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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21화 (21/163)

〈 21화 〉 21화

* * *

"수상하지만... 강한윤 중위가 하는 말이니 믿어야겠지.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니 말이야."

에리엘이 곰곰이 생각을 한 후에 의견을 내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에리엘은 선택지가 없다.

이기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바를 따르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저녁 시간이 지난 후, 제 방에서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때 찾아가도록 하지."

경례를 하고 지휘관 실을 빠져나온 뒤, 한가롭게 작전실로 향했다.

말이 작전실이지, 사실상 내 전용 사무실이나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니 작전실도 안 들어간 지 좀 된 것 같은데?

사실 작전실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수많은 시나리오와 타 세력의 정보가 들어있다.

굳이 작전실로 가서 정보를 취합할 이유도 없고 불확실한 정보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작전실에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지도를 본다고?

차라리 내 방 침대에 누워서 골똘히 생각하는 편이 낫다.

작전실을 향해 느긋하게 걷던 나의 눈에 밟힌 것은 한 건물이었다.

저 곳은.. 마법 소대가 사용하는 전용 건물.

마리아와 마로스가 지내는 곳이었다.

'마법 병과라는 것 자체가 특이하지.'

소대급의 인원밖에 없는 마법사는 한명 한명이 중요한 전투인원으로 분류된다.

마법이라는 건 배울 수 있다고 배우는 게 가능한게 아니니까.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마법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마법사 계열은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법을 연구하는 녀석들이 얼마나 활동하겠냐고.

마법계열 영웅들의 대부분은 체력이 현저하게 낮다.

성향도 온순한 편이 많고. 마법에 대해서 연구하느라 바깥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등용하는 것을 실패해서 엔딩을 볼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 영웅도 존재한다.

마법은 좋아하면서, 전투에도 능하다? 그런 영웅은 흔치 않다.

심지어 전투라고 해도 전열에서 치고 박고하는 것도 아니다.

후열에서 큰 마법을 한 번 사용하는 수준인데,

그것조차도 꺼려하는 게 마법사라는 거다.

'그래서 다 장교급으로 쳐주는 거지.'

오드웰 연합군에 들어오면 햇병아리 마법사라도 소위부터 시작한다.

소대라곤 하지만 저 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장교라는 거다.

한명 한명이 작전에 투입될 만큼 중요한 인재들이다

재능으로 거르고, 성향에서 걸러지면 쓸만한 영웅이 없는 게 당연하지.

마리아, 마로스 남매가 중요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마법 소대가 생활하는 마법관으로 들어가니 한산하다.

어디부터 둘러볼까. 마나수련실로 한 번 가볼까?

아마 여기에서 단련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러자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소리치고 있는 엘프 하룬 대위였다.

"집중해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법이 끊이지 않도록 정신을 유지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식물이 급속도로 자라면서 쇄도한다.

푸른 머리칼의 소녀.

마리아가 식물의 공격을 피하고 얼음벽으로 막아냈다.

하룬 대위의 마법으로 땅에서 솟아난 뿌리가 또 다시 마리아를 덮치지만.

"아이스 스피어!"

마리아의 마법에 의해 얼어붙은 뒤 산산조각이 났다.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네.

대지 마법 중에서도 식물 계열은 얼음에 더더욱 취약해서 그런가?

하론의 마법으로 만들어낸 식물이 얼어붙고 부서진다.

하지만 기세가 밀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마리아였다.

공격을 해보지도 못하고 수비만 하고 있으니까. 절대적인 실력의 격차가 존재한다.

여유로운 하론 대위에 비하면 마리아는 인상을 쓰면서 마법을 시전했다.

버티는 게 한계처럼 보이네. 그때 객석에 있던 마로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라! 강한윤 중위님!"

구석진 곳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귀여운 녀석. 나는 마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하고 있나 보네."

"당연하죠. 약속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로스가 주먹을 내밀었다.

웃기네 이 녀석.

자그마한 마로스의 손에 주먹을 약하게 부딪쳤다.

"너희 누나가 잘 버티고 있네."

"당연하죠! 저희 엄청 강하니까요!"

확실히 약한 모습은 아니다.

얼음 마법에 재능이 있어서 그런 걸까.

"지금 너희 누나랑 너랑 몇 서클 정도 되는 거야?"

"하룬 대위님이 저희 성장이 굉장히 빠르대요! 곧 있으면 3서클이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벌써? 이건 많이 빠른데?

저기에서 싸우고 있는 하론 대위가 6서클 초입의 영웅이다.

