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마법병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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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숲에서 엘프와 전쟁을 벌이는 건 자살하고 싶다는 말과 같았다.
불규칙적이고 빽빽이 깔린 나무가 군대의 진로를 틀어막고 있으며, 그늘도 많고 엄폐물도 많아 시야 확보가 어렵다.
반면, 나무 위를 자유롭게 오고 가는 엘프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이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지리적 이점도 너무 극명한데다, 마법과 활을 주력으로 삼은 악랄한 원거리 전술까지.
모든 것이 유리했다.
헬레나는 그 악랄함에 주목함과 동시에, 평지에서 싸울 경우를 가정한 훈련을 동시에 진행했다.
“ 전술은 검술과도 같다 볼 수 있겠죠. 기술을 갈고 닦으면 닦을수록 검을 뻗을 길이 많은 것처럼 말이에요. ”
점심시간이 되었을 무렵. 헬레나는 반쯤 녹초가 된 무리를 자유롭게 풀어준 뒤, 이브와 단 둘이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했다.
실전에서 쓸 마법을 직접 갈고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휘 능력이라고.
“ 이브는 군대의 머리죠. 머리는 볼 수 있어야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절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 훈련을 하고 체력을 갈고 닦은 것은 아주 잘하신 일이지만……. ”
“ 머리로서의 능력을 좀 더 키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
“ 맞아요. 다만, 이름난 지휘관이나 노련한 지휘관에 이를 만큼 혹독해지라는 말은 아니에요. 이브가 부려야 할 군대를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을 만큼, 그만큼만 익숙해지면 되니까요. ”
머리로서의 능력이라.
이브는 새로운 숙제를 받은 것 같다 생각하며 눈을 반짝였다.
보통 사람이 숙제라는 말을 듣는다면 몹시 싫어할 테지만, 천성이 연구자였기에 그 반응이 사뭇 달랐다.
짧다면 짧은 생을 살았지만, 늘 숙제와 씨름해 온 인생의 주인다운 면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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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한 아이더라. ”
며칠 동안 함께 훈련을 해 본 결과, 헬레나는 이브를 성실하다고 평가했다.
본래부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성향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테인데, 어딘가 새삼스러운 평이었다.
“ 성실하지.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마법사를 하겠어?
“ 지온의 말도 옳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건 쉬운 일이야. 하지만 익숙지도 않고 부담감까지 큰 역할을 성실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
“ …맞는 말이네. ”
나는 침대에 드러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따라 격한 공격을 받은 엘렌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지 오래였으나, 그렇기에 헬레나의 목소리에서 여유와 불만을 엿볼 수 있었다.
헬레나 또한 기절할 정도로 안기고 싶어 했지만, 내가 적당히 조절한 결과였다.
“ 그래도, 너무 열심히 하다 쓰러지면 안 되니까 신경 좀 써 줘. 부탁할게. ”
군사에 관해서는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을 뿐인지라 전문가인 헬레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군대는 전문적으로 훈련을 제대로 시켜야지, 얄팍한 지식으로 덤벼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헬레나도 그를 알기에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몹시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침대 위에서 다른 여자를 잘 봐 달라는 말 때문에 질투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 꺄앗! ”
헬레나의 팔을 잡아 품 안으로 끌어당기자 앳된 비명이 울렸다.
놀라는 척, 당황스러운 척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목소리에 한껏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매끄럽고 탄탄한 여자의 허리를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깨끗하기 그지없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오늘은 훈련하러 가지 않아도 돼. 내가… 아무데도 못 가게 만들어 줄 테니까. ”
이후, 아침이 되도록 끊임없는 교성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덕분에 신이 나서 더욱 격하게 움직인 감도 없잖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운 밤을 보냈다.
늘 그랬듯이.
“ 요즘 들어 여자 다루는 법만 너무 느신 거 아니에요? ”
그 뒤로 제법 시간이 지나, 나와 함께 집무실로 걸음을 옮긴 엘렌이 짧은 한숨을 토해내며 물었다.
헬레나는 지나친 절정 탓에 지금도 침대 위에 쓰러져 잠들어 있어 우리 들 뿐이었다.
“ 내가? 그럴 리가. 여자라고 해봐야 엘렌과 헬레나 둘 뿐인데. ”
“ 그렇지만 점점 여유로워 지시잖아요. 본래 몸을 섞으면 남성 쪽이 더 피곤하다고 들었는데……. ”
나는 소파에 앉은 채 하품을 하며, 엘렌의 불평을 곱씹었다.
