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 시간은 흐른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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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욕심으로 망해버린 상단의 딸에서 다른 상단의 일을 돕다, 이제는 공작가의 손님으로.
셀렌은 요 사이 몇 번이나 나락에 떨어졌다 오르는 듯한 아찔함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이 기본적으로 나오는 것은 물론, 공작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도 크게 예의를 갖춰주는 탓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이럴 때 보통 아이라면, 혹은 아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보통 자기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해 콧대가 높아질 만도 하다.
하인들은 물론 이곳 귀족들, 그리고 전쟁에서 이름을 높인 엘렌이나 이브 같은 여자들마저 함부로 대하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셀렌의 마음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하기만 했다.
어리다고는 하나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이유 없는 호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좋은 감정이 있다 해도 언제든 뒤집어질 가능성을 알았다.
예를 들면 형편이 좋을 때 잘 있다가, 기울어져 가는 집안과 아이를 단호하게 버리고 떠나 새로운 남자를 물어버린 셀렌의 어미처럼.
“ 셀렌. 들어가도 돼? ”
똑똑. 셀렌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자기 태도를 곱씹던 중, 제법 익숙한 목소리와 섞인 문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같은 대접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 아… 네에! 들어오세요! ”
셀렌이 급히 화장대 앞에서 엉덩이를 떼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아이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언젠가 헬레나의 뒤를 이어 새로운 공작이 될 닉스였다.
“ 안녕. 오늘도 잘 지내고 있어? ”
“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무척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무 과분할 정도에요. ”
셀렌이 배꼽에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허리를 숙이자, 닉스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으레 인사말처럼 건네는 아부 같은 말이라도 듣기엔 좋았던 덕이다. 진짜로 잘 대해주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기도 하고.
“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네. 잠깐 앉아도 되지? ”
“ 네. 물론이죠. 차도 같이 끓여 드릴까요? ”
“ 고마워. ”
차를 끓여 대접하고,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제법 나쁘지 않다. 오히려 훈훈하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도 셀렌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어, 손에 식은땀이 배어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얼핏 네가 마음에 들어서 들였다는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철렁거릴 한 마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를 말하는 눈빛이 문제였다.
맑디맑은 하늘색 눈동자임에도, 시꺼먼 먹물이 소용돌이치는 것만 같은, 보통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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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스가 데려온 아이가 점점 겁먹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을까? ”
세상에. 나는 솔선해서 닉스에 관한 일을 입에 담는 헬레나를 보며 내심 놀랬다.
여태껏 닉스를 아예 챙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딘가 수동적인 기색이 있었고, 또한 의무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보통 부모처럼 말하고 있어 신기할 지경이었다.
“ 닉스가 데려온 아이라면… 붉은 머리칼을 가진 그 아이 말이지? 이름이 셀렌이라고 했던가? ”
“ 응. 제국상회에서 제법 엄격한 교육을 받았는지 아이답지 않게 틈이 적고, 제법 대우받고 있음에도 들뜨는 기색이 없어 제법 좋게 보고는 있어. 다만, 그래서 점점 답답함을 느끼는 기색을 보이더라고. ”
달그락. 헬레나는 반쯤 비워낸 찻잔을 받침대 위로 내려놓으며 천천히 긴 숨을 토해냈다.
나도 닉스가 헬레나와 몹시 비슷한 집착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헬레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다른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다.
“ 답답하다면… 닉스가 집착을 해서? ”
“ 그것도 있지만 이 저택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답답한 모양이야. 재물로 인한 풍요는 늘었을지 몰라도, 제 혼자 있을 때만큼 마음이 자유롭진 않다는 거겠지. ”
헬레나는 나와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능청스럽게 손을 뻗어 내 손등에 자기 손을 포갰다.
손가락으로 살살 손등을 쓰는 모습이나 열이 녹아든 눈빛을 보니 나를 자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얼른 이 이야기를 끝내고 근처에 있는 침대로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이쯤에서 이야기를 끝내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나로서는 그 답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헬레나가 몸이 달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달아오르기 전에 그를 식힐 겸, 혹은 주의를 돌릴 겸 내 나름대로 정리한 생각을 입에 담았다.
“ 나도 헬레나가 집착하기 시작했을 때 답답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결국 결혼까지 해서 제법 잘 지내고 있잖아? 하지만 헬레나도 알다시피, 그 과정을 보통 사람이, 하물며 집안이 무너진 아이가 견디고 걷기엔 어려운 길이지. ”
“ 그야 나도 잘 알지만… 혹시, 내가 싫어진 거야? ”
“ 그럴 리가. ”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헬레나의 눈가 주위를 가볍게 두드리듯 닦아냈다.
테라스의 테이블이 썩 크지 않은 덕에 가볍게 팔만 뻗어도 충분할 만큼 가까웠기에 불편하지가 않았다.
“ 전에도 말했지만… 싫어하거나 지금도 무서웠다면 헬레나를 처음 안은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
“ 응……. ”
헬레나도 그 점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듯 눈가가 약간 붉게 부어오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다 싶어, 약간 긴 서론을 거친 끝에 드디어 본론을 입에 담았다.
