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51화
* * *
"강한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걸 제가 알겠습니까. 저도 방금 확인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수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긍정적으로 컵의 물이 1/5이나 남았네. 라고 말해야 할까.
'좋지 않아.'
용병의 숫자가 몰린다는 건 그만큼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전선을 유지할 대비를 미리 해야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이쪽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미리 행동 했다는 게 문제다.
상대의 행동이 더 빠르다.
이건 선제권을 빼앗겼다는 얘기다.
여기서 기세를 돌리려면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하는 편이 나았다.
용병을 모집하는 것은 이미 상대가 해버린 상황이다.
용병의 수가 줄어들면 그만큼 몸값이 올라간다는 것도 문제였다.
뒤늦게 움직여봐야 가성비가 떨어질 뿐이다.
"우리도 움직여야 할까?"
"용병보다는 투석기나 방어에 치중을 올리는 편이 나을 겁니다.
수색은 천족 위주로만 해야겠죠."
정찰, 수색대 인원이 공격당하는 사태는 최대한 피해야 한다.
숲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적들은 어쩔 수 없다.
기습당하거나 침투 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철저히 하는 수밖에.
"일단 시야 확보를 위해서 숲을 어느 정도 밀어버릴 필요가 있을 겁니다."
"으음.. 그 편이 확실히 수비에 도움은 되겠지."
"그리고 마나 지뢰를 많이 심어 놓죠."
나갈 생각이 없으니 굳이 활로를 열어놓을 이유는 없다.
용병을 이용한 공격 타이밍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공격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마나 지뢰는 돈 낭비잖아. 그래도 설치해야 하나?"
"상대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주기엔 마나 지뢰가 효율적이니까요."
마나지뢰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터지고 나서 지뢰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게 가능하다.
그것만으로도 마나지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
상대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심어줄 수 있다.
진군 속도가 느려지고 땅에 마법을 사용해서 마나를 소비해야 한다.
범위계 마법 한 번이면 마나 지뢰는 제거되겠지만 이점은 충분하다.
게다가 제거되지 않은 마나 지뢰가 남아 있다면 또 다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마법 방어구를 장착하면 카운터를 당하긴 하지만 괜찮다.
마법 방어구도 부술 정도로 많은 양의 지뢰를 설치하면 되니까.
"그래서 지뢰만 설치하고 가만히 있자고?"
"저희도 움직이긴 할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쳐 맞기만 할 것 같으니까.
우리도 움직일 필요가 있다.
"라이라."
내가 그녀를 호출하자 벽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실례하겠습니다."
등장한 라이라를 보고 에우제니아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여태까지 근처에 숨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건가.
"..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격이 다르네요."
"집중안하면 안 보일 정도니까 그렇게 시큰둥할 필요는 없는데.
아마 소드마스터 중급까지는 못 알아챌걸?
눈이 좋은 녀석이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라이라가 안심했다는 듯이 대답했다.
암살자가 숨어있는 게 들켰다는 사실은 엄청 치명적으로 다가오겠지.
에우제니아가 붉은 색 드레스를 입은 라이라에게 다가갔다.
"그보다 라이라 당신도 강한윤의 이거인가?"
에우제니아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한 마디로 그런 관계냐고 물어보았다.
라이라가 멈칫했다가 답했다.
"예. 그런 사이죠."
"흐음. 그래."
알겠다는 듯이 에우제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미친 새끼가 맞았어. 여자가 대체 몇 명인 거야?"
"왜 그러십니까. 좀 많긴 한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쓰레기 같은 스펙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는 스킬을 사용해서 영웅을 늘리는 게 낫지.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늘어났다.
"어휴. 그래."
에우제니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라이라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보지 말아줬으면 한다.
바람기를 못 고치는 쓰레기 남친을 보는듯한 표정도 멈춰줬으면 한다.
"그래 내가 다 잘못이지."
"그래 전부 니가 문제야."
한마디도 져주지 않는 에우제니아에게 체념의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라이라를 부른 건 다음 작전을 위해서입니다.
적에게 거짓 소문을 흘리고 이득을 볼 생각이거든."
"적에게 거짓 소문을 흘린다고?"
"라이라가 그거 전문이거든."
정보 길드를 운영하는 암살자니까 전문가 맞지.
"그래. 뭐 나는 그런 쪽에 대해선 모르니까."
에우제니아가 귀찮다는 듯이 답했다.
마음대로 하라는 느낌이다.
"이번에도 대규모 병력 이용보다는 소규모로 게릴라전을 펼칠 예정이고 그 장소는.."
