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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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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냈다아!!!!!!!!!"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화면에 떠올라 있는 글자.
'승리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보기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블러드 앤 블레이드.
블블이라 불리는 게임의 끝을 본 참이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엘프, 오크, 드워프, 수인들이 모여서 탄생한 오드웰 연합군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인간 세력과 마족 세력을 몰아내고 세계를 통일하는 것에 성공했다.
마족을 근절시키고 인간세력을 흡수한 오드웰 연합군은 번영한다는 뻔한 내용.
하지만 이렇게 옛날 동화책처럼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통일을 위해 수 없는 전투를 치른 나에겐 이런 가벼운 내용이 오히려 더 좋았다.
'마지막은 언제나 좋단 말이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며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편안해진다.
"생각보다 오래했네."
별 기대는 안하고 다운받았던 게임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략형 시뮬레이션 이지만 특이한 점은 실시간과 턴제 전투를 모두 지원한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 캐릭터로 rpg처럼 활동할 수 있고 싸울 때는 두 가지 방식으로 싸울 수 있었다.
유리할 때는 실시간으로 싸우면서 전장을 누비는 전사의 기분을 느끼고.
불리할 때는 턴제 플레이로 바꿔서 최대한 유리한 전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신기한 특징을 가진 게임은 내 마음에 쏙 들어왔고 플레이한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후우... 이걸 위해서 얼마나 많이 도전을 했는지 모르겠네.'
[불세출의 영웅] NEW!
이 도전과제 하나를 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게임오버를 당했는 지 모른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나이트메어 모드에서 기본 스테이터스로 승리.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극악무도한 난이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군은 능력치 1.5배의 버프를 받고 플레이어 캐릭터는 '기본 스테이터스'로 플레이 해야 하니 강해질 수 없다.
말 그대로 캐릭터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상태로 게임을 승리해야 한다는 것.
거기에 나이트메어 모드 패널티로 죽으면 그대로 데이터가 날아간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날 며칠을 플레이 해온 캐릭터가 삭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의 후반부에는 공격을 스치기만 해도 사망.
혹여나 운으로 전투를 지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그대로 패배를 향한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수 없이 해냈어.'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승리할 수 없을 것 같은 전투를 치룬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걸 극복해내고 얻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도전과제 : 327 / 327 (100%)]
100%라는 단어를 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게임에 존재하는 꼼수와 버그를 찾아서 실전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 마지막 도전과제를 클리어 하는 것 까지 성공했다.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제목 : 도전과제 올 클리어 ㅋㅋ
내용 : (사진)
ㅇㅇ(39.7) : ????????
ㅇㅇ(143.67) : 와 ㅋㅋㅋㅅㅂㅋㅋㅋ 이걸 어케 했냐
ㅇㅇ(223.63) : 이거 어케 깸 대체???
ㅇㅇ(147.3) : ㅅㅂㅋㅋ 플탐 3027시간ㅋㅋㅋㅋ
ㅇㅇ(77.3) : 오드웰 연합군 쓰레기 아님?ㅋㅋ 이 병신같은 세력으로 어케 이김? ㅋㅋ
ㅇㅇ(66.3) : 선생님 블블도 좋지만 인생을 살아주세요
글을 쓰자 밑으로 댓글이 순식간에 달린다.
인터넷에서 마지막 도전과제를 클리어 했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지.'
전세계 최초 클리어.
크. 입에 담기만 해도 감개무량하다.
지금의 기분을 만끽하면서 댓글에 달린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글을 달았다.
초반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하냐.
중반에서 못 넘어가겠다.
후반에서 죽는 건 어떻게 대처한 거냐.
'그게 내 밑천인데 다 말해주기는 그렇지.'
적당한 힌트나 매커니즘을 알려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알려줬다.
띠링.
방금 10개가 넘는 답글을 달자 게임에서 알람이 울렸다.
지금껏 게임을 하면서 메시지가 온 적은 없었는데.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작업표시줄에서 주황색으로 깜빡이는 게 보였다.
메시지가 온 게 확실했다.
'대체 뭐일까.'
다시 게임으로 접속하자 메시지 함에 new가 띄워져 있었다.
마우스를 움직여서 가볍게 클릭했다.
