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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이 전부 따먹음-3화 (3/163)

〈 3화 〉 3화

* * *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정보를 알아내는 것.

그게 제 능력입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지만 쓸 만하지 않습니까?"

나의 대답을 들은 에리엘이 얼굴을 구겼다.

내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내려는 듯이 고민하고 있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게임에 이런 능력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별에 별 희한한 능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숨겨진 정보까지 얻어내는 개사기적인 능력? 밸런스 파괴다.

'고민해봐야 답은 나오지 않지.'

이런 능력은 블블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능력이기도 하다.

게임을 하다보면 이런 세세한 점을 암기해야할 순간이 온다.

나이트메어 난이도를 클리어하려면 당연히 영웅이 가진 고유 스킬부터 시작해서 상성과 영웅의 궁합도 알아야한다.

거기서 더 파고들다보면 캐릭터의 비밀이나 배경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고인물인 나는 당연히 전부 외우고 있다.

"다른 이들의 정보도 알 수 있나?"

"당연합니다. 굳이 말이 필요합니까?"

지휘관인 에리엘의 정보도 알고 있는 내가 다른 이들의 정보를 모를까.

'물론 모르는 영웅도 있긴 한데 어차피 걔네는 비중이 없으니까.'

알아도 쓸모없고 몰라도 영향이 없는 비주류 영웅들.

걔네들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보관하고 있는 건 기력 낭비다.

"나와라. 지휘관 실에서 얘기를 이어서 하지."

고민을 하던 에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에리엘의 뒤를 따라걸었다.

지휘관 실에 데려가는 걸 보면 머릿속에서 계산이 대략 끝났다는 얘기다.

'버리긴 아깝겠지.'

갑자기 등장한 인재.

인간이라는 점이 수상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게 확실하다.

지휘관실의 문이 열리고 나도 그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특별할 것 없는 방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지도들.

수많은 고민의 흔적들이 보였다.

'어떻게 돌파해야할지 고민했겠지.'

정공법으로 시도를 한다면 큰 손실을 입는다.

거기에 루드밀라까지 잃을 수도 있으니 생각을 공격을 가는 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제발 앞면이 나와 달라고 빌고 또 비는 것.

신중한 성격의 에리엘이 그런 시도를 한다?

에리엘이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런 짓은 안한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작전장교의 직함을 원한다고 했나?"

"네."

"그렇다면 이 지도를 살펴보도록. 여기에 돌파할 곳이 보이나?"

"공격하기 어렵겠네요."

지도를 대충 훑어보고 말했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공격이 불리한 상황일 게 분명했으니까.

'확실히 까다롭긴 해.'

일반 플레이어라면 루드밀라의 대치 구도를 꺼려한다.

전투가 쉴 새 없이 벌어지는 북부부터 밀고 남부를 처리하면 된다.

굳이 여기부터 피를 볼 필요는 없다.

공격하면 손해고 수비를 하고 있으면 상대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

먼저 움직이면 손해를 입으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손을 떼버리는 것을 선택한다.

"어때. 할 수 있겠나?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진 알고 있겠지."

어떻게 되긴. 당연히 에리엘에게 죽는다.

제 3자에게 정보를 유출하면 즉각 사형인 법.

그 만큼 중요한 정보를 본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살려둘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다프닐 점령까지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녀에게 자신감을 내보였다.

***

나는 에리엘에게 작전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실제로도 아주 간단한 작전이다.

하지만 간단한 것에 비해서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준비할 것이 많은 작전이야.'

부지런히 움직이더라도 일주일 정도가 걸릴 것을 상정해야 한다.

다프닐의 상황이 어떤지 확인을 해봐야한다.

내가 생각한 것과 상황이 다르다면 그건 완전히 낭패니까.

다시 계획을 수립해야할 수도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의 뒤로 에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왜 오드웰 연합군이지?"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습니다."

"인간이면 인간 세력에 붙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은가."

에리엘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리라.

인간은 인간 세력에서 싸우는 게 대부분이니까.

설정으로 봐도 오드웰 연합군에 처음부터 합류해서 싸우는 인간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인과 가족이 있는 인간세력을 벗어나서 생활방식도 다른 오드웰 연합군에 붙을 이유는 없다.

에리엘이 나를 인간 세력의 스파이가 아니냐고 의심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 그걸 써볼까.'