인간 세력의 가장 강한 마법사가 8서클 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성장은 매우 빠르다.

서클이 올라갈 수록 느려진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빠르다.

마법을 며칠이나 배웠다고 벌써 2서클까지 오른 거지? 마법의 재능이 미친 수준이다.

게임에서 영웅으로 등장하지 못한 것은 그저, 마법을 단련해고 배울 기회가 없어서인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마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 녀석이 2서클이라.

내 수준은 뭐... 많이 쳐줘야 1서클 정도려나.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아도 약하다.

스탯을 올리기 전까지는 1인분을 하기는 커녕.

마리아, 마로스 남매도 이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인상을 찌푸린 마리아가 아이스 스피어를 양손에 시전했다.

더블 캐스팅을 벌써 사용한다고?

놀랍지만 이게 처음은 아닌지 하론 대위는 무덤덤하게 받아칠 뿐이다.

땅이 솟아오르면서 아이스 스피어가 막히고 땅에 서리가 맺혔다.

이미.. 엄청 강한 것 같은데.

마리아의 마법 수준을 보니 굉장히 강력하다.

사용하는 기술의 숫자는 적지만, 한번 기술이 부딪힐 때 마다 광범위하게 얼어붙는다.

수속성 친화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거야 대체.

또 다시 하론의 공격과 마리아의 방어가 계속되던 도중, 마리아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시선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쪽에 머무른다. 그렇게 한눈 팔면 안될텐데.

"꺄악! 으읏..."

하룬의 식물 마법. 뿌리 강타가 마리아에게 먹혀들어갔다.

공격 당하기 전에 얼음방벽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아프겠다.

벽에 부딪힌 마리아가 땅을 짚고 일어섰다.

"대련을 할 때는 대련에만 집중해주길 바랍니다. 마리아 양."

"..예. 죄송합니다. 하론 대위님."

따끔한 충고를 던진 하론 대위에게 마리아가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했다.

"일단은 휴식을 취하기로 하죠. 대련을 오래하기도 했고. 손님분이 오셨으니까요."

하론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이미 알고 있었구나. 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 알고 있지만 엄청 잘생기긴 했네. 인간인 내가 비벼볼 수 없는 외모였다.

"강한윤 중위. 처음 만나는군요."

"예. 하론 대위님. 만날 기회가 없었죠. 작전을 같이 뛴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이런 의문도 찰나.

"마법을 사용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하룬의 말에 단번에 이해가 갔다.

내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동한 것으로 보인다.

마법사라는 건 동료를 만나기 힘든 법이니까.

"예. 일단은 화염과 대지계열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석적이군요. 좋은 방향입니다. 혹시 마법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안 될건 없죠."

나는 간단하게 화염구를 시전해서 하론에게 보여주었다.

조용히 나의 마법을 관찰하던 하론이 입을 열었다.

"거의 무영창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캐스팅에 안정적이군요.

굉장히 놀라운 실력입니다.

마법의 위력은 약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실력이라면 단숨에 강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하론의 평가를 듣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캐스팅은 어차피 알아서 해주는 거고.

마법의 위력이 약하다는 건 스탯이 낮은 거니까.

애초에 마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강한윤 중위님! 어떤 일로 오셨어요?"

옆에서 마리아가 뛰어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나 보려고."

심심해서 온 거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상처받지 않을까.

헤실헤실 웃는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동생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라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였다.

성인 여성을 이렇게 쓰다듬으면 조금 그런가? 싶어서 바로 손을 떼려했지만.

오히려 마리아는 기분 좋다는 듯 머리를 이쪽에 기대왔다.

"마법 소대는 어때? 할만 해?"

"네! 다들 잘해주시고... 또.. 마법이 적성에 맞는 지 재밌어요! 봐요! 시원하죠?"

마리아의 손에서 얼음 알갱이들이 움직이면서 바람을 만들어냈다.

확실히 성장이 빠르다.

"마로스도 잘하는 것 같고. 마리아도 잘하는 것 같으니 문제는 없어보이네. 정식으로 임관하는 건 언제야? 정해졌어?"

"임관은 글쎄요? 그런 얘기는 못들었어요."

하긴 마법소대에 편입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임관 얘기가 나올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슬슬 임관을 해도 될 수준의 실력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페이스로 성장을 하게 된다면 더욱 강해지겠지.

"그럼 임관은 내가 에리엘 대장님께 건의를 드려봐야겠네. 소위 계급장이 있으면 더 좋으니까."

