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시간은 흐른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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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새벽녘에, 나 홀로 침대에서 일어나 찌뿌드드한 몸을 푸는 데 시간을 들였다.
어느 새 서른이라는 나이를 넘었음에도 전보다 더욱 성욕이 강해진 헬레나를 상대하면 늘 이랬다.
그저,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서른이 넘었기에 성욕이 가장 최고점을 찍었을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좋다, 좋아……. ”
그 후에는 욕실로 들어가 몸에 붙은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는데, 이른 시간에 이러고 있으면 유난히 상쾌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원래 없었던 커다란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도 익숙해진지 오래라, 없으면 서운할 정도였다.
“ …윽! ”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며 긴장을 풀던 중, 아랫배가 불에 타는 듯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자 저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유를 모르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엘렌과 아이를 갖기 위해 이브가 무척이나 공을 들여 새긴 마법진이 새겨진 탓이라는 걸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잠깐 이러다 말거라는 것은 이미 몇 변이나 겪어보기도 했으니까.
그저, 이 화끈한 느낌이 사라진 후에 나 또한 여자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 약간 곤란하기는 했다.
듣기로는 남자로서의 기능을 올리기 위한 결과라고 하는데, 부작용 같으면서도 부작용 같지가 않은 점이 참 애매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지금도 변함없이 기운이 넘치긴 했으니.
“ 너무해… 혼자 씻으러 가고. ”
몸을 깨끗이 씻고 나오자, 어느새 기절에서 깨어난 헬레나가 침대에 앉은 채 입술을 삐죽였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헬레나와 같이 들어가면 끝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 같이 들어가면 또 하게 될 거 같아서. ”
“ 그러면 안 돼…? ”
“ 음… 아마 안 되겠지. 예전처럼 우리 둘만 지내던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아니잖아. 아이들도 있고. ”
아이들이라. 헬레나는 그 말을 듣고 아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얼굴을 보면 아직 갓난아기였을 적에 보였던 질투심 어린 표정이 생생히 떠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좋은 점 또한 있었다.
자기 아이에게 애정이 없지는 않으나 맹목적이지 않아 그런지, 엘렌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조차 고깝게 보질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정실이 측실과 그 아이를 보고 날카롭게 반응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축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지금껏 평온한 가정을 이어올 수 있어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닉스가 공작가의 뒤를 이을 아이라 하더라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으니까.
“ 너무해. 나보다 아이가 더 소중한 거야? ”
“ 둘 다 소중하지. 그러니까 얼른 씻고 와. ” “ …응. ”
아이를 낳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헬레나의 표정 하나하나에 그 특유의 아름다움이 묻어 나와 참기가 힘들었다.
예전과 똑같이 투정을 부리더라도 다가오는 느낌이 사뭇 달라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적잖게 있었다.
더구나 전보다 골반도 커져 있어, 종종 헬레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떠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헬레나가 떠나간 뒤 빈 침대를 치우며 피식 웃고 말았다.
새삼 지독한 냄새와 더불어 물을 먹어 무거워진 이불을 치운지도 벌써 몇 년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탓이다.
남에게는 더없이 지독한 냄새겠지만, 나나 내 아이를 낳은 여자들에게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이러면 안 되지, 정신 차려 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치운 이불을 구석에 있던 바구니에 곱게 집어넣었다.
여기에 넣어두면 잠시 후에 하인들이 알아서 가져가 빨아 올 테니까.
“ 다 씻고 나왔어. 너무한 지온 때문에 혼자서 쓸쓸하게 끝내느라 고생했지만, 아무튼. ”
그 사이, 샤워를 마치고 얇고 새하얀 가운 같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헬레나가 향유 냄새를 풍기며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불만이 해소되지 않은 듯 뾰로통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하다, 코앞까지 다가온 헬레나의 허리에 팔을 둘러 강하게 끌어안았다.
결과 헬레나가 내 허벅지 위에 앉는 대면좌위 자세가 되어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 주인님……. ”
주인님. 평소 침대 위에서만 불러주는 호칭을 지금 입에 담는다는 건 그 의도가 아주 명백하다 볼 수 있었다.
거기다 기대에 찬 눈빛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입술을 가까이 대는 모습, 허벅지에 닿는 살덩이까지, 어디 하나 자극적이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그 탓에 일정이고 뭐고 일단 하고 볼까, 하는 욕구가 점점 크게 피어올랐다.
