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이겨도 바쁘다 #5
* * *
“ 아, 으음……. ”
침실에 놓인 커다란 전신거울 앞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이브를 바라보고 있자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음에도 영락없는 아이 같았다.
몸의 맵시를 살리면서도 노출은 줄인 푸른색 드레스가 어색한 탓인지, 아니면 귀족들 틈에 끼여 고생할 생각을 한 탓인지…….
“ 왜? 마음에 안 들어? ”
“ 아, 아뇨! 정말 감사해요! 그저 살면서 이런 옷을 입어 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한 것도 있고, 좀 어색해서……. ”
“ 나도 마음 같아서는 편한 옷을 입혀주고 싶은데… 자리가 자리라 어쩔 수가 없어. 미안해. ”
내가 사과할 필요 없는 일로 사과하자, 이브가 몹시 당황하여 허둥지둥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니 체구가 작고 드레스에 익숙하지 않을 것을 생각해 치맛자락을 길게 늘어뜨리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궁 연회장에서도 허둥대다 제 치맛자락을 밟고 넘어질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만 같았으니까.
“ 귀엽네. 보기 좋아. ”
헬레나도 차려 입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슬쩍 들어올렸다.
필요한 재료를 사고 일손을 모으기 전에 했었던 공격이 잘 먹혀들어간 덕이다.
만약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이브를 죽일 듯이 노려봤을 지도 몰랐다.
이브는 헬레나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감사하다는 말을 했고, 함께 그를 지켜보던 엘렌은 부럽다는 듯이 몇 마디 했다.
헬레나가 준 정복이 없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하인들과 함께 더 부지런히 손을 놀렸을 지도 모르나, 경우가 달라 정복을 주고 끝낼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 헬레나라면 그렇게 했겠지.
“ 그런데, 왜 전하께서는 우리까지 초대하려 하신 걸까요. 단순히 공을 치하하고자 전승 연회까지 부를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큰 공을 세웠으니 당연히 부를 만도 하다는 생각만 하다, 엘렌의 밀을 들으니 그것도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치하하고 끝내려면 칙서와 함께 제물 정도만 내려 보내도 충분할 텐데, 굳이 초대를 해서 얼굴을 보려고 한다?
뭔가 이상하기는 했다.
정말 단순하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상을 내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다른 의도가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
나는 그 답을 찾고자 잠시 머리를 굴리다, 곧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미치지 않고서야 굳이 전공이 높은 존재를 몰아붙이지는 않을 테니.
“ 글쎄. 국왕의 생각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아마 해가 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어. 솔론트 백작령에 있을 때에도 칭찬을 했으니까. ”
“ 하긴. 여러모로 도움이 돼서 그런지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긴 했죠. 괜한 걱정을 했나 봐요. ”
엘렌은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자기가 말한 대로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겠지.
“ 그래. 설령 일이 생긴다 해도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
으음.
헬레나는 팔짱을 낀 채 오른손가락으로 팔뚝 부근을 톡, 톡 두드리며 낮게 신음했다.
조금 전 나처럼 왕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을 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나와 다르게 잠깐의 침묵 뒤, 그럴 듯한 결론을 내린 것이 큰 차이였다.
“ 만약 부담을 줄 것 같으면 단호하게 대처해. 눈치 보지 말고. 단, 너무 무례하게 행동하지는 말고. ”
“ …정말 그래도 괜찮아요? 공작님은 국왕파시잖아요. ”
엘렌은 귀족, 더 나아가 왕국 안의 세력 관계를 그럭저럭 아는 편이기에 무척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국왕을 따르는 국왕파의 머리가 국왕에게 정면으로 반박해도 좋다는 말이 예삿말은 아니었던 탓이다.
하지만, 헬레나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말을 이어나갔다.
