 입구가 맞았다.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휴식을 취했다.
들어가기 전에 체력을 보충해야 하니까.
육포와 튀긴 건빵으로 간단하게 입가심을 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에리엘은 돌을 쓰다듬었다.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주변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돌 같다만."
결국에는 포기하고 챙겨온 식량을 먹는다.
당연하다. 여기는 혼자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니까.
에리엘이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던전 안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일단 노아는 저쪽으로. 에리엘 님은 반대쪽으로 가주세요."
둘 다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앞에 보면 튀어나온 돌이 있을 텐데.
거기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주입하면 됩니다."
"여기?"
"음.. 여기인가."
둘 다 올바른 위치에 손을 올리고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마나가 돌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돌이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면서 이끼로 덮여있던 돌은 천천히 사라졌다.
"호오.. 엄청 신기하군. 환영 마법..? 아니 그것보다 더 높은 경지의 마법이라니."
투명하게 사라진 돌을 보며 에리엘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건 확실히 신기하긴 하네.
"입구는 1분 내로 닫히니 들어가죠."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느긋하게 움직이면 된다.
오른쪽에 벽에 걸려있는 횃불에 노아가 불을 붙였다.
왼쪽의 횃불엔 라이라가 붙이자 모든 횃불이 차례대로 타올랐다.
길게 이어진 복도가 드러나며 수 없이 많은 문이 나타났다.
"어디로 갈까요?"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왜 우리에게 묻느냐는 반응이었다.
"어차피 어딜 고르던 비슷해요.
아무나 마음에 드는 곳으로 골라요."
"크흠. 그럼 내가 골라 보도록 하지.
여기가 괜찮은 것 같군."
오른쪽 벽에서부터 7번째 방이었다.
문 가운데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상하좌우로 문이 열리면서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가로 세로 5m쯤 되는 작은 방.
이젠 이 안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나는 자리를 대충 잡은 뒤에 편하게 앉았다.
"여기가 던전의 시작이니까. 기다리죠."
여기는 최소 30명이 모이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던전이니까.
*
"하암."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심심하네.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가 된 자들이라면 기다려라.
곧 있으면 자격의 증명이 시작될 테니.
"자격의 증명이라."
"여긴 그런 테마인가 보네요."
던전의 테마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정 시간을 버텨야 하는 생존형.
던전을 클리어 해야 하는 격파형.
던전의 조건을 맞춰야 하는 조건형.
여긴 조건 형에 어울린다.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까.
던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라이라는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라이라. 걱정되거나 그런 거 없어?"
"당신. 자신이 없는 일은 안하잖아요. 자신이 있으니까 여기에 왔겠죠."
하얀 연기를 후 하고 내뱉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네.
자신이 없었으면 애초에 오질 않았다.
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라이라가 점점 투명해졌다.
아니, 여기에 있는 모두 점점 투명해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왔다.
"공간이동 마법인가... 고대 문명이 대단하긴 했군."
에리엘이 마법에 감탄하고 있을 때 노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
주변에 200명은 족히 넘을 법한 인원들이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거지?"
",,,여기는 어디야?"
"저기에 엘프다! 엘프가 있다!"
"망할 무기 들어!"
우리를 확인한 용병들은 무기를 치켜들었다.
"강한윤."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도."
물론 내 말을 듣고 긴장을 늦춘 사람은 라이라 말곤 없었다.
피슈웅!
그때 누군가가 발사한 화살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콰직!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막히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는 전투 불가 구역이거든요."
싸우려고 애를 써도 불가능하다.
강제력이 부여되는 공간이니까.
전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검을 내린 이들도 있고.
여전히 검을 들고 대치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사이가 안 좋은 용병단인가 보다.
그렇게 던전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강한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크흐흐! 강한윤 중위!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구만!"
"어..?"
북부로 보냈던 헨리크 공작이 여기에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