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13화
* * *
콰앙!
책상을 내리치며 카니안 남작이 소리쳤다.
"다프닐의 성벽이 왜 뚫렸냐고 물었잖아! 그에 대한 대답을 하라고!"
"그것이...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내용인가?
큰 폭음이 들리고 다프닐의 남쪽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오드웰 연합군의 총 공세에 다프닐을 점령당했다.
간단하게 적혀있는 보고서였지만 이것을 읽은 카니안 남작은 화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폭음이 들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많은 양의 화약을 사용해도 무너지지 않을 성벽이 그렇게 간단하게?
'성벽 강화 마법에 얼마나 많은 돈을 부었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뚫릴 성벽이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생채기하나 나지 않던 성벽이었는데.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소드마스터가 와도 부술 수 없는 성벽이라고!'
실제로 소드마스터 초입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기사 파프닐 경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 성벽은 소드마스터 최상급이 와도 단 번에 무너뜨리기는 힘들 거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성벽을 무너뜨린 것이냐....!'
성벽을 어떻게 무너뜨렸을 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성벽 마법을 해제하거나. 힘으로 부수거나.
그게 아니라면 성벽을 무너뜨릴 수가 있을까?
후자는 불가능하다고 소드마스터인 파프닐이 증언했다.
카니안 남작은 결론은 지었다.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어서 마법을 해제했거나. 무슨 짓을 한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성벽이 가볍게 무너져 내릴 리가 없으니까.
"데려와."
남작의 앞으로 끌려온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다프닐의 마법사 아르고는 자신이 끌려온 이유를 단번에 알아챘다.
심각한 분위기와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정보, 다프닐의 함락.
이 정보들을 취합하면 자신을 왜 불렀는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카...카니안 남작님.."
아르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 배신한 거지 아르고?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걸 챙겨준 지 알지 않느냐."
5서클의 마법사에 걸맞게 많은 지원을 해줬다.
마법 연구비, 마나 영약, 연금술 재료 등등.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줬건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아르고를 후원한 것들을 떠올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배신을 한다고?
카니안 남작은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버리고 싶은 분노를 참아냈다.
"저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를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왜 배신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철벽의 요새인 다프닐의 성벽이 왜 무너진 거지?"
"그... 그건..."
대답할 수 없었다.
성벽에 쏟아 부은 마석과 한 치의 오차도 없던 마법들.
그리고 수십 번이나 검수를 마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알 수 없기 때문에 변명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억울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거지?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낸 아르고가 소리쳤다.
"오드웰 연합군에서.. 무슨... 무슨 수를 쓴 겁니다... 저는 정말로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카니안 남작님!!!"
"성벽에 문제는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다프닐의 성벽은 마법이 부여된 채로 견고했고 무너졌던 남쪽의 성벽도 이미 보수작업을 마쳤더군! 이제는 우리가 저 망할 성벽을 뚫어야 한단 말이다!"
카니안이 분노를 담아서 소리쳤다.
"성벽에는 이상이 없고. 때마침 적군은 들이닥친다..? 아 모르시지? 이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게 내 결론이다.
저 새끼 끌고 가서 진실을 불 때까지 고문해."
"카니안 남작님!!!!!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저는 결백합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절규하는 아르고의 목소리는 카니안에게 닿지 않았다.
"카니안 남작님!! 정말 아닙니다!"
저항하나도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아르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어느 샌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망할. 배신자새끼. 얼굴 하나도 바뀌지 않는 군."
아르고가 끌려가는 것을 무심히 지켜본 카니안 남작은 이를 갈았다.
다프닐을 먹힌 것도 문제인데 핵심인 마법사마저도 배신자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드마스터인 파프닐 경이 괜찮다는 점일까.
자리에서 일어난 남작은 병사에게 소리쳤다.
"이봐! 바로브 자작님은 어디에 계시지?"
"본채에 계십니다."
젠장.. 젠장... 젠장....
그 망할 배신자만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터지지 않았을 텐데.
