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 전승 기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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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검과 연이 없던 평민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모두 기술이 부족한 것이 당연하지만, 제법 솜씨가 좋은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흔히 천재라 할 수 있는 이들이 그랬고,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썰미가 좋은 이들이 그랬다.
그런 사람은 체격이나 체력 등 조건이 부족해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목검을 흘리며 잘 버티곤 했는데, 내심 작게나마 감탄할 정도였다.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다면 영지를 지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 공작님. 방금 져 버린 남자 말인데……. ”
“ 네. 키우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다만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함부로 내치지는 마시길 부탁드려요.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영지병이나 다른 길을 찾아 주도록 길을 찾아 줘야 가정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
“ 예. 알겠습니다. ”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홀랜드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같이 말하자, 헬레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듯 시원스럽게 허락하곤 했다.
그 와중에 저 남자를 뽑아 씀으로써 생길 문제까지 고려하는 걸 보며 영주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영지는 인적 피해가 가장 적다고는 하나 사망자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눈 먼 칼에 맞아 병사도 죽고, 기사도 죽었으니 그 구멍을 메꿔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홀랜드가 유난히 눈독을 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
다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꼭 전쟁으로 인해 잃은 사람이 없더라도 지금과 별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 다음 경기는 점심시간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자리하신 분들은 각자 한 숨 돌리면서 여운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
나는 사회자의 외침을 듣자마자 옆자리에 놓아 둔 보자기를 집어, 꼼꼼히 싸 두었던 네모난 통 하나를 꺼냈다.
축제라고는 하나 노점도 없어 각자 먹을거리를 들고 와야 하는 탓이다.
그래서일까.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그를 알기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 싸 두었던 먹을거리를 꺼냈다.
주로 들고 오기 쉬운 삶은 감자나 물, 빵이 주였다.
“ 자, 홀랜드도 들어요. 와인도 같이 가져 왔으니까. ”
“ 어이쿠. 제 몫까지 챙겨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
나는 홀랜드에게 바게트 빵같이 생긴 놈에다 내용물을 채운 샌드위치와 함께 와인 한 병을 내밀었다.
전에 좋은 술이 있으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 박아두었던 와인을 가져온 셈이다.
나나 헬레나는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편이기에 와인 대신 물을 마셨다.
“ 제법 좋아 보이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이 보이는데… 헬레나 생각은 어때? ”
혼자 빵과 술을 마시며 즐기는 홀랜드를 내버려두고 묻자, 작게 입을 오물거리던 헬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먹을 것을 씹으면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을 따르다보니 이럴 때가 종종 있기는 했다.
“ 응. 일단 참가자들이 대체로 몸 쓰는 일을 하니까 기초적인 체력도 있고, 몸 쓰는 것도 생각보다 좋아. 동작이 딱딱하거나 위험한 순간에 눈을 감는 경우가 많은 건 훈련을 안했으니 어쩔 수 없고. ”
“ 마음에 드는 사람 전부 다 뽑아 쓰는 건 욕심이겠지? ”
“ 적어도 우리 쪽에서 대표로 뽑힐 정도는 되어야… 뒷말이 최대한 줄지 않을까 싶어. 다른 기사들이 눈독 들이는 건 괜찮지만. ”
그것도 일리가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법 두툼한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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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두 달.
막상 행사를 진행하다보니 그리 넉넉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둘러 쫓기는 듯한 느낌도 없어 딱 좋았다.
약간의 여유를 남기고 끝났으니까.
그동안 나와 헬레나를 포함한 세 여자가 눈에 띄지 않도록 관객석에서 구경을 하며, 때로는 누가 이길지를 두고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 내용 중에는 결국 누가 마지막에 이길지도 있었다.
마지막 승자 내기는 1회전이 전부 끝난 그날 밤에 했었고, 그 외에 벌어진 자잘한 내기에서는 이기고 지기를 반복했다.
내기에서 이기는 사람은 지는 사람의 부탁 하나를 들어준다.
얼핏 듣기엔 조건이 너무 범위가 넓어 내기로 삼으면 안 된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저, 문제가 있었다면 사실상 내기의 조건이 방해 없이 나와 둘이서만 있는다는 내용이 되었을 뿐이다.
그 탓에 한 여자가 이기면 남은 두 여자가 열을 올리고 다음 내기에 참여한다는 선순환이자 악순환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 중에서 보는 눈이 가장 없다 생각했던 이브가 점찍었던 리암이 이길 때 까지.
“ 리암이… 이겼어? ”
헬레나는 결투장 위에서 두 팔을 번쩍 들며 포효하는 남자를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아마도 소심하게 대충 찍었던 이브보다 보는 눈이 없나 하는 생각과, 승리자로서 요구할 조건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질린 탓이 아닐까.