잠자리에 있어 남자는 토해내는 쪽이고, 여자는 받아들이는 쪽이니… 남자가 피곤하다는 것도 맞는 말이긴 했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남자 쪽이 쉬이 지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간혹 나이가 들어서도 승기를 쥐는 남자들이 있기는 했다.
그 수가 별로 없어 몹시 예외적일 뿐이지만, 없는 건 아니었으니.
“ 너나 헬레나가 좋은 걸 워낙 많이 먹여서 그렇지. ”
“ 아. 그런… 가요? ”
“ 그 비싸다는 피부터 시작해서, 어쩌다 보니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잖아. 내게 있어서도 좋고 감사한 일이기는 하지만, 당사자인 엘렌이 불만을 가지면 안 되지. 너와 헬레나가 나를 이렇게 키운 거니까. ”
네가 키웠으니 불만 갖지 말고 책임을 져라.
그저 글러먹은 인간의 헛소리처럼 들리기 쉽겠지만, 엘렌은 이상하게도 그를 듣고 은근히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약간 상기된 기색으로 배시시 웃는 것 하며, 묘한 점이 있었다.
그에, 나는 영문 모를 쑥스러움을 털어버리듯 헛기침을 했다. 대화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 크흠. 아무튼, 노예들 관리는 괜찮아? 큰 문제는 없고? ”
“ 엘프 노예들요? 네. 괜찮아요.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한 적도 종종 있었는데, 다들 얌전하더라고요. ”
“ 그래? 엘렌이 없어도? ”
“ 네. 혹여나 불온한 기색을 띠지 않을까 싶어 몰래 이야기를 엿들어보기도 했는데… 안심하는 기색들이 많았어요. ”
만리장성을 만들 때처럼 학대하고, 몰아붙이지 않은 탓에 여론이 좋다.
엘렌은 그리 말하며,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묘한 기색을 띠었다. 본의 아니게 시작한 노예 생활을 자발적으로 하는 엘프들이 이상하게 보일 만 했다.
“ 그러면… 앞으로 엘렌이 직접 감독하러 갈 필요가 없겠네. ”
“ 정말요?! ”
굳이 엘렌이 감독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아 말을 꺼내봤더니 몹시 기뻐했다.
눈을 반짝이는 것도 그렇고, 무심코 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렇고.
“ 그래. 내일부터는 사람을 보내 간단하게 보고만 받아도 될 것 같아. ”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더구나, 얼마나 기뻤는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꺼냈다.
낮 시간에 한정된 것이라고는 하나, 한동안 떨어져 있었던 탓에 스트레스가 제법 쌓인 모양새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여태껏 쌓인 스트레스도 풀 겸, 위로를 해 줄 생각으로 엘렌을 품에 안은 채 다독여 주었다.
어찌 보면 아이 달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생각할 법도 하지만, 본인이 만족하니 다행이었다.
더해, 몰래 챙겨 둔 먹을거리에 손을 대듯 엘렌의 욕구를 가볍게 풀어주기도 했다.
일대일로 안기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무척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그 결과 피로가 다소 쌓이긴 했으나, 단지 그 뿐이었다.
“ 아. ”
더럽혀진 집무실을 치우고, 침대에서 일어난 헬레나와 함께 욕실에서 땀을 씻고 나온 직후. 저도 모르게 앗 소리를 냈다.
번갯불처럼 강렬하고 빠르게 뇌리를 스친 생각 때문이었다.
“ 왜 그래? 어디 아파? ”
조금 전 까지 사이좋게 씻겨주던 헬레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욕실에서도 한바탕 전투를 치른 직후, 엘렌까지 함께 상대한 내가 걱정되는 기색이었다.
“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그보다, 랜들이 언제 온다고 했었지? ”
“ 랜들? 기사단 훈련이 이번 달 말에 잡혀 있으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대략 일 주 하고 조금 더? 그런데 그건 왜? ”
“ 마침 괜찮은 생각이 하나 나서. ”
시간도 적당하니 딱 좋다. 꿩 대신 닭이라고, 마법병단은 못 쓰더라도 엘프 노예를 대충 굴려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이브의 지휘 훈련도 해 보고, 기사단은 접하기 어려운 엘프와 싸워볼 수 있어 이득도 컸다.
나는 그런 속내를 두 여자에게 말하며, 옷을 다 갈아입자마자 사람을 불렀다.