[도전과제 클리어를 축하드립니다!]
[저희 개발진도 나이트 메어 난이도를 클리어하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말이죠!
저희가 놀랄만큼의 성장을 보여준 플레이어님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개발 중인 난이도를 테스트하고 감상평을 남겨주신다면 보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테스트를 하고 싶으시다면 게임 난이도에 추가된 것을 확인해주세요!]
'새로운 난이도라고?'
게임이 출시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밸런스 패치 몇 번이 있었을 뿐.
난이도가 새로 나온 적은 없었다.
보통 패치의 골자를 생각해본다면 DLC추가와 함께 난이도를 추가하는 게 기본이다.
'DLC를 내기 위해서 새로운 난이도를 만든 건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방향으로 떠오르는 것은 없다.
'그래. 이제 슬슬 패치해줄 때도 됐지.'
뚜렷하게 사기적인 조합은 없지만 이제 다른 종족을 추가할 때다.
새로운 세력을 추가하거나 맵을 바꾸는 것도 좋다.
완전히 달라질 게임의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뛰었다.
메인화면에서 '새 게임 시작'을 누르고 난이도를 하나하나 올려보았다.
입문, 초급, 중급, 고급, 전문가.
나이트메어.
여기가 난이도의 끝이다.
오른쪽으로 넘길 수 없어야 하지만 아직도 버튼이 활성화 되어있었다.
딸깍.
한 번 더 누르자 난이도가 '리얼리티'로 바뀌면서 밑에 설명이 적혀있었다.
모든 유닛이 자유롭게 행동합니다! 그로 인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장이 느려집니다!
중상을 입을 경우 사망할 확률이 증가합니다!
나이트메어 난이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설명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첫번째 줄의 설명이었다.
'AI를 발전시킨 건가?'
블블의 큰 특징이라면 AI가 수준 높게 행동한다는 것.
항상 똑같이 대처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알고리즘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움직인다.
그로 인해서 플레이어는 같은 전투를 하더라도 다른 상황에 놓인 것 같아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알고리즘의 한계는 확실하다.
수십 번까지는 참신하더라도 수백 수천 번을 하다보면 질리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더 발전시켰다면.... 진짜로 기대할만 하겠는데?'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유저가 바로 나다.
3000시간을 했으니 얼마나 달라졌을 지 기대가 된다.
난이도를 선택을 끝마치자 간단한 커스터마이징 창으로 넘어갔다.
성별은 남자로 해놓고.
스테이터스는 랜덤.
출신지와 배경도 당연히 랜덤이다.
어디서 시작하든 간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메시지 대륙에서 내가 모르는 곳은 없지.'
세력은 당연히 이종족 연합군.
인간도 마족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결국에는 다양한 전술을 펼치기 쉬운 이종족연합군이다.
거기에 게임을 해보면 알겠지만 항상 문제가 터지는 세력이라 더 쫄깃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재능과 기초기술.
재능을 어떤 걸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장력이 달라지고 기초기술을 뭘 골랐느냐에 따라서 초반의 성장 방향이 정해진다.
'이것도... 당연히.'
랜덤이지.
스테이터스 : 랜덤
출신지 : 랜덤
배경 : 랜덤
세력 : 오드웰 연합군
그대로 확인을 누르니 로딩 창으로 넘어간다.
리얼리티 난이도에서 항상 위협에 대비하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로딩 창에서 팁이 나오면서 새로운 난이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라.
오히려 환영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아르시아 대륙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로딩이 완료됐다는 문구화 함께 모니터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빛에 눈을 감았다.
그 빛은 점차 강렬해지고 방안을 가득 메웠다.
방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
톡. 톡.
누군가가 어깨를 강하게 두들겼다.
대체 누구지.
잠결에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친구? 아니다. 집까지 찾아와서 깨우기보다는 전화부터 하겠지.
부모님? 전혀 아니다. 부모님은 지방에서 농장을 가꾼다고 바쁘실 테니까.
그렇다면 진짜로 누구지?
계속 되는 어깨 터치에 고개를 들었다.
강렬한 빛에 눈이 떠지질 않았다.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로 깨우는 이를 확인하려고 애를 썼다.
검은색 실루엣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대. 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이봐. 여기서 통행 방해하면 안 되지."