다프닐을 다시 점령하기엔 힘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흑령과 전투를 하면서 병력을 잃고 그대로 퇴전해서 정비도 되지 않은 상태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한 가지.
바로브 자작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카니안 남작은 옷매무새를 다듬고.
바로브 자작이 있다는 방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자 차를 마시고 있는 자작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브 자작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건 어제도 말했지 않은가."
바로브 자작은 며칠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루프란으로 닥쳐온 카니안 남작과 병력들.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피와 땀으로 젖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몇몇 병사들은 무기조차 없다.
부상병들의 암울한 표정을 보아선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상황.
크게 패배한 카니안 남작은 정비를 끝마친 뒤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다프닐을 되찾으려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특히 바로브 자작의 기사단이 제일 필요한 상황이다.
소드마스터 하급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알려진 에리엘을 이기려면 기사 파프닐 경으로는 부족하다.
인명 손실 없이 잡으려면 동등한 실력은 가진 기사가 더 필요하니까.
하지만 카니안 남작에게는 기사들이 없었다.
흑령과의 전투를 떠올린 카니안 남작이 이를 갈았다.
피해를 주는 데 성공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실력이 있는 기사들 중에서 몸이 성한 이는 파프닐 혼자였으니까.
나머지는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상태였다.
'에리엘은 파프닐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성벽을 뚫고 나가려면 실력자가 더 필요한 법.
공성병기를 제작하기에는 자원이 너무나 부족했으니까.
카니안 남작은 흑령과의 전투로 깨달았다.
병사가 많은 것보다 소드마스터 1명이 더 낫다는 것을.
기사들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했다.
괜히 성벽에 많은 투자를 해서 남에게 퍼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방어하나는 무적이라고 생각했건만.
지금은 그 영지조차도 뺏겨버렸으니까.
"나의 기사단이 있다면 이길 수 있나?"
"예. 확실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전황이 불리한 건 아니었으니까.
분노로 인해서 얼마 남지 않은 머리털이 뽑힐 것 같다.
하지만 카니안 남작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한 상태였다.
오드웰 연합군엔 기사 급의 실력자가 적다.
전선의 형태도 다프닐에겐 불리한 상황.
마르벨스와 루프란이 남북으로 둘러싼 형태니, 협공을 하면 유리한 상황이다.
마르벨스의 1개 영지 병력과 자신과 함께 루프란으로 온 0.5개 영지의 병력.
루프란의 원래 병력을 합치면 총 2.5개 영지의 병력이니 머릿수로 밀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렇게 계산을 끝마친 카니안 남작은 웃음을 흘렸다.
다프닐을 다시 점령하는 것은 쉬워보였으니까.
이 겁쟁이 자작만 설득할 수 있다면, 모든 일은 술술 풀린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기사 2명.
상급의 기사 5명을 데리고 있는 자작의 기사단이라면 말이다.
기대하던 바로브 자작의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지원할 수 없네."
"어째서입니까?"
바로브 자작의 얘기에 카니안 남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이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계획이 있는데...!
이 노인네가 뭐라고 하는 거지?
완전무결의 계획이건만, 왜 움직이지 않으려는 거냐고.
지금 당장이라도 이 노인네를 패버리고 기사들을 이끌고 전진하고 싶었지만.
카니안 남작은 그 충동을 이겨냈다.
"루프란의 식량 상황은 좋지 않다네. 곧 다가올 추수철까지 버틸 수가 없어. 나도 지원을 해주고는 싶다네."
카니안 남작이 몰고 온 병력들에 의해서 식량 고갈이 가속화되었다.
지금은 배급을 줄여가며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지만.
전투를 하기에는 모자라다는 게 바로브 자작의 생각이었다.
"식량 없이 전투가 가능하겠는가?"
"...불가능 합니다."
"그래도 이미 동부의 영지에 보급 요청을 했으니, 곧 도착할걸세. 그때까지만 기다려보게나."
"후우.. 알겠습니다. 바로브 자작님."
고집을 내세우려고 했던, 카니안 남작은 포기했다.
