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이번에는 무사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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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성벽에 마법 효과를 부여하고 싶으시다고요? ”
“ 그래요. 가능할까요? 구체적으로는 전에 모기를 죽였던 마법을 어떻게 뒤틀면 가능할 것 같아서요. ”
다음 날.
헬레나는 손님방에 콕 박혀 쉬고 있던 이브를 끌고 외벽으로 나와 폭탄을 던졌다.
대뜸 대규모 작업을 요구했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 저어… 이런 말씀을 드리긴 정말 죄송하지만, 성벽에 마법진을 새기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전처럼 진을 설치했던 평지와 다르게 성벽이 울퉁불퉁해서 제대로 된 진을 그릴 수가 없어요. ”
“ 아, 그런가요? ”
“ 네. 거기다… 이런 큰 성벽에 마법진을 새기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알 수가 없어요. 보수라도 하면 진이 그려진 벽돌을 빼낼 일도 있을 텐데, 그러면 진이 망가져서 작동도 안하거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도 있어서……. ”
한 마디로 모기를 죽일 때처럼 뚝딱 완성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한다.
성벽이라는 구조물의 특성상 시도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도 했고.
“ 아쉽네요. ”
“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
“ 전혀 죄송할 일이 아니니 풀 죽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성벽 주위를 감싸듯 마법진을 배치할 수는 있을까요? ”
마법 인력은 이브 한 사람 뿐이니 그녀를 갈아버린다 한들 한계가 명확하다.
대신 땅에 그리는 마법진은 조금의 여유가 있으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브 또한 고개를 끄덕여 그 가능성을 긍정했고
“ 네… 그건 가능해요. 다만 수성을 목적으로 하신다면 이렇게 개방된 장소에 까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
“ 그러면 마법진을 은폐하는 마법진을 배치할 수는 없을까요? ”
“ 은폐요…? 아. 그러면 되겠네요. ”
이브는 손뼉을 탁 치며 입술을 살짝 벌렸다.
결국 거친 노가다를 앞에 둔 사람답지 않게 기뻐하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다.
은폐 마법진까지 새기며 구슬땀을 흘릴 미래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 좋아요. 그럼 전처럼 필요한 재료 등을 준비해 드릴 테니, 저희 집사에게 직접 언질을 해 주세요. ”
“ 네. 알겠습니다. ”
“ 아. 그리고 이번에도 무척 고생이 많으실 테니, 혹여나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요. 수고비와 별도로 마련해 드릴 테니 부담 갖지 마시고요. ”
“ 와아…! 감사합니다! ”
월급에 보너스. 이브는 그에 눈을 반짝이며 몹시 기뻐하는 눈치였다.
너무 지나치게 비싼 것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뭐든 사 주기로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리고, 어떤 마법을 새길 지도 정해 둔 상태였다.
수면. 수면마법이었다.
본래 헬레나는 범위 안에 들어 온 상대를 즉사시킬 수 있을 마법을 개발하게 하여 새기려 했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독가스를 사방에 흩뿌리는 것 같아 오싹하기 짝이 없었다.
영지를 지키고 희생을 줄이는 측면에서 보면 참 편하겠지만, 그것이 주는 여파가 심상치 않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 대신이라고 할 수면마법을 대규모로 펼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브가 스스로 직접 사람을 죽일 마법을 새기게 하는 것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수면마법에 걸려 무력해진 상대를 죽이면 그게 그거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접 칼을 들고 상대를 찌르는 것보단 훨씬 죄책감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다.
◎◎◎
해독 아이템 하나로 때우자.
헬레나는 국왕의 생일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정하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독을 막는 해독 아이템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 선물로서는 더할 나위 없기는 했다.
문제는 해독 아이템이 여러 매직 아이템 중에서도 최고 등급에 속할 만큼 비싸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비쌌으면 국왕조차 구입할 수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비싸고, 수량도 작아 구입하기도 어렵다.
