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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5화 (5/163)

〈 5화 〉 5화

* * *

"또 칼로 위협하는 건 아니겠지?"

"안 해. 너가 나한테 협력하겠다며. 그럼 나도 협력 해야지. 당연한 거 아냐?"

노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반대로 내가 완전히 신뢰하긴 힘들었다.

어제 목에 칼을 들이댄 상대랑 살갑게 지낸다는 건 쉽지 않다.

거기에 단 둘이 행동을 한다?

노아쪽에 무슨 속셈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냥 믿어 봐야 하나?'

게임에서는 설득에 성공하면 5일간 안 좋은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정보가 없어서 어떨지 모른다.

게임 속 세상. 게임에 기반했으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서 노아와 함께 루드밀라 북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사유는 오늘도 정찰이다.

어제처럼 정찰을 나간다고 하니, 에리엘이 호위를 붙여주겠다고 했다.

호위를 하겠다고 온 사람이 어제 칼을 들이 댄 노아라니.

노아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의심이 서려있었다.

말이 호위지, 사실상 감시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경을 끄자. 그래.'

많은 것에 신경을 쓰면, 내가 하려는 것도 제대로 못할 수 있으니까.

'정화'

나는 출발하기 전에 시장에서 마법책으로 배운 '정화'를 시전 했다.

손에 들린 기름 플라스크가 잠시 빛났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더러움을 없애주는 신성계 마법인 '정화'

신성력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마나만을 사용하는 이 마법은 배우기도 쉬웠다.

1티어에 해당하는 기초 마법이었으니까.

동네 마법가게에 가면 파는 수준의 간단한 마법인 만큼 효과는 미미하다.

정화의 텍스트 설명만 읽어도 어느 정도의 성능인지 가늠할 수 있다.

[더러운 물질을 정화합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설명.

버프가 걸리는 것도 아니고, 오염된 물질을 정화하는 게 전부인 스킬이다.

'거기에 성능도 애매하지.'

오염된 아이템에 정화를 쓰면 '정화된 찌꺼기' 라는 잡템만 나올 뿐이다.

이미 망가져버린 물품은 되돌릴 수 없다는 설정인 건지.

몇 번을 시도하더라도 똑같은 결과만 나온다.

당연하지만 쓰레기인 이 마법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쓰레기 마법을 기름 플라스크에 퍼붓고 있었다.

"...인간. 도대체 뭘 하는 거야?"

내가 이런 뻘짓거리를 계속해서 반복하자.

노아가 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미안하지만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블블에도 당연하지만 이스터에그가 존재한다.

수 많은 이스터 에그 중에서 가장 빨리 발견 된 이스터 에그.

'축복 부여'

처음 발견 된 이스터에그인 만큼 조건도 간단했다.

물이나 기름에 첫번째로 정화를 사용하면 '정화된 물' 혹은 '정화된 기름'이 나온다.

거기에 계속해서 정화를 시도하다보면 언젠가는 축복이 부여되고 성능이 강화된다.

거기에 보너스도 존재한다.

축복 부여가 성공하면 미량의 행동 경험치도 획득할 수 있으니까.

현재 1레벨에 머물고 있는 나에겐 그 조금의 경험치가 적은 게 아니었다.

1레벨의 경험치 요구량은 매우 낮았으니까.

빠른 2레벨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행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진행하려면...'

[축복이 부여된 기름 플라스크] 이 아이템이 무조건 필요하니까.

"축복을 부여하려고."

"축복을 부여한다고?"

노아가 비웃음을 섞어서 말했다.

축복을 부여하려면 세계수를 지키는 신관을 찾아가야 하는거 아냐? 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그런 노아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정화를 시전 했다.

'이제 슬슬 될텐데.'

­정화.

몇 번째 시전했는 지 모를 정화.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마나가 다시 차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나를 쥐어짜 정화를 시전 했다.

'됐다.'

기름에 노란색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노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진짜라니까. 왜 나를 못 믿는 거야? 내 능력이 뭐라고?"

"...모든 정보를 얻는다고 했지."

"난 거짓말 안 해."

[기름 플라스크에 축복을 부여했습니다!]

[행동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축복이 부여된 기름 플라스크] 제조를 처음으로 성공한 나는 만들어진 아이템을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 또 다시 축복을 부여하기 위해 기름 플라스크를 꺼냈다.

'경험치만 아니었다면 그냥 경매장에서 구매했을 텐데.'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가다 행위는 웬만하면 지양하는 편이지만.

돈도 인맥도 아이템도 없는 내가 성장을 하려면 이런 소소한 것에 매달려야 한다.

최소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힐 때까지 이득이 될 만한 노가다는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보다 이런 시스템 창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안했어.'

리얼리티 모드니까. UI는 최소한으로 띄워줄 거라 생각했지만.

게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듯이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원래대로 라면 에리엘을 설득에 성공했을 때부터 떠야 정상이었으니까.'

게임이었다면 설득에 성공했습니다!

중위의 직책을 받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쉴 새 없이 메시지가 떠올랐을 터다.