나는 열었던 문을 닫고 다시 지휘관실로 들어왔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에리엘이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와중. 나는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여기 어디에 있을 텐데.'

루드밀라 지휘관실에 존재하는 물품.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찾았다.

3번째 서랍 안에 푸른색으로 빛나는 수정이 있었다. 진실의 수정.

손을 얹고 진실을 말하면 푸른색을 유지하고 거짓을 말하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아이템.

"그걸 어떻게... 그래. 그런 능력이라 했지."

에리엘이 입을 다물고 머리룰 부여잡았다. 이젠 내 능력을 점점 인정하는 분위기다.

수정 위에 손을 얹으니 마나가 요동치면서 활성화되었다.

"... 음.. 나는 엘프다. 크흠."

작동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놓고 거짓인 문장을 내뱉었다.

수정이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푸른색으로 돌아온다. 진실의 수정이 올바르게 작동한다.

'여기서부터 어떻게 할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과 거짓말을 섞는 것.

진실의 수정이라고 무조건 진실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것은 아니다.

교묘하게 질문을 비틀거나 스킬을 사용하면 파훼하는 것도 가능했으니까.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나는 거짓말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솔직하게 가도록 하자.

거짓말은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하기도 한다.

'오드웰 연합군을 선택한 이유라...'

조금 쑥스러운데. 나는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제가 오드웰 연합군을 고른 이유는 예쁜 영웅이 많아서입니다."

"...뭐라고?"

내가 잘못들은 건가? 하고 의심쩍은 표정을 짓는 에리엘.

목소리에 당황이 섞여있는 게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나 보다.

"예쁜 영웅이 많아서 입니다."

진실이기에 수정은 여전히 파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진짜로 오드웰 연합군에 예쁜 영웅들이 많아서 좋아한다.

성능충이었다면 마족 세력이나 인간 세력으로 진작 넘어갔을 테니까.

"하아.. 그런 별 것도 아닌 이유라니."

내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 에리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종의 고집. 나는 끌리지 않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웅을 고집하고 그 중에서도 그 수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오드웰 연합군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 중에서는 물론 에리엘도 포함이 되어있다.

'에리엘이 아니었다면 다른 곳으로 넘어갔겠지.'

에리엘은 이야기 속 영웅같이 강하고 아름답고 정직하다.

초반에 성장하지 못하는 영웅이라 후반에는 존재감이 옅어지는 게 흠이지만 이번엔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내가 보조할 테니까.

나라면 에리엘을 최강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오드웰 연합군이 좋습니다. 인간, 마족. 그 둘보다 훨씬 좋습니다."

오드웰 연합군으로 나이트메어 난이도까지 클러어한 나다.

오드웰 연합군에 대한 애정으로 이길 사람이 있을까?

그런 애정이 없다면 자원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쓰레기라 불리는 오드웰 연합군을 스타팅 포인트로 정할 리가 없었다.

마족 세력으로 가면 성장이 빠르고 인간 세력으로 넘어가면 영웅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오드웰 연합군을 고르는 것은 최악의 플레이지만.

'그냥 오드웰 연합군이 좋다고.'

그저 그 뿐이었다.

"이상한 인간이군."

"이상하지 않으면 인간 세력으로 가지. 굳이 오드웰 연합군으로 합류하겠습니까?"

"그래. 나사가 완전히 빠져버린 놈이야. 혹시나 물어보는 건데 배신자는 아니겠지?"

"배신할 바엔 죽을 겁니다."

여전히 푸른색인 수정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에리엘.

내가 무슨 수작을 부렸거나 수정이 고장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하겠지.

당연하다. 나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으니까.

"이제 제 마음을 알아주셨습니까?"

"... 하아. 뭐 이딴 놈이 다 있는 건지."

"이딴 놈이라도 도움이 될 겁니다."

나는 가볍게 경례를 하고 지휘관실을 나오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작전 수행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했나?"

"예."

"그렇다면 작전실에서 대기하도록. 정찰병을 붙여 줄 테니 말이야. 그리고 임시직함은 중위다. 대위까지는 단번에 올라갈 수 없으니까."

중위라. 나쁘지 않다.

어차피 임관을 하기만 하면 계급은 빠르게 올라갈 테니까.

나는 지휘관실을 나와 작전실로 향했다.

'정찰병을 호위로 붙여준다 했지.'

루드밀라에 정찰병 포지션을 가진 영웅이 많았던가?