군대는 식량 없이 전투를 할 수 없으니까.
루프란의 상황이 그렇다는 데 억지를 부릴 순 없었다.
이 이상으로 무리한 부탁을 요구한다면, 대놓고 무시당할 게 분명했으니까.
'그래... 일단 보급이 도착한다면 전투를 해서 다프닐을 되찾는다.'
카니안 남작은 그것만 생각했다.
***
"뻔 하네."
"뭐라고? 강한윤?"
"아. 별거 아니야."
카니안 남작과 바로브 자작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뻔히 보여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카니안 남작은 다프닐을 되찾자며 공격을 요구할 테고.
바로브 자작은 자원이 부족하다면서 공격을 꺼려하겠지.
'보수적인 바로브 자작은 도박수를 던지지 않으니까.'
애초에 이런 상황을 초래한 카니안 남작의 잘못이었다.
다프닐은 밀리고.
그 덕에 루프란의 상황은 안 좋아질 테니까.
'공격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도 아니지.'
전투를 잘하는 지휘관이었다면 성벽을 저렇게 견고하게 쌓을 생각을 안 한다.
가능하다면 공격으로 상대 진영을 점령하는 게 이득이니까.
카니안 남작이 정말로 뛰어난 지휘관이었다면 수비적인 운영을 택할 리가 없다.
성벽에 과투자를 한다는 것부터 정석적인 영지 운영 방식이 아니다.
그걸 못하니 방어에 치중한 운영을 한다.
수비적이다? 아니다.
그냥 실력이 없는 것일 뿐.
나는 주변을 둘러본 뒤, 노아에게 말했다.
"주변의 적이 느껴져?"
"아니. 아무도 없어."
노아가 '색적'으로 주변에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루프란 근처의 숲에 들어온 것부터 위험한 행동이지만, 이쪽의 지형은 우리 집 안방처럼 꿰고 있다.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쪽 앞에는 누군가 있네. 더 가면 들킬 거야."
"그럼 돌아서 지나가자. 어차피 목적은 여기가 아니야."
루프란의 정찰병과 마주치기 전에 우회한다.
노아의 능력 덕에 빈틈을 찾아 들어가는 것은 쉬웠다.
어차피 정찰병의 루트를 알고 있긴 하지만.
노아의 능력 쪽이 더 확실한 정보니 이용하는 게 낫다.
'이제 슬슬 보일 때인데.'
내가 노리고자 하는 것이 이곳 근처에 있을 테니까.
숲에서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노아가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반응 하리라.
"온다."
노아의 한마디에 우리는 다시 긴장했다.
숲에 숨어서 목표물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드르륵 드륵
마차가 길을 따라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마차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그냥 마차가 아니다.
병사들이 마차를 호위하고 있었다.
평범한 상단으로 보이지는 않는 모습.
딱 봐도 루프란으로 향하는 보급마차였다.
"준비해."
우리는 각자 병사들을 향해 공격할 준비를 끝마쳤다.
조금만 더 가까이 와라.
조금만... 더.
사정거리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시전 한 화염구에 마차가 맞아서 불탄다.
"습격이다! 적의 습격..."
병사의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노아의 화살에 맞아서 쓰러졌으니까.
"젠장. 마법사라니. 마법사부터 쓰러뜨려라!"
검에 마나를 피어 올리는 병사.
오. 소드 익스퍼트 하급에 도달한 녀석들이 있나보네.
호위하는 병사들의 숫자가 꽤 많아서 몇몇이 이쪽으로 달려오지만.
'안 되지.'
노아가 검을 휘두르자 단숨에 병사들의 목이 날아간다.
이쪽은 경지가 훨씬 높은 노아인데 말이야.
저항하는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내가 마차를 불태우고 전투가 끝이 났다.
정찰대 인원에게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한 뒤에 자리를 벗어났다.
[상대방의 보급을 끊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행동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경험치가 들어왔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판이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루프란을 돌려 깎는다.
자멸할 때까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