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1화
* * *
"젠자아아아앙!!!!"
칼레보른이 소리쳤다.
내가 왜 여기에 갇혀 있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다.
내... 내... 계획은 완벽했단 말이다.
에우제니아 그 망할 년에게 사령관 자리를 빼앗아올 계획은 완벽했다.
건수를 잡아서 사령관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북부는 계속해서 무너져 내린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불세출의 영웅.
하이엘프 칼레보른이 나타나면서 안다이얄을 점령하고.
그대로 쭉쭉 밀어나가면서 선제권을 잡는다.
그럴 계획이었건만.
'그.. 인간이 등장하고 나서 꼬였어.'
칼레보른은 강한윤의 얄미운 얼굴을 떠올린 뒤에 이를 악물었다.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나지만 칼레보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악마에게 수명도 바친 판에 이 몇 개 갈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그 인간이 등장하고 나서 꼬였다.
'강한윤...!'
남부의 소문은 미리 들어왔던 칼레보른이다.
남부의 미친 작전 장교가 등장했다고.
혼자서 영지를 전부 돌파해버릴 정도로 뛰어난 장교가 등장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로 영웅 같은 행보로 쓸어버리는 중이었다.
오드웰 연합군의 집중이 그에게로 쏠렸다.
인간 작전 장교 강한윤.
일정 이상 계급이 되는 장교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세계수에 올라와있지 않은 정보일 지라도 개인끼리 연락을 취했으니까.
그리고 북부로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칼레보른은 그 소식에 미소를 지었다.
'네가 관심을 받아선 안 된다!'
뛰어난 작전 장교는 오드웰 연합군에 한 명이면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회의시간을 기다렸다.
회의에 강한윤이 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에우제니아의 행동이 뻔했다.
강한윤
작전장교
새로운 작전
뛰어난 인재
부족한 능력 보조
한참 전부터 에우제니아의 머리 위로 떠오른 정보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에우제니아는 자신의 부족한 작전 능력을 이 인간으로 메우려는 생각이었다.
생각을 숨기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는 모습에 칼레보른은 입 꼬리를 올렸다.
정기 회의가 열리고나서 칼레보른은 강한윤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약하다.'
약하고 부주의해보이는 녀석이었다.
칼레보른도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련을 해본 적이 없지만, 이 녀석은 더욱 심했다.
길가의 성인 아무하고나 싸움을 붙여도 패배할 정도였으니까.
'이런 녀석이 그런 행보를 보였다고?'
칼레보른의 의심이 깊어지는 순간.
강한윤과 눈이 마주쳤다.
의심
경계
그러자 떠오른 메시지.
단 2개 였다.
칼레보른이 여태까지 봐왔던 정보의 최소 개수는 3개였다.
여태까지 최소 정보는 3개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 생각이 부서졌다.
2개다.
그리고 칼레보른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의심과 경계를 하는 이 인간을 살려두어선 안 된다.
안다이얄 고지를 한 달 만에 점령한다고?
우스운 소리였다.
아무리 시간을 줄인다고 한들 한 달 안에 점령하는 건 불가능하다.
라고 칼레보른은 결론을 내렸다.
다른 수가 있는 거다.
한 달의 시간을 벌면 뭔가가 바뀌는 건가?
처음부터 의심과 경계를 해오는 인간.
이 쪽의 수를 예상 했다는 듯이 차분한 대답까지 한다.
무언가가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칼레보른은 가장 가까운 암살길드에 의뢰를 보냈다.
거금 1000골드를 지불하고 강한윤을 죽이라는 의뢰였다.
그렇게 약해빠진 녀석이 암살로부터 살아남는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건 불가능하다.
소드마스터 미만의 상대는 전부 죽일 수 있는 프로 암살자가 갔으니까.
살아남을 리가 없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주변에 조력자라고는 멍청한 시녀밖에 없었다.
그걸 확인했기 때문에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담배
섹스
술
이런 생각을 하는 시녀가 무슨 수를 벌였을 리가 없다.
암살자가 일을 포기했나?
아니면 역으로 매수당한 건가?
그런 의문이 깊어지는 동안 그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안다이얄 고지까지 점령했다.
안다이얄 고지를 진짜로 점령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였다.
