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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52화 (52/163)

〈 52화 〉 50화

* * *

칼레보른이 사형을 당하고 이틀이 지났다.

칼레보른의 이야기로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그 녀석이 나쁜 녀석인 건 사실이었고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으니까.

칼레보른 라인에 섰던 녀석들은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빠르게 잊혀지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쩌나.

세계수 인트라넷에는 완벽히 박제가 되어 있는데.

누군가 문서를 삭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에우제니아에게 따로 부탁을 했다.

문서 수정을 아무나 하지 못하도록 권한을 최대한 올려달라고.

대신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 해놓자고.

제 2의 칼레보른이 나오지 않도록 박제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이런 녀석은 한 놈으로도 족하지.

특히 마족이랑 결탁한 녀석이 또 나온다면 문제가 된다.

어디서 입수했는지 모를 계약의 열매가 이 세계에 퍼진다면 큰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근데 대체 어디서 구한 거지?'

계약의 열매는 중부의 망각의 숲과 마족의 지역인 타락한 땅을 제외하고는 구할 방법이 없다.

망각의 숲은 지금 단계에서 들어가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타락한 땅에서 구했다고 하기엔 마족과 연결점이 있을 시기가 아니다.

'마족 녀석들도 벌써 활동을 하는 건가?'

그 녀석들이 활동을 한다면 골치 아프다.

타락한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였다.

마족은 세력이 통합되지 않는다.

통합되려면 많은 싸움을 거쳐야 하고 절대적인 왕이 탄생해야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으니 문제다.

마족으로 스타트하면 타락한 땅에서 하루 종일 치고 박고 싸우는 게 기본이니까.

그래서 성장이 빠르다. 대신 생존율은 보장할 수 없다.

실시간 배틀로얄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타락한 땅이다.

그렇다면 세력을 통합하는 것보다 다른 세력을 건드리는 게 편하다.

오드웰 연합군과 인간 세력을 이간질 시키고 타락하다보면 점점 땅은 마기에 오염된다.

그러다보면 모든 땅을 오염되고 타락한다.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고 세력을 넓힐 수 있다.

거기까지 온다면 마족의 승리와 가까워진 상황이다.

마족 세력의 악마들을 무릎 꿇릴 힘을 모았다면 마왕이 될 수 있다.

강해져서 마왕이 된다면 마기에 물든 땅은 모두 자신의 것이 되니 그대로 승리다.

'그래서 강한 놈들끼리는 잘 싸우질 않지.'

서로 싸웠다가 심한 타격을 입으면 다른 악마들에게만 이득이다.

어느 정도 세력이 만들어진 악마들이라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타락한 땅에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오드웰 연합군과 인간 세력에 수작을 부리고 싶어 한다.

그게 정석이니까.

마족들의 기본 승리루트가 그런 것이다.

그런데 마족들이 기어 나온다는 조짐이 보였다?

이건 타락한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내가 알던 시나리오와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무언가 뒤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힌트는 많았다.

북부에 있어야 할 노아가 남부에 있었다.

NPC에 불과한 라이라가 영웅처럼 활동할 수 있다.

마리아, 마로스 남매를 NPC인 상태에서 등용했다.

헨리크 공작이 먼저 항복 선언을 했다.

결정적으로 칼레보른이 마족과 접촉했다는 증거였다.

'이쯤 되면 내가 아는 건 거의 못쓰겠네.'

상대의 행동을 예상하는 건 가능하지만 확신해서는 안 된다.

맹신하다보면 큰코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쯤 한창 치고 박고 싸워야할 마족 녀석들이 대륙에 진출을 했다.

마족 세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계약의 열매는 저주 계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영웅과 관련이 있다.'

이 단서만으로도 범위는 확 좁아지지만 딱히 떠오르는 영웅은 없었다.

... 전혀 모르겠다.

일단은 내가 하는 것만 잘하자.

나는 눈을 감고 지도를 떠올렸다.

안다이얄 거점 ­ 카브란 산맥 ­ 하이벤 산맥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안다이얄 거점이다.

그 뒤로 카브란 산맥이 있고.

거기서 북동쪽으로 하이벤 산맥이 있다.

안다이얄 거점과 하이벤 산맥 사이는 영양가 없는 지역이다.

거점이 있기는 하지만 점령한다고 좋을 게 없다.

