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나도 ... 하고 싶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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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테스트기라도 있으면 당장 임신이 됐나 안 됐나 빠르게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에 걸쳐 충분히 헬레나를 안아주고, 임신을 하면 생리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임신이 제대로 된 듯 왔어야 할 생리가 오지 않았고, 헬레나가 직접 뱃속에 성질이 다른 마나가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 웁…! ”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함께 아침 식사를 하려던 차, 헬레나가 입을 가리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순간 속이 좋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입덧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제도 체한 기색이 없었던 데다, 늘 잘 먹던 음식을 냄새만 맡고도 꺼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탓이다.
“ 고, 공작님…! ”
그 모습을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져 온 주방식구 중 한 남자가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겁에 질린 듯 낯빛이 아주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주삽시간에.
아마 헬레나가 임신했다는 생각보다 요리가 잘못되어 심기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너무 걱정 마세요. 요리는 괜찮으니까. 그래도… 일단 접시부터 치워 주실 수 있을까요? ”
“ 아, 예에! ”
두려움에 질려 있던 남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본 사람처럼 황급히 답하며, 눈 깜빡할 새에 헬레나 앞에 놓인 접시를 치웠다.
살 구멍이 눈앞에 보이니 물 불 안 가리는 기색이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꼴사납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아 불쌍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구석까지 몰린 상황인데 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 하아……. ”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사라지자, 헬레나가 한결 나아졌다는 듯 크게 숨을 내뱉었다.
한 시름 덜었다는 듯한 반쯤 뜬 눈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마치 살아나 그 여운을 곱씹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았다.
“ 이게… 입덧이야? 얘기는 들었지만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지 적응이 잘 안 되네. ”
“ 그럴 수밖에. 입덧 때문에 생기는 구역질에 어떻게 적응을 하겠어? 간혹 입덧이 없는 사람도 있다곤 하지만, 말 그대로 간혹 있는 일이라서. ”
“ 그래… 그렇구나. ”
헬레나는 크게 놀랍지도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하며, 묘한 눈빛을 띤 채 조심스레 자기 아랫배를 손끝으로 쓸기 시작했다.
아기를 가졌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도 놀라는 기색이 하나 없었지만, 헬레나답다는 모습 때문인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갑자기 아기가 생겼다고 기뻐했다면 불안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이, 특히 헬레나가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주 앉아 있었던 헬레나의 곁으로 다가가, 아랫베를 쓸던 손에 내 손을 얹으며 말했다.
“ 당분간은 안정이 될 때 까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거야. 뭘 먹어도 구역질이 날 경우도 있을 테지만… 알아는 봐야지. ”
“ …응. 나도 방금 전 구역질 했던 느낌을 또 겪고 싶지는 않네. ”
평소 가리는 음식이 따로 없던 입장에서 가려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하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듯, 헬레나의 미간이 곱게 일그러졌다.
그나마 내가 손을 잡아주고 있기에 기분 나쁜 정도가 덜했지, 만약 아니었다면 좀 더 기분 나쁘다는 듯한 티를 냈을 지도 모르겠다.
“ 아. 그래도 이유 없이 한 끼를 거를 수도 없으니, 일단 급한 대로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아. ”
“ 물론 그래야지. 하지만 뭐가 괜찮은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일단 주방에 가서……. ”
“ 아냐. 주방까지 갈 필요가 뭐가 있겠어. 멀리가지 않아도, 군침을 다실만큼 맛있는 게 바로 눈앞에 있는걸. ”
눈앞에? 나는 어딘가 어색하게 앗 소리를 내며 말하는 헬레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곧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있었다.
헬레나가 아랫배를 쓸던 내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며, 내 허벅지에 본인의 손을 얹은 채 부드럽게 쓸기 시작한 덕에.
“ 영양가도 많고, 양도 많아서 지금 같은 경우에 딱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
“ …정말 괜찮을까? ”
“ 내 피가 섞였다면 절대 싫어할 수가 없는 맛인걸. ”
헬레나가 뺨을 붉힌 채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정말 괜찮을까 싶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더구나 남자의 정액이 고단백이라는 이야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 탓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입덧일 때 꼭 비리다고 해서 꺼리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산뜻하고 좋은 음식이라 해서 꼭 먹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헬레나가 원하는 대로 해 줬더니, 정말로 거부감 하나 없는 기색을 보여 내심 당황스러웠다.
