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교국으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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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숙소에서 잠을 잘 예정이기에크라우저 공작가의 문양이 찍힌 마차를 계속 끌고 다니기는 뭣했다.
공작가의 문양이 찍힌 마차는 눈에 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차만큼은 바르칸 저택에 맡겨두고계획했던 대로 적당한 숙소를 잡아 뒀다.
신분은 적당한 상인으로 위장했다.
“ 저기… 이 돈은 대체? ”
“ 팁입니다. 아무래도 침대가 많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요. ”
세 여자를 먼저 방으로 올려 보낸 뒤.
나는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여관 주인장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사이에 돈도 몇 장 끼어 있어, 주인의 눈이 의구심과 기대감이 뒤섞인 빛을 냈다.
“ 침대가 더러워진다는 뜻은… 아! ”
말꼬리를 흐리던 주인이 깨달음을 얻은 듯 낮은 탄성을 냈다.
여자 셋과 한 방을 쓸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한 눈치였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한 둘도 아니었을 테지.
“ 감사합니다. 이 돈은 잘 받아 두겠습니다. ”
“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
주인장은 방이 더러워짐을 미리 양해해 달라는 것과 동시에, 입을 다물어 달라는 뜻을 담은 돈을 품에 넣었다.
숙박비보다 좀 더 많이 챙겨 줬기에 제법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어찌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으나 나쁠 것은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재수 없으나 돈에 쪼들리는 것도 아니었고.
나는 주인과의 은밀한 대화를 마무리 지은 뒤, 곧장 위층에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큰 방을 잡았기에 공간도 제법 넉넉했고, 침대도 두 개라 편할 듯싶었다.
다만, 엘렌과 이브는 침대를 보며 다소 안타깝다는 기색을 보였다.
크라우저 저택의 침대만큼 크지 않아 함께 잠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둘이서 자기엔 좋지만 넷이 들어가기엔 좁았기에.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기절할 만큼 절정을 안겨다주고 속이 거북할 만큼 배를 부르게 해 줬다.
“ 데운 물이 준비됐습… 어어?! ”
똑똑 문을 두드린 뒤 들어온 여관 직원이 헉 소리를 냈다.
욕실에 물이 준비되었음을 알리러 왔다, 방 안에 자욱한 증기와 진한 냄새에 깜짝 놀란 눈치였다.
내가 직원이었어도 어질어질했을 테니놀라는 것도 이해가 갔다.
더해, 직원을 맞이한 나도 땀이 흥건한 채 바지만 겨우 걸치고 있었으니까.
“ 네. 감사합니다. 저희가 욕실에 가 있는 동안 침대보와 이불을 좀 갈아 주세요. ”
“ 예, 예에……. ”
이미 팁을 포함한 돈을 충분히 줬으니, 또 돈을 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직원도 그를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물러났다.
아마 우리가 욕실로 향하면 바로 방 안으로 들어와 움직일 듯싶었다.
나는 방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맥없이 침대에 늘어진 여자들을 깨워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가려면 복도를 지나야 했기에, 찝찝하더라도 아무 옷이나 걸치게 했다.
그러나, 정작 욕실에 들어가서도 식을 기미가 안 보여 한 바탕 곤욕을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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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다.
넓고 큰, 파란 수면 위를 달리는 바닷소리가 들렸다.
하얀 거품이 구름떼처럼 이는 모습은 어찌 보면 게거품 같아 보이기도 해서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횟집 수조에서 이는 거품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 저기… 괜찮으십니까? 배가 좀 빨라서 힘드실 법 한데……. ”
배 난간에 기대 제법 차가운 바람을 쐬던 중, 한 남자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제법 큰 이 상선의 1등 선원이었다.
남자는 손에 약초와 같은 것을 쥐고 있었는데,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 배려해 주신 덕에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건…? ”
“ 아. 멀미에 좋은 약초입니다. 쓰기는 한데 한 번 씹으면 효과가 하루정도 갈 만큼 약발이 좋지요. 배에 익숙한 상인 분들도 제법 많이 용하는 겁니다. 한 번 드셔 보시죠. ”
“ 이렇게 신경을 써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
나는 선원이 내미는 약초를 받아들이기 무섭게 입 안으로 털어 넣고, 즙이 진하게 나도록 씹어댔다.
쓰다고 하더니, 정말로 인삼을 씹는 것만 같은 쓴 맛이 혀에 들이쳤다.