갑작스레 오늘 하루 휴식하게 된 이브를 불러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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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단과 연습 전투를 하란 말씀이세요? ”
“ 그래요. 이브가 실전에서 얼마만큼 지휘를 할 수 있는지, 그를 시험 삼아 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요. 연습은 결국 실전을 위한 것이니까요. ”
이브가 저택 집무실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뒤, 본론을 꺼내자 놀란 기색을 보였다.
뜬금없이 엘프 노예들로 병대를 구성해 지휘를 맡으라 말하니 당황할 만도 했다.
“ 물론, 실전이라고 해도 진짜 실전은 아닙니다. 실전에 가깝지만 결국 훈련이죠. 어쨌든, 해 보실 생각이 있나요? 이건 이브의 의향이 가장 중요하니까 솔직하게 답하세요. ”
솔직한 답해 달라는 것이 아닌 내놓아라.
답 해주세요와 답 하세요의 차이는 사소하지만, 의미가 크게 달랐다.
이브도 그를 아는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작스레 실전 훈련을 해 보라는 말을 들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나는 그제야 아차 싶은 마음에, 급히 한 마디 덧붙였다.
잘 됐다 싶은 생각에 일을 너무 급히 밀어붙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 아,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마음에 이브까지 초조하게 만들었네요. 며칠 정도 시간을 드리겠지만, 하기 싫으시다면 지금 당장 거절하셔도……. ”
“ 아뇨, 하겠습니다. ”
내가 당황하여 말을 번복하던 중, 이브가 무척 단호한 투로 답했다.
긴장한 기색이 아직 남아있지만 희미한 정도였고,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고민하고, 곰곰히 생각해서 결론을 내린 듯싶었다.
“ 하시겠… 다고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너무 급한 마음에 부르기는 했지만, 결코 압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
“ 부담을 느껴서, 눈치가 보여서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대공님의 말씀도 진심이라는 걸 알고요. ”
“ 그럼에도, 받아들이시겠다는 말씀이시죠? ”
저질러 놓고 되묻는 꼴이 어처구니없기는 하지만, 생각대로 굴러가는 것 같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란 놈이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라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한창 스스로 저지른 행동을 반성하던 중, 이브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 네. 받아들일게요. 마침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고, 기사 분들을 상대로 검증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
“ 시험… 이요? ”
“ 네. 대공님이나 공작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곧 마법 하나가 완성될 것 같아요. 본래 예정대로라면 조용히 써 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 된 것 같아요. ”
시험이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브가 압박감에 시달려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법사란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종의 과학자였고, 이브 또한 그런 부류다.
그러니 애써 만든 마법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겠지.
나는 어쩌다보니 시기가 딱 맞아 떨어진 것에 감사하며, 한결 편한 마음으로 대화에 임했다.
“ …감사합니다. 그러면, 곧장 엘프 노예를 어떻게 다룰지 얘기해 보도록 하죠. ”
“ 네. 엘프 노예 수가 총 구십 정도라고 하셨죠? 공교롭게도 다크엘프 마을에 모일 다크엘프의 수와 비슷하네요. ”
생각해보니 또 그렇다. 내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브가 탄력을 받은 듯 제법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편제부터 시작해 훈련 계획이나, 노예의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며칠 동안 헬레나가 교육을 시키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바뀌나.
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옆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 있던 헬레나가 피식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훤히 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이번 훈련의 목적은 연습과 확인이니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혹시 부족한 점이 있나요? ”
부족한 점? 있을 리가 있나.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맞은편에 앉은 이브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이라면 좀 더 꼼꼼해야 할 필요가 있을 테지만, 알다시피 훈련이다.
훈련은 실력을 키우고 점검하기 위해 하는 것이니이 정도면 충분했다.
“ 제가 듣기로는 충분하지만… 헬레나는 어때? 뭔가 덧붙이고 싶은 게 있어? ”
“ 없어. 충분해. 뛰어난 분이라 그런지 흡수력도, 이해력도 좋아. ”
헬레나도 더할 나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브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아마 우리가 던진 칭찬에 쑥스러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엘렌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엘렌 입장에서는 별 감흥이 없을 만도 하니까.
“ 좋습니다. 이브는 내일 엘프 노예들이 있는 쪽으로 가 주세요. 일에 차질이 없도록 오늘 사람을 보내 통보하겠습니다. 쉬는 중에 불러서 미안했어요. ”
“ 아, 네에. 실례했습니다. ”
이야기가 다 끝나자, 이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가 죽은 기색을 띤 채 집무실을 나섰다.
방금 전까지 똑 부러지게 말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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