평소처럼 행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평소 같은 모습을 본다는 느낌이 영 이상했던 탓이다.
물론 헬레나나 내 입장에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잠깐 고개를 들었다.
“ 이건 어떻습니까? 입에 맞으십니까? ”
“ 네. 몸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에요. ”
“ 후우…! 그나마 닭고기는 드실 수 있으시다니 다행입니다. ”
그렇게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나와 헬레나는 곧장 주방에 들러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소금 등 조미료부터 시작해 고기나 과일, 야채, 소스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을 맛보았다.
그러다보니 고기 중에서는 닭고기가 괜찮았고, 과일은 영 아니었으며, 야채는 데치면 괜찮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기묘하게도 생선 등 약간 비린 맛이 나는 것들도 괜찮은 재료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혹시…?
“ 가려야 하는 식재료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새삼 아이를 가지면 고생이라는 말이 확 느껴지네요. ”
“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가지는 않는 모양이니 괜찮아. ”
“ 정말… 이 배에 아이가 있는 건가요…? ”
늦은 오후 시간이 되자, 헬레나와 엘렌, 이브가 집무실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제법 활기찬 기색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평소 소심했던 이브가 헬레나의 허락을 구해 아이가 있을 아랫배에 손을 대는 모습만 봐도 몹시 들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탑에서 틀어박혀 산 세월이 길어서, 또 밖에 나와서도 아이를 품은 여자와 만날 일이 잘 없어 그런 모양이다.
“ 그래. 당분간 잘 품어서 길러야 할 아이지. ”
“ 이렇게 직접 만져보니까… 마나 성질이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지네요.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
나는 여자들끼리 서로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웃었다.
서로 사이가 좋으면 그만큼 불화로 인한 시끄러움이 없다는 말을 드러내는 것만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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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
파형 모델을 마련한 지도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아 답답하다.
이브는 오늘도 갓 짜낸 피와 하얀색 액체에서 떠오른 도형의 모양을 조절하다 말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숨을 쉬었다.
지온의 파형이 워낙 복잡했던 탓이다.
엘렌의 파형이 간단했던 덕에 그를 기준으로 두고 지온의 것을 수정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 까지는 좋았다 생각했는데… 혹시 잘못된 걸까.
뇌리에 스치는 불안과 허무함에 이브가 한숨을 쉬던 중,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 누구…세요? ”
“ 나야. 들어가도 될까? ”
그에 이브가 자연스레 누구인지 물었더니, 몹시도 익숙한 헬레나의 목소리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평소 이브의 방에 잘 들르지 않는 인물이니만큼, 이렇게 가끔 들렀을 때의 충격이 제법 심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이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네, 네엣…! ”
이브는 여전히 놀란 채 얼른 책상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마련한 뒤, 급히 문을 열었다.
목소리도 그렇고, 땀 몇 방울이 이마에 맺힌 모습을 보니 몹시 긴장하고 당황해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오긴 했지만 저토록 요란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니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라고, 헬레나는 속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자기 욕망을 굽힐 수는 없었던 노릇이라, 헬레나의 발길이 자연스레 이브의 방 안을 향했다.
“ 미안해.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
“ 아, 아니에요……. 공작님의 저택이시니까, 언제든 찾아오시는 것도 당연한 걸요. 그렇지만… 조금 놀라긴 했어요. ”
“ 그럴 수밖에.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너와는 이상하게 교류가 적은 편이니까. ”
같은 침대 위에서 같은 남자에게 안기며 육체적인 교류를 쌓고, 그로 인한 동질감이 제법 깊어진 편이라고는 하나, 낮에는 그렇지가 못하다.
할 일이 없는 한 집무실에 대기하며 잡일을 돕게 된 엘렌과 다르게, 늘 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 공작님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정말 부족함 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마탑에 머무를 적에도 지원을 받기는 했으나, 공작가에서 지원해주는 것과는 비교 할 수 조차 없었다.
더구나 마탑에서 연구만 했다면 알 수 없었을 느낌까지 알게 되었으니,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그래서 이브가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헬레나가 부담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했다.