“ 하지만, 그것도 다 헬레나가 좋았으니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야. 만약 좋아한다는 생각 없이 의무만 지키려 했으면 싫증이 낫겠지. 겁을 안 먹더라도. ”
“ 그 말은… 그 아이가 닉스를 좋아하게 만들어야 어떻게든 된다는 뜻이지? ”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고, 덤으로 잃었던 눈치마저 되찾은 듯, 헬레나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사실상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었기에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 그렇지. 그 아이가 닉스를 좋아할 만한 계기를 만들어 줘야 견딜 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래야 우리에게 손을 뻗을 생각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 지온이 내게 했듯이? ”
“ 어… 그렇지. ”
집착 성향이 짙은 사람의 고삐를 잡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내가 받아 온 강철멘탈 정도는 아니더라도 굳건한 멘탈이 있어야 침착하게 감정이나 상황을 이끌어 갈 수 있어, 그를 만들 계기를 마련하는 게 중요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다행히 헬레나도 내 말에 공감하는 눈치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에 대한 내 결론은 이렇다.
“ 조금 빠르기는 하지만, 사교계에 내보내는 건 어떨까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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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란 황족, 왕족, 귀족 등을 포함한 상류층의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사전적인 의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말 대로 소테른 왕국의 사교계도 나름 그 체계에 맞춰 이루어지는데, 크게 왕이 주최하는 연회와 각 귀족이 주최하는 연회로 나뉜다.
보통 이러한 연회는 비교적 한가로운 겨울 즈음에 이루어지곤 하는데, 반드시 그 때를 지켜야 한다는 건 아니다.
즉 계절을 가리지 않고 초대장이 날아오는 경우나, 그를 받아들여 연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뜻이다.
“ 와아……. ”
아주 깔끔하게 청소를 마친 저택 입구부터 한껏 힘주어 꾸민 정원, 그리고 저택 안 연회장에 모인 화려한 사람들까지.
셀렌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화려하고 반짝이는 풍경을 보며 낮은 탄성을 터뜨렸다.
닉스는 그 모습을 보며 말없이 웃으며, 헬레나와 지온이 해 주었던 말을 되새겼다.
─네가 그 아이를 특별하게 보고 집착하는 건 좋다. 하지만 온전히 손에 넣으려면 한 걸음 물러서야 할 때도 있고, 서서히 너를 바라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거라.
아무래도 감정이 앞서기 쉬운 아이에게 있어 절제하라는 말이 썩 와 닿지도 않겠으나, 영민한 편이었던 닉스는 그 충고를 성실히 따랐다.
먹잇감을 온전히 잡아먹기 위해 숨을 죽이고 한 발 물러나 도움닫기 준비를 하라는 뜻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또, 그 이야기를 건넨 것이 다름 아닌 자신과 똑같은 성향을 가지고, 결국 원하던 바를 이뤄낸 헬레나였으니까.
“ 진짜 화려하긴 하다. 나도 연회에 오는 건 처음이라 눈이 어지럽네. ”
“ 그러게요……. 정말 화려해요. ”
두 아이는 한동안 밤을 대낮처럼 환히 밝히는 샛노란 등불과, 그 아래에 마련된 많은 테이블, 그 테이블을 꾸미는 접시와 요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봐도 어지간히 신기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아이다운 모습이었다.
“ 잘 됐네. ”
그 모습을 눈에 띄지 않는 연회장 구석에 서 있던 엘렌이 팔짱을 낀 채 흐뭇한 눈으로 바라봤다.
닉스를 호위할 겸, 최대한 그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했다 알려달라는 지온의 부탁에 따라 여기까지 왔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하는 중이다.
신변에 위기가 닥칠 때에는 당연히 나설 테지만, 그 전까진 이렇게 구경이나 하며 지켜봐야지.
엘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는 연회장과 대비되는, 숨이 막힐 정도로 경직된 바깥 공기를 느끼며 가볍게 웃었다.
중립파 거두인 칼리우드 공작이 주최하는 연회라 규모도 크고, 그를 위한 경비도 삼엄해 약간 마음을 놓아도 될 듯싶었기에.
“ 다들 바쁜 와중에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겠소. ”
잠시 후. 칼리우드 공작이 의례적으로 말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연회가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이 웅성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연회장에 모인 젊은 남녀 무리로, 그들 대다수가 작위를 이을 예정이거나 그렇지 못해 한가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헬레나의 출산 시기가 늦어졌기에, 닉스는 20대가 대다수인 무리 중에서도 몹시 이질적이었다.
셀렌 또한 마찬가지로.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닉스 크라우저라고 합니다. ”
그러나, 긴장한 셀렌의 손을 꼭 잡고 젊은 청년들 사이를 누비는 닉스의 모습은 노련한 귀족을 떠올리게 했다.
키 차이에서 오는 원초적인 압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고, 늘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대단하다.