'다른 메시지는 안 떠오르나? 메뉴창에서 달라진 건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UI창을 불러봤지만 그대로였다.

스테이터스 창 하나 뿐.

나는 실망하며 UI창을 닫았다.

'다른 사람과의 호감도 표시.... 아니 최소한 다음 레벨까지의 경험치 정도는 알려줄 수 있잖아.'

영웅들의 정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감도였다.

다른 영웅들의 호감도가 몇 인지 알아야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지도의 정보나 경험치나 이런 건 의미가 없다.

이미 머릿속에 다 저장되어있는 데이터니까.

내 옆을 따라서 걷고 있는 노아.

그녀의 최초 호감도를 모르는 이상, 호감도가 어디까지 올랐는지 알 수 없다.

'호감도에 따라서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니까.'

호감도 범위를 분류하면 0~30은 험악, 31~60은 보통, 61~80은 호감, 81~100은 신뢰다.

이성이라면 호감 단계까지는 들어가야 바디터치가 가능한데 정보가 없다.

이렇게 되면 대략 때려 맞추는 수 밖에 없다.

'대략... 20 후반 정도일까. 낮으면 15? 20? 젠장.'

호감도가 수치가 고정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 대상마다 랜덤하게 부여된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호감도 창! 이거 하나가 없다는 게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여자의 반응을 보면서 호감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 내라고?

게임은 고인물이지만 여자에 대해서는 청정수인데?

'...어렵네.'

머리가 아프다. 일단 이 문제는 보류해두자.

노아를 어떻게 구워 삶을 지 생각하는 건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되니까.

나는 다프닐 서쪽에 위치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숲에 도착헀다.

특징이라고 해봐야 커다란 호수가 있는 것 뿐이지만, 나의 목적지는 여기가 확실하다.

내가 이 곳에서 멈춘 이유를 모르는 노아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맞아? 여기서 대체 뭘 할 건데?"

틱틱대는 노아를 내버려 두고 나는 배낭을 땅에 내려 놓고 아이템을 꺼냈다.

내가 배낭에서 꺼낸 아이템은 버프형 포션이었다.

[요정의 눈물[

­물속에서 30분간 호흡이 가능해집니다.

앞으로 숨을 참은 채로 수영을 해야하니 이 아이템은 필수였다.

나는 작은 플라스크 병 하나를 노아에게 건넸다.

"뭐야?"

"먹어두라고. 헤엄칠 수 있어?"

"당연하지. 날 뭐로 보는 거야?"

"숨을 참은 채로 20분은 헤엄쳐야 하는데?"

아무리 신체 스펙이 높은 노아라도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노아는 들고 있는 플라스틱 병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

"믿기 싫으면 믿지 마."

가만히 있는 노아를 내버려두고 먼저 들어갈 준비를 끝마쳤다.

"그럼 내가 앞장설게."

노아가 먼저 간다고 한들 길을 모른다.

숨겨진 장소로 가기 위해선 길을 아는 내가 앞장 서는게 맞으니까.

나는 호수로 가볍게 점프해서 들어간 뒤, 숨이 쉬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어서 노아가 따라 들어오고 나는 어두운 호수의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쭉 내려가서 동쪽 벽을 따라 이동하고 해초에선 남쪽. 막다른 벽이 보이면 다시 동쪽으로.'

기억을 떠올린 대로 차분히 이동했다. 조금이라도 길이 틀리면 위험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수도 없이 와본 장소니까. 위에서 희미한 빛이 보인다.

저 빛을 따라가기만 하면 원하는 장소가 나올 터.

"푸하아."

2m 쯤 되는 높이의 동굴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벽 곳곳에 박혀있는 발광석과 마나석. 내가 찾으려고 한 장소가 맞다.

"여기에 이런 곳이..?

뒤 따라온 노아가 놀랍다는 듯이 읊조렸다.

'평범한 사람은 찾을 수 없어.'

맵 곳곳을 다 누빈 고인물들이 발견한 동굴이니까.

나는 옷에 스며든 물을 대충 짜고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 발광석이나 마나석이 아니었으니까.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벽에 박혀있는 발광석의 개수가 줄어든다.

저쪽 모퉁이를 지나면 발광석이 하나도 없는 장소가 나오겠지.

'역시.'

기억과 다르지 않는 장소.

완벽한 어둠 안에 유유히 피어있는 꽃을 발견했다.

[50년 된 마나초]

­오랫동안 마나의 질이 좋은 곳에서 자란 마나초입니다. 섭취할 시에 마나가 크게 상승합니다.

게임 속이었다면 이런 텍스트가 떠올랐겠지.

나는 푸른 빛을 은은하게 내고 있는 마나초로 다가갔다.

이것을 먹는다면 마나의 양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난다.

'하지만 내가 먹기엔 좀 아깝지.'

힘 5, 체력 5, 지능7, 재치23이라는 좆망 스탯을 가진 내가 먹어봐야 제대로 된 효율이 나올까.

혹여나 먹는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먹을 생각이 없었다.