“ 국왕파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충성할 필요는 없잖아. 오히려 왕을 지지하려면 그래서는 안 되지. 직언도 필요할 때가 있을 테고. 더구나, 가라면 갈 거야? 물론 나는 그만큼 지온을 독점할 수 있으니 환영이긴 한데. ”
왕에게 하는 직언은 정말로 목을 내놓고 해야만 할 정도로 위험하다.
물론 이 대륙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그 부담이 사뭇 덜하기는 했으나,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직언을 가볍게 말하는 걸 보면 이미 그에 관한 생각과 각오가 다 끝난 모양이었다.
엘렌이나 이브도 그를 깨달았는지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수긍하는 기색을 보였다.
.
정말로 왔구나.
눈을 찌를 듯한 화려한 조명. 그에 억눌리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
회장 곳곳에 놓인 커다란 원형 테이블과 그 위를 장식하는 여러 음식 접시들까지.
나는 새삼 왕궁 연회장에 발을 들였음을 느끼며 내심 한숨 쉬었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고는 해도 도저히 익숙해질 낌새가 안 보였다.
“ 괜찮아? 몸이 안 좋으면 먼저 들어가 쉴까? ”
헬레나는 내가 속으로 한숨 쉬는 것을 알았는지, 몹시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에 시종처럼 얌전히 뒤를 따르던 정복 차림의 엘렌이나, 드레스를 입고 꾸민 이브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오자마자 나가는 건 좀 그랬다.
더구나 건강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꾀병을 부리기도 뭣했다.
전승 기념 파티에 공작가가 빠지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지 않을까 싶어서.
“ 괜찮아. 더구나 전하의 얼굴도 보지 않고 물러날 수도 없을 노릇이잖아. 정말로 아프다면 모를까. ”
“ 그러면 다행이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 ”
“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래도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
나는 은근히 불안한 기색을 띠기 시작하는 여자들을 달래고자 단호하게 답하며,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귀족들을 맞았다.
그 후에 곧장 다른 파벌 귀족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루크나, 여전히 조용하고 묵직한 알론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국왕을 빼면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으니 인사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 다음은 신분 순서에 따라 후작, 백작 등… 여러 귀족들과 손을 잡으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신기한 것은 전쟁 뒷수습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가, 파벌을 구분하지 않고 교류를 다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목숨 걸고 제국이라는 같은 적과 싸워 이겨낸 시간 덕일까.
늘 득보다 실이 많은 전쟁이지만, 이 모습만큼은 전쟁 덕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기가 좋았다.
전에는 서로 교류를 해도 은근한 긴장감이 흐르고, 어딘가 딱딱한 느낌이 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 처음 공작께서 놈의 목을 들고 오셨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분명 이름이… 헬릭스라고 했었던가요? ”
“ 네. 헬릭스 백작이었지요. ”
“ 하하! 다행히 제가 기억하는 이름이 틀리지 않았군요. ”
누군가 앞장서서 공통의 적이자 위협 중 하나였던 헬릭스를 껌처럼 씹어대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귀족들도 한 마디씩 거들며 호응했다.
만약 헬릭스가 살아서 들었다면 땅을 치고 통곡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귀족이 제법 묵직한 주제를 들고 나왔다.
즐거운 시간에 나올 법한 주제는 아닐 법 하지만, 귀족으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태도였기에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 그나저나, 전쟁이란 참 허무하고도 씁쓸합니다. 이겨도 상처가 남으니 곤란하기 짝이 없어요. ”
“ 옳으신 말씀입니다. 가끔 시찰을 가다 어미 우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무겁더군요. 피해가 적은데다 배상금까지 얻어냈다고는 하나, 죽은 목숨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
진심인지 가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지 관리를 잘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며, 일단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속내를 파볼 능력도 없고,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에 신경을 쓰기가 싫었다.
그렇잖아도 국왕이 오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피곤하니까.
“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숙했던 분위기가 더 엄숙해지기 직전.
시종의 보고와 함께 국왕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연회에 맞게 화려하나 제법 실용성을 살린 차림이었다.
