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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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작전실로 들어간 노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 온 작전 장교가 있다는 얘기만 들었지.
인간이라는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어째서 이딴 종족을 받아들인 거지?'
노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종족이 아닌가.
세계수의 번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엘프와는 근본이 달랐다.
'거기에 이따위 인간이 중위라고...?'
지금 당장 툭 치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이 약하고 느껴지는 마나도 빈약하다.
이 부대에 있는 병사 아무나 데리고 와서 대련을 시켜도 가볍게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노아는 그런 인간이 중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단은 임시 직책으로 중위가 된 강한윤이라고 합니다. 물론, 임시니까 편하게 불러주셨으며 합니다."
인간은 가볍게 자기소개를 끝낸 뒤, 정찰분대에 이번 정찰의 의미를 설명했다
"정찰을 나가서 다프닐의 정보를 얻어낼 겁니다.
자세한 것은 에리엘님과 얘기를 나눈 사항이니 제 지시를 잘 따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한윤이 열심히 설명을 했다.
하지만 노아는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이 인간이 무슨 수를 쓴 게 분명해.'
무슨 수일까.
노아는 곰곰이 생각했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대륙은 넓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법이나 숨겨진 마도구가 많은 법.
노아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인간이 그 중에서도 정신계에 속하는 위험한 능력이나 마법을 숨기고 있다면?
'그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야... 비열한 인간...'
지금 당장 처리해버릴까? 하고 생각한 노아였지만 시기상조였다.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고 난 뒤에 죽여도 늦지 않았다.
아니. 죽이기보단 증거를 제출해서 고문을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일단은 순순히 따라가자.'
계속해서 남을 속이려고 하다보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는 법.
꼬리가 길면 잡히기 마련이다.
이번 정찰에서 인간이 의도하는 바가 드러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를 속이더라도 자신은 속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노아는 인간의 지시사항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수상해.'
다프닐까지 향하는 길은 어렵다.
위험천만해서 어려운 게 아니라 길을 구분하기 쉬운 지형이 없기 때문이다.
노아는 엘프라서 길을 잃지 않는다지만.
저 인간은 대충 주변을 슥 훑어보더니 다프닐로 향하는 길을 손쉽게 찾아냈으니까.
'다프닐에서 온 첩자인가?'
아니. 그저 다프닐 근처에서 생활하던 인간일 수도 있었다.
이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숨을 죽인 채로 인간의 행동을 지켜보던 노아는 놀랐다.
'여길 들어간다고..?'
노아가 한마디를 할까 했지만, 앞장서는 것은 저 혐오스러운 인간이었다.
'오히려 잘됐어.'
이곳은 정찰병들이 꺼려하는 곳이며 실제로도 잘 오지 않는 곳.
한걸음조차 걷기 힘든 다프닐의 지뢰지대였으니까.
지뢰가 폭발할 만큼 최소한의 마나석만 있어서 마나감지로도 탐색하기 어려운 게 마나지뢰다.
소량의 마나로 폭발하는 특성을 가진 지뢰는 밟으면 곧바로 터져버린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인 노아의 경우엔 마나 쉴드로 충격을 막아낼 수 있겠지만.
일반 병사의 수준이라면 순식간에 발목이 날아 가버린다.
'무모한건지. 멍청한 건지.'
인간이 다프닐의 근처까지 온 것은 우연이었고 지뢰지대가 여기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노아는 경멸을 담아 웃었다.
몇 발자국 앞으로 걷다보면 폭발음이 들리면서 인간이 터져버리겠지.
그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기지로 복귀하면 된다.
'....?'
하지만 한참을 걸어도 터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지뢰를 전부 해체하면서 숲을 뚫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쭉쭉 진행하다보니 어느덧 성벽이 보이는 지점.
"이제 제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해주세요."
인간은 정찰을 출발하기 전 새총과 가속 주문이 있냐고 물어봤었다.
다프닐의 근처까지 침투해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고작 새총을 성벽에 쏘는 거라니.
