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모기 하나 없애자고... #5
* * *
“ 네…? 모기를 잡아요? ”
이브가 몹시 황당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워낙 병약한지라 목소리를 높임에도 기가 강하다는 인상을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 네. 늘 여름철이 되면 극성인 모기를 잡고 싶습니다. 제가 짜증난다는 이유도 있지만, 모기가 없어지면 영지민들의 여름 또한 몹시 쾌적해 질 것 같아서요. ”
“ 어… 소탈하신 분이시네요. 그래도 모기를 잡는 데 마법을 쓴다는 건……. ”
“ 황당할 만도 하시겠지요.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모기를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잡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며, 시간도 오래 걸릴 겁니다. 그러니 마법의 힘을 빌리고자 찾아 온 것이고요. ”
에스킬라나 모기향만 있었어도 마법으로 모기를 죽인다는 나사 빠진 생각에 이르지도 않았다.
환경이 허락지 않았기에,
그리고 모기의 혐오스러움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기에 여기까지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이브는 반쯤 몽롱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는 기색이었다.
이럴 때는 내가 계속 말을 이어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그러다 보면 흥미를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그녀가 가장 흥미 있어 할 만 한 분자나 입자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물론 나는 비전문가이며 그저 그런 것이 있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기에 영양가 없는 수박 겉핥기식이었다.
그러나, 이 괴짜는 그를 시작으로 내가 도저히 답하지 못할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아는 척 하다가 호되게 얻어맞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정신적인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애초에 어릴 적 잠깐 읽었던, 그리고 지금은 그 행방조차 알 수 없는 책에서 대충 주워 챙긴 개념이라고 못 박아두었으니까.
“ …하아. ”
수많은 질문 공세가 끝나기 무섭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질문을 끝낸 당사자, 이브는 무언가 떠오른 듯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종이와 펜을 들고 열심히 손을 놀렸다.
성질은 다르지만 재녀라 부르기에 부족함 없는 헬레나, 그리고 그에 더해 경험도 풍부한 엘렌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보였다.
도저히 알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를 잘도 지껄여대니 머리만 아팠으리라.
“ 아주 좋아요. ”
그렇게 새하얀 종이 여러 장에 온갖 수식을 어지러이 새겨놓고 나서야, 이브가 입을 열었다.
“ 아주 좋아요, 크라우저 님! 설마 세상을 구성하는 원소 보다 더욱 작은 단위가 있었을 줄이야!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건 유감스럽지만… 그것을 안 것만으로도 큰 실마리를 얻어냈어요! ”
“ 그… 렇군요. 그것 참 다행입니다. ”
“ 네! 크라우저 님은 제 은인이세요! ”
은인이라. 고작 단어 몇 개 던져버린 것 가지고 은인이란 소리를 들으니 낯이 다 뜨거워질 지경이다.
이브에게 있어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운 일이겠지만내게는 너무 사소하기도 했고.
아무튼, 이브가 내게 은혜를 느낀다면 내 부탁을 쉽게 들어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꺼내니,
“ 그러시다면, 제 부탁도……. ”
“ 네! 물론 들어드려야죠! 부족하지만 제 머리를 전부 쥐어짜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야죠! 그러므로 지금 짐을 쌀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
이브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캐리어 같은 가방을 꺼내더니, 필요한 도구를 부랴부랴 챙기기 시작했다.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마치 사람이 바뀐 듯한 적극성 때문에.
◎◎◎
“ 지온. 정말로 저 여자로 괜찮은 거야? ”
마탑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헬레나가 질문을 던졌다.
엘렌과 헬레나는 늘 그렇듯 마부석에, 이브는 천막 천으로 둘러싸인 짐칸에 앉아 느긋하게 쉬는 중이었다.
“ 괜찮냐니? 왜? ”
“ 갑자기 우리 영지로 오겠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적극적인 인상으로는 안 보였거든. 수상해서. ”
수상함을 입에 담는 헬레나의 눈빛이 날카롭다.