그나마 청량한 향이 진하기에 씹을 만 했지, 단순히 쓴맛만 났다면 얼굴이 오만상 찌푸려질 정도였다.
“ 쓰긴 쓰네요. 그래도 향이 좋아서 먹을 만 하기는 합니다. ”
“ 그것 참 다행이군요. ”
선원이 굳어 있던 표정을 풀며 안도한 기색을 보였다.
내 망상일 뿐이지만, 개중에는 약초를 씹고 불만을 토해낸 인간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아니라면 저런 모습을 보이진 않겠지.
“ 감사합니다. 약발이 좋다고 하더니 바로 효과가 나오는 것 같네요. ”
“ 그렇지요. 아 참. 저는 다른 분께도 약초를 나눠드리러 가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
“ 고생이 많으시네요. ” “ 하하, 아닙니다. ”
선원은 연신 굽실대며 내게 인사를 하더니, 선실들이 늘어서 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르칸 백작의 소개를 받아 탄 상인이라 소개해서 그런가제법 눈치를 보는 기색이었다.
그럴 듯한 짐도 없이 무역선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였다.
“ 좋구나……. ”
배 옆면 난간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선착장에서 보았던 수평선만 보아도 넓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그보다 비교가 안 될 만큼 넓은 바다 한 가운데라.
“ 대공님. 여기서 뭐 하세요…? ”
한창 바다를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던 중, 엘렌이 방긋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본래 다크엘프 여성과 함께 하면 그 특징이 너무 눈에 띄어 마법으로 변장을 시키려 했으나, 대충 가명과 용병이라는 신분으로 때웠다.
또 긴 머리를 묶은 뒤 땋아 늘어뜨리고, 정복 대신 용병들이 입는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확 달라지기도 했다.
덕분에 미심쩍은 눈초리도 피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대륙의 다크엘프가 전부 우리 영지에 있다 하나, 용병일을 하러 훌쩍 떠나는 이들도 제법 있었으니까.
“ 바다 구경이나 하고 있었지. 엘렌은? ”
“ 저야… 대공님이 안 계시니까 외로워서요. ”
엘렌이 귀엽게 응석을 부리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사람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방 안이라면 모를까, 속임수 아닌 속임수를 쓰는 중이라 찰싹 달라붙지는 않았다.
그 탓에 약간 불만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 답답하지? 미안해. 엘렌이 다크엘프라 차별하려는 건 아닌데……. ”
“ 알아요. 저 같은 다크엘프를 곁에 데리고 다니는 남자는 대륙에서도 드물잖아요. 그렇잖아도 여러모로 의심쩍은 눈초리를 받는 중인데… 조금은 자제해야죠. ”
“ 고마워. ”
살아온 세월이 많은 덕인지,엘렌의 얼굴에는기분 나빠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관대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관대하다며 두 팔 벌려 말하는 왕이 갑자기 떠올랐다.
“ 참. 헬레나나 이브는? ”
“ 공작님께서는 이브와 전략회의 중이세요. 이참에 영지에 돌아가 새로 시험하거나, 보수해야 할 것들에 관해서요. ”
“ 부지런하네. 나도 갈까? ”
“ 그럴 필요 없으세요. 공작님은 처음부터 회의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
전략 회의를 하는 중인데 할 생각이 없었다?
이 기묘한 문장에 절로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다행히 엘렌이 고민을 풀어주었다.
“ 원래 방 안에서 간단하게 게임을 하고, 거기에서 이기면 대공님과 시간을 보낼 권리를 주겠다고 하셨어요. ”
“ 아. 그 게임에서 엘렌이 이긴 거구나. ”
“ 노련함이 필요한 일은 공작님께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요. ”
나는 한쪽 눈을 지그시 감으며 웃는 엘렌의 얼굴을 마주하며 웃었다.
결국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독점하고자 시작한 게임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기묘한 전략회의가 시작된 셈이다.
중요한 회의가 이런 이유로 시작되다니. 어쩐지 하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음. 그럴 수 있지. ”
그렇지. 그럴 수 있지.
나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 뒤, 이야기 주제를 돌렸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이 주제를 가지고 할 얘기도 없었다.
“ 그러면 언제까지 들어가면 돼? ”
“ 물론, 대공님 내키시는 대로요. ”
“ 내키는 대로라.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있다 들어가면 삐치겠지? ”
“ 오히려 저는 좋은데요? ”
그래. 엘렌은 오히려 좋겠지만 나는 아니다.