생각은 좋지만 국왕의 생일을 몇 주 앞둔 시점에서 구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고,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데도 헬레나는 그 아이템을 구하자는 말을 쉽게 꺼냈다.
아마 무언가 생각이 있어 이러는 것이 아닐까.
그리 생각하며 물었더니, 그 답이 참 허탈했다.
“ 이브에게 부탁해서 만들면 되지 않을까? ”
“ 아니… 지금도 성벽 밖에서 고생하며 마법진을 새기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자고? ”
“ 나도 미안하기는 한데… 쓸 수 있을 때 쓰는 것도 재량이잖아. 안 그래? ”
헬레나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 좀처럼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영지로 끌어들인 마법사를 알뜰하게 써먹으려는 것을 보니 이브가 새삼 불쌍하게 보였다.
마치 지금 이 시간에도 갈려나갈 공돌이들을 생각나게 했다.
“ 그래… 어쩔 수 없지. ”
나는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헬레나가 말한 대로 해독 아이템을 선물하면 작년 사건으로 인해 나빠진 인상을 크게 개선할 수 있었다.
해독 아이템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늦은 오후 무렵 돌아온 이브가 내놓은 한 마디가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 죄송해요. 저는 아이템을 만드는 재주는 없어서……. ”
“ 억. ”
특정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법 능력 이상으로 세공 능력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현재 바깥에 나도는 해독 아이템은 목걸이 등 몸에 걸치기 쉬운 것인데, 이는 어느 상황에서도 급히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편의성과 신속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브는 연구에 몰두했을 뿐 손재주를 기르지는 않아 그 세공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넓은 곳에 마법진을 새기는 일은 잘 했지만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마법 부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천재라고 한들 그것이 꼭 만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여지없이 깨닫는 순간이었다.
“ 내가 잘못 생각했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야. ”
매직 아이템을 만드는 마탑 출신이니만큼 이브 또한 아이템 제작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했던 헬레나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안일했다며 고개 숙였다.
“ 그래. 잘못이 있다면 너무 편하게 생각한 것뿐이야. 생각은 없어 보이지만, 지금이라도 비단이나 사치품 등을 그럭저럭 크게 꾸려서……. ”
“ 아, 저기……. ”
아직 여유는 있지만 선물을 준비할 시간을 고려해보면 서두르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얼른 생각을 고쳐 다른 물건으로 대체하려 했는데, 이브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 네? 무슨 일이시죠? ”
“ 그… 해독이 목적이시라면 꼭 아이템이 아니어도 괜찮은가요? ”
“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
마치 아이템이 아니라면 해독이 가능하다는 말이 몹시 신경 쓰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떨기까지 했다.
마치 희망고문이라도 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휴대하기엔 무척 불편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해독 필드라면 마련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서요. 마탑에 있을 때 여러 분들의 수식에 손을 대 본 적은 있었거든요. 그 때 해독식도 접해 봤었어요. ”
“ 정말이십니까?! ”
“ 네, 넷! 정말입니다! ”
내가 무심코 소리 높여 묻자, 이브가 잔뜩 움츠린 채 힘차게 답했다.
겁박할 생각은 없었으나 흥분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모양이다.
더해, 헬레나의 기대어린 시선마저 날아들었으니 더욱 긴장할 만도 했다.
“ 으, 으음…!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아무튼, 무언가 생각이 있으신 모양인데… 그 해독 필드라는 걸 만드시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너무 오래 걸리시면 굳이 애쓰시지 않으셔도……. ”
“ 아뇨. 마법진이 커서 그렇지, 제작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한, 사흘만 주시면……. ”
세상에!
나는 신이 있음에 감사하며, 저도 모르게 내 손을 기도하듯 꽉 쥐었다.
나와 같이 누군가를 파견할 때를 빼면 가끔 축복 정도나 내릴 뿐 구경만 하는 족속들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이 손을 쓴 것만 같았다.
아니… 정말 손을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잘 굴러갔다.