그러나 막 새로 깐 이불을 더럽히는 일 없이, 서로 가볍게 입술을 맞추는 선에서 끝을 맺었다.
계획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긴 셈이다.
“ 조금 전 까지 실컷 했잖아? 그러니 오늘 밤까지만 참아 줘. 엘렌이나 이브도 없으니까. ”
“ …너무해. ”
막상 말로는 너무하다며 불만을 토해내지만,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모습을 보니 화가 풀린 듯싶었다.
헬레나가 원하는 강한 행위는 아니었으나 이건 이거대로 제법 즐기는 기색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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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는 기본적으로 고요함을 추구하며 사는 엘프와는 기질이 맞질 않는다.
보통 엘프보다 몸을 활발히 움직이지 않으면 울분이 쌓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것도 보통 엘프보다 조금 활발한 선에서 활동하면 가라앉을 만큼 간단하지 않았기에, 또 그를 가지고 엘프들과 마찰을 빚었기에 다크엘프에 관한 인상이 좋을 수가 없었다.
과거에 그 사실을 모르던 이들은 그런 마찰과 재를 닮은 피부색을 좋게 보지 않아 오물이라 취급했지만, 그 취급도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 그래. 바깥은 어땠니? 위험한 일은 없었고? ”
그 때문에 엘렌은 자신의 딸 라케시스를 상단 호위를 명분으로 바깥으로 보냈었는데, 마침 돌아온 시기가 어제 저녁이었던지라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고로 이렇게 아침이 되어서야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할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 응. 괜찮았어. 산 근처를 지날 때 좀도둑 몇몇이 나타나긴 했지만 활로 쏘니까 알아서 기더라. ”
엘렌이 어렸을 때와 꼭 닮은 얼굴을 가진 라케시스는 그 기질도 비슷했지만, 자주 바깥으로 돌아다닐 일이 많았기에 자주 웃는 아이가 되었다.
단지 그 와중에 사람을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모습이 부모로서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기에 무덤덤하게 넘길 수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라케시스도 호위가 될 것이라는 어렴풋이 예감하고, 그를 위해 가르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 그래.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구나. 칼리우드 공작령에선 어떤 것들을 보았니? ”
“ 수인국에서 옷감을 들여오는 영지라 그런지 옷도 참 많더라. 같은 공작인데도 우리 공작령과는 달라서 되게 신선했어. ”
다크엘프의 기질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차분해지고, 보통 엘프보다 약간 불 붙기 쉬운 정도로 떨어진다.
라케시스는 아직 그 단계까지 이르려면 갈 길이 멀지만, 그 때 까지 아플 일이 적을 것 같다 다행이라고 엘렌은 생각했다.
밝게 웃으며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에 그늘이 없었던 덕이다.
“ 그래. 나도 몇 번 들러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지. 같은 공작령이라도 다스리는 사람에 따라 그렇게 변하는 법이니까. ”
“ 그치. 그래서 재미는 있었는데……. ”
“ 있었는데? ”
엘렌은 즐겁게 이야기하다 말고 갑자기 말꼬리를 흐리는 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한 기색이지만, 또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썩 어둡지가 않았던 탓이다.
“ 상단 사람들하고 잡담을 하다 보니까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생겨서……. ”
“ 뭘 물어보려고 이렇게 뜸을 들일까? 괜찮으니 얼른 말해보렴. ”
대체 뭐라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엘렌은 눈을 반짝이며 딸의 입술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해 했다.
상단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돈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뜸 들이는 모양새를 보면 전혀 예상 못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엘렌이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렸더니,
“ 대공… 아버지 꼬추는 얼마나 커? ”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는 것만 같은 충격에, 저도 모르게 켁켁 소리를 내며 몇 번이나 고통스러운 기침을 토해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지켜보던 라케시스가 목소리를 높이며 걱정할 정도였다.
“ 가, 갑자기 그건 왜 묻니…? ”
엘렌은 오랜 기침을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으나,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려도 사리분별이 제법 또렷한 편이기에 모르고 뱉은 소리가 아니라 생각하자 심장마저 거칠게 뛰었다.
라케시스는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법 덤덤한 기색을 띤 채 입을 열었다.