엘렌과 단 둘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건 좋은데, 너무 길어지면 결국 혼란이 온다.
바다를 바라보며 가라앉힌 평화가 와장창 박살난다 이 말이다.
고로, 적당히 선을 지키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 그럼 낚시나 하다 들어가자. ”
이동하는 배 위에서, 하물며 거품이 이는 곳에 물고기가 낚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낚싯대를 드리우고 느긋하게 시간을 때우고 싶을 뿐이었다.
엘렌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끊임없이 이동하는 배이기는 하나, 가끔 물고기를 낚고자 배를 세울 때가 있었다.
배 뒤쪽에는 그를 위한 도구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 창고에서 낡은 의자와 낚싯대를 각각 두 개씩 꺼내, 측면 쪽에 자리를 잡았다.
꼬리 쪽에 낚싯대를 드리우다 자칫 배가 상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 대공님…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물고기가 안 낚이는 건 알고 계시죠? ”
엘렌이 여태껏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다, 의자에 앉기 무섭게 의뭉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내 마음을 안 것이 아니라, 무식한 놈이라 지적했다 돌아올 반응이 무서워 조용히 있었나보다.
한숨이 나올 노릇이다.
“ 알지. 그냥 낚싯대 흔들리는 거나 보면서 기분이나 내고 싶었어. ”
“ 아. 그런 거였어요? ”
엘렌은 낚싯대를 한 손에 쥐며, 남은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내가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다는 걸 알자마자 보이는 모습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 여자들은 이런 거 싫어한다던데… 혹시 엘렌도 그래? ”
“ 저는 용병이잖아요. 객지에서 구르는 게 익숙하다보니 낚시도 많이 해 봤어요. 그래서 싫어하지도 않고요. ”
“ 그러면 다행이고. ”
“ 더구나… 대공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그러니 무엇을 해도 좋고요. ”
오늘따라 너만 있으면 된다는 이 한 마디가 왜 이렇게 가슴을 울리는 걸까.
덕분에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 저기… 대공님.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
한창 낚싯대를 드리운 채 몰려드는 졸음에 몸을 맡기던 중, 엘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 탓에 기분 좋게 몰려들던 졸음기를 억지로 몰아내느라 애를 써야 했다.
단지, 그렇다 해서 엘렌이 짜증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늘이 진 표정을 본 순간 너무 긴장을 풀었나 싶은 후회가 밀려들 정도였다.
“ 응? 뭔데? ”
“ 올해, 공작님은 대공님의 아이를 품으시겠죠. 그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저기, 혹시……. ”
아이를 입에 담으며 머뭇머뭇 거리는 기색. 두 손을 모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모습을 보자 뇌리에 번갯불이 튀는 것만 같았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음에도 무슨 말을 할 지 다 이해가 갔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는 확신이 있었다.
엘렌이 내 아이를 원하고 있다는 그런 확신이.
“ 내 아이… 낳고 싶어? ”
지금 필요한 말이라는 확신을 갖고 입에 담기는 했으나, 막상 내뱉고 보니 참 미묘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임자 있는 여자를 수컷의 우월함으로 강탈한 뒤 내뱉는 말 같아 영문 모를 죄책감이 느껴졌다.
어이없게도.
다행히도 엘렌은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듯, 얼굴을 붉힌 채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참 다행이었다.
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 갖고… 싶어요. ”
매일매일 욕심을 부리며 내 정을 갈구하면서도, 아이를 원한다며 수줍게 내뱉는 모습이 아주 볼 만했다.
천박하지만 아래쪽에 피가 쏠리고, 머리가 점점 뜨거워짐을 느꼈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쉬이 밀어낼 만큼 뜨겁게.
“ 당장은 답이 없지만……. ”
스윽.
나는 주위에 인기척과 보는 눈이 없음을 확인한 뒤, 엘렌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 상태로, 엘렌의 긴 귀에 입술을 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허리를 두른 손을 엘렌의 아랫배에 올린 채.
“ 갖게 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줘. ”
“ …네. ”
종이 다르면 임신이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지만아예 또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곁에 인재도 많아,도움을 빌리다 보면 해결책이 아예 없지도 않을 듯싶었다.
엘렌도 그를 아는지, 입꼬리를 희미하게 끌어올리며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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