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40화
* * *
"어우 날이 좀 차네."
산맥의 꼭대기라서 그런지 조금 춥다.
아래는 더운데 여긴 춥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 지 몰라서 대충 옷을 껴입었더니 부족한 느낌이다.
"강한윤. 준비는 다 됐지?"
"예. 당연히 준비해놨습니다."
나는 준비한 물품들을 꺼냈다.
정제된 1급 마석 큐브
마법 각인 스크롤 혼란, 매혹, 용기
마법 각인 스크롤 부유, 쉴드, 증폭
딱 세 가지 물품이지만 하나하나 네임밸류가 어마어마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정제된 1급 마석큐브는 유니크급 아이템인 만큼 비싸다.
50만 골드의 아이템이 작전 하나를 위해 사용된다니.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싸진 않은 건가?
미묘하다.
"이걸로 뭘 하려고 하지?"
"그건 보시면 압니다."
"나는 그 마석 큐브로 폭발을 일으키려는 줄 알았는데."
"제가 미쳤다면 그랬겠죠."
"강한윤. 너는 이미 충분히 미쳐있어."
에우제니아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이걸로 폭발을 일으킨다니.
핵폭탄의 핀을 뽑아서 손으로 던지는 그런 미친 짓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거기에 안다이얄 거점은 방비가 잘 되어있다.
피해를 준다고 해도 금방 복구할 수 있으니 폭발로 데미지를 주는 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이 마나 덩어리를 고작 폭발에 사용하는 건 섭섭하지.'
더 좋게 사용할 방법은 널리고 널려있는데.
굳이 그런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더 깔끔하게 안다이얄 거점을 먹을 방법이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전략이지? 50만 골드를 허공에 쏟아 붓는 걸 전략이라고 한다면 척추를 꺾어버릴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는 손 하나 안대고 안다이얄을 공략할 수 있을 테니까.
딱 일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전이다.
인간 세력에서 그리폰을 사육하는 게 끝난다면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방법이니까.
"그럼 갈까요?"
"네...네에!'
베아트리스가 나를 등에 업었다.
뽀송뽀송한 그녀의 날개가 얼굴에 닿자 조금 간지러웠다.
"조금 불편하실 테지만 참아주세요..!"
"네."
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대답했다.
가녀린 여자에게 업혀있는 느낌이라 묘하지만 이 날개는 뭔가 포근해서 좋다.
"히얏! 거긴 만지지 마세요!"
"아.. 네."
날개 안쪽은 만지면 안 되는구나.
베아트리스가 천천히 날갯짓하고 몸이 떠올랐다.
오. 이 부유감... 뭔가... 무서운데?
"뭐.. 안전장치 같은 건 없나요?"
"걱정 마세요! 떨어지면 제가 마법으로 받을 테니까요!"
이거 안심해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지만 믿어야지. 그 수밖에 없지.
우리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치가 좋다는 감상보단 무섭다.
오금이 저리는 데 이게 정상이지.
카브란 산맥이 작게 보일 정도로 올라온 우리는 천천히 안다이얄 쪽으로 이동했다.
"조금 더 앞으로 가야 하나요?"
"네. 조금만 더 가야합니다."
완전히 정확하게 안다이얄 위로 올 필요는 없지만 너무 빗나가면 효과가 떨어진다.
거기에 적당한 높이도 맞춰야하니 서서히 밑으로 내려갔다.
"들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죽어야죠 뭐."
하늘에 대한 경계까지 하고 있으면 뭐 어떻게 하라고.
그냥 당해줘야 한다.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안다이얄의 배리어가 보였다.
산맥부근은 튼튼한 성벽을 짓는 데 드는 소요보단 마석을 사용해서 막는 게 낫다.
반원 형태의 보호막을 내려다보면서 적당한 위치를 가늠했다.
'대략 이 정도면 되려나.'
나는 배낭에 넣어놓은 정제된 1급 마석 큐브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한 손에 잡히는 크기지만 이 안에 거대한 마나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마치 우라늄을 들고 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후.. 조금 떨리네.
계획한대로 큐브에 스크롤을 사용했다.
부유, 쉴드, 증폭의 문양이 서서히 새겨진 큐브는 손을 떼자 공중에 떠올랐다.
피융!
그때 옆에 무언가가 공기를 찢고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적들이 저희를 알아챘어요!!!!!"
"맞기 전에 끝내고 도망치죠."
"맞을 것 같아요! 스쳤어요! 스쳤다니까요!"
베아트리스가 요동치면서 움직였다.
밑에서 공격을 해오는 것도 걱정되지만 실제로는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이제는 여기서 잘해야 한다.
"베아트리스 곧 있으면 전력을 다해서 날갯짓을 해야 돼요."
"네? 전력이요?"
"실패하지 마요. 알았죠?"
"네?!"
베아트리스의 비명같은 대답을 뒤로 하고 마법 각인 스크롤을 꺼냈다
마나를 불어 넣자 큐브의 다른 면에 문양이 천천히 새겨졌다.
파지지직!
마나가 스파크를 튀면서 문양을 서서히 받아들였다.