두껍고 낮은 목소리.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전혀 아니었다.
빛에 적응한 눈이 드디어 떠지고 그제야 상대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입 바깥으로 튀어나와있는 어금니와 연두색의 피부를 가진 상대는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었다.
'코스프레..?'
그렇다고 보기엔 퀄리티가 꽤나 높았다.
피부에 물감이 굳거나 뜨지 않고 진짜 피부처럼 보이는 높은 퀄리티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나참. 이런 미친놈이 대낮부터 있다니."
그렇게 말한 상대는 팔을 뻗어 나의 목덜미를 잡아서 가볍게 들어올렸다.
'어?'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던져버렸다.
"크헉.."
"통행 방해 되니까 꺼지라고."
땅바닥에 부딪힌 고통으로 숨이 안 쉬어진다.
고통으로 몸부림치고 난 뒤에 땅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렇게까지 해도 되냐고 따지려는 찰나.
주변에서의 시선이 느껴졌다.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이들은 전부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들었다.
키가 작은 인간.
귀가 긴 인간.
인간과 짐승이 반쯤 섞여 있어서 털이 복슬복슬하게 나있는 무언가까지.
"뭐...뭐야...!"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보이는 골목 아무데로 들어가기 바빴다.
'뭐지? 나는 왜 여기에 있지?'
그제야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한다.
술을 마셔서 바닥에서 자고 있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다음을 떠올리려고 하자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왔따.
무언가의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혹은 누군가가 내 생각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대체 여기는 뭐냐고..'
후우.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하자 마음이 진정이 된다.
지금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골목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서양 중세시대에서나 볼법한 건축양식.
그리고 나무와 목재를 반쯤 섞어서 만든 듯한 건물들.
마차가 지나다니고 병장기를 든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물론 그 병사들도 인간이 아니었다.
피부가 연두색이고 귀가 길고 키가 작고 털이 나있는 이들.
나는 주변을 살펴보기 위해서 골목에서 거리로 나왔다.
인간이라고는 보이지 않아서 혹시 공격당하는 건 아닐까 했지만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조금 신기하다는 듯이 시선이 쏠리긴 했지만 그것뿐.
외국으로 여행 갔을 때 시선이 쏠리는 것과 비슷했다.
'여기는.. 마치..'
판타지세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금니가 도드라진 오크 병사.
기도를 올리고 있는 귀가 기다란 엘프.
털이 복슬복슬한 수인이 물건을 팔기위해 손을 흔들고.
대장간에서는 망치를 내려치는 드워프가 보인다.
'알 수 없는 곳...'
아니 알 수 없는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를 지나서 터가 트인 곳으로 나오자 시야가 확 트였다.
여태까지 봐왔던 비슷한 건물들이 쭉 들어서 있다.
그 한가운데에 큼직한 나무가 보였다.
아파트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나무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세계수다. 혹은 세계수의 자식.
나는 발걸음을 옮겨서 큼직한 나무로 향했다.
내 생각이 맞을 리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나무쪽으로 다가가니 거대한 나무의 주위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보인다.
그 중에서 한명을 정해서 다가갔다.
삼지창을 들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병사.
내 생각이 맞다면 저 나무 근처로 들어가려고 할 때 삼지창을 겨누면서 얘기할거다.
"물러서라. 허가되지 않은 인물은 들어갈 수 없다."
'물러서라. 허가되지 않은 인물은 들어갈 수 없다.' 라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문장에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힘겹게 참았다.
예상이 한번 맞으면 우연이겠지만 그 우연이 여러 번이나 연속된다면?
예상이 확신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삼지창을 겨누고 있는 병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 죄송합니다.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었는데 이쪽이 여관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요?"
"여긴 루드밀라의 중심이다. 여관을 찾고 싶다면 서쪽으로 가도록."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하자 병사가 삼지창을 거두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여관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고 난 뒤에 나는 세계수를 뒤로 하고 이동했다.
엘프. 오크. 수인. 드워프. 세계수. 마르벨스.
이제야 나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스테이터스.
마음속으로 외치자 진짜로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익숙한 인터페이스의 창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맙소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하다니. 믿을 수 없지만 이건 현실이다.
나는 블러드 앤 블레이드의 세상 속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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