그렇다 해서 순수하게 의심만으로 경계하는 것이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몇 번이고 눈에 담았던 질투심이 녹아 있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엘렌과 내가 서로 알 수 없는 주제로 대화가 잘 통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 이유가 아닐까.
“ 그냥 보통 사람과 감성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 마법사, 특히 연구에 매진하는 마법사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하니까. ”
“ 그럴 수도 있겠지만……. ”
헬레나의 낯빛에 불만스러운 빛이 깃들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무래도 내게 이브에 관한 불신감을 심어주어, 지금이라도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저러는 것 같고.
“ 걱정할 게 뭐가 있어? 보호해주지 못하는 내가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듬직한 헬레나가 있잖아. ”
나는 헬레나의 허벅지에 손을 얹으며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려 노력했다.
은근슬쩍 허벅지를 쓸거나, 때로는 주무르기도 하며 촉감을 확인하려는 듯 손가락을 놀렸다.
근육과 촉촉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좋은 허벅지다.
“ 아, 으응……. ”
더구나 그 손길이 허벅지 바깥부분을 쓸며 골반 근처까지 이르자, 헬레나가 달콤한 목소리를 내며 신음했다.
이런 식으로 불만을 잠재우고 입을 다물게 하는 것도 익숙해졌지만, 정말 이대로 좋은가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 그렇지? ”
“ 으, 으응. 지온에게는 내가 있으니까, 무서울 거 없… 흐으응! ”
내가 등허리 아랫부분을 가볍게 토닥이듯 두드려주자, 헬레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탐스러운 허벅지가 움찔대고 눈빛이 몽롱해진 것을 보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대신, 그를 보고 옆에서 칭얼대기 시작한 엘렌을 달래주느라 제법 바삐 손을 놀려야 했다.
촉감은 약간 다르지만 감히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훌륭한 허벅지였다.
짐칸에 타고 있을 이브가 보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탑에서 공작령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평화로운 때를 보낼 수 있었다.
두 여자를 달래면 자연스레 평화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누군가는 농락이라고 할 법 하지만 달랬다는 표현이 더 맞는다고 믿고 싶었다.
“ 대공이시라고 들었는데… 진짜 대공이셨네요. ”
공작령의 관문부터 시작해 저택의 하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응접실에 이르자, 이브가 약간 놀라운 듯 눈을 깜빡였다.
마탑을 나올 때부터 단순한 귀족이 아닌 공작과 그 친구들이라 소개했기에 충격이 덜해 보였다.
“ 네. 부끄럽지만 헬레나의 관심을 얻어 대공까지 되었죠. 분에 넘치는 자리라 긴장할 때가 많아요. ”
나는 우려낸 차를 이브에게 내밀며 피식 웃었다.
똥개도 자기 구역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더니, 내 집에 오자 편안함부터 차원이 달랐다.
여행길에 오른 적이 제법 많았음에도, 오늘처럼 절실히 느낀 적은 처음이다.
“ 아. 잘 마실게요. ”
이브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분하고, 또 어딘가 기가 죽은 기색으로 찻잔을 들었다.
차 맛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홀짝거리는 눈치였다.
“ 네. 제법 긴 여행길이었으니 며칠 푹 쉬시고, 형질 조사는 그 후에 시작하셔도 괜찮아요. ”
“ 아…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
헬레나와 엘렌은 내 부탁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기에, 이 집무실에는 나와 그녀 둘 뿐이다.
당연히 떨어지기 싫어하는 두 여자를 상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쓴 결과였다.
이브가 이곳으로 오겠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른 환경에 따라 마나의 흐름 또한 미묘하게 다르고, 그를 조사하여 계산에 넣기 위함이었다.
특히 이브의 마법이라면 더더욱 그 계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 그런데, 저에게 하실 말씀이라는 건…? ”
찻잔을 깨끗이 비워낸 이브가 본론을 꺼내들었다.