헬레나의 정복을 좀 더 개조한 것 같이 보이기도 했고.
“ 이번 승리의 주인공들께서 모두들 모여 게셨구려. 다들 즐기고 계셨소이까? ”
“ 황공하옵니다. 모두가 전하께서 쌓으신 은덕 덕분이옵니다. ”
“ 허허. 그 무슨 말씀이시오? 모두가 피를 흘리며 싸운 덕에 오늘의 승리가 있었던 것을. 공작께서 내 얼굴에 너무 금칠을 하시는구려. ”
의외로 칼리우드 공작이 앞서서 아부하는 듯한 말을 꺼내자, 국왕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굴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니 듣기에는 좋은 모양이었다.
설령 뻔한 소리임을 알고 있어도.
“ 아무튼, 다들 전쟁을 치르느라, 그리고 그 전쟁의 상처를 돌보느라 고생들 하셨소. 내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승리를 축하하고 싶은 욕심에 다소 일정을 앞당겼소이다. 용서하시구려. ”
“ 용서라니요.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전후 수습을 할 시간을 주신 배려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
이번에는 루크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과장스럽게 허리를 반쯤 숙이더니,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 마냥 매끄러운 아부를 쏟아냈다.
더구나 다른 귀족들도 그에 맞춰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외쳐댔다.
그에 국왕이 몹시 뿌듯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서 있던 헬레나의 곁으로 걸어왔다.
“ 다들 금칠만 해주니 내 무심코 콧대가 높아질 지경이구려. 공작께서도 그리 생각하시오? ”
“ 예. 전쟁의 승리가 영광되지만은 않는다는 전하의 뜻깊은 배려에 모두가 감사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 또한 그러합니다. 표현이 서투른 탓에 다른 분들에게 순서를 빼앗긴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만……. ”
“ 크하하! 공작께서도 그리 말하시니 내 마음을 쓴 보람이 있구려! ”
공작은 슬쩍 고개 숙이며 아부하는 헬레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몹시 즐겁다는 듯 웃어댔다.
아부임을 알고 있어도 듣기 좋을 수밖에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
나는 헬레나를 따라 숙인 고개를 들다, 내 쪽을 바라보는 국왕과 눈이 맞았다.
생각도 못한 상황이었던지라 잠깐 움찔할 지경이었다.
“ 대공께서도 공작을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본을 보이셨으니, 그야말로 귀족의 귀감이구려. 정말 고생 많았소. ”
“ 전하께서, 그리고 다른 귀족들께서 든든히 받쳐주신 덕택입니다. ”
“ 뿌리가 든든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던 말씀 말이오? 내 워낙 인상적이었던지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소. ”
“ 영광입니다. ”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는 하나, 국왕이 직접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나도 그에 맞춰 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조용하고 무난하게 묻어가는 길이었으니까.
“ 그래. 그러고 보니… 선봉에서 공을 세운 이들도 참석했군 그래. 이렇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네. ”
국왕은 내 뒤에 서서 고개 숙이고 있던 엘렌과 이브에게 시선을 두며 웃었다.
귀족들을 대할 때와 다르게 좀 더 하대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했으나, 신분을 고려해보면 자연스러운 행동이기는 했다.
“ 아닙니다. 오히려 저 같은 야인을 궁의 연회에 발 들이도록 허락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 저, 저도… 별 볼일 없는 행위가 너무 높게 평가된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에요. 그… 전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여러 경우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해 본 엘렌은 딱딱하지만 여유롭게 답했고, 사람 대하는 경험이 적은 이브는 약간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렇다 해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애써 예를 갖추려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면 보였지.
다행히 국왕도 그리 생각하는 듯, 혹은 우리의 체면을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입을 열었다.
“ 별 거 아니라니. 듣자하니 그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황제를 그토록 쉽게 잡아올 수 없었다고 들은 것을. ”
겸손하기도 하지.