"빨리 카브란 산맥을 향해서 날아요! 전력으로!"
"네...네엣...!"
베아트리스가 대답하고서 힘차게 날갯짓을 했다.
뒤를 쳐다봐서 큐브를 확인했다.
혼란의 문양이 새겨지는 게 끝났는지 보라색의 빛이 사라지고 푸른빛을 냈다.
"더 빨리 날아요!"
"네에엣!"
베아트리스가 조금 고생하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저기에 휘말리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으니까.
애꿎은 베아트리스를 닦달하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베아트리스가 조금 느려.'
곧 있으면 마법 각인이 끝날 시간인데.
카브란 산맥까지 절반은 남은 상황이다.
"더 빨리 날아요!"
"네에에에!"
베아트리스가 울먹이면서 날갯짓을 했다.
콰아아앙!
그때 뒤에서 폭발적인 마나 유동과 함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빛이 세상을 강타했다.
마나 큐브는 공중에 부유한 채로 쉴드를 두르고.
혼란, 매혹, 용기를 증폭시켜서 세상에 흩뿌렸다.
"끼야아아아앗!!!!!!"
뒤를 쳐다 본 베아트리스가 소리를 내질렀다.
빠르게 다가오는 빛에 놀라서 더욱 거세게 날갯짓을 했다.
"더 빨리 날 수 있으면서 왜 안했어요!"
"몰라요오오오!!!!!!!"
빛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 저거에 닿으면 좀 위험한데.
혼란에 걸리면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못할 거고.
이어서 매혹에 걸리면 저 큐브를 향해서 다가갈 거다.
그리고 용기를 부여받아서 더욱 힘차게 다가가겠지.
방해하는 게 있다면 공격하면서 말이다.
"제발."
닿지 마라.
눈을 감고 기도했다.
믿는 신은 없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거밖에 없으니까.
우리 쪽을 향해서 다가오는 빛은 서서히 약해져서 공기로 흩어졌다.
"하아.... 시발..."
위험했다.
카브란 산맥까지 힘들게 날아온 베아트리스는 바닥에 고꾸라지듯이 착지했다.
"힘드러용...."
"굉장히 잘했어요. 베아트리스님."
"네에.."
정말로 잘해줬다.
이 정도로 잘해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베아트리스가 열심히 움직인 덕분에 아무 일도 없었다.
"강한윤! 저게 뭐야!"
우리를 발견하고 뛰어온 에우제니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안다이얄 산맥 주변으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빛을 말하는 거였다.
"안다이얄에 선물을 하고 왔죠."
안다이얄 거점 근처에 있는 모든 몬스터는 큐브를 향해서 움직일 거다.
그것도 용기 버프를 받은 채로.
***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진 빛이 땅을 강타했다.
안다이얄 거점의 배리어가 계속 타격을 받으면서 웅웅 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이런 씨발 저게 뭐야!!!!"
병사가 하늘을 보면서 소리를 지르고 부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안다이얄 거점을 담당하는 공작 프리드헬름이 소리쳤다.
"저희도 파악 중에 있습니다."
"아마 저 빛이 공격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리어가 반응하고 있습니다."
공격을 자동으로 막는 배리어가 저 빛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공격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공격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병사들이 동분서주했지만 시간이 걸렸다.
정보를 종합해낸 마탑의 마법사가 프리드헬름에게 보고를 올렸다.
"평범한 공격 마법은 아닙니다."
"그럼 뭔데?"
부대에서 기르는 돼지를 배리어 바깥으로 보냈더니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뇌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날뛰었다.
흥분하고 발정이 난 채로 사람에게 달려든다니. 그 모습을 떠올린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공격성을 띄면서 부대의 인원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별것 아닌 마법이 아닌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상이 생긴 동물은 저 위에 있는 물체를 향해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안다이얄 주변을 내리쬐고 있죠."
"망할."
모든 상황을 파악한 프리드헬름이 혀를 찼다.
그 말대로라면 주변의 모든 몬스터와 동물이 안다이얄로 향한다는 뜻이 아닌가.
"거기에.."
마법사가 말을 이었다.
"이 배리어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습니다."
정제된 2급 마석 큐브를 사용해서 전개한 배리어였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이 버텨오던 배리어지만 문제가 서서히 생기고 있었다.
현재 소모되는 마나의 양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한 달은 버틸 순 있겠지만 안다이얄로 공격이 몰린다면 버틸 수 있을까?
마법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지금 바로.. 결정을 내려야합니다."
"바로 결정을 내리라고?"
"안다이얄을 버리거나 지원을 기다려야 합니다."
힘들게 먹은 고지를 버리라고? 프리드헬름이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저 빛을 내는 물체를 부숴! 그러면 일이 해결되잖아!"
"이미 시도하고 있지만 타격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프리드헬름이 결정을 내리기를 모두가 기다렸지만 그 대신 뒤에서 다른 병사의 외침이 들렸다.
"망할...몬스터다! 몬스터가 몰려온다!"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
"저 놈의 빛..."
주변을 둘러본 프리드헬름은 땅에 침을 뱉었다.