'저게 중요한 정보라고? 그럴 리가 없어!'
정보 획득이 아니다. 오히려 신호를 보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는 신호?
아니면 성벽에 돌맹이가 부딪히는 순간 인간 세력의 적들이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
몰려오는 적들을 상상한 노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쓸모없는 인간을 보내서 엘프 장교 하나와 교환한다면 이득이니까.
오드웰 연합군에 큰 타격이 되리라.
'더러운 인간들 같으니.'
추잡하고 더러운 인간들다웠다.
하지만 이쪽에서 먼저 발견해내 처리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겠지.
"인간. 속셈이 뭐지?"
노아가 검을 뽑았다.
***
"노..노아 중위님."
노아의 돌발 행동에 오크와 엘프 병사가 소리쳤다.
갑자기 팀원에게 칼을 겨누는 상황에 당황스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인간. 진실을 말하면 살려줄 생각이 있어."
"진실?"
"그래. 진실. 성벽에 돌맹이 따위를 던지는 게 정보수집에 들어가나?"
게임이었다면 [불화가 발생했습니다!] 라는 메시지 한줄로 간단히 정리가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목에 닿아있는 검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 이게 터지네.'
노아의 인간혐오가 기어코 발동해버렸다.
나의 행동을 걸고넘어지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의심하기 시작하면 뭐든 가능하다.
인간이면서 오드웰 연합군에 합류한 것부터 시작해서 왜 정찰을 나가는지.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네.'
에리엘에게 했던 것처럼 또 다시 노아를 설득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목과 몸이 분리될 상황에 처했으니까.
노아의 살벌한 눈빛으로 봐서는 지금 내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
하지만 지금부터 얘기하는 걸 일반 병사가 듣기에는 조금 그렇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머지 두 명은 기지로 복귀하도록."
"하.. 하지만.."
"복귀해. 명령이야."
아무리 임시라고 한들. 나도 중위의 직함이다.
내가 명령을 내린다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겠지.
나와 노아의 눈치를 살피던 두 명은 조용히 왔던 길로 숲을 떠났다.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
"방금 성벽을 건드린 것. 무슨 의미지?"
"정보 수집. 그것뿐이야."
"거짓말."
"대체 왜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거지? 나는 에리엘님에게 작전 수행을 위한 정찰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대로 수행했다. 내 얘기가 틀렸나?"
"거짓말이다."
노아는 내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것처럼 칼에 힘을 실었다.
'노아 활동하려면 호감도 작업이 필요한 법인데.'
북부에서 만났다면 노아의 호감을 사는 것은 더욱 쉬웠을 터였다.
같은 전장에서 싸우고 훈련을 하다보면 노아의 호감도는 자연스럽게 올라가니까.
그런 사전 작업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됐으니 노아의 특성.
'인간혐오'가 발동하는 것도 당연하다.
운이 좋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높은 확률의 위험은 최악이구나.'
게임에서는 주사위를 굴려서 결정된다지만 여기서는 필연적으로 발동되는 건지 모른다.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는 뜻이니까.
'...어떻게 설득해야할까.'
게임이었다면 여기서 이런 창이 떠올랐겠지.
[힘 설득 시도 : 요구치 30]
[재능 설득 시도 : 요구치 25]
[재치 설득 시도 : 요구치 20]
여기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고른 뒤, 나중에 호감도를 올리면 해결되겠지만.
지금의 내 눈 앞엔 아무것도 없다.
그저 싸늘한 시선으로 검을 겨누고 있는 노아가 있을 뿐.
검이 목을 살짝 파고들어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음 뿐. 나는 선택을 내려야 한다.
게임에서는 노아를 설득할 때 어떻게 했지?
설득할 때 출력되는 메시지.
그중에서 가장 그럴싸한 것을 떠올리고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뭐를?"
"너의 복수를."
나의 말에 노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게임에서 항상 나오는 말은 복수였어.'
나는 노아가 인간혐오를 가지게 된 원인을 떠올렸다.
