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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7화 (7/163)

〈 7화 〉 7화

* * *

묘족의 흑령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자존심 강한 에리엘이 자신에게 허리를 숙이다니!

지금 당장이라도 축배를 들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작전의 d­day가 오늘이었으니까.

작전은 간단했다.

다프닐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견제를 하는 것.

그것은 흑령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타격을 입히고 기지로 몰래 복귀하는 건 평상시에도 하는 일이니까.

에리엘의 본대가 활동할 수 있도록 시간을 질질 끄는 것.

그게 오늘 작전의 최종 목표다.

"그림자단 전부 준비하도록."

흑령은 자신의 암살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작전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지루함을 달랠 기회가 왔으니 최선을 다해 진행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프닐을 어떻게 뚫을 건지 궁금하긴 하네에~?'

흑령은 마법으로 떡칠된 다프닐의 성벽을 떠올리고서 꼬리를 부르르 떨었다.

철통요새나 다름없는 다프닐에 많은 병력을 꼴아 박으면서 뚫으려는 건가?

그렇게 되면 마르벨스에서 출동한 병력이 루드밀라를 초토화 시킬터였다.

'마르벨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최소한의 병력만 움직인다면, 다프닐을 뚫는 건 불가능한데에~?'

에리엘이 알아서 준비를 했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흑령이 좋아하는 에리엘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매우 슬플 테니까.

'이번 작전은 이해하기 힘들단 말이지.'

루드밀라에 새로운 작전 장교가 임관했다고 했다.

그 녀석이 이런 작전을 세운거라면 정신이 맛이 간 녀석일 게 분명했다.

지역의 특성도 모르고 무턱대고 밀어붙이다니.

그걸 허락해준 에리엘도 참으로 급급했나 보다. 라고 생각한 흑령이었다.

'뭐 어떻게 되던 간에 나에겐 좋으니까~'

작전이 성공하면 에리엘에게 좋은 일이니 기쁘고.

작전이 실패해서 에리엘이 후퇴를 해야할 상황이어도 좋다.

마르벨스가 밀리고 에리엘이 칼페르로 찾아오는 상상까지 끝마친 흑령은 꼬리를 요리저리 움직였다.

흑령이 자신의 쌍수 단검을 꺼내서 하늘에 비춰보았다.

누구라도 단숨에 베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띈 흑령이 검을 집어넣은 뒤 명령을 내렸다.

"출발하자!"

다프닐에 깽판을 칠 시간이었으니까.

***

"어우.. 뭔 마나통신선 복구 작업이냐."

"이번에도 고라니가 물어뜯었나 보지."

"씨팔 놈의 고라니는 대체 왜 이렇게 많아."

"저쪽 연합군에 세계수가 있으니까 그렇지 에휴. 저걸 불태우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걸."

병사가 고개를 들자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세계수가 보였다.

루드밀라와는 걸어서 반나절은 걸리는 거리인데도 보일 정도라니.

저게 나무야 마탑이야.

병사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오드웰 연합군은 매일 회식이라도 하나?"

"그러지 않을까? 세계수랑 거리가 있는 다프닐에도 영향이 오잖아."

"와. 그건 좀 부럽네."

세계수는 주변의 숲의 자원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그 덕에 고라니나 사슴이 날뛰어서 다프닐에 영향을 준다니.

어이가 없는 이야기였다.

"이게 뭔 고생이냐."

병사가 툴툴거리며 땅에 묻혀있는 마나통신선을 찾았다.

남동쪽으로 마르벨스, 북동쪽으로는 루프란과 이어지는 중요한 마나통신선 이었다.

이게 없다면 지휘관끼리 연락을 하지 못하리라.

그래서 비번인데도 끌려나온 병사는 바닥을 뒤지고 있었다.

"아 시발... 내일 휴가인데."

"내일 휴가라고? 좋겠다. 난 다다음달인데."

"넌 저번에 다녀왔잖아. 연가를 다 썼으면 쉬어야지. 난 반년이나 참았다니까?"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며 찾아낸 마나통신선을 잡아서 쭉 들어올렸다.

땅에 묻혀있던 마나통신선을 쭉 뽑아내면서 끊어진 장소를 찾기 위해 숲을 걸었다.

'슬슬 찾을 때인데.'

오랜 경험에 의하면 이쪽 부근이 주로 마나통신선이 끊어지는 자리였으니까.