"진짜요? 저희 벌써 임관하는 거에요?"

"그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느긋하게 있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을 땐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고마워요 진짜로."

마리아가 가볍게 포옹해왔다.

어.. 뭐지? 우리가 벌써 이런 사이가 됐나?

당황스러워하는 동안 마리아는 포옹을 끝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거 해줄게요."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 마리아가 배시시 웃었다.

마리아가 원래 이런 성격인 건지 적응이 안됐다.

게임에서의 마리아는 동생을 잃은 뒤 폭주해서 대사가 없으니까.

이런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

더 좋은 걸 해준다는 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지.

"그래. 기대할 게."

미소를 담아 대답하고 마법관에서 빠져나왔다.

***

침대에 누워서 에리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강한윤 : 레벨 6]

­마나 : 296/296

­힘 : 5

­체력 : 8

­지능 : 9

­재치 : 23

할 일이 없으니 침대에 누워서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니 조금 성장한 느낌이 든다.

마나는 꾸준히 오르는 중이고 지능도 9까지 올렸다.

루프란에서 보급을 습격한 것으로 레벨업을 했으니 성장은 순조롭다.

문제는 경험치 요구량이 얼마나 바뀌었는 지 애매하다는 것.

경험치 요구량이 대략 2배? 3배? 정도 늘어난 것 같은데.

게임과 현실의 체감이 너무 크다보니까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대략 기억나는 대로 레벨별 경험치 요구량을 정리한 뒤.

나의 행동을 분석해서 몇 배나 차이 나는 지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착실히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언젠간 강해지겠지.

게임으로 생각하면 스토리의 초반 부분도 지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면 된다.

오드웰 연합군을 계속해서 승리로 이끄는 것.

그게 나의 할 일이다.

스테이터스 창을 쭉 내리자, 새로운 스킬이 보인다.

[방중술 ­ 정기주입]

­정기를 주입해서 마나를 회복시킵니다.

­마나 회복력이 10% 늘어납니다.

마을에 새롭게 추가된 방중술계 마법이 있길래 구입했다.

레벨이나 스토리 진행에 따라서 마법이 추가되는 데.

예상치 못한 수확이라 바로 구매했다.

지금은 사용할 일이 없는 기술이지만 효과도 나쁘지 않다.

휴식을 취할 때 회복을 도와준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좋은 기술이니까.

그냥 아예 방중술 트리로 올려야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똑 똑똑.

노크 소리만 들어도 노아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평상시 노아가 노크를 하는 것과는 다른 박자였으니까.

문 앞에는 에리엘이 서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지? 강한윤 중위."

"예. 들어오세요."

에리엘이 방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노아 중위는 없나?"

"... 자기 방에 있겠죠."

"여기서 꽁냥거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틀렸나 보군."

쿡쿡. 하고 작게 웃는 에리엘. 왜 이리 섹드립을 좋아해. 아저씨도 아니고.

나름대로 어색함을 타파하려는 노력인건가. 나는 에리엘에게 다른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 있는 옷을 입고 나오시면 됩니다."

"옷으로 갈아 입고 나오라고?"

"예. 그래야 제가 좋습니다."

마사지 하기도 편하고. 눈 호강도 할 수 있으니 1석 2조로 좋다.

에리엘의 눈에 경계가 잠깐 서렸지만, 아무 말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옷이 준비된 방으로 들어가고 3분이 흘렀다.

정상적으로 옷을 갈아입었다면 이렇게 늦을 리가 없는데.

안에서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도 않은 걸 보면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니다.

그저 에리엘이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게 아닐까. 아니면 진짜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문을 열고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

에리엘의 새하얀 피부와 어울리는 하얀색 속옷. 아니 마사지 전용 라텍스 복장.

서양의 섹시 모델 같은 몸매를 한 에리엘이 홍조를 띤 채, 시선을 바닥에 내려 깔았다.

부끄럽다는 듯이 팔로 가슴을 가려보지만. 노아보다는 한 컵은 더 커보이는 가슴이다.

가녀린 에리엘의 팔에 가려질 리가 없었다.

"... 이 옷이 맞나? 강한윤 중위."

"네 맞습니다."

"후우... 제길."

어줍잖게 가리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걸까.

한숨을 내쉰 에리엘은 당당하게 어깨를 피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니 진짜 모델처럼 보인다.

"빨리 시작하지. 강한윤 중위."

"예. 침대에 누우십쇼."

손에 아로마 오일을 바르면서 침대로 안내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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