노아는 인간의 습격에 의해서 가족을 잃었다.
그 후로 인간 혐오에 빠지게 되었고 복수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왔다는 설정이다.
'노아는 자신의 가족을 몰살한 용병왕 볼트를 죽이기를 원해.'
게임이었다면 영웅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복수의 대상을 죽이지 않고 살려도.
살리길 원하는 대상을 죽여도.
그저 호감도가 깎일 뿐. 치명적인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해야 해.'
노아는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동공이 흔들렸던 노아는 또다시 이쪽을 사납게 쳐다보았다.
"내 능력이니까. 모든 정보를 습득하는 것."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너의 무기는 이 검이 아니라 등에 달려 있는 백금의 사냥활. 그건 부모님의 유품이지. 아니야?"
"... 믿을 수 없어."
"노아. 너의 출신지는 셀레스잖아. 오래된 나무둥지에서 아버지와 자주 놀았지. 아니야?"
짧게 한숨을 내쉰 노아가 검을 내렸다.
하지만 경계의 눈빛은 여전하다. 이건 호감도가 낮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우... 죽을 뻔 했네.'
조금만 더 파고들었으면 동맥을 찔러서 과다출혈로 죽지 않았을까.
노아가 검을 집어넣고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믿긴 힘들지만 이번엔 넘어가겠어. 인간."
***
목에 난 상처는 노아가 사용한 '응급치료'로 인해서 금방 멎었다.
이런 후처리는 안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노아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았나.
이후에 기지로 복귀하는 도중 나는 노아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기지까지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지루하기도 하고 호감도를 조금이라도 쌓으려는 노력이었다.
"노아라고 불러도 되겠지?"
"아니. 안 돼."
"같은 중위인데 말 놓지? 내가 아무리 임시라지만 진짜로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대위.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내 말에 노아는 그저 앞장서서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다.
대답을 안 해주니 조금 무시당하는 기분인데.
이따금씩 야생동물이 다가오면 노아는 마나화살을 만들어서 활시위를 당겼다.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맴돌고.
노아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인간. 복수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지."
"인간이 아니라 강한윤."
"그래. 인간."
이 망할 똥고집 다크엘프.
대답을 하지말까 하다가 여기서 말을 끊으면 기지로 복귀할 때까지 지루함을 견뎌야할 것 같다.
나도 자존심을 담아서 짧게 답했다.
"어."
"가능해?"
"가능하지."
"아니. 지금의 내 상태로 말이야."
"...그건 절대로 불가능 해."
나는 노아의 스탯을 떠올린 뒤에 답했다.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노아는 약하다.
특히 활을 사용하는 노아가 대검을 휘두르는 용병왕을 상대하는 건 더욱 힘들다.
용병왕보다 실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상성이란 그런 거니까.
"...그런가."
노아의 목소리에는 분함이 담겨있었다.
자신도 알고 있겠지.
기억에 남아있는 용병왕의 무지막지함을 생각하면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성장을 한다면 달라.'
날개를 펴게 된다면 노아는 용병왕과 싸워서 이기는 건 100% 가능하다.
"네가 나에게 협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해."
"협력..."
"할 거야 말거야?"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그런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
기지로 복귀한 나는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한데 노아와 신경전을 벌인 것이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얻은 게 없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야.'
노아와 다가갈 수 있는 기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니었다.
호감도를 올리고 채음보양 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녀의 싸가지가 없긴 하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테니까.
'나에게 협력한다고 했지.'
그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까. 안다면 안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놔줄 것 같아?'
절대 안 되지.
노아는 내가 좋아하는 영웅 중의 한명이니까.
좋아하는 영웅을 놔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한손 가득 찰 만큼의 풍만한 가슴.
윤기 있는 연갈색의 피부에 어울리는 은발.
사나운 눈매를 가진 노아는 내 이상형에 딱 들어맞았으니까.
'좋은 기회야.'
노아의 호감도를 올릴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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