더구나 엘렌도 헬레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땅을 뚫어버릴 듯 고개를 푹 떨군 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 어, 어쩌죠…? ”
“ 글쎄. 좀 과열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긴 건 이긴 거잖아. 그러니까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너무 황당한 조건만 아니면 뭐든 들어줄게. 정확히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만…… ”
너무 방에만 박혀있는 것 같기에 바깥바람 좀 쐬자고 손을 잡고 나왔더니, 세상에.
대박을 터뜨렸구나 싶으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니 약간 우습기도 했다.
비웃음이 아니라 귀여워 보여서.
“ 으음… 소원이라. 사실 연구 지원도 많이 해 주시고, 애정도 많이 주셔서 더 바랄게 없긴 한데… 빌긴 빌어야겠죠? ”
이브가 셋 중에서는 가장 침착하고 욕심도 없어 그런지 소원 하나를 떠올리는 것도 어려워 보이는 눈치다.
더구나 정말로 만족하고 사는 기색이라 원하는 걸 떠올 리가 더더욱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기묘하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생각하다 결론을 내긴 했는지, 천천히 입술을 뗐다.
“ 정 그러시다면… 제 실험을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소원은 강도가 세다고 들었으니… 사흘 정도면 괜찮을까요? ”
“ …윽! ”
사흘이라는 말이 몹시 부담스러웠는지, 헬레나가 가슴을 움켜쥐며 통곡했다.
반응만 봐서는 갑작스레 찾아온 심장마비에 고통 받는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표정과 목을 긁는 듯한 목소리가 워낙 생생한 탓에.
이브도 그를 알았는지, 황급한 표정을 띤 채 최대한 느긋한 말투를 구사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 마냥.
“ 저, 낮에만 그렇게 해 주시면 괜찮아요. 밤은… 늘 했던 것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
후우.
헬레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통스러운 표정을 풀고, 몹시 안심했다는 듯 숨을 길게 토해냈다.
같이 있던 엘렌도 한 고비 넘겼다는 듯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고 있었다.
이 둘의 집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지만,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모습을 보니 제법 색다른 느낌이었다.
웃기기도 하고.
“ 좋아. 그렇게 하자. 다만 이럴 경우 헬레나 혼자 일을 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 ”
“ …괜찮아. 솔직히 죽다 살아난 기분이라 그 정도는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걸. 뭣하면 엘렌의 손이라도 빌리지 뭐. ”
“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영지 행정을 결정할 지식도 능력도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
“ 고통도 나누면 두 배가 된다잖아. 아예 이참에 서류상으로 영지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하고, 틀도 조금씩 배워 둬. ”
나누면 고통이 두 배라는 말에 엘렌이 미간을 찌푸리다, 결국 허탈한 기색이 드러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헬레나가 주도적인 입장이니만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실험을 돕는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도와야 할까.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눈물을 쏟아내며 긴 감상을 쏟아내던 리암을 축복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헬레나와 함께 결투장 무대로 발을 옮겼다.
“ 헉?! 고, 공작님과 대공님께서 직접 내려오시다니……. ”
우리는 원래 이럴 생각이었고 합의도 다 끝내 두었지만, 리암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헉 소리를 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당장 기절할 것 같은 표정도 덤으로 짓고 있어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배어나올 지경이다.
“ 축하합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보석이 숨어 있었군요. 물론, 잘 싸워주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
나는 흙과 피로 더렵혀진 리암의 거친 손을 감싸 쥐며,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칭찬했다.
그러자 리암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조금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데, 내심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 가, 감사합니다……. ”
“ 하하. 의외로 눈물이 많으신 분이셨군요. 아무튼, 우승자께서는 일주일 뒤에 열릴 마지막 무대에 오르시게 될 겁니다. 그에 관한 기대도 있을 것이며, 부담 또한 있겠지요. 어찌 보면 영지를 대표해서 나서는 셈이니까요. ”
“ 맞, 맞는 말씀입니다. ”
건장한 체격이 큰 키를 가진 남자가 우는 모습도 묘했지만, 아이처럼 긴장한 채 군기가 든 모습도 묘했다.
현대로 따져보면 어깨 쭉 펴고 다닐 조폭 같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소심한 모습을 보이니 그럴 수밖에.
나는 아무에게도 말 못할 감상을 품으면서도, 리암의 손을 감싸던 손을 어깨 위로 옮겼다.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기 위해서.
“ 단, 그렇다고 해서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오히려 가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
“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
“ 기사를 뽑는다고는 하나 결국 영지민들이, 더 나아가 왕국의 백성들이 보고 즐기기 위한 축제입니다. 물론 당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저도 바라고 있지만, 그 때문에 무리하거나 지나친 부담감에 스스로를 혹사하지는 마세요. ”
귀족이 평민에게 존댓말? 이라는 의문을 가질 시기는 이미 진즉에 지난 지 오래였고, 영지민 모두가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 기묘하다 느끼는 눈치는 없었다.