“ 너무 그렇게 감사해 하지 마. 나도 내 욕심 때문에 너를 받아들인 거니까. 아무튼, 잠깐 들어가도 될까? ”
“ 아…! 어, 얼른 들어오세요! 부족하지만 자리를 마련했으니……. ”
“ 고마워. ”
헬레나가 이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피식 웃은 뒤 미리 빼놓았던 테이블 근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브도 그 뒤를 허둥지둥 따르며 맞은편에 자리했다.
킁킁. 헬레나는 자연스레 숨을 쉬던 중 코에 비릿하면서도 익숙한 냄새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으나, 그랬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이브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고, 그에 체액이 필요해 따로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최대한 파형이 변질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신선한 것으로 바꾼다고 하는데,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필요에 따라 나누기로 정한지 오래였으니, 저 정도야.
“ 저… 차라도 한 잔 내 올까요? ”
“ 괜찮아. 너무 오래 머물면 미안하기도 하니까. 그리고 미안한 부탁을 하러 온 입장에서 대접을 받기도 그러네. ”
“ 미안하다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 드려야 하니까요. ”
후원자로서, 그리고 비공식적이라고는 하나 집착 깊은 공작이 그 남편에게 안길 수 있도록 허락까지 해 준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있을까.
이브는 도의적으로라도 그럴 수는 없다 생각하며, 제법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 내용에 따라서는 친하게 지내는 엘렌의 요청을 미뤄둬야 할 수도 있겠지만, 헬레나를 가장 우선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소심하고 정치적 감각이 떨어지는 이브라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헬레나가 내건 부탁은 이브에게 있어 썩 어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며칠 정도만 들이면 가능하다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쉬웠다.
“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아. 아니, 참기 싫어서 그러니…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도 안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수 있을까? ”
“ 아… 혹시 몰라서 여쭙는 건데, 안긴다는 건 잠자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
“ 응. 그렇지. ”
헬레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 겪을 고충에 대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보는 시선에 따라서는 중독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격렬했던 행위를 안정기가 될 때 까지 참으라니.
헬레나 본인으로서는 정말 생지옥이 따로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말을 듣는 이브도 예사 인물은 아니라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쾌락에 맛을 들이다보니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더해 불안과 짜증, 절실함이 가득 배인 기색을 접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법도 했다.
“ 음… 잠시 배를 만져 봐도 괜찮을까요? 기왕이면 맨살이 좋을 것 같은데……. ”
“ 음?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
이브는 의사가 아니기에 배를 만진다 한들 아이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견적을 잡으려면 배를 봐야만 했다.
그에 헬레나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낌 없이 제복을 풀어헤친 뒤 셔츠를 들어 올렸다.
아직까지 매끈하고 탄탄한 배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곧 크게 부풀어 오르겠지.
이브는 헬레나의 배를 바라보며 자기도 그렇게 될지 모를 미래를 상상하다, 퍼뜩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저었다.
“ 어… 관계 시 문제가 되는 건 안정감이 흐트러진다는 거니까… 그것만 잘 잡으면 될 것 같기는 해요. 그러려면 충격량을 계산해야 하는데……. ”
“ 충격량? 그건 이브 너도 잘 알지 않아? ”
헬레나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헬레나 앞에 꿇어앉은 채 배를 매만지던 이브의 뺨에 붉은 빛이 드러났다.
몸이 지진이라도 맞은 것 마냥 쿵쿵 울리는 것도 모자라, 감전된 듯 찌릿찌릿한 느낌 탓에 발끝이 절로 휘어질 지경임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 그렇… 죠? 그러면 충격을 상쇄할 수 있도록 문양을 새겨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괜찮으시겠어요? ”
이 대륙의 여자들은 몸에 상처를 남기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컸기에, 이브도 불안하다는 듯 눈동자를 떨며 물었다.
비록 헬레나가 이미 한 차례 젊음을 잃지 않기 위한 마법을 새겼다고는 하나 그 부위가 평소 잘 드러나지 않는 등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자리를 가지면 보일 수밖에 없는 아랫배이기에 그 경우가 달랐다.
그렇기에 헬레나 또한 턱을 쓸며 잠시 고민에 잠기다, 잠시 지온과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 잠시 자리를 떴다.
그리곤 잠시 후에 이브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괜찮대…! ”
“ 그러면 저도 망설일 이유가 없죠.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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