특별하게 떠오르는 영웅은 없었다.

다른 포지션으로 괜찮은 영웅들은 꽤 있다.

탱커나 마법사 계열같이 대규모 전투로 활약하기 좋은 영웅들 말이다.

정찰병처럼 소규모 교전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특화된 포지션을 가진 영웅은 루드밀라에 어울리지 않다.

정찰에 특화된 영웅이 적은 것도 당연하다.

작전실에서 앉아서 기다린 지 10분쯤 되었을까.

­똑똑.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이 조용히 열리고 나타난 것은 전투도끼를 들고 있는 오크.

활을 들고 있는 남성 엘프.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다크엘프였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다시 봤지만 다크엘프가 맞았다.

문제는 평범한 다크엘프가 아니다.

북부에서 활동하고 있어야할 다크엘프 노아.

그녀가 남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뭔가 뒤틀린 건가?'

이 시기에 여기서 활동할 리가 없는데.

중위의 계급장을 보아선 군대에서 활동한 지도 좀 됐다.

북부에서 활동하던 노아가 남부로 내려올 이유가 있나?

좌천? 아니면 누군가의 트롤링?

북부에서 무슨 일이 터졌나?

노아의 날카로운 시선에 상념이 끊겼다.

'많은 정찰 영웅 중에 하필 노아냐.'

인간에게 적개심을 지닌 영웅 중 한명이었으니까.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영웅 : 노아]

­호감도가 낮은 인간과 팀으로 맺을 시 불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이런 설명이 붙어있는 영웅이다.

그런데 한 팀으로 활동해야 한다니.

정찰을 나가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다행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정말 위험할 수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호위를 바꿔달라고 할까?'

아냐. 이 선택은 아니다.

방금까지도 에리엘에게 의심을 받던 참인데.

갑자기 정찰병을 바꿔달라고 한다?

또 다시 의심받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오히려 노아라서 좋은 점도 있으니까.'

정찰 영웅으로서 노아만큼 좋은 영웅은 없다.

특히 '색적' 이라는 고유스킬은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나.'

노아와 트러블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

"허억...허억... 조금... 쉬었다 갑시다.."

체력 5라는 절망적인 스탯으로 다프닐의 근처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쉬지 않고 걷기를 반나절.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다프닐의 근처에 오는데 성공했다.

'여기 근처는... 뭐 뻔하지.'

마나지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해체하면서 쭉 지나간다.

지뢰밭을 뚫고 지나간다는 건 그다지 좋은 판단은 아니지만...

병사들이 순찰을 도는 라인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분해의 반대는 조립. 분해는 조립의 역순이다.'

마나지뢰를 하나하나 해체할 때마다 손이 떨리지만 이를 악물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나이트메어 난이도를 클리어 할 때 수없이 했던 것을 반복할 뿐이다.

'후우... 후....'

심호흡을 하고서 분해를 끝마쳤다.

이 앞부터는 지뢰가 없는 지역.

이제 다프닐에서 정보를 얻고 나면 정찰이 끝난다.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는 다프닐의 성벽에 걸려있는 마법의 종류다.

방어력 증가, 마법방어력 증가, 내구도 자동회복, 마나감지 시스템 등등.

그 중에서도 내가 확인하고 싶은 마법은 방어력 증가 마법.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해놓은 계산이 있지만 공식이 틀렸다면 다시 계산을 해야 하니까.

'적의 기지까지 다가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계획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말했던 대로 진행하면 됩니다."

정찰병 오크인 레닉이 새총을 꺼내서 장전했다.

­끼기기긱.

새총이 강하게 당겨지는 소리와 함께 엘프 병사가 돌맹이에 '가속' 스킬을 시전 했다.

­파앙! 쉬이이익!

새총의 시위를 놓자 가속이 걸린 돌맹이는 시야에서 단숨에 사라져 성벽과 부딪혔다.

­콰직!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가 일렁이면서 노란색의 방어막이 잠깐이지만 눈에 보인다.

'2단계 물리방어와 2단계 내구도 회복. 내가 생각한 그대로야.'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차이가 없다.

특별히 마법을 수정하거나 추가한 것은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대로 기지로 복귀해서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리라.

앉은 채 숨죽이며 지켜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그때 목덜미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서늘한 한기가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노아가 내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게 보였다.

"인간. 속셈이 뭐지?"

노아의 인간혐오가 발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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