실제로도 맞는지 팽팽하던 마나통신선의 장력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마나통신선이 툭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나면서 땅에서 뽑힌다,

끊어진 부분의 상태를 확인한 병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씨발..."

"왜 그러는...데?"

사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질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목에 박히고 그대로 땅으로 쓰러졌으니까.

목을 부여잡으면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케엑...켁...."

"습격이다!!!!!"

"빨리 다프닐에 연락해!!!"

마나통신선이 날카롭게 베여있는 것을 보자마자 도망쳤어야 했는데.

아니. 바로 반응해서 도망갔더라도 실패할 것을 깨달았다.

여유롭게 숲에서 걸어나오는 적을 본 병사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물들었다.

"인간들. 재밌어 보이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놀아볼까?"

다프닐의 병사들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흑령이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

그 시각. 루드밀라의 동쪽.

에일라는 흑령이 출발한다는 전보를 듣자마자 군대를 이끌고 나섰다.

'작전은 간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에리엘의 걱정은 생각한 대로 일이 흘러갈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프닐의 북서쪽에서 흑령이 다프닐을 지키고 있는 병력들을 유인한다.

그리고 비어있는 본진을 공격한다. 나쁘지 않은 내용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덕지덕지 붙은 작전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리엘의 군대가 조금이라도 지체해서 마르벨스의 지원군이 도착하거나.

다프닐에서 눈치 채서 돌아온다면 전투가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야.'

선두는 기동력이 좋은 수인대와 정찰대 인원이라지만 후열은 일반 병사들이었다.

후퇴를 한다면 발목이 잡힐게 분명한 상황이다.

작전을 실패한다면 큰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에리엘도 알고 있었다.

'무조건 이겨야한다,'

속전속결로 흑령과 함께 결판을 내고 다프닐을 점령한다.

그 다음 다프닐 북서쪽으로 지원을 가서 흑령을 도와준다.

그런 구도가 된다면 마르벨스에서의 지원군은 애매한 입장에 처하니 돌아가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완벽한 승리였다.

"모두 속력을 높여라."

에리엘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예상시간보다 빠르게 도착한 다음, 전황을 보고 돌입하려는 생각이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강한윤 중위가 무엇을 보여주느냐겠지만.'

세상은 넓고 특이한 능력은 많다.

하지만 에리엘이 강한윤을 완벽하게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한윤이 정보를 알고 있는 것도,

다프닐을 무너뜨릴 계획이 있다는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강한윤이 그런 것들을 사용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그렇다고 에리엘이 기회를 내다버리는 바보는 아니었다.

완벽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린 판단은 보류였다.

이번 작전으로 강한윤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돌파한다. 반대로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대로 빠진다.'

에리엘이 감수할 리스크는 병사들의 목숨과 자신의 목숨.

리턴은 다프닐의 점령.

실패한다면 속이 쓰릴만한 타격을 입겠지만, 성공한다면 그 이상의 것을 얻으리라.

에리엘은 다프닐에 가까워지는 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강한윤이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인지, 아닌지는 다프닐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을테니까.

***

"푸하."

나는 물 밖으로 나오면서 숨을 내쉬었다.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걸 준비했는지 모른다.

흑령은 다프닐의 병력을 유인하기 위해 북서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테고.

에리엘은 지금 다프닐에 도착하기 직전일 터였다.

'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말이지.'

나는 군화를 벗어서 안에 있는 물을 버렸다.

군화라는 건 여기나 현대나 방산비리가 적용되는 건지 방수기능이 미묘하다.

시계를 꺼내서 지금의 시간을 확인하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여유가 있다.

나는 옷의 물기를 털어내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내가 도착한 곳은 노아와 함께 왔던 마력초가 있던 동굴. 그 곳이었다.

마력초가 귀한 약재긴 하지만 나의 목적은 이곳에 있는 마력초가 아니다.

'마력초는 거의 보너스에 가깝지.'

내가 진짜로 노리는 것은 여기.

마력초가 존재했던 위치의 천장.

2미터쯤 되는 곳이라 손이 쉽게 닿지는 않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천장의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으니까.

여기가 다프닐 남쪽 성벽의 바로 아래라는 것.

지도로 보면 아주 미묘하게 다프닐의 성벽과 걸쳐있는 부분이다.

저번에 여기로 온 이유는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버그인지 아니면 제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폭발물을 터트리면 성벽에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거기에 중요한 건 트루데미지로 박힌다는 점이지.'