그리고 암살 의뢰서를 가져왔다.
'젠장...!'
그제야 칼레보른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신뢰도가 높은 암살길드라서 믿었건만.
암살자 쪽에서 배신을 한 거였다.
궁지에 몰린 칼레보른은 악마를 불러냈다.
하지만 에우제니아가 너무 강했따.
싸움을 패배하고
수명과 젊음을 잃고.
목숨을 잃게 될 처지에 처했다.
'어째서냐...!'
강한윤이 암살로 죽고
에우제니아는 몰락하고
사령관 자리에 내가 올랐어야 했다.
계획은 완벽했지만.
모든 일이 틀어졌다.
칼레보른의 시선이 바닥에 기어 다니는 쥐에게로 향했다.
"뭘 봐 이 새끼야."
찍찍 쮝?
바닥의 시궁쥐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그때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그 소리는 가까워지고 칼레보른의 앞에서 멈췄다.
손이 등 뒤로 묶여있고 에우제니아에게 맞았던 배가 뒤틀리듯이 아프다.
칼레보른은 고개를 들기 힘들었지만.
"야 궁금해서 와봤는데 좋아 보이네."
강한윤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
"야 왜 그러냐.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
수갑과 마나 억제 목걸이가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칼레보른은 쉰 목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런... 망할 새끼가..."
"어우 고귀하신 하이엘프님이 그렇게 말하시면 쓰나. 입 조심 하셔야지."
강한윤이 피식 웃었다.
"왜 그래 임마. 무섭게."
"너만 아니었다면...! 너만 아니었다면 지금쯤이면 내가 북부를 지배했을 거다!"
칼레보른은 진심으로 억울했다.
이 녀석만 아니었다면 북부는 온전히 나의 것이었는데.
밑 작업이 거의 끝날 쯤에 와서 훼방을 둔 덕분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뭘 하고 있는데? 감옥 청소? 혀로 바닥이라도 닦으면 되겠다야."
강한윤의 비웃음에 칼레보른이 더욱 인상을 구겼다.
즐거움
패배한 개를 구경
이번에도 강한윤의 머리 위로 정보가 두 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세 개. 아니 네 개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었을 터다.
망할 능력.
중요한 순간에 쓰레기 같은 성능을 보여주다니.
칼레보른은 하이엘프가 되고나서 얻은 통찰을 지금처럼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혹시 통찰로 생각을 읽으려는 거야?"
칼레보른의 가슴이 철렁했다.
"너가.. 그 ... 그.. 사실을.."
"어떻게 아냐고? 너가 하이엘프가 되고 받은 능력이 그거잖아."
통찰이 어떤 식으로 작동 하는지 몰라도 마음을 비우려면 얼마든지 비울 수 있다.
칼레보른의 통찰을 파훼하는 것은 적당히 노력하면 가능하다.
쓸모없는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워도 된다.
강한윤은 비웃음을 담아서 말했다.
"그거에 의존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지."
"그걸... 너가... 어떻게 아느냐 말이다!!!!!"
"어우 귀청 떨어지겠네. 작게 말해도 들려."
"그걸... 그걸.... 너가..."
강한윤의 비웃음을 보고 있으니 칼레보른의 머릿속 퍼즐이 맞춰졌다.
처음 만났을 때 의심과 경계를 했던 이유.
안다이얄 거점을 한 달 안에 점령할 수 있었던 이유.
저 녀석도 통찰과 비슷한 능력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암살로부터 살아남은 거였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응?"
"암살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은 거냐."
며칠 뒤에 사형을 당한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여기서 살고 싶다고 발버둥 쳐도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모든 걸 내려놓은 칼레보른에게 떠오른 것은 궁금증이었다.
암살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더라도
카브란 산맥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었다.
암살자들을 매수하거나 이기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리고 암살자들을 매수한 방법을 알고 싶었다.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가 거기에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암살? 아 그거 좀 귀찮긴 했지. 근데 잘 처리했어."
"매수했나? 어떻게 매수 했지? 그들의 요구는 적지 않았을 텐데!"
"맞아. 오자마자 칼을 던지더라고. 휴 죽을 뻔 했지. 무서워서 바지를 지릴 뻔 했다니까."