“ 상단 분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거든. 부부끼리 생활을 하는 데 뭐가 중요하냐는 이야기였어. ”
“ 어… 그러니? ”
“ 응. 마침 심심해서 자려던 차 재미있을 것 같아서 듣기로 했지. 그래서 궁금해진 나머지 텐트 안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남자나 여자나 일단 크면 최고라고 하는 거야. ”
“ 으, 으음… 그랬구나, 그랬어. ”
상행하는 사람들이나 용병들이나 어딘가 거침없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엘렌도 잘 알지만, 하필 그 측면이 제법 도드라지는 이야기를 딸아이가 듣다니.
엘렌으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물었다.
“ 그래서, 그 다음엔…? ”
“ 그 다음? 그 다음에는… 그러는 니 꼬추는 얼마나 크냐고 물었고, 대답한 아저씨는 아무튼 존나 크다고 답했지. 그런데 옆에서 끼어들던 다른 아저씨가 지랄하지 말라고 피식 웃었고, 바지를 벗니 마니 하는 말도 했었어. ”
그 외에도 남자가 여자를 만족시키려면 크고 굵은 것이 제일이라는 둥,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만큼 거침없는 단어가 줄을 이었다.
그 탓에 엘렌이 겨우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으나, 어찌어찌 평정심을 유지한 채 모든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었다.
“ …아무튼, 여자도 젖과 엉덩이가 커야 되고, 남자도 좆이 커야 여자를 잘 보낸다고 하던데… 갑자기 아버지는 얼마나 되나 해서. 엄마는 아버지랑 애도 만들었으니까 당연히 알 거 아냐? 그치? ”
“ 그, 그야 모를 수가 없기는 하지……. ”
“ 그치? 그러니까 얼마나 되나 해서. 그렇잖아도 엄마는 엉덩이가 크니까, 아버지 것이 작으면 곤란했을 거 아냐? ”
알다마다. 이제는 아랫배 안쪽에 자리한 장기 형태가 완전히 바뀌고도 남았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엘렌은 지온 앞에서라면 당당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딸 앞에서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한심함과 안도라는 상반된 감정을 느끼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깨닫지 못했으나 부부 생활에서 불만스럽지는 않았을까.
또 그로 인한 불화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느낄 수 있었기에.
“ 으음… 혹시 내 걱정 해 주는 거니? ”
“ 그야 걱정스럽지. 아버지가 친절하고 잘생긴 건 맞지만, 결국 좆이 작으면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고 하니까……. ”
“ …나로서는 그 말에 뭐라 답을 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
크기는 일정 선만 넘으면 된다고 약사들은 말하지만, 그 약사들조차 크고 작은 것 중 무엇이 좋을까 하는 질문에 대부분 크다고 답하겠지.
엘렌은 용병들끼리 나누던 대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젓다, 솔직하게 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답했다.
어차피 알 것 다 아는 아이에게 쓸데없이 말을 돌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도 있었고.
“ 다만… 대공님, 네 아버지의 그건… 지금도 묵직하단다. ”
“ 묵직…해? ”
“ 그렇단다. 그리고……. ”
엘렌은 여태껏 사랑받고, 지금도 사랑받는 것에 대해 덤덤하면서도 상세히 풀어놓았고, 그 탓에 라케시스의 뺨이 터져버릴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잠자리에 관한 이야기쯤이야 상단 사람들 덕택에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엘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의 강도가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했던 탓이다.
거기다 손짓까지 해가며 세세한 묘사를 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 …아무튼, 이렇단다. 그래서 나는 무척 행복하고, 때로는 버겁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종종 있지. 이쯤되면 안심이 되겠니? ”
“ 예, 예에……. 아주… 잘 알겠어요. ”
이번에는 운을 뗀 라케시스가 평소 엘렌에게 쓰지 않는 존댓말까지 해가며 한껏 당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결국 경험의 차이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으면서.
“ 저기… 그러면 큰 사람은 어떻게 찾는 거에요? 아무래도 오래 싸우지 않고 살아가려면 큰 사람을 만나는 게 좋잖아요? ”
“ 몸을 섞는 것만이 남녀관계가 아니라곤 하지만… 그 점은 걱정하지 마렴. ”
“ 네? 왜요? ”
엘렌은 딸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는 모습이 귀여웠는지, 저도 모르는 새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며 답했다.
“ 혹여 먼 훗날, 너와 마음이 맞게 된 남자가 육체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면… 이브나 공작님께서 비전을 베풀어 주실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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