안다이얄 거점과 하이벤 산맥보다 저지대니까.

그럴 바엔 다른 지역을 먹은 뒤에 겸사겸사 점령하는 게 맞다.

안다이얄에서 움직여야 하나..

아니면 하이벤 산맥 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게 좋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중부 쪽을 살짝 맛만 봐봐?

그렇게 어디를 먼저 건드려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강한윤."

"예."

서류를 훑어보던 에우제니아였다.

"진짜 뒤지고 싶냐? 요새 군 생활이 편하지? 응?"

"왜 그러십니까."

열심히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인데.

에우제니아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할 일이 없으면 그냥 밖에 나가던지!

쇼파에 누워서 다리를 까딱거리는 건 뭐하는 짓거리야!"

­퍽!

에우제니아가 던진 펜대가 머리에 부딪혔다.

"아야."

"아야는 무슨 제대로 일 안해?"

"이 자세가 아니면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하아.. 망할 새끼. 부관에 작전 장교만 아니었으면.."

에우제니아가 화를 내면서 다시 서류작업으로 들어갔다.

쇼파에 누워 있으니까 화가 난 건가.

그것보다 자기는 서류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인 것 같다.

평상시엔 뭐라 안 하다가 유독 서류 작업을 할 때만 이런다.

그녀가 이렇게 서류 작업에 화를 내는 이유가 있지.

에우제니아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에우제니아 : 레벨 55]

­마나 : 1,917,267 / 1,917,267

­힘 : 53

­체력 : 55

­지능 : 5

­재치 : 7

힘과 체력에 몰려있는 스탯과 현저하게 낮은 지능이다.

마법에 적용되는 스탯이지만, 그녀가 서류 작업을 힘들어 하는 것과 연관이 없진 않을 거다.

'각인으로 명령해서 서류 작업을 시키고 싶네.'

즐거운 마음으로 서류 작업을 하라고 명령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시도는 불가능했다.

각인의 대상은 아직 라이라 밖에 없었으니까.

에우제니아와 몇 번 섹스를 하긴 했지만 각인을 새기는 데 실패했다.

쾌락을 느껴도 나와 비슷하거나 미만이라는 얘기다.

에우제니아가 말이 안 되는 거다.

방중술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인이 새겨지지 않는다니.

[강한윤 : 레벨 13]

­마나 : 10,977 / 10,977

­힘 : 5

­체력 :8

­지능 : 9

­재치 : 30

지금 내 스탯이 이렇다.

재치에 올인 해서 방중술의 효과를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각인에 실패했다.

에우제니아에게 각인을 해놔야 방중술로 버프를 걸어줄 때 도움이 될 텐데.

'도대체 어디까지 올려야 하지.'

30에서 안 됐다면 35까지는 올려야 하는데.

레벨은 도통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치 스탯을 올리기 위해 레벨을 올릴 생각을 하고 있다니.

옛날의 내가 이 모습을 봤다면 미쳤다고 말할 게 분명했다.

이런 망캐의 레벨을 올리려는 노력을 왜 하냐고 말이다.

­똑 똑 똑.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리자,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앉았다.

쇼파에서 일을 하는 척 서류를 보고 있자 누군가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에우제니아 사령관님. 저번의 요청했던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그래. 책상 위에 놓고 가도록."

부대내의 정보 장교였던 엘프다.

얼굴만 알뿐 얘기해본 적은 없는 상대다.

나는 정보 장교가 다시 나가길 기다렸다.

성실한 작전 장교처럼 열심히 서류를 읽는 척 했다.

고개도 몇 번 끄덕여주고 서류에 동그라미도 몇 개 쳤다.

정보 장교가 나가고 난 뒤에 서류를 대충 집어던졌다.

"휴.."

"넌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에우제니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사령관님은 편하지만 다른 사람은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니 직속상관이 나인데 나한테 눈치를 봐야하는 거 아냐?"

"...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입을 찢어버려야 하나."

에우제니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서류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였다.

"이건 뭡니까?"

다가가서 서류를 집었다.

­고용 가능한 북부의 용병 리스트

제법 흥미로운 제목이었다.

"저번에 받았어야 하는 서류네. 섹스 하다가 못 받았잖아."

"아."

찾아왔던 사람이 정보장교였구나.

그때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는데.

한편으로는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스릴이 넘쳤으니까.