리암도 그를 잘 아는지 말투가 신경 쓰여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이 없었다.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는 듯 했지만, 이 정도야.
“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 그래요. 기대는 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서 그에 얽매이지는 마세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
“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짝짝. 리암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우렁차게 외치자, 관객들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큰 박수였기에, 리암이 다시 한 번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아마 살아생전 이런 상황이 없었으니 그 감격이 남다른 모양인가 싶었다.
그 후로는 영지민들을 돌려보내고, 결투장을 철거하고, 그 남은 자재는 각 병영에 놓아두어 나중을 대비하기로 했다.
자재 자체는 어떻게든 쓸 수 있으니 그냥 버릴 수가 없을 노릇이다.
정 안되면 땔감으로도 쓸 수 있으니까.
“ 저… 대공님. ”
그렇게 대표 선발도 다 끝난 다음날 아침.
나는 늘 있던 집무실이 아닌 이브의 방에 놓인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보는 이브와 눈을 마주했다.
손님방 중 하나를 주었기에 가구나 침대 같은 물건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커다란 책상에 놓인 여러 기구들은 몹시 이색적이었다.
“ 응? 왜 그래? ”
“ 다름이 아니라… 공작님이나 엘렌 언니, 저를 안아주시느라 피곤하시지 않으세요? ”
나는 수줍은 기색이 배어나오는 이브의 질문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사람인데 피곤한 것이 당연하기는 하다.
체력과 몸이 받쳐준다 하더라도 거의 밤을 새다보면 몸과 정신에 피로가 쌓이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 피곤하지. 그래도 머리에 약간 무게가 느껴지는 수준이라 문제는 없어. 수도원에 들러도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정말일 거야. ”
“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으시죠? ”
“ 부담? 부담이라……. ”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믿기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부담스럽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풍만하기 그지없는 엘렌과 헬레나의 몸이 부담스럽다 생각할 법도 하겠으나, 그런 의미에서 부담스럽다는 뜻은 아니라 확신했다.
애초에 잠자리 문제를 두고 계속 이야기하는 중이니.
“ 이렇게 말하면 못 믿을 지도 모르겠지만… 부담스럽다고는 생각 안 해. 나는 침대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
“ 정말… 이세요? ”
“ 그럼. 헬레나나 엘렌이 배가 비면 우울한 기색을 띠며 쓸쓸하다 말하는 것과 비슷해. 물론 내가 그 정도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에 준할 만큼 행위를 즐기고 있긴 하지. ”
고기도 맛본 놈이 그 맛을 더 생생히 떠올리는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줬다 뺐으면 더 화가 나는 것과 비슷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아무튼, 딸만 잡다 돌팔이 때문에 죽은 생이었으니 처음 맛 본 야스에 눈이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설령 몇 년째 계속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 그러시다면… 다행이에요. ”
내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이브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배시시 웃었다. 이래서 진심은 통하나보다.
“ 그래도… 대공님께서 계속 이대로 지내시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힘이 들기는 하실 거에요. 물론 누구보다 그… 절륜하신 분이시지만……. ”
이브는 여전히 성적 단어를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에 손을 얹으며 말을 더듬었다.
그래도 이런 말을 아예 하지 못할 때에 비하면 가히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어, 내심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절륜이라.
나는 그 단어에 뭐라 표현 못할 뿌듯함을 느끼며 허리를 쭉 폈다.
유치하지만 힘 좋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있을까?
“ 그…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힘이 더 있어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요. ”
“ 힘이라면… 그런 쪽이겠네? 물론 이브 말이 맞아.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
“ 네.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대공님의 몸에 식을 하나 새기고 싶어요. 물론 상처는 최대한 안 나도록 할 테지만, 아무래도 그게……. ”
이래저래 빙빙 돌려 말하는 게 뭐 때문인가 했더니, 이래서구나.
생각해보면 몸에 상처를 내겠다는 말을 그리 쉬이 꺼낼 수는 없었을 테니,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는 것도 이해가 갔다.
서로 몸도 섞고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 괜찮아. 이브가 못 믿을 사람도 아니고 충분히 배려하겠다는데… 못 믿을 수가 있나. 전쟁에서 닳고 구른 사람들 정도는 아니지만, 아픈 것도 익숙하고. 그러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뭘 어떻게 하면 될까? ”
“ 아,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이브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허둥지둥 장롱 서랍으로 다가가더니, 그 안에서 깨끗한 천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그 천을 침대에 깐 뒤에, 나를 천 위로 엎드리도록 유도했다.
“ 저, 집중이 필요한 일이라… 잠시 실례할게요. ”
다만, 이브가 엎드린 내 허리 위에 올라타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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