"그들이 쉽게 배신 할리가 없다! 어떤 수를 쓴 거냐!"
강한윤은 칼레보른의 말을 완벽하게 무시하듯이 그 상황을 읊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냐!"
또각 또각.
주위를 느긋하게 걸으면서 칼레보른의 말을 전부 무시한 강한윤이 답했다.
"내가 알려줄 것 같냐?"
"뭐...?"
"패배했으면 조용히 퇴장해야지. 왜 그렇게 말이 많으실까. 응?"
"애초에 연합군을 등쳐먹으려는 시도를 안했으면 그렇게 될 일도 없었잖아?"
"칼레보른. 너는 역시 내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더라. 그래서 더 편했어."
마치 자신을 알고 있다는 느낌의 말투였다.
칼레보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뭘 놓친 거지?
고개를 들자 강한윤의 모습이 보였다.
"뭐 아무튼. 이건 내가 잘 쓸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세계수의 증표가 그의 손에 들려있다.
금고 안에 보관했을 텐데. 어떻게 챙긴 거지?
"대체... 어떻게..."
칼레보른의 말은 강한윤에게 닿지 않았다.
"맞다. 내가 물어볼 건 딱 하나야. 계약의 열매 어디서 얻었냐?"
"..."
그건 절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칼레보른은 마나의 계약으로 맺어서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조차 불가능했으니까.
금붕어마냥 입만 뻐끔 거릴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강한윤은 표정에 웃음기를 지웠다.
"이걸 대답해준다면 내가 암살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얘기하려고 했는데 힘들어 보이네."
"맞다. 이번에 마족 관련으로 엮인 건 좀 그렇더라."
"마족이랑 엮이면 끝이 안 좋은데."
"그래서 내가 특별히 부탁했어. 정보를 불 때까지 고문을 해달라고."
"갈 땐 가더라도 정보는 불고 가야지. 그게 너가 오드웰 연합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이니까."
"자.. 잠깐...!"
할 말을 끝낸 강한윤이 조용히 몸을 돌렸다.
칼레보른에게 정보를 얻어낼 가능성은 없어보였으니까.
'계약의 열매에 대해선 말하질 않네.'
안타까웠다.
얻어낼 게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입만 뻐끔거리는 게 아무래도 저주가 걸린 것처럼 보였다.
마나의 계약 같은 저주 계열의 마법이겠지.
강한윤은 감옥을 나오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저주 계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와 계약의 열매는 관련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감옥 바깥으로 나오자 따스한 햇살이 강한윤을 반겨주었다.
감옥 내부의 습하고 꿉꿉한 공기가 아닌 상쾌한 공기가 폐에 들어온다.
강한윤은 방금 전까지 봤던 칼레보른과 감옥의 풍경을 잊으려고 애를 썼다.
칼레보른이 며칠 후에 사형을 당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약간 불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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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생각을 이내 떨쳐버렸다.
'나는 오드웰 연합군의 작전 장교니까.'
승리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뭐든 처리해야 한다.
그게 승리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니까.
"야. 강한윤. 뭘 하겠다고 저런 녀석을 보러갔다 와."
감옥에서 나오자 에우제니아가 툴툴거렸다.
그녀는 단 둘만의 시간이 칼레보른에게 뺏겼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얻을 만한 정보가 있는 지 확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에휴. 고문하면 어차피 알아서 불 텐데."
"고문으로 얻지 못하는 정보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 아무튼대충 해결 됐지?"
"예."
"그럼 돌아가자."
둘은 마차에 탑승하기 위해 움직였다.
에우제니아의 옆에 붙어서 움직이던 강한윤이 에우제니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돌아가는 동안 마차에서 섹스하는 거 어때? 에우제니아."
"뭐?이거 완전 미친 새끼아냐."
그녀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에우제니아가 먼저 마차에 탑승하고 강한윤이 마차에 올랐다.
'못하는 건가.'
강한윤은 아쉬운 마음이었다.
에우제니아라면 분명히 허락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마차가 출발하자 에우제니아는 천천히 바지를 벗었다.
"에우제니아?"
"싫다고는 안 했어."
그럼 그렇지.
카브란 산맥으로 돌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