나중에 에우제니아에게 스릴 넘치는 야외섹스를 하자고 말해 볼까.

잡생각을 하며 서류를 집었다.

"용병을 더 고용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당연히 신뢰도 높고 좋은 용병이 있다면 바로 끌어들여야지.

어쩔 수 없는 거야."

용병이라는 족속은 돈만 주면 싸운다.

자원이 많은 오드웰 연합군이니 더욱 많은 용병들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첫 페이지로 용병의 고용 현황이 적혀 있다.

매 달 3만 골드씩 사용해서 용병을 1만 명 수준으로 유지하는 중이다.

이건 괜찮네.

자금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용병의 숫자는 유지하는 게 좋다.

"이번에 용병을 늘릴 생각이야."

"소모전을 유도할 생각입니까?"

"그래. 네가 알려준 대로."

에우제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을 이용해서 소모전을 하라는 얘기를 잘 지키는 중이었다.

신뢰도가 높은 용병들을 고용해서 그들로만 전투를 한다.

게릴라전을 유도해서 적의 병사를 줄인다.

그리고 육성해야 할 영웅에게 경험치를 몰아준다.

영웅을 꾸준히 육성하는 것이 오드웰 연합군의 정석 운영법이다.

"용병을 늘린다면... 하이벤 산맥 근처의 붉은 돼지 용병단이 낫죠."

"그래. 거기가 믿을 만 하니까."

실력보다는 신뢰도가 높은 용병이 좋다.

돈만 받고서 도망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못하는 용병들이 있다.

생업으로 용병 질을 하는 녀석들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전투를 하고 사람을 죽인다.

더욱 신뢰를 쌓아서 더 많은 돈을 받는다.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르다는 걸 모티브로 내세우는 용병단 중에서는 붉은 돼지 용병단이 있다.

내가 아는 한에서 그들이 용병단 중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그 외로도 카브란 산맥과 하이벤 산맥 근처엔 다른 용병단도 있으니 천천히 고르면 된다.

"어디.."

누가 있나 볼까.

기대를 하고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

그리고 그 기대는 곧 침묵으로 바뀌었다.

"강한윤. 뭔데?"

내 반응을 눈치 챈 에우제니아가 펜을 놓았다.

아니 이게 말이 되나?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서류를 에우제니아에게 건네줬다.

­고용 가능한 용병 인원 수

카브란 산맥 : 98

하이벤 산맥 : 182

볼라브 산맥 : 68

오드웰 연합군이 보유하고 있는 용병을 제외한 수치였다.

"이게... 무슨..? 아니 저번 주까지는 천 명은 족히 있었는데. 다 어디로 간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누군가 수작질을 부린 게 분명했다.

***

"강한윤..이라."

한 사내가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걸리는 부분을 입에 담았다.

혼자 이질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강한윤]

­종족 : 인간

­나이 : 불명

­계급 : 대위

­소속 : 오드웰 연합군

­보직 : 작전장교

­임관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음에도 승진함.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음.

'인간이 오드웰 연합군에?'

처음 읽었을 땐 정보가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집사를 시켜서 다시 정보를 얻어오고 나서 깨달았다.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사내는 이 짤막한 정보로 위험을 감지했다.

인간. 작전 장교. 임관한지 반년도 되지 않아서 승진.

그리고 북부로 이동.

북부로 이동했다는 게 가장 걸렸다.

안다이얄 거점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특이한 방법이다.'

넓은 지역의 몬스터들을 끌어들여서 거점을 공격하도록 유인하는 것.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이다.

한 편으로는 전율을 느꼈다.

그런 방법을 사용할 줄 알다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은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내가 적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 정보가 거짓일 가능성도 있다.

상대방에서 일부러 흘린 거짓 정보가 아닐 거란 보장은 없다.

인간 세력을 오드웰 연합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선전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도와준 오랜 직감이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에 적혀있는 사내는 위험하다고.

이 사내가 실제로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무조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거라는 듯이 입가의 근육이 경련했다.

'이런 반응은 정말 오래간만이야.'

마지막으로 반응했던 게 암살의 위협을 느꼈을 때였던가.

사내는 근육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가를 손으로 매만졌다.

"게이브. 북부의 모든 용병들을 고용해."

"예.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의 집사 게이브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바깥으로 나갔다.

"강한윤이라.. 특이한 이름이군."

아인 베르첼이 읊조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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