이브가 천재인 덕도 있겠지만, 꼭 그것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 이 들었다.
“ 꼭 좀 부탁드릴게요. 부족하지만 사례도 할 테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
“ 아, 네에……. ”
헬레나가 부드럽게 이브의 손을 잡으며 부탁하자, 이브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알뜰하게 써먹는 것 같아 몹시 미안할 지경이었다.
기술료라는 원가도 더럽게 비싸니까.
◎◎◎
그리고 사흘 뒤. 이브는 자신이 말했던 대로 잘 만들어진 완성품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척 보기에도 한 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마법진이 눈을 어지럽게 했으며, 뒷면에는 강도 강화를 위한 마법진이 또 그려져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복잡한 수식의 정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건은 완성되었지만 마지막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미리 공수해 두었던 독을 먹으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브가 말했다.
마법진을 가동하면 범위 안에 들어온 독을 자동으로 없앤다고 했기에.
“ 네. 독은 없어졌을 겁니다. 마셔 보세요. ”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다 사라졌다.
진이 닿는 범위 내의 독을 전부 중화했다는 뜻이었다.
만일을 대비해 해독제를 마련해 두기도 했으니 죽을 걱정은 없겠지.
나는 이브를 믿고 손에 든 작은 유리병의 뚜껑을 따 목구멍 안으로 털어 넣었다.
즉효성에 강한 독이니 먹는 순간 목구멍이 화끈거리며 내장이 뒤틀린다 싶을 정도로 아플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물을 마신 것 마냥 아무 자극도 없었다. 그 말은 즉 해독마법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뜻이었다.
“ 네. 아무 이상 없네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후우. 내가 태연하게 웃으며 이브에게 인사를 건네자, 헬레나와 엘렌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크게 한숨 쉬었다.
해독제를 준비했다고는 하나, 두 여자는 내가 솔선하여 독을 마시는 것을 크게 반대했었다.
그러니 그 안도감이 사뭇 클 만도 했다.
“ 검증까지 마쳤으니 성능 하나는 확실해. 일부러 부수려 발악하지 않는 이상 보존에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
“ 문제는… 이 큰 것을 옮기려면 고생 좀 하시겠네요. ”
엘렌이 내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바닥에 깔린 마법진을 한숨 섞인 눈초리로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진이 새겨진 거대한 석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이 석판은 은폐 마법진과 더불어 수면마법을 성 밖 곳곳에 깔아두기 위해 공수해 온 물건이었다.
마침 해독 마법진을 새기기 위해 필요한 큰 물체라는 조건과 맞아 겸사겸사 썼을 뿐이지.
“ 걱정할 것 없어. 미리 이 석판을 옮기기 위해 짐마차 몇 대를 이어 개조하는 중이니까. 늦지는 않을 거야. ”
헬레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답했다.
석판을 쓰겠다고 정한 순간부터 대비했기에 몹시 여유로워 보였다.
“ 참. 그랬었죠. 다행이네요. ”
“ 응. 참 다행이지. 그런데… 이렇게 비싼 걸 정말 대가 없이 받아도 괜찮아요? ”
문득 헬레나의 시선이 엘렌에서 이브를 향했다.
비싸디 비싼 해독마법 아이템을 대가 없이 주겠다 했으니 신경이 쓰일 만도 했다.
어찌 보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브는 실패작에 대가를 받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 해독 아이템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휴대성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편히 소지할 수 있기에 더욱 가치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아이템은 그런 휴대성, 더 나아가 신속성이 떨어지잖아요. 예를 들면… 마법진과 떨어진 곳에서 독을 먹으면 바로 해독할 수도 없으니, 허울뿐인 장식이 될 수도 하고요. ”
거기다, 난생 처음으로 가치를 인정해 준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여전히 소심했지만 전과 다르게 단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그에, 헬레나는 진심으로 감동받은 듯 이브의 두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입술을 뗐다.
“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는 어떻게든, 나중에라도 반드시 보답 할게요. 제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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