국왕은 머리를 숙이며 답하는 두 여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믿기 어렵게도, 직접 엘렌의 어깨에 손을 얻은 채 고개를 세우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브의 어깨에도 손을 얹으며 눈을 맞추도록 했지만, 국왕이 다크엘프의 몸에 손을 얹은 것이 워낙 놀라웠다.
다른 귀족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국왕의 뒤편에 선 채 입을 작게 벌리거나 눈을 크게 뜨고는 했다.
“ 음. 크라우저 공작은 모두가 함께 일궈낸 전쟁이라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활약을 한 것이 그대들이라 들었네. 그래서 내 부족하지만 상을 내릴까 하는데… 받아주겠는가? ”
“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
“ 저… 만극하옵니다. ”
엘렌과 이브는 왕이 구체적으로 무슨 상을 줄지 모르기에 일단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것은 정말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리라.
그나저나 무슨 상일까.
나는 헬레나와 함께 국왕의 옆에 서서, 그 묵직한 입이 열리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 좋네. 그러면 우선… 엘렌이라고 했던가? ”
“ 예, 전하. ”
“ 그대에게는 왕실의 이름으로 기사의 직위를 내리고자 하네. 아, 그래도 중앙기사단처럼 왕실에 몸 담으라는 뜻은 아니고… 그 이름으로 보증한다는 뜻이지. 얼핏 보면 별 거 아니라 생각할 지도 모르나, 지내다보면 좋은 점이 많을 걸세. ”
그러나, 막상 그 입이 열리자 더 놀랄 내용이 귀에 쏙 틀어박혔다.
다크엘프를 아예 국가에서 인정하는 기사로 만들겠다고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각 영지의 귀족들에게도 정식으로 기사를 뽑고 갖출 권리가 있기는 하다.
왕실의 인정을 받지 않았더라도 그들 또한 정식으로 임명된 기사가 맞다.
그게 당연한 상식이자 법이다.
하지만 왕실에서 임명하는 기사는 아무래도 그 격이 조금 더 높았다.
특히 소테른 왕국처럼 국왕의 힘이 약하지 않은 편이라면 더더욱.
“ 저를… 기사에 임명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저는 오러를 쓰지 못합니다. ”
“ 물론 기사가 되려면 오러를 다루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기는 하지. 허나, 그대가 보여준 활약은 여느 기사 못지않았네. 오히려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들마저 제압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기사가 될 자격 또한 충분한 셈이지. ”
국왕은 당황해하는 엘렌을 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얼핏 보면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는 말 모두가 진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엘렌 또한 적잖게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곧 결심을 굳힌 듯 눈을 반짝였다.
“ 많이 부족하지만, 전하께서 내린 은혜를 성심껏 받아들이겠습니다. ”
어떻게 보면 단순히 기사라는 칭호만 받는 것이기에 불만이 있을 법 했으나, 나나 엘렌의 입장에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역할이나 그에 따르는 월급 등의 구속이 없으니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 그래. 정식 서훈은 며칠 뒤 오후에 치르는 것으로 하지. 그리고 이브 그린우드. ”
“ 예, 예에……. ”
이브는 갑자기 제 이름이 불리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답했다.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 그대는 마법사라고 들었네. 그런 그대에게 상을 주려면 궁정마법사 직위 정도는 주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으나… 공작께서 놓아주지 않을 것이 훤하니 그럴 수도 없을 노릇이겠지. 그러니 그 대신 그대가 원하는 물품들을 정리해 제출하게나. 예산이 허락하는 한 구해주도록 하지. ”
하나 정도는 작위를 줘서 직접 왕실에 묶을 시도를 할 줄 알았는데, 하나같이 선뜻 한 발 물러나는 듯한 모양새라 몹시 고마웠다.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어느 정도 계산이 들어간 배려겠지만, 아무튼.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광입니다. ”
말 그대로 물질적인 상을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겠다 싶었는지, 이브도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