셀렌은 닉스의 능청스러운 권유를 따라 엉겁결에 인사를 하면서도 아이답지 않은 능란함에 내심 감탄했다.
어딘가 순진하면서도 음습함이 느껴질 만큼 집착이 강하던 모습 모두가 거짓말같이 느껴질 만큼.
“ 과연,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답게 벌써부터 보는 눈이 넓으시군요!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
한 백작가 출신 청년을 위시로 한 무리는 닉스의 지식과 판단에 감탄하며, 좀 더 깊은 관계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눈을 반짝였다.
처음에는 크라우저 공작가와 적당히 인맥만 틀 생각만 했을 뿐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결과다.
어떻게 할까. 이 상황이 귀찮았던 닉스로서는 그냥 정중한 척 거절할까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쌓인 인맥이 언제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고 하나, 이런 곳에서 쌓은 인맥은 대부분 상인처럼 이해득실 따져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득과 실은 지금의 닉스에게 있어 썩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래. 아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피곤하다는 말을 덧붙여 적당히 거절하자.
닉스는 이곳에 모인 어지간한 이들보다 체력적으로 앞서는 것을 알면서도 피곤한 척 거절하려다, 주위를 살피며 떼려던 입을 다물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그리고 비웃음도 있다.
닉스는 이곳저곳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자신을 향한 눈길 속에 배어든 적대감과, 그 감정이 누구를 향하는지 깨닫자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 네. 좋아요. 셀렌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줄래?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까. ”
“ 아, 네……. ”
닉스가 자연스럽게 너무 오래 걸리게 하지 말라는 언질을 주고 나서야 떠나자, 홀로 남은 셀렌이 조금 멀리 떨어져가는 닉스의 뒤를 눈으로 쫓았다.
막상 집착할 때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떼는 순간 묘한 허전함이 셀렌의 마음을 휘감았다.
무심코 떨떠름한 투로 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하아……. ”
간단히 뭐라도 먹을까. 셀렌은 닉스를 배려해 전체적으로 키를 낮춘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 하나에 손을 뻗었다.
두툼하면서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썰어둔 접시였다.
스테이크에 얹은 소스 맛과 육질은 당연히 높은 수준이었으며, 무엇보다 굽기 조절을 잘해 씹는 느낌도 좋았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허전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세상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키가 크고 아름답게 치장한 귀족 영애 몇몇이 히죽 웃으며 셀렌에게 다가왔다.
“ 반가워요. 저는 스칼렛이라고 하는데, 그쪽의 이름이……. ”
“ 아, 처음 뵙겠습니다. 셀렌……. ”
“ 망해버린 상인의 딸이죠?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이름을 대실 필요는 없어요. ”
급히 음식 접시를 내려놓고 인사를 하려 고개를 숙였으나, 그 위로 노골적으로 깔아뭉개기 위한 비웃음이 날아들었다.
망해버린 상인의 딸. 그리고 지금 그 상인이 적대했던 가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담고 있는 신세.
셀렌은 그 모든 것을 한시도 잊지 않았기에 선을 잘 지키며 지내왔으나, 막상 타인의 입에서 그 사실을 듣자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금세 당연한 일이라고 자신을 납득하듯 주문을 되뇌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 …네. 감사합니다. ”
“ 그래요. 감사해야 할 일이죠. 분수를 잘 아시는 분이시군요. 그런데. ”
왜 공작가의 후계자와 함께 다니며 제 분수를 모르는 행동을 하는 걸까요?
영애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자, 스칼렛은 자기 스스로 아픈 곳이라 생각하는 점을 찌르며 웃었다.
비록 어리다고는 하나 곱상한 생김새를 통해 미래를 크게 기대할 수 있으며,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튼튼하고 거대한 배경을 가진 아이가 온다.
스칼렛은 그 말을 듣고 호감을 사려 움직이려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계집아이가 끼여 있어 몹시 눈에 거슬렸다.
그러니 제 분수를 깨닫게 해 줌은 물론 눈에 띄지 않도록 서서히 압박을 넣어 방해물을 치우려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영애들은 그를 위한 도우미였고.
“ 죄송합니다. 귀족 분들이 참석하시는 자리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들떠서 그만……. ”
“ 들떴더라. 제 분수도 모를 만큼 들떴다 말하는 걸 보니 사리분별이 잘 안되나 봐요? 하긴, 나이가 어리니 그럴 수도 있긴 하겠지. ”
셀렌도 그런 속내를 잘 알았지만 강하게 나설 수 없다 생각하며 우울해했다.
사람의 관심이라는 건 언제든 끊어질 수 있으며, 설령 그게 깊은 집착이라 하더라도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니, 그걸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믿는다 한들 자기 태도에 따라 언제든 정이 떨어질 수도 있었고.
그래서 언제든 끈 떨어진 연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소심하게, 최대한 기분을 거스르지 않게 대응하며 우울함을 곱씹었으나,
“ 실례합니다. ”
헬레나처럼 무저갱 같은 눈빛을 띤 채 스칼렛과 자기 사이에 끼어드는 닉스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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