책상 위의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하이벤 산맥 북동쪽에 위치한 던전. 여기로."
"이 곳이라면 던전이 발견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에우제니아가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뻥 뚫려있는 지역이다.
던전 같은 게 보인다면 바로 발견되겠지.
보인다면 말이다.
"지하에 있거든. 이 던전에 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흘릴 거야."
정보는 최대한 적게 흘리는 게 낫다.
조금이라도 많이 알려졌다가 쉽게 파훼당하면 큰 낭패니까.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총 여덟 곳인데.
정보로 뿌리는 곳은 네 곳입니다.
나머지 두 곳은 저희가 사용할 거에요."
라이라와 에우제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 작전엔 나도 싸울 수 있어?"
에우제니아가 몸이 근질거리는 지 기대감을 표출했다.
"음.. 안됩니다."
하지만 안 된다.
"왜?! 아니 시팔 내가 이러려고 사령관했냐? 서럽네! 왜 안 되는데!"
".. 안다이얄 거점을 지키셔야할 거 아닙니까."
안다이얄에 에우제니아가 빠지면 밸런스가 무너진다.
다른 영웅들도 몇 있긴 하지만 전력에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다.
드워프족은 전투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천족은.. 베아트리스? 한숨만 나오는 스펙이다.
호족과 묘족도 있긴 하지만 그들은 영 미덥지 않다.
많은 용병을 보유한 인간 세력이 대놓고 안다이얄을 공격하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안다이얄을 공격해오면 전투할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를 누가 공격해! 험준한 협곡으로 잘도 돌격해오겠다!"
그녀의 말이 맞다.
웬만하면 공격해 오진 않겠지.
짜증을 내는 에우제니아를 뒤로하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그런 것으로 하고 네 명으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작전 인원은 에리엘, 노아, 라이라.
거기에 나를 더해서 네 명이면 충분하다.
"소문은 고대 유물이 잠들어있는 던전이면 되겠죠?
입구는 네 곳 정도만 공개하면 되고... 이 정도면 충분하네요."
라이라가 수첩에 정보를 적어나간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에 이 장소에서 대기해 가능하지?"
"네. 거기서 기다릴게요..
그녀가 평상시처럼 벽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진짜로 나 빼고 작전을 간다고?"
"예."
에우제니아의 표정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
던전으로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기본적인 포션이나 도핑 아이템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여분의 옷가지를 챙기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노아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노아 : 레벨 42]
마나 : 979,937 / 979,937
힘 : 32
체력 : 35
지능 : 10
재치 : 13
저번에 봤던 능력치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녀의 스펙 자체는 나쁘지 않다.
힘과 체력도 레벨에 비해서 준수하다.
문제는 어중간하게 100만을 넘지 못하는 마나였다.
일단 100만을 넘어가야 소드마스터의 조건이 달성된다.
거기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서 벽을 넘냐 못 넘냐는 노아의 노력에 따라 달렸다.
나는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
노아를 성장시키기 위한 아이템을 가방에서 꺼냈다.
[50년 된 마나초]
50년 동안 발견되지 않은 마나초입니다.
섭취 시에 마나가 대폭 증가합니다.
(신선도 : 98%)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정보가 떠올랐다.
이러니 무슨 게임 같네.
배낭에 오랫동안 놔둔 것 치고는 신선하다.
나는 이 마나초를 어떻게 조리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원래라면 포션으로 제조해서 먹이는 게 가장 효과가 좋겠지만 불가능하다.
여기는 안다이얄 고지니까.
막사도 대충 지어놓은 마당에 포션 제조 기구가 있을 리가 없다.
'아. 인벤토리에 쟁여놓을 걸.'
간이 포션 제조기 같은 건 인벤토리에 넣으면 되는 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었다.
카브란 산맥이나 슬로반에 있을 때 했어야지.
에휴. 자책하면서 마나초를 어떻게 사용할 지 고민했다.
'음식으로 만들까.'
포션으로 하지 않는 이상은 효능이 다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에 데코를 하는 느낌으로 만들려고 한다.
옛날에는 요리를 좀 했었다.
그 기억을 살려서 노아에게 요리를 대접해주도록 하자.
취사장에서 취사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미안한데 취사장 좀 써도 되겠나?"
"대위님.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라 힘들 것 같습니다."
아 맞다. 저녁 시간 전이었지.
"그렇다면 음식 조리가 끝난 뒤엔 가능한가?"
"예.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테니 안에 들어가도 괜찮나?"