원래대로라면 성벽을 이정도의 폭탄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자리는 성벽 내부에서 터트리는 판정이라 방어력 강화 마법과 마법방어력 마법을 무시한다.

내구도에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게 가능했다.

[끈적거리는 접착폭탄]

게임에서 다프닐의 성벽 내구도는 2000.

끈적거리는 접착폭탄의 데미지가 250이었으니 10개면 충분히 성벽을 부수고도 남는다.

내가 이걸 괜히 10개나 만든 게 아니었다.

나는 천장부터 차례대로 폭탄을 부착하고서 마나회로를 쭉 이어 동굴의 입구까지 끌고 왔다.

마나를 조금이라도 흘리면 접착폭탄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고 무지막지한 폭발이 일어날테니까.

다프닐의 작전 시간까지 앞으로 30초.

나는 천천히 심호흡하면서 30초를 센 뒤 마나를 흘려 넣었다.

­콰과과과과광!!

동굴이 무너질 정도의 강력한 폭발과 동시에 나는 호수로 몸을 던졌다.

'내가 할 일은 여기서 끝났거든.'

나머지는 에리엘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

"... 에리엘 대장님. 맞습니까? 그 인간이 우리를 속인 건 아니고요?"

"우리가 조금 빨리 도착했을 뿐이다. 몸을 숨기고 경계를 서라."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견고한 다프닐의 성벽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강한윤 중위가 대기를 하라고 했던 장소였다.

주위에서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지금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남은 작전시간은 단 2분.

에리엘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올렸다.

"에리엘 대장님."

"아직 1분 남았다. 기다려."

"이대로라면 마르벨스에서 지원이 올 겁니다. 빨리 판단을 내리셔야합니다."

인간을 믿는다니 에리엘 대장님이 홀리기라도 한 건가?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 장교 레프릭스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부대원들이 동요를 하고 있었다.

오드웰 연합군에 찾아온 인간이 수상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한 번 믿어보기로 결심한 이상, 작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신뢰해야 할 대상이었다.

"작전 시간 30초 남았다. 대기해라."

에리엘은 시계를 보면서 작전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0초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인간이... 우리를."

그 순간.

­콰과과과과과광!

폭발음이 들리면서 땅이 크게 흔들렸다.

지금 무슨 일인지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대원들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다프닐의 성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저기에...!"

"무...무슨..."

방금 전까지도 견고함을 자랑하던 다프닐의 성벽은 온데간데 없었으니까.

무너진 잔해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다프닐의 무너진 성벽을 보자마자 에리엘은 땅을 박찼다.

무너져내린 성벽에 당황하고 있는 다프닐의 병사들을 향해서 도약했다.

"모두 다프닐을 향해 돌격해라!"

강해봐야 소드익스퍼트 초입에 불과한 병사들,

그들이 소드마스터의 초입에 오른 에리엘의 검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리엘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 마다 병사가 셋 넷씩 가볍게 도륙 나버린다.

"에...엘프다! 적이다!!!"

"젠장 남쪽 성벽이 뚫렸다!!!!!!"

상황을 알아차린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오지만.

에리엘에게 합류한 병사들의 기세를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크윽...젠장."

"막아라! 물러서지 마라!"

다프닐에 몰려드는 적군을 막기 위해 검을 들어올린 병사들이었지만.

선두에 선 에리엘을 보고서 다들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1합을 겨누는 것도 불가능한 상대에게 덤빈다는 것은 그야말로 개죽음이니까.

다프닐의 병사들은 대치만 할 뿐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항복한다면 죽이지 않겠다! 투항해라! 반항하는 적은 죽이겠다!"

그 모습을 본 에리엘이 승리를 확신하며 검을 치켜 올렸다.

­띠링.

[다프닐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행동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이후 수십 분이 지나자 또 다른 메시지가 출력된다.

[다프닐이 점령되었습니다!]

[공적을 계산하여 경험치를 받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역시. 빈집인 다프닐이 에리엘을 막는 건 불가능하지.'

다프닐의 영주 카니안을 호위하는 기사.

파프닐 경이 없다면 에리엘을 상대할만한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파프닐은 당연히 흑령을 잡으러 갔을 테니까.'

소드마스터인 파프닐이 없는 다프닐을 점령하는 것 정도야 에리엘에게 식은 죽 먹기다.

다프닐이 어떻게 함락 당했을 지 뻔히 보였다.

'다프닐의 영주 카니안 남작. 다프닐은 잘 먹을 게.'

나는 다프닐을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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