"와.. 이게 몇 년 된 마나초야 대체.."

마나초를 본 노아가 감탄했다.

마나초는 품질이 좋을수록 하늘색으로 빛을 낸다.

하지만 어둠을 밝힐 정도로 빛을 내는 마나초는 보기 드문 양질의 아이템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게 있었다.

'정보가 바뀐 게 있는 지 확인해야 해.'

나는 마나초가 피어있는 쪽의 벽을 몇 번 두들겨 보았다.

'역시 바뀐 건 없어.'

이대로 진행한다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겠지.

나는 미소를 지은채로 마나초로 다가갔다.

마나초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딴 뒤에 배낭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노아가 아쉬운 소리를 낸다.

강해지고 싶어 하는 노아에겐 탐나는 보물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특히 마나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가진 노아다.

이 마나초를 먹는다면 전투지속력이 올라가니 효과가 탁월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노아는 다른 방법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영웅이다.

중요한건 잠재력이 바닥인 내가 1인분을 할 수 있게 성장을 하는 거니까.

'내가 강해지려면 멀었지만.'

생각하는 그림이 완성된다면 고인물다운 포스를 내뿜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아주 많이.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노아와 에리엘의 성장이 필요하다.

특히 채음보양을 사용할 수 있냐, 없냐가 큰 영향을 끼치리라.

'...오늘부터 시도해볼까.'

"노아. 협력하겠다고 했지?"

"...어. 그런데?"

나의 질문에 꺼림직 함을 느꼈는지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대답했다.

"오늘 저녁에 내 방으로 와. 안 오면 강해질 기회를 버리는 거야."

나는 노아에게 미끼를 던졌다.

***

­똑똑똑.

방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자 노크소리가 들렸다.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방문을 열자 꺼림직하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다크엘프 노아가 보인다.

아무래도 호감도가 높지 않아서 그런 것 처럼 보인다.

저녁에 다른 사람의 방으로 들어간다는 건 어지간하면 하지 않는 일이니까.

"벌써왔네. 들어와."

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어 가버렸다.

꾸미지 않아 침대 하나 밖에 없는 황량한 방.

이제야 살기 시작한 방에 사람 냄새가 나는 흔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노아가 도착했으니 준비해놓은 아모라 향에 불을 붙인다.

아로마의 향이 방안에 돌기 시작하자 노아의 귀가 움찔거렸다.

엘프는 숲에서 생활하는 종족이다.

식물에서 추출한 향을 맡게 하면 당연하게도 효과가 좋다.

엘프는 아로마 향을 맡으면 휴식 효과와 긴장 완화로 인해 회복력이 올라간다.

노아도 마찬가지로 처음보다 긴장이 풀린 얼굴로 아로마 향을 맡고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탈의실로 들어가면 내가 준비해 놓은 옷이 있어. 그걸 입고 나와."

내가 준비한 옷은 아로마 테라피를 위해서 구입한 옷이었다.

천의 면적은 가슴과 음부를 가리는 정도의 작은 수준.

노아가 과연 그걸 입고 나와줄까.

입고 나온다면 속행이다,

하지만 욕을 하면서 나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중술 계의 채음보양 트리는 포기하는 수밖에.'

방중술을 토대로 성장을 한다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성장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현재로선 그나마 빠른 길이 방중술일뿐이니까.

"...젠장."

문이 열리고 작게 읊조리는 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조명을 약하게 해두었는데 그 아래로 얼굴을 붉힌 노아가 보인다.

부끄럽다는 듯이 팔로 가려지지 않는 가슴을 가린다.

나머지 손은 작은 면적의 팬티를 가리려는지 아래로 향해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가 취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뭘 할 건데. 빨리 해."

노아가 신경질 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방금전까지 아무 생각도 없었겠지만 마사지 전용 복장을 보고서 여러 생각이 들었겠지.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따라주는 것을 보니 이미 결정을 내렸다.

강함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

"저기 침대 위에 엎드려."

"엎드리라고?"

"어."

"... 이상한 짓을 하면 죽여버릴 테니까 각오해. 인간."

노아가 살기를 흘리며 침대 위에 엎드렸다.

탄력 있는 엉덩이와 가려지지 않는 가슴의 볼륨이 옆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준비해놓은 물건을 꺼냈다.

"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거니까 오해 하지마."

"..뭐? 흐읏.."

노아의 허리 위로 차가운 아로마 오일을 흘리자 부르르 떨며 신음을 냈다.

놀라서 이런 반응을 보였겠지만 아직은 이른데.

[방중술 ­ 마사지 ]

­대상의 신체회복 속도를 상승시킵니다.

­대상의 마나회복 속도를 상승시킵니다.

­대상의 신체능력이 10% 향상됩니다.

­대상의 경험치 획득량이 10% 상승합니다.

­약한 쾌락을 느낍니다.

­호감도가 약간 증가합니다.

현재 가진 돈을 다 털어 구매한 스킬.

이걸 이용해서 노아의 호감도를 올릴 생각이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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