"으음.."
"감자 정도는 내가 깎아줄 수 있는데."
"아니 아닙니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취사장 빌려 쓰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나는 주변에 있던 작은 칼을 들어서 감자를 깎았다.
취사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선에 걸리지 않도록 잡일을 도와줬다.
"후우."
음식 준비를 끝내고 난 뒤, 이제는 내가 요리를 할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나는 닭을 꺼내서 도막을 쳤다.
그리고 닭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우유와 허브를 넣고 숙성시켰다.
숙성을 시키는 동안 다른 재료를 만들어야 한다.
"혹시 감자 전분 있나? 아니면 다른 전분 종류라도 괜찮은데."
"예 하나 있습니다. 옥수수 전분입니다."
그거면 충분하다.
취사병이 건네준 전분에 물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마늘, 후추, 양파도 넣어서 전분 가루를 만들고 숙성 시켜놓은 닭을 담갔다.
전분이 골고루 묻도록 비빈다음 한 조각씩 꺼냈다.
그리고 기름이 가득한 팬으로 던져 넣었다.
치이이익
기름이 자글거리며 닭이 튀겨진다.
그래. 그냥 평범한 치킨이다.
오랜만에 치킨이 먹고 싶어서 노아의 핑계를 대서 치킨을 만들었다.
오드웰 연합군의 메뉴는 굽거나 튀기는 음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치킨은 안 나왔으니까..
치킨이 튀겨지며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대위님. 이 음식은 뭡니까?"
"이거? 치킨."
"치킨..? 이런 음식은 처음 봅니다."
"그런가? 일단 하나 먹어봐."
취사병에게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바스락
튀김옷이 아주 바삭바삭한 게 딱 봐도 잘 튀겨졌다.
취사병이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
"와."
신세계를 맛본 표정이다.
"어때 맛있지?"
"이렇게 간단한 조리법으로 이런 맛이 난다니..."
치킨을 만드는 건 귀찮긴 해도 맛있다.
음식의 끝판왕이 치킨이라 불리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치킨을 튀기면서 감자도 튀겼다.
접시에 치킨과 감자튀김을 건져 올린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마나초로 완성했다.
치킨과 감자튀김 그리고 50년 된 마나초다.
이제 노아를 불러와서 치킨을 대접하면 된다.
"강한윤 여기서 뭐하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노아가 있다.
저녁 시간이라서 온 거구나.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혼자 왔어."
"그래? 그럼 같이 먹자."
"이게 뭔데?"
내 손에 들려있는 접시를 턱짓으로 가리켯다.
"내가 한 음식."
"음식도 할 줄 알아?"
"당연히 알지."
"..이상한 음식은 아니겠지."
뭘 생각하는 거야.
노아에게 치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빨리 움직였다.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
"빨리 먹어 봐."
".."
노아가 의심의 눈초리를 하다가 다리를 들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바스락.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킨이다.
맛이 없을 리가 없지.
노아의 눈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이게.. 뭐야?"
"내 고향 음식."
아니 고향 음식은 아닌가?
하지만 양념에 버무린다면 엄연한 전통음식이다.
"너무 맛있어서 놀랐어.
그리고 여기 있는 마나초를 보고 놀랐어.
이건 대체 뭐야? 이것도 나 먹으라고?"
"응."
아스파라거스 같은 느낌이라서 괜찮아 보이는데.
"아무튼 고마워 잘 먹을게."
노아는 치킨과 감자튀김을 먹으며 마나초를 곁들였다.
마나초가 조금 쓴 건지 먹을 때 마다 눈을 찌푸렸지만.
치킨이 맛있으니 오케이지.
"하아.. 엄청 맛있었어. 다음에도 이거 먹자. 뭐라고 했지? 치킨?"
"여유가 된다면 해줄게."
노아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줘야지.
치킨이 그렇게 어려운 음식은 아니니까.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간이 막사가 비슷한 구역에 있었으니까.
"오늘 밤에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
"당연하지."
저번에는 에리엘과 시간을 보낸다고 노아랑 못 만났다.
이번에는 꼭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럼.. 조금 있다가 찾아와."
"어? 그래."
그렇게 말하고서 노아가 멀어졌다.
대체 뭐지?
조금 있다가 찾아오라는 말대로 5분 정도가 지난 뒤.
노아가 있는 막사로 들어갔다.
"노아?"
불이 약하게 켜져 있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약한 조명.
그 안에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노아가 있었다.
"어때..? 어울려?"
평상복의 노아가 나를 맞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