잠깐 둘이서 할 말이 있어 시간을 내달라고 한 것도 나였으니, 말이 나온 김에 그에 대한 답을 할 생각이었다.
“ 다름이 아니라, 위험하지는 않겠습니까? ”
“ 위험이라 하시면…? ”
“ 마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당신이 다치거나, 혹은 영지민이 다칠 수 있을 가능성이죠. ”
“ 아… 마법을 연구하다 보면 여러모로 시행착오를 거치긴 하는데, 그런 일은 잘 없어요. 물론 마법식이 폭주해서 말아먹은 사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제가 신경 쓸 게요. 대공께서 주신 실마리 덕분에 눈이 트이기도 했고, 인정해주신 만큼 부작용 없이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게요. ”
결연한 눈빛.
여전히 낮고 소심한 기색 또한 있으나 목소리에 확신이 있다.
그녀 같은 천재가 그렇게 말한다면 충분히 믿을 만 하다 생각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대기 성질이 약간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네요.
─숲이라, 그렇군요. 확실히 여름이라 그런지 모기도 많아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모기를 조사해서…….
노력하겠다고 호언한 만큼 이브의 일처리는 참 꼼꼼했다.
다소 경계하던 헬레나도 그 열정에 감탄하여 이브를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엘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기 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나보다.
내가 봤을 때는 열정을 넘어 광기에 가깝다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무난하게 넘길 만 했다.
“ 가동. ”
그리고 마침내, 이브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는 순간이 왔다.
이브가 영지 주위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설치해 두었던 마법진들이 동시에 빛을 발하며, 보통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진한 마나의 흐름이 강물처럼 허공에 흘렀다.
커다란 원을 바탕으로 여러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도형이 그려진 마법진.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울 만큼 복잡해 보이는 그 모습에수학 공식만 봐도 머리가 아프던 옛날이 떠올랐다.
그러나, 복잡하고 괴기하기 짝이 없던 마법진과 다르게 그것이 일으키는 현상은 참 간단했다.
내가 지나가듯 말했던 희뿌연 안개가 가스처럼 솟아나와 주위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모기만을 죽이는 안개에요. 모기를 제외한 다른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아무 영향이 없어요. ”
“ 그랬었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
속 시원하게 모기만을 죽이는 핵분열이라는 상상도 해 봤지만이 안개만큼 정겹고 평화롭지는 못했다.
핵분열을 실현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둘째 치더라도, 그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영 불안했다.
무엇보다 이브가 핵분열 개념까지 알아낸다면 아주 큰 일이 날 것만 같았다.
도저히 손 쓸 수조차 없을 정도로.
“ 제발… 죽었으면. ”
나는 퍼져 나가는 안개를 보며 기도했다.
듣기로는 살아있는 모기 뿐 아니라 모기가 까놓은 알까지 죽임은 물론, 앞으로 다가 올 모기마저 깔끔하게 죽는다고 했으니… 제발.
“ 대공님은… 아이 같으신 면이 있네요. ”
“ 아… 크흠! 죄송합니다. 모기가 워낙 싫어서 그만……. ”
“ 후후. 그럴 수도 있죠. ”
무안함을 털어내고자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점점 옅어가는 안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안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맑은 숲이 눈에 들어왔다.
“ 이제 하루 야영을 해 보는 일만 남았네요. ”
모기가 사라졌음을 확인하기 위해 야영을 오늘 하루는 이 숲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이브로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날 만도 했지만,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순응했었다.
검증은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야영을 해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두 여성의 반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기적을 확인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다소 유감이었다.
“ 네. 결과 보고는 내일 아침이나 점심 전에 해 드릴 테니, 안심하고 푹 주무세요. ”
“ 부탁드립니다. ”
나는 설렘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야영하는 이브도 영지의 정예병 수십과 함께 할 테니 안전하리라.
그녀 또한 마법사이고, 평화로운 시대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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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날.
나는 모기 박멸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헬레나와 엘렌, 그리고 소식을 전하러 온 이브의 눈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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