저 빛 때문에 몰려든 몬스터때문에 많은 병사를 잃었다.
지치지도 않고 쉴 새 없이 몰려든 몬스터들 때문에 잠도 못 잤다.
다른 병사들도 퀭한 눈으로 칼에 묻은 살덩어리나 피를 닦아내는 중이었다.
"후우.."
결정이 늦어버린 이상 열심히 방어를 준비했다.
버티고 버티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 프리드헬름이었지만 그 생각도 점점 사라졌다.
검을 들기 힘들 정도로 지쳤고 사방에서는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몬스터들끼리 싸우고 부딪히면서 숫자가 줄어들기도 했으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빛이 광범위하게 퍼져서 다른 산맥의 몬스터들도 안다이얄로 오고 있었으니까.
"젠장. 몬스터들은 중부에만 많은 줄 알았건만."
북부의 모든 몬스터들을 안다이얄로 끌고 온 것처럼 떼거지로 달라붙었다.
적과 싸워도 모자랄 판에 몬스터에 힘을 소비하고 있으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거기에 힘들다고 지원을 부르면 다른 부대에 피해를 전파하는 꼴이니 그럴 수 없었다.
프리드헬름은 결국엔 결정을 내렸다.
"후우... 퇴각한다. 안다이얄 거점을 버린다."
거점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서 더 큰 소모를 감당하는 건 리스크가 컸다.
웅웅 하고 소리를 내고 있는 배리어의 색도 많이 옅어졌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가능하더라도 배리어가 부서지는 상황이 문제였다,
그는 배리어가 박살나고 모든 병사들에게도 빛이 쏟아지는 걸 상상했다.
'아군끼리 뒤섞여서 공격을 하겠지..!'
서로를 향해서 검을 휘두르는 것만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 퇴각을 준비해라! 이 망할 놈의 산맥을 벗어나자!"
"챙기지 못하는 물자는 버려라! 목숨을 챙기는 게 우선이다! 다시 몬스터가 쳐들어오기 전에 준비해라!"
"죽기 싫다면 빨리 빨리 움직여라!"
'저 망할 빛.'
프리드헬름은 태양처럼 빛나는 또 다른 물체를 보면서 읊조렸다.
'하늘에 무슨 짓을 못하도록 대비를 해야 한다...!'
그는 후퇴를 하면서도 작전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지 않았다.
***
"아무도 없네."
"그렇겠죠."
몬스터는 하루 종일 안다이얄을 향해서 공격하고 결국에는 무너뜨리는 것에 성공했다.
아무리 몬스터와 던전이 중부에 몰려있다 한들 북부에도 몬스터가 없는 건 아니지.
넓은 범위의 몬스터를 전부 불러들이고 피로를 누적시키면 전투력을 상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강한윤! 다음에도 이 작전을 쓰면 쉽게 해결 되겠는데?!"
".. 재정을 거덜 낼 생각이십니까?"
에우제니아의 속없는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50만 골드를 퍼부은 일회용 작전일 뿐이다.
앞으로 점령해야 할 고지가 10개는 되는 데 매번 50만 골드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거기에 상대가 당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한 번 통한 전략이 두 번 통하는 건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다고?"
"앞으로 한 시간 정도겠네요."
마석 큐브의 마나 소모량을 얼추 계산하면 앞으로 한 시간 뒤면 끝이다.
마석 큐브가 평범한 돌맹이로 되기까지 딱 그만큼 남았다.
비어버린 안다이얄을 점령하기 위해서 부대의 병사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 10분!"
정제된 1급 마석 큐브의 마나가 다 했는 지 빛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에우제니아는 힘차게 칼을 휘둘렀다.
"지금이다!"
그녀는 안다이얄을 점령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달려나갔다.
뒤에서 보고 있으니 어린아이가 해맑게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웃기다.
"드디어! 다시 점령이다! 안다이얄!"
에우제니아가 병력을 이끌고 안다이얄 산맥을 올랐다.
그녀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나는 숨이 차는 것을 참아가면서 산맥을 올랐다.
근데 나는 왜 가야하지. 힘들다.
부대의 병사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조금 억울하다.
베아트리스한테 태워달라고 하면 안 되나? 생각했지만 주변에 천족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아니 전부 하늘 위에서 정찰을 하는 중이다.
포기하고 두 다리로 산맥을 올라가는 데에 성공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십팔."
다시는 산을 오르지 않겠다고 전역할 때 다짐했었는데.
정말로 힘들다.
산맥의 거점에 도착하자 선발대와 함께 미리 올라온 에우제니아가 보였다.
"강한윤!!!!!!"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빼액 내질렀다.
"이 새끼야! 거점이 아예 초토화가 됐잖아!!!!"
주변을 둘러보자 몬스터가 때려 부순 거점의 잔해와 인간과 몬스터의 시체만 보였다.
산처럼 쌓여 있는 시체의 위로 파리들이 날아다닌다.
이걸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멀쩡한 시설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 뒤에 입을 열었다.
"뭐... 안다이얄을 점령했으니 된 거 아닙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